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오네 세미아(습격받은 티탄시.....)-
티탄시 시티 홀...... 백미의 노인 마테리온과 게류온은
여전히 다음 작전에 대한 구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미 그들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어 3국 체제의 지도가
완성되어가고 있었으며 클론 리모델링으로 들어갈 막대한
돈도 헤켈들의 무차별 학살로 그만큼 줄어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일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헤켈녀석들이
이미 2지역구를 거의 집어삼켰고 중앙지역구 동부지방의 할파이드
시의 주민들도 거의 이주를 마친 상태입니다."
게류온은 다소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마테리온에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2지역구 북쪽에 위치한 할파이드시는 이주계획에 따라
서부지역으로 이주한 중앙지역구에선 유일한 도시였다.
그렇게 됨에 따라 중앙지역구의 경계선은 중앙지역구 동쪽에
위치한 노레아 사막지대 동쪽에서 좌측 끝자락으로 자릴 옮겼다.
이렇다는 말은 그야말로 동쪽지방은 훤하게 뚫려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할파이드시의 시장인 레빈은 노레아 사막지대에 위치했던
자신의 도시가 더욱 좋은 지리를 가진 곳으로 이주하게 되자 기뻐하며
이주계획에 동의했었다. 물론 클론 리모델링이라는 전제하에서....
"레빈 시장은 자신들의 시민들이 모두 이주한 줄로 알고 있을 겁니다.
뭐...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신경 쓸 사람도 아니죠."
- "후훗.... 그럼 헤켈들과 세이렌들이 맞부딪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연결된 셈이로군..."
"그렇습니다. 세이렌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헤켈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위협을 느끼게 된다면 결코
헤켈들이 계속 설치는 것을 놔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 "그렇군... 자네가 예상하기론 언제쯤 그들이 남하하겠는가?"
"아마 전쟁 준비를 하고 실제로 공격하기 위해선 적어도 한,
두달은 걸릴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우리 인류는 완벽한 방어태세를
갖추었을 테고 헤켈들은 영토를 확장한데 대해 기뻐하며 방심하고
있겠죠..... 완벽한 3국 체제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 "후후훗... 좋아... 금지된 무기는 어떻게 되어가나?"
"이미 모든 준비는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을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 "후훗... 걱정말게.... 다른 종족들에게만 한하는 얘기니까....
그리고 나도 그걸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 중에
한명 일세.... 후훗..."
마테리온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게류온은 마테리온이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그의 성질상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들어오게......"
마테리온의 말에 누군가가 천천히 들어왔다. 그가 걸을때마다
단단한 세라곤 바닥에서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테리온은
그 소리만 듣고도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제이드... 그래.. 무슨 일인가...."
- "코로니스가 돌아왔습니다.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더군요....."
제이드는 온 몸이 금속으로 되어있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그렇게 제이드를 쉽게 알아챈 마테리온은 그의 말을
듣고 미간이 좁혀졌다. 코로니스는 또 실패한 것이었다.
"쳇..... 그렇게 기회를 줬거늘......."
마테리온의 그 차가운 말은 그의 차가운 표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들린 말은 더욱 냉정했다.
"제이드..... 쓸모 없는 녀석은 필요 없다... 제거해..."
- "네?"
"못 들었는가? 귀 좀 뚫어야겠군.... 제거해!"
- "네... 아.. 알겠습니다."
제이드는 부상당한 코로니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오자 겨우
응급처치를 하여 목숨만 살린 상태였다. 그런데 제거하라니..
하지만 상관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제이드는 조용히 물러나
밖으로 나섰다. 나가는 제이드의 귀에 마테리온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후훗... 조만간 꿈이 이뤄진다. 전 종족의 지배자가...."
원자력 천공위성 원로원.... 원로들은 전쟁 때문에 모두들
뜬눈으로 밤을 새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코모는
전쟁보다는 얀 일행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더욱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연구소 폭파 계획이 정신과학 연구소는 실패하고
생체공학 연구소는 성공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더 이상 연락이 없는게 걱정되었던
것이다.
"쟈코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오?"
- "후후훗... 루치펠... 그냥... 전쟁 때문에 그러오..."
"하하핫... 쟈코모...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내고도 나를 그렇게
모르시오? 그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오...."
굵은 목소리의 루치펠이 웃자 방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쟈코모는 자신의 심정을 꿰뚫어 보는 루치펠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에게 너무 큰 요구를 한 것 같소... 팔케넌의 말대로
그들은 소신 있고 의(義)를 아는 사람들이었소... 하지만
상대가 T.T 인 이상....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 "한 곳은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소?"
"하지만 연락이 두절되었소... 전쟁발발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아니면 연구소 폭파사건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답답해 미칠 지경이오...."
- "호호홋....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쟈코모.."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가 쟈코모의 귀를 아프게 뒤흔들었다.
