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KBS기자협회가 김진석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의 사의 표명에 항의하며 제작거부를 결의한 것에 대해 "이명박근혜의 언론장악이 문제"라는 평가를 내렸다.
KBS 여당 이사들은 5일 오후 이사회에서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의 <대선특별기획 1부, 대선후보를 말한다>가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편파방송이라고 항의했으며, 길환영 KBS 사장까지 당일 이사회에서 "이사님들 의견대로 일부 내용 면에서 편파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다소 있다고 봤고, 편집이나 내레이션 등이 다소 거친 부분이 있었다"고 동조했다. 김진석 단장은 6일 사의를 표명했다.
▲ KBS새노조·KBS기자협회·KBS PD협회가 6일 서울시 여의도 새노조사무실에서 김진석 단장 사의표명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왼쪽부터 함철 KBS기자협회장, 김현석 KBS새노조 위원장, 홍진표 KBS PD협회장. ⓒ김도연
대선후보진실검증단 기자 일동은 6일 성명을 통해 "이사회와 사장은 정치적인 충성심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을 망치고 KBS 기자정신과 저널리즘을 모욕하는 짓을 당장 멈춰라"고 요구했으며 KBS기자협회는 당일 저녁 긴급 총회를 열어 95.1%의 찬성률로 제작거부를 가결시켰다.
이에 대해 박광온 민주통합당 선대위 대변인은 7일 브리핑을 통해 "MB 정권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언론탄압, 언론자유말살 시도에 대한 단호한 저항"이라고 평가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의 검증보도를 하는 책임자를 퇴임시키는 것이 2012년 대한민국 오늘의 모습"이라며 "문재인 후보 선대위는 KBS사태가 갖는 방송의 중립성과 자율성의 훼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방송의 정권 예속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박광온 대변인은 "김진석 단장의 즉각적인 원상회복을 촉구한다"며 "정권의 입맛대로 자율성을 훼손하는 일부 방송 경영진의 행태에 국민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 역시 7일 오후 논평을 내어 "(결국) 이명박근혜의 언론장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정미 대변인은 "제작거부 결의는 공정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자 했던 기자들의 양심을 경영진이 정치적 압력으로 막은 것에 대한 후과"라며 "KBS의 언론탄압과 불공정 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의 언론말살이 어느 정도인지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 대선 목전에 ‘제작거부’ 결의
후보검증 프로그램에 친여당 이사들 “박근혜에 불리” 추궁
KBS 기자들이 대선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나섰다. KBS 이사진의 ‘박근혜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대선을 열흘 가량 앞둔 시점에 기자들이 대선방송 제작을 거부하는 일은 처음이다.
KBS 기자협회는 6일 밤 긴급 총회를 열어 ‘대선 공정방송 수호를 위한 제작거부 의결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투표결과 투표에 참여한 183명 중 174명, 95.1%라는 압도적인 찬성 비율로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KBS 기자협회는 비상대책위 체제로 돌입해 제작거부 시기와 방법 등을 비대위에 일임한다. 제작거부 돌입시기와 방식은 7일 밤 열리는 비대위 첫 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 <시사기획 창-‘대선 후보를 말하다’ 편> [출처: KBS 화면 캡쳐]
이번 사태는 지난 4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대선 후보를 말하다’ 편>을 KBS 이사회의 여당추천 이사들이 “편파적”이라고 문제삼은 데서 시작됐다. 방송 다음날인 5일 열린 이사회에서 여당추천 이사들은 길환영 KBS 사장에게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이 들어가 편파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대선후보검증단장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이사회의 지적에 길환영 사장도 “검증단이 만든 프로그램에 편파성의 소지가 있고 게이트키핑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답변했다. 길 사장은 또 “사전심의를 강화해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재발방지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이사회 이후 김진석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은 보직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휴가를 떠났다.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은 지난 8월, 언론노조 KBS 본부가 파업에서 복귀할 당시 노사합의로 만들어진 기구다. 대선보도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했다. <시사기획 창-‘대선 후보를 말하다’ 편>도 대선후보진실검증단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례적으로 방송 이전에 심의실의 심사까지 거쳤다.
전체 3부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된 1부 방송에서는 전국 성인 남녀 2,900명을 대상으로 우선 검증 항목을 여론 조사한 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정수장학회 등 5개 재단과 5.16 등 역사관을 집중 검증했다. 문재인 통합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FTA, 제주해군기지, 부산저축은행 조사 무마 의혹을 집중적으로 검증했다.
