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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델린
▣ 네스타의 축구 인생
현역 최고의 센터백으로 손꼽히는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매우 독특한 이유로 축구를 시작했다. 유명 축구스타를 동경했기 때문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축구화를 신게 된 것도 아니다. 네스타는 8살 때부터 등 부위가 좋지 않아 의사로부터 축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라치오의 열혈 써포터였던 아버지에 의해 라치오 유스 팀에 입문하게 된다.
네스타는 재능이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 하지만 등 부위의 통증이 나날이 악화되는 바람에 한 때 축구를 그만둬야 할 위기에 놓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네스타는 포기하지 않았고, 축구를 향한 일념으로 매일매일 노력했다. 마침내 건강을 되찾은 네스타는 라치오 유스 클럽의 주축 선수로서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던 그는 얼마 후 코치의 권유로 인해 중앙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한다. 지금에 이르러 이야기 하자면, 유럽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일찍이 그 가능성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네스타가 유럽 전역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결코 그라운드 위에서의 뛰어난 활약 때문이 아니었다. 잉글랜드 출신의 수퍼스타 폴 개스코인이 라치오에서 활약하던 시절, 네스타는 팀 훈련 도중 개스코인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그로 인해 유럽의 언론들은, "풋내기 수비수가 유럽의 스타, 그것도 팀 동료를 다치게 했다" 라면서 호들갑을 떨었고, 어린 네스타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될 위기에 놓여졌다.
개자(Gazza/개스코인의 애칭)는 평소 상상치 못한 기행과 예측불허의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그 역시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어린 선수가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개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네스타는 절대 고의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 재활 훈련에 전념해 빠른 시일내에 복귀하겠다." 라며 후배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했다.
[사진: A매치에서 재회한 이탈리아의 신예 네스타와 잉글랜드 간판 개스코인. (게티이미지/유로포토)]
네스타는 성실한 선수였다. 그는 꾸준히 경험을 쌓아가면서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감독의 전술을 아주 잘 이해했으며, 동료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쉽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소속팀 라치오를 깊이 사랑했다. 많은 라치오의 팬들이, "밀란에 바레시가 있었다면 지금 라치오에는 네스타가 있다!" 라며 이 젊은 수비수의 꾸준한 성장세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96'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페라라의 부상에도 불구, 사키 감독으로부터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네스타는 체자레 말디니 감독이 이끄는 98' 프랑스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다시금 발탁되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젊은 네스타에게 과거 바레시가 해내던 역할을 기대했다. 당시 아주리 대표팀에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비수들인 코스타쿠르타, 말디니, 그리고 젊은 카나바로와 네스타가 있었다. 참으로 막강한 수비 진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영광이 아닌 불운과 좌절이었다. 오스트리아와의 조별 예선 3차전에서 네스타는 순간적으로 상대 문전을 향해 공을 몰고가기 시작했다. 독일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우어에게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리베로적인 플레이였다. 그러나 네스타의 질주는 오스트리아 수비수의 거친 태클에 저지 당했고, 그는 한 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릎 인대 파손. 남은 월드컵 경기는 물론, 98/99 시즌의 여러 경기들을 결장해야만 하는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네스타의 자리는 인테르 밀란의 레전드 베르고미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대체해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8강전에서 개최국 프랑스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의 쓴 잔을 들이키고 말았다. 바로 4년 전,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공격수 로베르토 바지오와 최고의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의 실축으로 인해 우승컵을 브라질에게 넘겨줘야 했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라운드로 돌아오기 위한 네스타의 투지는 남달랐다. 그는 재활 훈련에 전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결국 98/99 시즌 후반부에 복귀전을 치르는데 성공한다. 한 차례 부상을 겪은 네스타는 더욱 성숙한 선수가 되어 있었고, 99/00 시즌에 이르러서는 마르셀로 살라스, 후안 세바스찬 베론, 파벨 네드베드 등과 함께 스쿠데토를 거머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이 때부터 네스타는 유럽을 대표하는 센터백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시즌 33라운드까지 1위를 달리던 유벤투스는 마지막 34라운드에서 페루자의 칼로리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했고, 라치오는 극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라치오 선수들과 팬들은 한 데 어우러져, "Juve, Juve Vafancullo!(유베, 유베 꺼져버려!)"를 합창했다. 네스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그 무리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장난끼 넘치는 네스타의 엄마는, "저는 그 속에서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는 걸요." 라며 사랑스런 아들에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사진: 라치오의 99/00 시즌 스쿠데토를 주도했던 알레산드로 네스타. (게티이미지/유로포토)]