언제 들어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가진 기니비아였다. 최근들어
기니비아의 행동이 다소 어색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원로로
지내면서 오랜 친분을 쌓았기에 별로 의심하지 않던 쟈코모였다.
"이미 정보를 입수해두었소. 갈로디아시의 이주 못한 사람들을
구출한 자들의 신상이 그들과 일치했소."
- "기니비아!! 그것이 사실이오?"
"그렇소.... 갈로디아시같은 작은 도시의 인명피해가 다른
도시들에 비해 극히 적다는 사실은 이미 뉴스를 통해 잘 알
것이오... 그런 일을 해낸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소."
그녀의 말에 쟈코모는 안도했다. 기니비아는 원로원에서
정보력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정보는 믿을만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지오가 만들어낸 휴먼 로보로이드였기에 그런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모른채 말이다.
"서둘러 연락해보시오. 비록 연구소 폭파계획은 반쪽짜리
성공이었지만 그것으로도 큰 일을 해낸 것이오. 지오가 무슨
생각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이 원자력천공위성의 음모를
막아야하오."
- "맞는 말이오. 쟈코모..."
"하지만... 전쟁중인데..."
- "전쟁보다 더욱 중요한게 무엇이오? 이 전쟁도 지오가
꾸민게 아니겠소? 그를 막는게 가장 중요하단 말이오."
"알겠소... 그대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연락을
시도하겠소... 그럼..."
쟈코모는 전쟁 때문에 T.T 에 대한 음모에 대해 별 다른
대처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얀들의 소식을 듣고 나선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다. 지상으로 내려가기 위해 방을
나가는 쟈코모를 바라보는 기니비아의 표정엔 묘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 야릇한 웃음..... 루치펠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흐린 날씨였다. 전쟁이 발발해서인지 하늘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라이오네는 쉐도우 프로젝트의 희생자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있는 레이를 간호하고 있었다. 병원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그녀의 불안함을 나타내듯
먹구름에 천둥까지 치고 있었다.
"휴..... 아크 오빠는 잘 하고 있겠지....."
거의 저녁이 다 된 시간인데도 거리엔 좀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한산해진 거리엔
간간이 지나다니는 플라잉 머신들만이 무료함을 달래줄
뿐이었다.
라이오네는 표정이 없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처럼
생겼지만 풍기는 이미지는 묘하게 측은하고 안쓰러웠다.
"그녀가..... 아파서일거야......"
라이오네는 레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사실 라이오네는
12살에서 성장이 멈춘 자신과 식물인간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레이가 너무도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만약
자신이 저런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너무도 비참했을 것이다.
'그래..... 적어도 난 그녀보단 꿋꿋하게 지내야해....
그녀에게 미안해서라도.....'
라이오네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린아이의 몸이었지만 움직이는데 자유롭고
살아있음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어라? 키가 조금 자랐나? 가..가슴도 조금 나온 것같은데."
라이오네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가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의사의
말로는 죽을 때까지 이런 몸으로 살아갈 것이라 말했으니까.....
라이오네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레이가 누워있는 침대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아크바레이의 꿈을 꾸길 바라며......
발카로스시에 도착한 얀 일행들은 다행히 광선형 돔 결계가
20분 정도 유효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을 기껏해야
왕복 2번까지 실어 나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얀 선상.... 어떤가? 생각보다 발카로스시의 사람들
수가 많지 않은가?"
- "그렇군요... 갈로디아시 때처럼 다행히 방공호에 모여
있어서 옮기는데 어려움은 없는데.... 두 번 정도로는
어림없을 것 같습니다."
"갈로디아시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구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가장 먼저 온 것 같군요..."
아크바레이의 말에 모두들 동의하는 듯 했다. 사실 마타
륭의 주작단이 이동했던 곳은 쿼터드시였다. 그랬기 때문에
발카로스시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쿼터드시야
1지역구였기 때문에 방어력이 보강된 상태여서 그다지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헤켈들의 작전이 성공한거라 볼 수 있었다.
"아!! 저기 보세요... 호크들이 날아오고 있어요!"
미시케의 외침에 모두들 서쪽 상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50여대에 가까운 호크들이 발카로스시로 진입하고 있었다.
방공호는 거리상 서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호크들은 가까운 곳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한 대의 호크 안에서 짧은 라퀼란 금발머리를 가진 사내가
내려왔다. 그는 얀 일행들을 알아보고는 미소를 띄며 달려왔다.
"저 사람은 누구지?"
얀의 질문에 모두들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중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인 파인리히가 뭔가 떠오르는 듯 말했다.
"아... 저번 갈로디아 시에서도 같이 사람들을 구했던 사람인 것 같군요.."
- "아!! 맞다... 그때 그 범죄자!!"
