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절 욥은 의롭게 살았는데도 고난을 당하는 자신의 상황을 부당하게 느끼는 만큼, 악인이 행복하게 사는 현실 또한 불공평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욥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악인의 죄에 대한 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실 것을 확신하며 심판을 선포합니다.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라는 인과응보의 원리에 근거한 욥의 지혜로는, 이것만이 세상이 공평해지는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공식에 제한당하지 않는 무한하고 초월적이신 분입니다.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선하신 뜻에 따라, 때때로 의인이 고통당하기도 하고 악인이 승승장구하기도 하는 현실을 빚어내기도 하십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고난당하는 이에게 ‘위로’가 아닌 ‘가르침’을 주려 하지는 않습니까?
22-26절 욥에게 인과응보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삶보다 더 부당한 게 있습니다. 바로 ‘죽음’ 입니다. 욥의 생각에 의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히 죽어야 합니다. 악인은 힘들고 비참하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의인과 악인의 구분이 무의미해집니다. 둘 다 흙에 묻히고 구더기에 덮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전 9:2)고 고백했던 전도자처럼, 욥은 보응신학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죽음 앞에서 허무를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분을 주로 모시고, 그 주를 살리신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죽을 때까지 선하고 의롭게 살 이유가 있습니다.
27-34절 ‘하나님이 악인을 번성하게 하는 증거를 보여달라’ 요구하는 친구들에게, 욥은 길 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고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악인을 본 경험이 누구든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악인은 무조건 고통받는다’는 확신으로 ‘고통받는 욥은 악인이다’라고 단정하는 친구들이나, 자기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악인의 번성을 강조하는 욥이나, 인간 지혜의 한계 안에서 어리석은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본문 해설에서 욥과 욥의 친구들의 논쟁을 인간 지혜의 한계 안이라고 예기합니다 알 수없는 하나님의 처사를 욥은 갑갑하고 억울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형통과 번창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알수 있는건 친구들이 평소에 욥을 엄청 질투하고 있었고 지금의 황망한 상황을 꽤나 즐겁게 즐기고 있음과 욥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결국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멸 하는것을 보고싶어 안달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은 욥을 이대로 두지는 않을것입니다
아버지 나를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창대하게 번창 시켜주실 것을 믿사오니 제 마음도 여유롭고 넉넉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여호와를 신뢰하고 나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며 범사에 아버지를 인정하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