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김창남 엮음, 한울
김민기 선생이 돌아가신지 아흐레가 된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김민기 선생의 노래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내 십팔번 중 하나는 '작은연못'이었다.
'아침이슬'은 언제나 모임이 파할 때 어깨를 걸고 부르던 노래였다.
왜 그렇게 우리는 비장하게 불렀을까? 지금도 '아침이슬'을 부르면 울컥한다.
<개똥이>에 삽입된 '날개만 있다면'은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 외로울 때 혼자 부르곤 하던 노래다.
이 책은 한울 출판사에서 2004년에 출판된 책이다.
선생의 작품들, 대본, 악보, 창작 배경, 대담자료, 비평 등이 막라되어 있다.
지난 7월 21일 선생이 돌아가시고 이 책과 더불어 sbs에서 다시보기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도 봤다.
다큐에서는 김민기 선생의 개인사와 이력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아,
베일에 싸인 것처럼 누락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침 얼마전에 주문했던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확실히 개인사의 면면과 일화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서, 이 책을 기반으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사정이 짐작되었다.
눈에 띄는 선생의 특징은 정말 뒷것 만큼 구석에 집착이 강했다는 것이다.
6.25를 겪으며 유복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며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보낸 시간들과 방공호의 두려움은 그의 원체험에 해당한다.
그의 내면만큼 낮은 목소리는 무겁고 어둡게 들리지만, 희망이 느껴진다.
그는 자세하게 관찰하고 오래 생각하는 스타일의 사림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고 양심에 따라 살았다.
다큐멘터리 화면에서도 그가 뒷짐을 지고 땅을 보고 걷는 모습은 자신의 일에 골몰해 살아가는 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 중 많은 노래가 거의 즉석에서 행사 전날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는 천재로 불리지만.
사실 그의 골똘한 삶에서 이미 평생 되풀이 되고 진행되다가 버섯처럼 피어난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노래를 싫어했고, 노래하는 것도 부끄러워했다. 노래로 인해 삶을 빼앗긴 것도 있지만, 기억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단호한 예술가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말의 자연스런 리듬으로 가사와 노랫말을 만든 것은 그의 창작 방식이다. 정말 단순하다. 그러나 얼마나 본질적인가? 우리 시와 노래가 나아갈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정적인 노래만이 아니라 이야기 노래, 마당극, 뮤지컬 등 복합은 그의 관심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몇 가지 결정적인 순간들이 눈에 띈다.
대학시절 야외에서 나무를 그리다가 그림을 수정하려고 스케치북을 긁다가 구멍이 나고 그 구멍으로 보인 나무를 보며
그림이 아닌 진짜 나무를 만지기를 택한 것. 청년기의 몽상에서 현실로 성큼 걸아가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78년 유신 치하 생명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공장의 불빛'을 녹음한 뒤 마스터 테이프 둔 곳을 발설하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로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 어떻게 저렇게 숫기 없는 사람이 과감한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그의 노래와 작품은 물론 공연을 보며 공감과 사랑의 자전을 강하게 느낀다.
그의 목소리가 높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삶과 사랑을 사랑했고 옹호했다. 그가 어린이의 노래와 연극작업을 중시했던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71년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과 구타에 의해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며 오히려 고문자들을 불쌍히 여긴 것.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증오 대신 사랑을 발견하는 모습과 성자는 멀지 않다.
3년 농사를 짓고 모내기를 하며 논두렁 물꼬를 막으며 흙 한 삽의 의미를 통해 겸손과 덧없음을 성찰한 것.
학전은 바로 이 못자리에서 나온 말이고, 그가 자임한 역할을 잘 보여준다. 나는 김민기 선생이야말로 참된 교사고, 학전이야말로 참된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와 양희은의 음반은 물론 <노래를 찾는 사람들>, <겨레의 노래> 등 모두 명반이다.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공장의 불빛> 등도. 미완정인 채로 남은 <개똥이>를 보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살아오며 거울 같은 이를 만난다. 김민기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역시 내게 거울이 되신 분이다.
뒤늦게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존경과 감사를 남긴다.
= 차례 =
01| 록 뮤지컬_지하철 1호선
02| 노래일기_연이의 일기
엄마, 우리 엄마
아빠 얼굴 예쁘네요
03| 노래굿_공장의 불빛
04| 소리굿_아구
05| 디스코그래피
06| 노래_일지와 악보
가뭄(1973), 가을 편지(1970), 강변에서(1973), 검은 차(1970), 고무줄 놀이(1978), 고향 가는 길(1973), 귀하(1970), 그날(1969), 그 사이(1971), 기지촌(1973), 길(1970), 꽃 피우는 아이(1970), 나비(1971), 날개만 있다면(1984), 내 나라 내 겨레(1971), 눈 길(1973), 눈 산(1969), 늙은 군인의 노래(1976), 도대체 사람들은(1984), 두리번거린다(1972), 땀 흘려 거둔 음식(1980), 바다(1972), 밤뱃놀이(1978), 백구(1971), 봉우리(1984), 상록수(1977), 새벽길(1971), 서울로 가는 길(1971), 소금땀 흘리흘리(1978), 식구 생각(1975), 아름다운 사람(1972), 아무도 아무 데도(1971), 아침 이슬(1970), 아하 누가 그렇게(1970), 어찌 갈거나(1974), 인형(1971), 잃어버린 말(1972), 작은 연못(1971), 잘 가오(1970), 제발 제발(1984), 주여, 이제는 여기에(1973), 차돌 이내 몸(1972), 천리길(1975), 철망 앞에서(1992), 친구(1968), 혼혈아(1970)
07| 비평
김민기와 서울 <지하철 1호선>: 폴커 루드비히
김민기와 학전, 한국 또는 세계 뮤지컬의 대안: 김승현
고통은 존재의 증거이다: 광신니엔
혼잡한 거리에 방울 같은 노랫소리: 카라 쥬로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