파인리히의 말에 미얀이 맞장구를 쳤다. 미얀도 머리가 좋은
편이었으나 사람 얼굴을 쉽게 잊어버리는 성격이라서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의 이름도 모르지만...
하지만 파인리히의 말에 그를 구해준 일이 떠올랐다.
미얀이 멀리서 '범죄자!!' 라고 크게 외치자 달려오던 에리네는
스텝이 엉키며 고꾸라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리얼하던지 우스울
상황에서도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부상을 걱정해야 했다.
다행히 그는 별로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아... 반갑습니다. 저번에 절 구해주셨었죠? 전 에리네
반인테스라고 합니다."
- "별일 아니었어요. 이번에도 사람들을 구하러 오셨군요?
범죄자치고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군요?"
"네에? 아... 그거는... 오해"
- "빨리 서두르도록 하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 카인의 말이 맞네... 서두르지..."
에리네는 애써 변명을 하려 했지만 이미 모두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흩어진 뒤였다. '쌰아악~' 바람 한 점 없던 곳에
바람 한 점 불어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연출된 것인가?
에리네의 짧은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캬... 멋있다..
"아.. 저기요.. 아가씨..."
에리네는 마지막으로 달려나가는 미얀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이름만이라도 알려주면 안되나요? 생명의 은인인데...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에리네는 귀엽다는 말에 자신의 얼굴이 빨개졌다는 사실을
망각한채 좋아라 실실 쪼개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불현듯
등장한 한 명의 괴인이 있었다!!!
"나가 남정네 만날 때마다 방해놓는다고 했응께... 우걀걀...
이봐유.. 야리네 양반.. 그만 야리고(웃는 표정이?) 나으 말 좀
들어보소... 저 미얀 처자는 성질이 불가터서 왠만한 남정네는
씨를 말려버릴 것잉께.. 조심 하는거시 조을 거시여..."
- "뭐에욧!!"
미얀은 그 연약해 보이는 팔로 라케프의 목을 조이고는
헤드락을 걸었다. 라케프는 숨이 막혀오는 와중에도 꼭
한마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으윽..... 나... 야.. 약속 지켰데이....."
- ".....--++"
라케프의 최후의 발악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미얀은 가차없이
라케프를 집어 던져버렸다. 라케프는 땅에 떨어지는 순간 놀라운
몸놀림으로 균형을 잡고는 착지하였다. 그리고 도망치며 외쳤다.
"야리네 양반!!! 나가 가튼 남정네로써 충고 하는디.... 미얀
처자는 포기하드라고... 그 처자보다 싸움 잘할 자신 없으면
마리여... 움화화핫.....으우구구구갈걀걀..."
- "치잇!!!"
이미 멀어진 라케프를 바라본 미얀은... 재수 없다는 듯 땅에
침을 퉤! 뱉고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뛰어갔다. 졸지에 야리는
녀석이 되버린 에리네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고찰을
하는데 약 3분여의 시간을 소비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데 실패...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 역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 그녀의 이름만이라도 안게 어디냐.....
약간 특이한 여자지만..... 후훗...'
에리네는 알 수 없는 웃음이 계속 흘러나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나보다..... 그 표정... 야리는 거냐? --;;
드라시안은 인간들의 호크가 발카로스시로 진입하자 크게
웃어젖히며 마타 륭에게 말했다.
"먹이가 미끼를 물었으니.... 이제 시작해보세... 하하핫.."
드라시안이 신호를 보내자 오펜션 조력단 20개체의
헤켈들이 각질로 된 피부에 핏발이 설 정도로 뭐마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광선형 돔 결계를 공격하던 주작단의 헤켈들이
포효하기 시작하더니 더욱 맹렬히 결계를 파괴하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20분을 가리키던 발카로스시 광선형 돔 결계의 에너지
바가... 순식간에 10분으로 줄어들더니, 채 1분도 안되어 5분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곤 경보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결계의 경보음을 듣고 얀 일행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었는데 벌써 결계가 다 파괴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드라시안은 힘을 비축해두고 있다가 적들이 등장하자 신속하게
주작단의 공격력을 향상시켜 결계를 파괴한 것이었다. 단 3분여만에
결계는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
이미 출동한 상태였던 발카로스시의 가오그 전대는 2개전대였다.
2지역구에서 글랜시아 시와 더불어 가장 발전되고 잘 사는 도시였다.
그랬기에 다른 도시에 1개전대 밖에 존재하지 않던 가오사이보그
전대가 2개전대가 존재했다. 1전대가 15대 2전대가 10대 해서 총
25대였다. 이만한 전력이면 헤켈들 50개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전력인 것이다.
물론 그래도 헤켈 100여개체로 이루어진 주작단이 훨씬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에겐 인간들이 모르고 있는
숨겨진 비기 오펜션 조력단이 있었던 것이다.