2000' 유럽 선수권 대회를 통해 네스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아주리 수비의 핵인 동시에, 전술적인 중추였다. 코스타쿠르타의 역할은 이제 네스타에게로 넘어갔다. 그는 말디니, 카나바로, 율리아노 등과 함께 카데나치오를 구축했고, 터키와 벨기에, 스웨덴, 루마니아 등이 네스타를 중심으로 하는 빗장수비를 뚫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개최국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4강전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명승부로 잘 알려져 있다. 경기는 톨도 골피커의 신들린 듯한 선방과 잠브로타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1인 2역을 해낸 수비수들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이탈리아가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120분내내 이성을 잃지 않고 동료들을 리드한 네스타의 활약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주리 수비는 그 어느 팀보다도 전술적이었고, 따라서 그라운드 위에서 그 전술적인 틀을 유지하는 존재의 중요성이 언제나 강조되기 마련이었다. 네스타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 역할을 120% 다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네스타는 커리어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실패하고 만다. 4강전에서의 오버페이스가 치명적이었다. 후반전으로 접어들 수록 네스타, 카나바로, 말디니 등의 다리는 점점 무뎌져 갔다. 윌토르의 슈팅은 톨도가 막을 수도 있는 볼이었지만, 4강전 히어로의 '마력'은 이미 제로에 가까워져 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연장전에서는 피레스의 크로스를 트레제게가 그 유명한 발리슛으로 골문을 가르며 아주리에게 다시 한 번 메이저 대회 아픔을 선사했다. [사진: 네스타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유로 2000 결승전. 사진은 앙리와 맞대결을 펼치는 모습. (게티이미지/유로포토)]
유로 2000 이후, 네스타는 항상 '유럽 최고의 센터백', '세계 최고의 수비수'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들로 표현됐다. 라치오에서의 활약 또한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네스타에게 4년 전 아픔을 씻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부상의 악령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스타는 개최국 한국과의 16강전에 결장했고, 그 공백을 대신했던 파누치는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며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페루자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던 안정환은 극적으로 골든골을 성공, 이탈리아에게 고국행 비행기로 향하는 길을 친절히 안내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네스타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대한 기로에 놓여지게 된다. 소속팀 라치오의 재정난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크라뇨티 구단주는 어쩔 수 없이 네스타를 이적 시장에 내놔야 했고,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와 인테르 밀란, AC 밀란을 비롯,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같은 해외 유명 구단들까지 네스타 영입 경쟁에 뛰어들 정도로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결국 네스타를 낚아챈 것은 AC 밀란. '바레시의 후계자'를 얻은 밀라노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파올로 말디니와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같은 팀에서 뛴다.' 밀란은 유벤투스에게 넘어가 있던 리그의 패권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 놓은 셈이었다.
밀란은 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정상에 올랐고, 네스타는 인자기, 셰브첸코, 루이 코스타, 말디니, 디다 등과 함께 팀이 유럽을 제패하는데 1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는 어쩌면 '네스타의 밀란'이 앞으로 거머쥐게 될 수 많은 영광들 중 하나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네스타는 자신의 등번호 13번이 바레시의 6번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자신만의 넘버'가 되기를 강력히 열망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밀라노 더비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잡은 알레산드로 네스타 vs. 크리스티안 비에리. (게티이미지/유로포토)]
▣ 제 2의 게타노 시레아
네스타는 이제 밀란의 유니폼을 입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네스타를 과거 밀라노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바레시와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많은 축구인들은 네스타의 스타일이 프랑코 바레시보다는 82' 스페인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끌었던 게타노 시레아와 더욱 닮아 있다고 말한다.
시레아는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는 프란츠 베켄바워 이후 최고의 리베로라는 명성을 얻었고, 동시대의 다니엘 파사레야(아르헨티나)와 함께 혼자의 힘으로 수비 라인을 리드할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시레아는 우아하고, 기품이 있으며, 동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부분까지 네스타는 시레아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우 슬프게도 시레아는 1989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카우트 차 폴란드를 방문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며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던 것.)
만약 네스타가 자신의 새로운 행선지로 AC 밀란이 아닌 유벤투스를 택했다면, 그는 더더욱 '제 2의 시레아'에 어울리는 선수로 거듭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스타는 자신이 '시레아의 후계자', '제 2의 바레시'와 같은 표현들로 수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네스타'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를 원한다.
그가 AC 밀란 입단 소감을 밝히면서 남긴 말을 살펴보자.
"바레시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어요. 그는 위대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네스타는 네스타일 뿐이죠."
[사진: 이탈리아의 82' 월드컵 우승주역 게타노 시레아. (게티이미지/유로포토)]
▣ Best of the Best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현역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한다. 네스타는 클럽과 국가대표를 가리지 않고 많은 경험을 쌓았고, 이제는 더욱 노련한 선수가 되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는 자신의 포지션을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중앙 수비수로 변경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는 언제나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살펴야만 합니다. 또한 쉴새없이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중앙 수비수는 다릅니다. 몸보다는 머리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위치죠. 굳이 스피드가 빠르지 않아도 됩니다. 공격수보다 한 발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따라서 경험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가 없거든요." 시메오네는 센터백이라는 포지션이 갖는 특징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수비수는 일반적으로 공격수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놓여지기 마련이다. 선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결코 수비수가 아니다. 어느 방향으로 볼을 치고나갈 것인지, 드리블을 하지 않고 패스를 할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할 것인지...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은 공격하는 입장에 놓여진 선수다.
