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성도들의 복된 삶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도의 복된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요, 곧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미래의 소망 역시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분, 그렇죠? 마음이 흥분되시죠? 바로 이처럼 축복된 삶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이러한 복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분에 걸 맞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죄를 버려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이 구절을 한 마디로 말하면 “죄를 버리라!”는 말입니다. 죄는 모든 축복과 행복을 빼앗는 근원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사랑과 온기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용서와 성결을 막고,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자기방어에 급급하게 만듭니다. 또한 죄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인도를 보지 못하게 하고, 심령의 평안을 막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고, 더 이상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 죄를 버리려고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궤휼입니다. 궤휼이란 자기 야망을 위해 거짓되고 간사한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궤휼은 사단의 미끼로 겉으로는 진리 같지만 그 안에 낚시 바늘이 있어서 똑똑한 사람도 잘 넘어갑니다. 여러분, 벌써 1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1992년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휴거사건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교리와 궤휼에 빠져 교회를 힘들게 하고, 가정이 깨어지고, 심지어 생명마저 잃었습니까? 당시에는 그러한 휴거를 증거하거나 믿지 않으면 오히려 무능하거나 바보처럼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당시의 휴거론은 새빨간 거짓으로 들통이 나게 되었고, 그 후로로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교회를 힘들게 하고, 성도들을 힘들게 했습니까? 또 어떤 목사님은 목회를 잘하다 이단 때문에 교회가 깨져서 지금 마을버스를 운전하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개척교회를 해서 150명까지 부흥되면서 자랑했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는 매주 교패를 2개씩 붙여요.” 그런데 그 교회에 이단시 되는 전도운동이 들어와 교회가 완전히 깨져 그 목사님은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왜 궤휼에 잘 넘어갑니까? 자세히 보면 물질적인 욕심과 영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성도는 대박을 약속하는 것은 무조건 경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육의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2.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에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말씀을 뜻하는데, 그처럼 말씀을 갓난아기들이 젖을 찾듯이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성장도 없습니다. 말씀은 인생의 산을 오를 때 용기를 주는 밧줄과도 같고, 인생의 골짜기에 있을 때는 길을 인도하는 나침판과 같습니다. 또한 말씀은 인생의 비바람 속에서 확신의 우산이 되고, 메마른 사막에서는 끊임없는 생수를 주는 수통과도 같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처럼 복된 삶을 살려면 죄와 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말씀과 기도와 헌신을 앞세운 생활을 오늘부터 즉시 시작해야 합니다.
철학자 키엘케골이 전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겨울이 되자 철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다 배가 고팠습니다. 그때 철새 대장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저 밑의 옥수수를 뜯어먹고 가자.” 그래서 옥수수를 배불리 먹은 후에 다시 날아가는데 그때 철새 한 마리가 “이 맛있는 옥수수를 두고 어떻게 떠나나? 내일 떠나자!”고 하면서 계속 옥수수 밭에 남았습니다. 다음 날, 그 철새는 떠나야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또 중얼거렸습니다. “이 맛있는 음식을 두고 어떻게 떠나나? 내일 떠나자!” 그렇게 밤낮 내일 떠난다고 결심만 했습니다. 얼마 후, 첫 눈이 내리자 철새는 진짜 결심했습니다. “이제 떠나자!” 그런데 그 동안 옥수수를 너무 많이 먹어 날갯죽지에 살이 붙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철새는 첫 눈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을 잘 압니다. 그런데 “내일 하자!”고 결심만 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다 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는 “내일 하자!”라는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내일의 찬란한 꿈을 가지고 “지금 하자! 오늘부터 하자!”고 말해야 합니다.