광선형 돔 결계가 파괴되자 도시안은 온통 혼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서로 먼저 호크에 타기 위해
질서 없이 우왕좌왕 했고 심지어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때리는 사람들까지 발생했다.
혼란스런 상황이 되자 얀들은 서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호크 위로
뛰어오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모습을 본 미얀이
생각했다.
'호홋... 정말 귀여운 남잔데?'
그 누군가는 바로 에리네 반인테스였던 것이다. 캬! 멋지다!
"여러분!! 모두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 모두 죽게 됩니다!!! 여러분!! 여.. 여러분.."
- "......."
'휘이~잉.....' 차가운 바람이 그의 주변을 스쳐지나갔다.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헉! 에리네 그 멋지던
이미지... 완전히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
그때였다. 먼저 타려고 다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리면서
달려가던 남자를 향해 누군가 <삼단 크래쉬 펀치>를 매겼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정신 못 차리는 한 남자의 뒤통수를 <540도
회전 돌려차기>로 쓰러뜨리고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뒤통수
연속 30번 때리기>로 때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바로
미얀이었다.
"여러분!!! 저 분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미얀이 가리킨 사람은 바로 에리네였다. 미얀이 사람들의
시선을 단박에 모으고 에리네를 지목하자 모두들 에리네를
바라보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시선 모으기 구타작전이었다.--;
에리네는 유그리스시의 시장답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말했다.
"여러분!! 전혀 동요할 것 없습니다. 이곳의 가오그 전대는
2개전대로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방어력이 잘 갖춰진 곳입니다.
그들이 무너지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움직이게 된다면 그 아까운 시간들을 모두
낭비하게 됩니다. 이건 여러분들이 스스로 자신의 남아 있는 생명을
허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만약 자신 혼자만 살겠다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나
에리네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에리네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소형 로이안 리플을 꺼내어
들었다. 괴한에게서 빼앗은 그 총이 이번에도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
에리네가 로이안 리플을 들고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죄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물론 총이 무섭기도 했겠지만 그의 논리 정연한 주장이 사람들을
설득시켰던 것이다. 사람들이 질서를 되찾자 호크에 탑승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미얀은 생각보다 에리네가 말을 잘한다고 느끼며 그에게 윙크를
했다. 에리네는 윙크 쇼크 때문에 하마터면 호크에서 떨어질뻔
했다. 어설픈 미소를 짓는 에리네를 보며 미얀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야! 미얀! 너 설마 저 귀여운 남자를 좋게 생각 하는거야?
안돼.. 안돼!! 스파이는 남자를 사귀어선 안된다구...."
미얀은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말했지만 좌우로 흔들리던
고개는 어느새 위아래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스파이 짓도 못할텐데 뭐....
고용주의 명령도 어기고... 후훗...."
미얀은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어쩜... 라케프 할아버지 말처럼 안될지도 몰라.... 평생
남정네를 못 사귀는..... 후훗... 말도 안돼지.. 암..'
미얀은 더욱 크게 소리치며 사람들을 이동시켰다.
결계가 파괴되자마자 마타 륭의 주작단이 도시 안으로 미친
듯이 난입했다. 마치 몇 달 굶은 거러지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보고 달려들 듯 말이다. 비유가 영 이상했다.. --;
마타 륭은 드라시안과 함께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가오그의 전력이 우수하다네. 2개전대로
구성되어있고 총 25대의 가오사이보그가 지키고 있네. 물론 최근
들어 갑자기 늘어난 전력이라 그렇게 훈련이 잘 되어있거나 강한
자들은 없을 걸세... 탑승자들도 되는대로 뽑았을 테니까....."
- "그거 참 재미없게 되었군요. 숫자만 많았지 실제론 쓸모 없는
녀석들이란 소리와 같지 않습니까? 이래선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우리 주작단의 실력을 다 보이지도 못하고 끝나게 생겼군.... 쳇.."
드라시안은 마타 륭이 꽤나 방심하고 있음을 알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 녀석들이 있을 거야. 쟈칼을
물 먹였던 그자들 말이지... 그들의 전력까지 가세한다면 꽤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걸세..."
- "쳇. 드라시안! 당신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 아니오? 오펜션
조력단의 도움으로 1.5배 이상 강해진 우리들을 벨 수 있는 인간은
없소. 아무리 그가 쥬데카 같은 전이 헤켈이라 해도 말이오... 후후훗..."
"마..마타 륭... 그래도 방심은..."
- "아아!! 그만하시오! 내가 알아서 한다 하지 않소. 당신은
그저 옆에서 돕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지금은 전시오! 전시엔
당신이 나보다 계급이 낮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 그런... 아.. 알겠네..."
드라시안은 다소 기분이 상했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 검단의 켄이라지만 마타 륭은 자신감의 도가 너무 지나쳤다.
