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도운 대가로 자원(희토류)을 원한다면 거기에는 (사망자들의) 뼈 이외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 마크 챔피언은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광물 개발에 관심을 표명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같이 바판했다.
전화(戰火)에 휩쓸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 매장된 티타늄과 우랴늄, 리튬 등 10여종의 희토류의 전시(戰時) 활용 방안은, 지난해(2024년) 10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놓은 '승리 플랜'에서 처음 나왔다.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유력한 가운데, 자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끊어질 경우를 대비한 자구책 성격이 짙었다.
5개 항으로 구성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승리 플랜'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초대 △서방 장거리 무기 사용과 방공 전력 등 우크라이나 군사력 강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한 비핵전력의 우크라이나 배치 △우크라이나 희토류 등 주요 광물 자원에 대한 공동 개발 △우크라이나군을 미군의 대체 병력으로 유럽 배치 등이다.
5가지 항목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크라이나는 서방 측에 군사및 안보 지원에 관한 요구 조건 3가지를 제시하고 그 대가로, 2가지(희토류 광물 개발과 우크라이나군 유럽 배치)를 제공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바이든 미 대통령과 숄츠 독일 총리 등 서방 정상들을 만나 '승리 플랜'을 설명하면서 그 의도를 구체화한 것으로 관측됐다. 특정 국가에는 비밀 제안도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스타머 영국 총리(가운데)와 3자 회담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러나 서방 측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워싱턴이 '승리 플랜'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코노미스트에 "워싱턴은 '승리 플랜'이 결국 실패로 끝날 것으로 알았지만, 대놓고 키예프 측에 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자원 개발에 관심을 가졌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뒤 상황은 달라졌다. '24시간내 종전'을 공약한 트럼프 당선자는 나토 가입 반대와 영토 양보 등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종전 방안을 슬쩍슬쩍 흘렸다. 급한 쪽은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그는 희토류 개발건을 트럼프 당선자 팀(정권 인수위)에게로 가져가기로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가 트럼프 대통령 측에게 주요 자원의 개발 협력에 관해 특별한 조건을 제안했다고 보도했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키예프는 트럼프 차기 행벙부와 광물 채굴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바이든 당시 행정부와 협정 서명을 두번이나 연기했다"고 전했다.
◇ 트럼프 대통령의 공론화와 젤렌스키 노림수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협정을 맺고 희토류와 같은 주요 광물을 받으려고 한다"고 공론화했다. 브라이언 휴즈 미 백악관 국가안보위 대변인은 "미국은 키예프에 제공한 제반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금속이 필요하다"며 "지난 주말 동안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고 보충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사진출처:페이스북
이튿날(4일)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난해 9월 워싱턴에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주요 광물을 미국의 대(對)우크라 안보 보장과 교환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땅을 보호하고 무기와 지원, 제재 패키지 등으로 적(러시아군)을 밀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동맹 파트너들과 광물을 공동 개발할 수 있다"며 "이것은 공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희토류 광물 개발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따로 있다. 희토류가 묻힌 곳은 최전선에서 가까운 도네츠크주(州) 일대다. 그는 희토류 광물이 러시아와 이란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요구했는데, 미국이 광물 개발에 나선다면, 가장 화급한 일은 희토류 매장지들이 러시아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일이다. 나아가 러시아군에게 빼앗긴 광산 지역을 되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추가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 우크라 희토류 매장 가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웹사이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땅에는 티타늄과 리튬, 베릴륨, 망간, 갈륨, 우라늄, 지르코늄, 흑연, 인회석, 형석, 니켈 등 수십종의 주요 광물이 매장돼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 지질조사국이 2022년 지정한 '국가 안보및 경제에 가장 중요한 광물 50개' 속에 포함된다.
미국 NYT는 "우크라이나에는 코발트, 흑연 등 20가지 주요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며 "그 가치는 11조 5천억 달러로, 유럽에서 확인된 매장량 중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3년 4월 현재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의 총 가치는 15조 달러로 추산된다는 자료도 있다.
특히 리튬은 트럼프 새 행정부에서 실세로 등장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우크라이나는 또 항공기·군함의 합금 제조에 사용되는 티타늄 매장량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국가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이 주요 원자재로 지정한 광물 34개 중 22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매체 브즈글랴드.ru(시각이라는 뜻)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많은 광물 자원은 소련 시절에 탐사됐다. 그 자료가 러시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예를 들면 티타늄의 주요 매장지는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州)와 도네츠크주에 걸쳐 있는데, 러시아군이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로 진격하면, 우크라이나는 티타늄 광산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리튬 매장지 중 하나인 세브첸코(세우첸코프스코예)는 이미 러시아의 손으로 넘어갔다. 미국이 관심을 가질 만한 흑연의 경우, 가장 큰 매장지는 우크리아나 빈니차주(州) 남부에 있다.
현지의 한 광물 전문가는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네오디뮴은 초강력 자석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데, 이것이 없다면 전류 발전기나 전기 모터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광산/사진출처:스트라나.ua
하지만 매장량의 70% 이상은 러시아군이 상당히 장악한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그리고 최전선에 근접한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 출신의 빅토르 무젠코 예비역 장성은 지난 달(1월) '라디오 리버티'와의 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의 절반은 이미 키예프가 통제하지 못하는 영토(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 자포로제, 헤르손주)에 있다고 주장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4일 “미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광물 상당수는 군사적 위협을 받는 지역과 러시아 점령지에 있다”며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광물 거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울프 크리스천 페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WSJ에 “우크라이나의 평화 정착 없이 이런 자산(희토류)에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휴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도 희토류 매장지를 순순히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잠재적 가치 때문이다. 무첸코 전 우크라이나 총참모장은 "러시아가 이 광물들을 확보함으로써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쓴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현 전선에서 휴전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희토류 거래에 대한 대가로 미국 측에 확실한 안보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계산과는 달리, 희토류 제공을 이미 받은 군사 지원에 대한 보상으로 보지 않고,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지원해줄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위한 '인센티브'로 보고 있다. 광물 개발에 합의를 한다고 해도, 양국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다.
상당 부분이 이미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에 매장되어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고민이다. 전쟁 종식을 공약으로 내세운 그에게 '희토류'가 확전으로 비화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다.
스트라나.ua는 4일 "기술적으로 말하면,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된다는 조건에서만 실행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고, 서방 기업 누구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튬 매장지 하나를 개발하려면 최소 10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한다.
만약 전쟁이 끝난 뒤 개발권을 양도하는 거래라면, 이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金先達)이나 다름없다. 전쟁이 끝날 때 이 매장지가 누구의 통제 하에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희토류 광물 개발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등 확실한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 지속적인 평화 없이는 투자를 유치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발언으로 미뤄보면 미국의 대(對)우크라 직접 안보 보장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희토류 개발이 미국의 군사·경제 지원은 물론, 안보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미끼가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우리는 전쟁 후에 필요한 재건 사업의 자금으로 이 나라의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며 "이를 우크라이나의 방위 지원과 바꾸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짓"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