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고향가고 싶다” 8년 투쟁 첩첩산중
“장애인 천민으로 여긴 대법원”, 정부 ‘또’ 연구
국토부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 보장 노력”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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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의 동등한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에이블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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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고향 가고 싶다“면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지 8년, 버스 타고 광역 이동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8년 만에 나온 공익소송 결과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반쪽짜리 판결에 불과했으며, 내년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가 담긴 법이 시행돼도 안전띠가 있는 시외버스는 저상형 모델이 없어 2026년에나 도입될지 미지수인 것.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진땀’만 흘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의 동등한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8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장애인 시외이동권 소송 결과의 문제점을 짚으며, 국토교통부 등 정부의 이동권 개선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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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 이동권소송연대가 2017년 6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2심 판결을 앞두고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에이블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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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탑승할 개연성 있는 노선만?” 반쪽 판결
앞서 연구소는 2014년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된 버스나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교통약자들의 시외 이동권이 막대하게 침해받고 있다며, 대한민국과 서울특별시, 경기도 및 버스회사 2곳을 상대로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은 8년만인 지난 2월 17일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지만, ‘즉시’ ‘모든’ 버스에 제공하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소극적 판결’을 내리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또 국가 및 지자체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원심인 서울고법에서 피고인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노선 중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인 개연성이 있는 노선과 재정상태,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운임과 요금 인상의 필요성과 그 실현 가능성 등을 심리한 다음, 이후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그 의무 이행기 등을 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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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태평양 윤정노 변호사.ⓒ에이블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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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연구소는 즉각 성명을 내고 “대법원이 탑승설비 설치 대상 노선을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 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제한한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할 것을 포기한 판단”이라면서 ‘소극적 판결’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소송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법무법인(유) 태평양 윤정노 변호사는 “비장애인 관점에서 보지말고 장애감수성을 봐야 한다는 부분의 판시는 마음에 들지만,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구간들에서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는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거주지와 직장 정도로 예시가 있는데, 거주지와 직장만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어디있겠냐. 순전히 법리속에서만 있는 가정의 상황”이라면서 대법원 판결의 아쉬움을 지적했다.
이어 “파기환송심에서도 개연성있는 부분만 청구가 인정되는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인단에서는 대법원의 판단 문제점을 강하게 주장해 좋은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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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에이블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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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천민 판결”, ‘눈물나네 기자회견’ 그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대법원은 장애인을 천민으로 여겼다. 권리 불평등만 확인한, 비장애중심사회를 정당화 시키는 판결”이라고 비판하며, 지난 2014년부터 진행된 시외이동권 투쟁을 하나하나 짚었다.
특히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를 두고서는 “시외·광역버스 저상버스 59초 공약을 아이디어 냈다고 하는데, 지속적으로 얘기됐던 문제고 전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장애인은 이동에 암이 걸린 수준인데 소금약 갖고 설쳐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전장연은 명절을 앞두고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면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타기 투쟁을 펼쳤으며, 2017년 투쟁의 첫 성과로 국토교통부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개조차량 표준모델 및 운영기술 개발 연구에 착수했다. 그와 함께 교통약자 이동권 증진을 위한 민관협의체도 꾸렸다.
다음해인 2018년 9월 19일, 국토부와 전장연은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운영을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 확대" 하는 내용의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정책을 공동 발표했다.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는 2019년 10월부터 4개 노선(부산, 강릉, 전주, 당진)에서 1일 평균 1~6회 운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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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한국교통안전공단(연구기획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공동으로 2018년 9월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직접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개발 차량을 시승 행사를 개최했다. 차량 시승식 모습.ⓒ에이블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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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22년 현재,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휠체어 탑승설비가 장착된 고속버스는 4개 노선 중 당진 노선만 운행 중이며, 국비 보조율도 100%에서 50%로 반토막 나며 2억원만 편성됐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제작 실적도 없다.
박 대표는 "2019년 당시 ’와~ 고향 갈 수 있다‘ ’눈물 난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지금은 피눈물이 난다"고 꼬집었다.
또한 지난해 말 시내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가 담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통과됐지만, 시외·광역버스는 제외다. 국토부는 시외버스와 광역형 시내버스에는 저상버스 모델이 없다며, 2025년까지 고속도로 운행이 가능한 저상버스 표준모델 개발 R&D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2026년에나 고속도로 운행이 가능한 저상버스 시범사업이 실시될 전망이다.
박 상임대표는 "국토부는 예전에도 R&D했는데 지금도 또 한다고 한다. 국토부 계획에 의하면 2026년부터 장애인은 시외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4년 뒤에 1~2대 시외버스 놓고 '아이고 또 눈물나네' 기자회견을 하게 생겼다"면서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을 시민으로 인정하라는 저항의 투쟁이다. 더 큰일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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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임경미 이사(오)한신대학교 재활상담학과 남세현 교수.ⓒ에이블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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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도입 의무? 예외조항 “시골 발목”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임경미 이사는 “장애인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결의를 다지며 지난 21일 삭발했다.
충북 옥천에 살고 있는 임 이사는 “이동권을 이야기한지 21년이 지났지만 옥천에는 저상버스가 1대 뿐이다. 역에는 무궁화호밖에 오지 않고, 무궁화호는 간헐적으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다”고 처철한 지방의 이동권 현주소를 짚었다.
그는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지만 언덕, 좁은 길을 문제삼아 시골에는 또 예외가 될 것 같다”면서 “장애인을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정말 단 한번이라도 내가 가고 싶어하지만 가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묻고 싶다”면서 “이동권은 기본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그것이 되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도 나아갈 수 없다. 제대로된 법을 시켜준다면 투쟁은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신대학교 재활상담학과 남세현 교수는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를 언급하며 “장애인들은 불법적인 시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시민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향유하기 위해 불법적인 시위에 내몰린 것”이라면서 “비문명적인 투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공권력을 사용한 제압이나 비난의 손가락질이 아닌 수많은 다급한 예산 지출 항목들 속에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되도록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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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의 동등한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에이블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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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장거리 이동권 보장 노력” 진땀만
이 같은 지적에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 박동국 사무관은 내년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관련, 당장 시외광역버스 노선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을 설명하며 광역 좌석형 저상버스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공유했다.
박 사무관은 “현재 국내 보급된 저상버스는 입석과 좌석이 혼용된 형태로, 안전문제로 시외광역버스 노선에는 현실적 도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휠체어 탑승 가능한 버스 도입과 함께 자동차전용도로 운행이 가능한 광역 좌석형 저상버스 개발을 위한 R&D를 추진하고 있다. 2026년까지 시범사업을 완료하고 상용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도입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와 관련해서도 “코로나로 인해 경영악화, 차량 개조다보니까 버스업계에서는 소음, 바람이 들어오는 문제로 운행이 불안하다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인센티브 강화 등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늘 논의는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