'그들을 쉽사리 이기긴 힘들겠군... 허기야... 총명한 쟈칼이
당했을땐 분명 이유가 있었을테니..... 멍청한 뚱보 녀석... 크게
당하게 될 것이다.'
드라시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오그 전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걸어갔다.
발카로스시의 가오그 1전대장 히시기는 57세로 뛰어난 검술과
노련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마찬가지로 1전대 탑승자들은
모두 오랜 시간동안 수련을 하고 탑승 훈련을 받은 자들로써 2전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가오그 2전대장을 맡고 있는 마도란은 전쟁 발발
직후에 정부에 지원하여 새로 편성된 2전대의 전대장을 맡은
초짜였다. 역시 2전대원들 대부분은 모두들 신참들이거나 실력이
약간 모자란 친구들이었다.
마타 륭의 주작단은 엄청난 속도로 도시 안으로 진입하여
가오그 25대와 마주하여 섰다. 발카로스시 자체가 워낙 큰 행사를
많이 치르는 도시였기에-검술경연대회나 커플선발대회(발카로스
거리는 연인들의 거리다.)등등-그들이 싸울 공간은 충분히 넓었다.
가오그 1전대장 히시기가 호크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의인들을 한번 바라본 후 부하들에게 외쳤다.
"너희들도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주계획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구해주는 의인들이 있다는 소식을 말이다. 지금
그분들이 우리 발카로스시에 와 있다. 그분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광선형 돔 결계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버텨야
한다. 최후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 하는 것이다."
- "와아-!!"
"마도란!! 2전대가 약하니 될 수 있으면 공격은
피하고 방어만 하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1전대장님."
히시기의 말에 마도란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도란....11회부터 14회 검술경연대회까지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검성(劍聖) 마도란이 바로 그였다. 이미 14회 대회 카인과의
준결승에서 무념에 경지에 들어선 그는 검술이라면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을 만큼 고강한 실력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신검(神劍) 카켄도 제2차 세이렌 대전 때
전사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마도란은 가오그 조종에 익숙치 않은
초보였다. 그의 검술이 워낙 뛰어나고 또 무인다운 발달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2전대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타 륭의 주작단은 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가오그들을 베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켄은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드라시안은 점점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마타 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다소 무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켄의 지위에 오른자다.
저런 거대검만 휘두른다고 해서 결코 오를 수 있는 지위가
아닌 것이다. 도대체 무얼 노리는겐가... 마타 륭...'
가오그 탑승자들의 생각도 주작단원들의 생각과 같았다.
적들이 100m 정도 전방에서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던 것이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건가? 하지만 그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헤켈들이 불리해지는
것이다.
"적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은가? 마도란."
-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전력을
탐색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히시기의 질문에 마도란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들의 실력을 탐색할 이유는 없었다. 가오그의
전력이야 이미 다른 도시들과 전투를 치르면서 다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말인데.....
"저들이 기다리는 것이 뭘까.... 어쩌면 우리가 선제공격 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군...."
- "하지만... 선제공격은 안됩니다. 일단 약한 2전대의 전력이
노출될 것이고 Y 자로 넓어지는 광장에 불리한 곳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맞아..... 그럼...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일까....?"
히시기는 계속해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뾰족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3미터의 가오그보다
약간 작은 키에 어깨는 가오그 2대를 합친 것보다 더 벌어진
거구의 헤켈이 앞으로 나왔다. 그 헤켈은 양검 대신 거대검을
땅에 대고 서있었는데 정말이지 그 검은 작은 헤켈만한 크기였다.
마타 륭이 앞으로 나오자 그 뒤에 비슷한 크기의 거대검을
사용하는 주작 마참대 10개체가 뒤에 도열했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웅장하기까지 했다.
마타 륭은 가오그 전대를 한번 쓰윽 둘러보더니 인간어로 외쳤다.
"난 싸움을 즐긴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너희들은 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냥 죽이기엔 너무 재미없을
듯 하다."
- "무... 무슨 소리냐?"
마타 륭의 말에 히시기가 소리쳤다. 괴물 같은 녀석이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데...근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네가 짱이냐?"
- "그렇다! 가오그 1전대장 '히시기 사나긴'이다!"
"후훗... 로레타! 나오거라!"
마타 륭의 말에 주작 마참대 대원 중 가장 작아 보이는 헤켈이
그의 오른편으로 걸어와 멈추어 섰다. 상당히 균형 잡힌 몸매에
반중성인지 가슴이 볼록 튀어나온 그녀는 여성답지 않은 거대검을
가지고 있었다. 폭이 넓어서인지 1m 50cm 의 거대검은 그녀의
균형잡힌 몸매를 가냘파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아이는 주작 마참대의 수장 로레타다. 이 아이와 싸워
이긴다면 오늘은 그냥 물러가도록 하겠다.... 후후훗..."
