내 마음의 워낭소리 / 이 현 학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은 빗줄기였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어린 소년은 산길을 걸었다. 무서움과 서러움이 빗물에 섞여 뺨 위로 흘러내렸다. 소년의 발걸음에 맞추어 뚜벅뚜벅 걷는 소의 등줄기도 비에 젖었다. 여린 풀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소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워낭소리만이 산 속의 침묵을 깨며 울려 퍼졌다. 소년은 손에 쥔 고삐를 다 잡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누나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인적 드문 산길에 비까지 내리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와 소를 기다릴 어머니와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에 찌든 어머니의 한숨 소리는 내 어린 가슴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아버지는 정미소를 운영하다 서른아홉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 모두를 절박한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았다. 졸지에 가장이 된 형은 또 얼마나 그 짐이 무거웠을까. 나보다 논갈이할 소를 더 간절히 기다릴 어머니와 형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를 맞는 소가 애처로워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봄이었다. 농사 준비로 농촌은 바빠졌다. 산과 들의 온갖 생명체는 동면에서 깨어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건만, 우리 집은 하염없이 들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해동이 된 논과 밭을 갈아엎어야 흙이 부드러워지는데, 소가 없으니 다른 집 일이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소를 키울 형편이 못되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빚 청산을 하고 나니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농사는 늘 늦어지고, 때를 놓친 농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소를 몰고 오라는 임무가 내게 떨어졌다. 소가 없어 농사 때를 놓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누나가 자신의 집에 있는 소를 몰고 가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시집간 누나에게 가난한 친정은 애절함과 안타까움의 대상이었으리라. 출가외인이라며 친정과는 분명한 선을 긋던 시절이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누나의 시댁은 산골이었지만, 사는 형편은 괜찮은 편이었다. 친정 사정을 뻔히 아는 누나의 궁여지책이었다. 소를 친정에 보내 궁색한 살림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는 속 깊은 배려였던 것이다.
내 나이 겨우 열 살이었다. 사십 리 떨어진 누나 집까지 가서 소를 몰고 오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못 간다고 떼를 쓸 형편도 배짱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린 나를 일찍 철들게 만들었다. 나 혼자 그 먼 길을 갔다 올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누나 집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다. 해질 무렵에 가까스로 누나 집에 도착하니, 누나는 갖은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혼자 찾아온 어린 동생이 안쓰러웠으리라. 누나 옆에 서 잠을 청했지만, 사십 리 길을 걸어갈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소를 몰고 누나 집을 나섰다. 시어른들 눈을 피해 얼마간의 돈을 내 주머니에 몰래 넣어주는 누나의 손이 한없이 따스했다. 나와 누나는 애써 눈길을 피했다. 어린 동생에게 소를 딸려 보내야하는 누나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흐린 하늘만이 남매의 애틋한 이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나도 나와 함께 우리 집에 가자고 하고 싶었던 말을 참느라 이를 꽉 깨물었다. 누나의 눈길이 내가 소와 함께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일철이 끝나고 다시 누나 집으로 소를 몰고 가야만 했다. 산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도 지고, 꽃이 진 자리에는 초록의 잎이 돋아났다. 농담이 조금씩 다른 연두의 물결이 출렁이는 산길에는 시나브로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내 마음에도 파릇한 희망의 싹이 조금씩 자라나는 듯 했다. 어쨌든 내 몫을 해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내가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올 때와는 달리 산길이 무섭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소와 정이 든 나는 소가 친구처럼 든든했다. 그때 들려오는 워낭소리는 봄바람이 연주하는 경쾌한 음악처럼 내 귓전에 울려 퍼졌다.
참꽃처럼 곱던 누나도 환갑을 넘겼다. 빗속 사십 리를 나와 함께 걸었던 그 소도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죽었을 것이다. 열 살 어린 소년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다. 온갖 봄꽃들이 멀미가 나도록 피어나던 그 산길도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시작한 사업이 무너져 빚만 잔뜩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그날 산길을 걸으면서 들었던 워낭소리였다. 가난과 외로움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날 비를 타고 흐르던 눈물의 짠맛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내 옆에서 함께 했던 워낭소리도.
프로필
경북 성주 출생
동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수필과 비평 신인상 등단(2013)
경산수필문학회회장(전), 경산수필회원(현)
성주거목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