히말라야 산속에 가면 야맹조란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낮에는 열심히 놀다가 밤이 되면 남의 새 둥지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 둥지의 주인장 새가 불청객인 야맹조를 막 쪼면서 한참 구박합니다. 그러면 야맹조는 너무 서러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결심합니다. “정말 서러워서 못살겠다. 내일은 꼭 내 둥지를 짓고 말거야.” 다음 날이 되자 야맹조는 어제 눈물로 했던 결심을 잊어버리고 또 여기저기 놀러 다닙니다. 결국 밤이 되어 남의 둥지 신세를 질 수밖에 없어서 또 남의 둥지에 들어가면 또 한참 쪼이고 구박을 받습니다. 그때도 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짐합니다. “정말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해서 못 참겠다. 내일은 반드시 내 둥지를 짓고 말거야.” 그렇게 내일, 내일 하다가 아직까지도 둥지를 못 짓고 지금도 히말라야 산 속에서 구박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일 하자!”고 하면 이미 진 것입니다. “나중에 자리 잡은 후에 교회에 다니자!”고 하면 자리를 잡은 후에는 더 못 다닙니다. 지금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고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예배에 최선을 다해 참석하고, 말씀과 기도생활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선교하자!”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선교해야 합니다. 다음에 여유있고 시간 있을 때 봉사해야지 하지 말고 지금부터 봉사할 꺼리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3. 나의 정체(신분)를 알아야 합니다.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이 구절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당시 메시아를 표현하는 ‘산 돌(living stone)’이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그의 제자 된 성도들은 산 돌처럼 행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 말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자신의 신분을 가치 있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신분을 소중히 여기면 그 신분에 대한 각성 때문에 언행이 달라집니다. 집사직을 소중히 여기면 집사다운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 지역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왕은 강한 성벽을 구축했습니다. 어느 날, 근처의 한 군주가 스파르타를 방문했습니다. 그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이번에 새로 구축한 강한 성벽을 한번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때 스파르타 왕이 만족한 모습으로 자신의 잘 훈련된 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잘 훈련된 충성스런 군사들이 바로 스파르타의 성벽입니다.”
성도는 스파르타 왕의 잘 훈련된 충성스런 군사들처럼 교회의 견고한 ‘산 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산 돌이 됩니까?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산 돌’의 복을 받기 위해 주님께 나오라고 권면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여러 방면에서 복의 비결을 찾지만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비결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변함없이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힘들다고 교회에 나오기를 포기하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길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주님은 풍성한 복을 준비해 놓고 우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계속해서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이 구절을 보면 우리가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인 예수님을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7-8절 말씀을 보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산 돌이 심판하고 때리는 돌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는 백억 짜리 수표보다 더 가치 있는 백지수표와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그 수표를 현금화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축복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중요한 것은 굳건한 믿음으로 그 축복을 취하는 것입니다.
4. 희생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9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 구절을 보면 목사만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제사장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특권도 있지만 자신이 제물이 되어 다른 사람의 중보자가 되어야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귀에 피를 발랐습니다. 말씀대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또한 엄지손가락에도 피를 발랐습니다. 내 재치를 하나님을 위해 드리겠다는 표시입니다. 발가락에도 피를 발랐습니다. 내 행로가 여호와께 속했다는 표시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나팔을 가지고 아침마다 나팔을 불어 백성을 깨웠고, 그 나팔로 안식일과 희년을 선포하고 전쟁의 경보를 울리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성도들은 서로 깨어 근신하게 하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제사장은 제단을 관리하고, 불을 피우고, 재판 일도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은 사실상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제사장은 섬기는 일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특권적인 개념이 아니라 책임적인 개념입니다. 즉 제사장 자리는 감투자리가 아니라 봉사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면서 희생 제물이셨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죽어야 누군가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가정과 교회가 살아납니다. 그처럼 우리가 종 같이 제물이 되어 누군가를 섬겨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높여주실 것입니다.
5. 복음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9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왜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제사장을 헬라어로 ‘폰티넥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만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제사장으로서 다리를 놓아 주심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그 만남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만남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영혼을 사랑하는 것처럼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우리에게는 최초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The Lord's last command is to be our first concern).
성도는 주님의 편지이고 주님의 향기입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입는 옷에는 석류가 달려 있었습니다. 석류는 과일 중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과일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향기로운 냄새가 났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가는 곳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이 변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선물하는 것이 최상의 선물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 최상의 행복입니다. 내가 소망하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권고하고, 또한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은 부모의 가장 아름다운 자녀 사랑입니다. 우리 살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이 이와 같이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복된 백성의 삶을 오늘도 내일도 충만하게 이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오직 하나님께 영광 입니다. 모든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정말 멋지셔요.^^* 말씀데로 우리의 가정속 아이들이 회복되고 미래가 바라는바 소망이 이루어 지길 원합니다. 전도도 선교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두가 받아야 하는 명령이죠? ^^ 감사해요. 축복가득 하세요.
첫댓글 석류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어디에 가던지 석류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주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
아멘!!오직 하나님께 영광 입니다. 모든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정말 멋지셔요.^^* 말씀데로 우리의 가정속 아이들이 회복되고 미래가 바라는바 소망이 이루어 지길 원합니다. 전도도 선교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두가 받아야 하는 명령이죠? ^^ 감사해요. 축복가득 하세요.
혹시 목사님 이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