- "뭐.. 뭣이???"
마타 륭의 말에 히시기를 비롯한 가오그 전대원들이 모두 놀라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저 헤켈을
이긴다면 시민들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 그게 정말이냐?"
- "후훗.. 그래... 저 아이는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싸울 것이다. 너희에게 3명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 3명중 단 한 명이라도 그녀를 이긴다면 약속대로 우린
돌아갈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말이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을 주지..... 후훗.. 사람들을 대피시킬......"
"그... 그런...."
히시기는 아직도 마타 륭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정말 3명중 한 명이라도 이긴다면
하루의 시간을 주겠다는 말인가!!
놀라기는 드라시안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도우러 이곳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아무 도움도 없이 싸우겠다니... 그것도 로레타를 이기면
돌아가겠다고? 드라시안은 마타 륭에게 한 대 맞은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도대체......"
드라시안이 나직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마타 륭이
다음말을 이어갔다.
"대신 조건이 있다. 3번의 대결을 하는 동안 인간들을 구하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인간들을 구하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시합의 관중으로 삼아야한다. 어디까지나 재밌고
유쾌한 삶을 위한 시합이니 그 정도 관중은 있어야 시합할 맛
나겠지.... 안 그런가???"
- "그... 그런....."
"어떤가..... 나 주작단의 켄..... 마타 륭이 약속한다. 5검중
한 명으로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마. 너희들이 우리
종족을 경멸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약속정도는 지킬
줄 아는 신용을 가진 종족이다. 그리고 난 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자아.... 어떤가....
인간들의 수장이여?"
- "......."
"그대들에게 결코 불리한 조건이 아닐텐데? 이 아이는 주작
마참대의 수장이긴 하나 나보다는 훨씬 실력이 아래다. 내가
직접 나선다면 지금 너희들은 물론 저기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려는
자들까지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 이런 기회를 마다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 "자... 잠깐만 시간을 다오..... 결정할 시간을...."
히시기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뒤로 약간 물러나 마도란과 상의했다.
"저들의 조건을 어찌 생각하는가?"
- "흠... 아무래도 쉽게 결정하긴 힘듭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이겼을 경우 하루의 시간을 준다면 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곳 사람들을 구하러 온 의인들까지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 저들은 지금 그 의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내기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마도란은 마타 륭을 바라보았다. 마타 륭은 지루한지 팔짱을 낀
채 자신과 히시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들을 믿어도 될까?"
-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건 어째서인가?"
- "광선형 돔 결계의 방어 예상시간을 훨씬 단축시켜 파괴한
자들입니다. 즉, 저들의 실력은 다른 도시들을 파괴한 그 어떤
군대보다도 강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전력이 다른 도시보다
강하다고는 하나 결코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의인들이
이곳에 온지 채 5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왕복 '4번' 이상
왔다갔다해야 모두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저자가
공격한다면 '한번'도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말대로
저들은 유리한 상황에서 저런 내기를 제의한 것입니다. 충분히
우릴 제압할 수 있는데도 그랬다는 것은 저자의 취미가 약간
고상하거나.... 아니면 우리와 이주 못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려는 의인들까지 한꺼번에 없애려는 계략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진다면!!!"
- "이미 패배를 염두해둔 전투가 아니었습니까? 졌을 경우
사람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걸고 싸워야겠지요..."
"그렇군... 저자의 조건 중에 우리가 졌을 경우에 대한 것은
없었으니까... 우리가 대항한다고 해도 약속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
- "한번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알겠네.... 그럼... 저 로레타라는 헤켈과 내가 먼저 싸우도록
하겠네. 아무래도 가오그 조종실력은 자네보다 내가 낳을 테니까....
자네는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저분들을 이리로 불러주게....
그들을 잘 이해시켜주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마도란은 그렇게 말한 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공호를
향해 달려갔다. 마타 륭은 한 가오그가 도망치듯 뒤로 달려갔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때 히시기가 입을 열었다.
"결정했소. 헤켈의 5검중 한 명인 당신! 마타 륭을 믿도록
하겠소. 당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이니 약속을 지키리라 믿소."
- "크카카핫... 좋아. 좋아... 그런 결정을 할 줄 알았다. 자아...
이제 재밌는 경기를 관람할 관중들이 필요한데...."
"이미 그들을 부르러 달려갔소...."
히시기의 말에 마타 륭이 고개를 끄덕였다.
얀 일행들과 에리네 등 수많은 의인들은 헤켈들이 진입하고는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오그 한 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게 아닌가.....
사람들을 지휘하던 얀과 카인이 그 모습을 보고 가오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가오그는 얀의 앞에까지 쿵쾅거리며
달려오더니 탑승자를 뱉어냈다.
"운(雲)!! 아.... 마... 마도란씨!!!!"