한 가지 비유를 해보자면, 축구에 있어 수비수는 권투를 할 때 무조건 방어만 하는 입장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수비수도 공격에 가담을 하지만 이 말의 요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만약 무조건 방어를 하는 입장에 놓여진 선수가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고 100% 방어를 하는 것에 관해 생각을 한다면, 그는 정말로 영리하지 못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수비수 또한 마찬가지다. 축구에 있어 수비수가 모든 경기를 무실점으로 틀어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모든 공격수의 개인 돌파와 패스를 전부 저지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비수들은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까'에 관해 항상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설령 상대 선수에게 돌파를 허용했다 할지라도, 그 다음 처리가 빨라야만 수비수로서의 역할을 다해낼 수 있다. 또, 그 다음 처리를 하지 못했다면 위치에 따라 반칙으로 끊을 것인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서도 빠른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아마도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비수 중 한 명일 것이다.
또한 네스타는 좀처럼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기 힘든 태클 기술을 지녔다. 공격수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볼만 커트해내는 네스타의 태클은 유럽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그만의 전매특허다. 제공권 역시 매우 강력하다. 단지 키가 큰 것 뿐 만이 아니다. 네스타는 볼의 낙하지점을 아주 잘 찾아내는 수비수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감독의 전술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성미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자, 과거 라치오의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스벤 고란 에릭손은 네스타를 가리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라 표현했다. 전세계 대부분의 지도자, 전문가, 축구팬들 역시 에릭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사진: 알레산드로 네스타의 태클은 파워풀하면서도 정확하다. (게티이미지/유로포토)]
▣ '산드로' 네스타의 이모저모
- 네스타는 사생활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자신의 평소 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누구나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 데미 무어의 팬이다.
- 오래 전에 포르쉐를 구입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요즘엔 차고에 쳐박아뒀다. 진한 블루의 카레라를 새로 구입했고, 승차감이 매우 안정적이라서 대표적인 '애마'로 자리를 잡았다.
- 숫자 13번을 매우 좋아한다. 그의 등번호 역시 13이다.
- 색깔은 푸른색을 선호한다. 라치오를 상징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밀란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금에 이르서서는 좋아하는 색깔이 바뀌어 있을지도?
- 취미는 영화감상, 수영, 테니스, 인터넷 서핑, 플레이 스테이션 등이다. F1이나 축구 게임을 주로 즐겨한다.
- 형 페르난도와 누나 카티아가 있지만, 슬프게도 카티아는 2000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네스타는 한 동안 슬픔을 이겨내기 힘들었고, 이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자신은 더욱 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 파비오 카나바로와는 U-16 대표팀 시절부터 돈독한 우정을 과시해오고 있다. 그 밖에 다미아노 토마지, 마르코 델 베키오와도 절친하다.
- 이상형은 only 가브리엘라. 이탈리아 올림픽 위원회 소속 파그노찌의 딸이다. 오래도록 네스타와 사랑을 키워오고 있는 가브리엘라는 키가 크고, 지성미가 넘치며, 교양이 있는 전형적인 미녀 스타일. 네스타는 품위 없이 구는 여자들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 쵸콜릿을 매우, 매우 좋아한다. 1999년 여름에는 하루에 3킬로나 되는 쵸콜릿을 한꺼번에 먹어 치운적도 있다고. 운동 선수로서 몸에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네스타는 그것이 매우 참기 어려운 것이라며 종종 불만을 토로한다.
- 영화 '파파라찌'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 13살 때 첫사랑에 빠졌다. 지금은 오직 가브리엘라만을 사랑한다.
- 학창 시절에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으며, 아마도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테니스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을 좋아한다. 종종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휴식을 즐긴다. 공기가 좋고, 시끌벅적하지 않으며, 경치가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다. 오후 1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팀 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P.R.O.F.I.L.E
성명: 알레산드로 네스타(Alessandro Nesta)
생년월일: 1976년 3월 1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187cm, 79kg
포지션: 중앙 수비수
클럽: 라치오-AC 밀란
주요경력: 98/99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 98/99 시즌 UEFA 수퍼컵 우승, 99/00 시즌 세리에A 우승, 99/00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 02/03 시즌 UEFA 수퍼컵 우승, 유로 96 본선 16강, 98' 월드컵 8강, 유로 2000 준우승, 2002' 월드컵 16강, 2000년 FIFA 올해의 선수 8위, 2000년 유럽 골든볼 5위.
- 사커라인 이형석 -
천재적이란 말은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에게 많이 쓰이는 수식어이지만...
수비수에게도 천재적이란 수식어가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