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스라의 믿음
요절 :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스8:22)
에스라(Ezra, B.C.458년경)가 바사(Persia)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호위병으로 무장한 군대를 따르게 하는 것은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이방인 왕(아닥사스다, Artaxerxes, B.C.465-424)이 (역자주1)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자기의 신앙을 단지 위선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상상할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힘(an arm of flesh)에 의지할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행(Caravan)은 어떤 물리적 보호장비를 갖지 않은 채(즉 눈에 보이는 무기등을 갖지 않은 채) 오직 그의 백성의 검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보호 받으며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날 에스라 같이 하나님을 위한 이런 거룩한 질투심(부끄러움)을 느끼는 성도들은 거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 조차도 인간의 도움을 열망함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삶의 광채를 망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영원한 반석(예수 그리스도) 위에 똑 바로 서서, 오직 주님만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 가장 복된 일입니다.
만일 그들이 정부의 도움을 청함으로서 주님이 창피를 당하신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떤 신자가 그들의 교회를 위하여 정부의 지원금(복지기금의 지원)을 얻으려고 노력하겠습니까?(즉 교회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지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그 자신의 일(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오직 주님 팔에만 전적인 의지를 함으로서 주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도움을 받기 위하여 친구나 친척들에게 먼저 급히 달려가겠습니까?
내 영혼이여, 오직 하나님을 기다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은, "우리는 다른 여러 수단도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은 그 수단들을 소홀히 해서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잘못은 하나님을 믿는 대신 어리석게도 그 수단들(다른 방법들)을 더 믿음으로 인해서, 훨씬 자주 발생합니다.
첫댓글 오늘도 좋은 묵상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이지만 구약의 역사서는 초신자에게 녹록지 않습니다. 이번 묵상은 주석의 설명 도움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래 댓글을 참고하세요!
알겠습니다.
<톰슨3 성경주석> 에스라서
8:22 느헤미야는 군대의 호위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주하고 수락하였다(느 2:7-9). 그러나 에스라는 군대의 호위를 오히려 불신앙으로간주하였다. 이것은 관점과 상징의 문제이지절대 불가결한 원칙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에스라는 하나님께 귀환 여정의 모든 것을 맡기기를 원했다. 사실상 메소보다미아와 팔레스타인 사이를 오가는 여행자에게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아람 족속의 약탈자들은 페르시아 왕국에 순복하지 않고 대상들의 길목에서 물품을 가로채곤 하였다.
좋은 설명 잘 참고합니다.
은혜의 묵상 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바라보며 금식을 하였군요.
에스라의 믿음이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 것을 보며,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