탑승자를 알아본 것은 카인이었다. 검술경연대회에서 서로에
대해 깊은 우정을 느꼈던 그들이었다. 자신을 위해 애써준
마도란을 카인이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카인은 쉐도우
프로젝트 속에서까지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를 마음속 깊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쉐도우 프로젝트 때문에 잠시 운인줄
착각했던 카인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 자네는 카인이 아닌가...."
마도란 역시 카인을 알아보고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그간 못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마도란은 발카로스시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기에
-검술경연대회 4회연속 우승자-그가 오자 사람들이 그를 둘러쌌다.
마도란은 얀일행과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희망과 불신이 섞인 초조한 표정이었다.
"만약 진다면..... 우리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생각이로군.."
- "그렇구먼.... 얀 선상 말대로 그 자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구먼... 즈그들이 이기믄 싹쓰리,즈그들이 지믄 설마..
그래도 싹쓰리 아닌감?"
"아닐겁니다. 그 자는 헤켈 중에서도 아주 높은 서열을
가진 자 같았습니다.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는 헤켈의 4개
부대는 모두 엄청나게 강한 자에 의해 통솔되고 있습니다.
그런 지위를 가진 자의 말이니 빈말은 아닐겁니다."
마도란은 자신도 확실히 믿을 수는 없지만 믿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에 진다고 해도 도망치려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자
모두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알겠네..... 우리가 그렇게 해서라도 도움이 된다면 돕도록
하겠네.... 만약의 사태에 모두 대비하게... 파인리히,아크바레이..."
얀의 말에 모두들 비장한 각오로 전장으로 향했다. 전장으로
향하면서 카인은 마도란에게 첫 번째 싸울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가오그 1전대장님인 '히시기 사나긴'일세.... 검술 실력도
굉장하고 무엇보다도 가오그 전투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네.... 내가 먼저 싸우고 싶었네만... 가오그 조종은
아직 서툴러서... 그분이 먼저 나섰네.... 만에 하나... 그분이
지게 되면.... 다음은 내가 싸워야겠지..."
- "수만명의 목숨이 걸린 시합이라......"
"반드시 이겨야겠지....."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전장에 도착해 있었다.
마타 륭은 다가온 자들의 모습을 한차례 훑어보다가 카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카인의 눈빛을 바라본 그는 묘한 전의가
타오름을 느꼈다.
'저... 저 녀석이군.... 쟈칼을 엿먹인 녀석이.... 후훗...
풍기는 냄새를 봐선 전이 헤켈은 아닌 것 같군... 아무래도
흉켈리스님이 말한 돌연변이인가......'
마타 륭은 헤켈의 동물적인 육감으로 카인을 알아보았다.
카인도 그의 시선을 느끼고 끝까지 쳐다보았다. 아이 눈시려..
--; 눈싸움에서 진 것은 카인이었다. 헤켈들의 눈은 망막위에
보호덮개 구실을 하는 눈꺼풀이 하나 더 있었기에 눈을 오랫동안
감지 않아도 전혀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은 인간의
자율반사신경과는 달라서 심지어 모래가 튀어도 눈을 감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카인은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나서야 눈을
감았다. 눈싸움에서 진게 분해서 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한
3분 계속 눈뜨고 있어보아라! 연기자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눈물연기를 스스로 해낼 수 있으리라!!
"다 모인 것 같군.... 자.... 이제 시합을 시작하려 한다!
조건은 지켜졌으니 만약 너희 선수 중 한 명이라도 그녀를
이긴다면 이곳에서 당장 물러나도록 하겠다. 그리고 하루의
여유를 주겠다. 하지만 너희가 진다면 이대로 공격을 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불만은 없겠지?"
- "그렇다.... 하지만 너희가 공격을 한다면 우리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하하핫.... 그건 좋을 대로 해.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을 테니......"
마타 륭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크게 웃어 젖혔다. 그제야
드라시안은 마타 륭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쟈칼이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실력이 낮아서가 아니라 얀 일행들이 토꼈기
때문이었다. 얀들이 토끼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허걱... 이런
라케프식 썰렁 언어유희 개그를 나 스스로 자초하다니......--;
얀들이 도망치지 못했다면 쟈칼의 손에 모두 죽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해 낸 마타 륭은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미연에 막아버리기 위해 이런 시합을 제시한 것이었다. 당연히
로레타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을테고 시합에서 이긴 후 저들을
모두 몰살시키면 되는 것이다.
'도저히.....믿을 수가 없다.... 나..... 나... 드라시안도
놀랄만한 작전을 저 무식한 뚱띵떡대가 생각해냈다는 것이....
내가 그를 잘못보고 있었던 것인가????'