이사회가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에 압력을 행사하고 사장이 이를 수용하는 사태에 대해 기자협회 뿐 아니라 언론노조 KBS 본부 등 KBS 구성원들은 일제히 이사회와 길환영 사장의 사과 및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한 차례 연기 끝에 나간 프로그램인데 이번에는 단장을 세워놓고 편파성을 운운하며 책임 추궁하며 사퇴 압력을 가한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진실검증단을 문제 삼아왔고, 그들이 추천해준 이사들이 움직인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함철 KBS기자협회장도 “이사회의 개입은 KBS 대선 보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기도가 본격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서는 여당에 불리한 보도는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다”고 밝혔다.
김의철 보도국 라디오뉴스 제작부장도 “길 사장은 회사 공조직의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완벽히 거쳐 방송된 프로그램에 방송의 편파성을 제기함으로써 조직 전체 구성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김의철 제작부장은 이어 길환영 사장에게 “최근의 사태를 불러 일으킨 이사회에서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과 “다시는 보도와 프로그램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공정언론공동행동도 7일 성명을 발표해 이사회 여당추천 이사들과 길환영 사장의 편파방송 발언은 “진실과 공정성 및 공영방송의 기본책무 등을 모두 내던지고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고자 하는 잘못된 충성심 또는 그로부터 뭔가 득을 보려는 추악한 욕심이 빚어낸 결과이자, 시청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하며 길환영 사장과 여당추천 이사들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박근혜 고려 불방 논란' KBS대선특집, 뚜껑 열어보니
4일 저녁, KBS <시사기획 창>은 <대선특별기획 1부, 대선후보를 말한다>를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KBS 새 노조 파업 이후 노사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이 3개월 전부터 준비해왔던 특집 프로그램이다.
사실, 방영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초 지난달 27일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방송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보도본부 간부가 불방을 통보했다. "기획 방향 및 방송시점의 적절성 측면에서 기획의 조정 및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 KBS <시사기획 창>의 <대선특별기획 1부, 대선후보를 말한다>는 각 후보를 검증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KBS 화면 캡처
이미 수개월 전부터 기획안이 통과돼 취재ㆍ제작이 된 프로그램을 방송 하루를 앞두고 '기획 방향'와 '방송 시점'을 이유로 보류시킨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며, 이는 결국 KBS 사측이 박근혜 후보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KBS 안팎에서 제기됐다. 거센 반발 끝에 KBS 사측은 대선 특집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규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 안에서 소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방송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선후보검증단은 박근혜 후보가 몸담았던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학원, 한국문화재단, 육영수 여사 기념 사업회 재단 이사들의 '회전문 인사'를 심층 분석하는 등 일목요연한 정리를 프로그램에 담아냈으나 기존에 제기된 의혹에서 더 나아간 내용은 없었다.
일간지나 주간지를 통해 박 후보의 인사 비리나 재산 의혹은 꾸준하게 보도돼 왔다.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 강탈, 180도 달라진 경제 민주화 등 역시 그동안 나왔던 내용을 보기 좋게 '정리'한 수준이었다. 적어도 공영 방송의 대선 특집 프로그램이라면 '일목요연한 정리'에서 좀 더 나아간 보도를 내놔야 하지 않았을까?
▲ 한국문화재단의 이사들은 박 후보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KBS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은 이를 '회전문 인사'라고 비판했다.- KBS 화면 캡처
또, 48분의 방송을 정확히 24분씩 나눠 각 후보에 할애한 것도 '기계적 중립'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물론, 문재인 후보의 '말 바꾸기'나 '부산 저축 은행 의혹' 등도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박 후보의 거미줄 같은 측근 인사와 재단의 비리, 그리고 그것이 20년 세월의 독재와 크나큰 연관이 있다면 단순히 한 개인의 검증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입니다. 한국이름 박정희"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면 요직에 삼성 장학생을 앉히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
KBS 대선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직전에 열린 대선 후보 1차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한 발언이다. 이정희 후보의 발언을 보며, 새삼 지금의 언론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 언론이 독재권력과 자본권력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보도를 한 적이 있었던가? 기본적인 검증 방송도 벌벌 떨며 내리기에 급급한 언론 현실에서 국민은 무엇을 통해 권력과 정치를 마주해야 할까? 한 트위터리안이 남긴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를 막아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 이정희의 한 마디가 와닿는 이유"라는 날카로운 촌평이 기억에 남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