"자!! 첫 번째 시합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시합의 규칙은
상대방을 죽이면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흠...아.. 머리
아프니 나머지 규칙은 생략하기로 하고... 첫 번째 선수
나와랏!" 헉!! --;
드라시안은 마타 륭의 계략이 순전히 우연과 운이 결합된
슈퍼 초울트라 메가톤 후루꾸(Fluke:요행. 발음이 안 좋아
지송해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타 륭의 말에 히시기가 앞으로 나섰다. 히시기와 로레타는
헤켈들과 가오그들 사이 정 중앙에 서로 마주하고 서있었다.
그 옆을 수많은 의인들이 관중이 되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타 륭은 언제 준비했는지 그의 몸집에 걸맞는 거대한 의자에
앉아 로레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잘한다! 잘한다 로레타! 로레타 파이팅!! 끝내버려!!" --;
- "컥....음.... 그럼 이제 시합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드라시안은 마타 륭의 천진난만한? 응원소리에 헤켈들의
위신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비통해 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로레타와 히시기 둘 다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도 인간들과 헤켈들의 살인각결대회는 열리게
된 것이었다. 드라시안이 소리쳤다.
"시작!!!!!!!!!"
초저녁인데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해 어두웠다. 라이오네는 더
이상 천둥이 치지 않자 잠에서 깨어났다. 윽... 뭔가 이상하다...
천둥이 쳐야 깨어나는거 아닌가..? 어쨌든 갑자기 조용해진 하늘을
바라본 라이오네는 이 적막함과 고요함이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티탄시 방위부에서 경계 경보가 울린 것은!!
"어라? 이 경계 경보음은 누군가가 도시를 공격했다는 말인데.....
이상하네... 헤켈들은 모두 2지역구에 있고 중앙지역구 북쪽에
위치한 이곳까지 오려면...."
라이오네는 고개를 저었다. 헤켈들이 이곳까지 올리는 만무했다.
물론 저번 티탄시 헤켈대전에서 보였던 그들의 능력은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고 믿게 만들지 모르나 이미 2지역구를 공략하고
있는 그들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경계 경보음이 울린지 얼마 되지 않아 경보가 발령되었다. 경계
경보가 울린 후 경보가 발령되었다는 것은 누군가 광선형 돔 결계를
대대적인 공격으로 부수고 있다는 뜻이었다. 헤켈 한두 개체가 공격을
가해왔다면 경계 경보에서 그쳤을 테지만 경보가 발령되었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라이오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릴튼 병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별일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라이오네 역시 무언가 컴퓨터 오류로 인해 그런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뉴스가 HDTV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현재 세이렌족의 기습공격으로 노스 메테르시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으며 마르스시 역시 방금전 기습을 받았다는 속보입니다!!!
아!! 지금 방금 또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티... 티탄시 역시
세이렌 족의 기습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신속히!! 방공호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만 가지고 가장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하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전쟁소식을 속보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전쟁 발발
이후 8세 이상 13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많이 실종되고........}
라이오네는 거대한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헤켈전쟁이 발발한지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세이렌까지 공격해 들어왔다는 것은...
라이오네는 무얼 해야할지 눈앞이 막막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무얼 해야하지... 도대체..... 아크 오빠.... 나 무서워......'
공황에 빠진 라이오네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얼해야할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몇분이 지나자
짐을 챙겨 방공호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지... 지금은 나 혼자 뿐이야.... 내가 결정해야 한다구...
오빠... 어떡해...아냐.. 정신차리자...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하자....'
생각을 마친 라이오네는 다급히 레이의 침상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동식 침상이었기에 그녀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히 옮길 수 있었다.
생명유지장치만 연결되어 있다면 방공호 속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병실을 빠져나온 라이오네는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서로
먼저 도망치려는 사람들 때문에 복도가 온통 혼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라이오네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가까스로 침상을
움직였다. 두려움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내며 스스로 용기를
내어야 한다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다행히 방공호는 릴튼 병원 지하에도 존재했다. 방공호 그 자체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에 병원의 효용성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대부분의 방공호는 병원지하나 사람이 많은 고층 빌딩
지하에 많이 존재했다.
겨우 침상용 엘리베이터에 탄 라이오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엘리베이터는 만원이라 불편했지만 사람들이 많은게 도리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듯 했다.
만약 세이렌들이 티탄시 방어시설을 모두 뚫고 들어온다면 방공호
안에서도 안전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곳이 가장 안전했다.
라이오네는 갑자기 일어난 세이렌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상
위에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게 현실이 아니기를..... 신이시여.... 어째서 이런 일들이
생기도록 내버려두는 건가요? 왜.... 서로 미워하며 싸워야 하나요?...
제발......모든게 꿈이기를..... 아크바레이 오빠.... 제발 빨리 돌아와......"
그렇게 라이오네와 레이는 지하 방공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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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웅..... 또 에리네를 이용한 썰렁개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