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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4일(금)
* 시작 기도
(엡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주님...
우리가 옛 사람으로 행할 때 총명이 어두워지고 감각이 없는 자처럼 방탕에 내주어 악하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새 사람이 된 자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않았으므로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듣고 받아 살아야 함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죄성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여전히 주 앞에서 또 악을 행하는 나를 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본성입니다.
(삿 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고 세대와 세대가 바뀔 때 역시 그 악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옛 사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출애굽 2세대인 새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곧 오늘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자 사사를 보내어주셔서 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오늘 이 종에게도 주님의 은혜, 은혜의 옷자락으로 덮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호 3:1-5
제목 : 또 가서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호세아더러 고멜과 결혼을 하라고 하는 것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묘사하여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오늘날 목사들이 실물 설교를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어느 누가 음녀인 고멜 같은 여인과 결혼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이끌어 가시는 그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종들은 좋은 역할이든 원하지 않는 역할이든 해야만 한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17세 되던 해에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가 그를 이스마엘의 장사치에게 팔아 넘겼다.
그런 연유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입애굽과 출애굽의 길을 여는 하나님의 섭리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그의 모든 형제들을 회복시키신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원치 않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호세아 역시 그는 원치 않을지라도 음녀 고멜과 결혼하여 당하는 마음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다.
고멜은 남편인 호세아를 놔두고 끊임없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쾌락을 즐긴다.
오늘 본문에서도 또다시 고멜은 다른 남자의 품에서 음행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로 하여금 가서 고멜을 데리고 와서 그녀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적 음란의 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세아는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자기의 아내인 고멜을 사온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음녀라 할지라도 호세아는 그녀의 남편이다.
그러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고멜을 데리고 오면 된다.
아니 가서 강압적으로라도 손을 휘어잡고 끌고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사오는 것이다.
당시 보리 한 호멜 반의 가치는 은 15개의 가치와 맞먹는다.
따라서 그가 그의 아내 고멜을 위하여 지불한 가치는 은 30개와 같다.
이는 마치 가룟 유다가 은 30을 받고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판 값과 같다.
고멜은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 호세아로부터 은 30을 받아 그 사랑의 가치를 다른 남자에게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하면 고멜이 생각하는 남편의 사랑의 가치가 은 30으로써 이는 곧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댓가로 받은 은 30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패역하고 끊임없이 음행을 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심지어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신단다.
게다가 은 30의 가치를 주고 사온 고멜을 향하여 이제는 제발 음행하지 말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지 말라고 부탁 또 부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멜은 또 다른 남자의 품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곧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다하고 또다시 다른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되 다른 나라의 포로도 넘기신다.
포로로 끌려간 그곳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그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들을 위한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제사를 지낼 수도 없고 우상을 섬길 수도 없으며 에봇도 드라빔도 없는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는 환난의 상황인 것이다.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이처럼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당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에 그들이 돌아와서야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그들의 왕 다윗을 찾으며 마지막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은총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왕 다윗을 찾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다윗은 시간적으로 볼 때 이미 육신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다윗은 육신적 다윗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포로라는 풀무불과 같은 고난과 시험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의 소유된 아브라함의 진짜 자손인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컫는다.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어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 날마다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갈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요 영적으로 죽은 자인 죽은 흙에 불과한 자들이다.
(고전 15:22a)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얻은 자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거듭남이란 다름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곧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마르고 떨어지지만 주의 말씀은 결코 떨어지거나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복음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말씀만으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저 교만하게 할 뿐이다.
말씀을 말씀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살, 말씀)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래서 결국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을 얻는데 이 삶이 곧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말한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생명)을 얻으리라.
이 생명으로 사는 자들은 결국 영생을 누리는데 이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 이전에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영생을 말한다.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는 자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인가 아니면 못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현재의 영생의 삶보다 죽어서 가는 천국에 더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영생을 누리는 것은 하기 싫고 그래도 마지막에 죽어서는 천국에 가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그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은 오늘 죽인다고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는 이 옛 사람으로 인하여 죄 가운데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이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른 우상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
또한 사람은 불의할지라도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창세전에 약속하신 영생과 그 영생을 주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그 언약을 하나님은 신실하게 지켜나가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아브라함 역시 그가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나 몇 번이고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인쳐주셨다.
(롬 4:19-22)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에 근거하여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의롭다 하신다.
그 의는 우리의 행함 이전에 우리를 덮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근거한 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와 그 보혈을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그 의는 아브라함에게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롬 4:23-24)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염치가 없는 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자요, 죽어 마땅한 자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내가 마치 고멜과 같은 음탕한 자요, 패역한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끊임없이 바알과 아세라를 좇아가는 그런 자이다.
나는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우상인 맘몬 신을 따라 그것을 음란하게 섬기던 자였다.
육신적 쾌락을 즐기며 거기서부터 오는 fun을 끊지 못하고 여전히 그 쾌락의 신을 섬기고 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곤고한 상황을 주신다.
사람들로 하여금 무고한 오해를 받게 하는 일이나, 복음과 전혀 상관없이 비본질적인 것으로 나의 마음을 후벼 파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곤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일을 통하여 나의 본질과 실상을 보게 하셨다.
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본다.
이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나는 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세우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복종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이런 심판이 나를 새롭게 변화하게 하거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화의 자리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된다 해도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께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주님의 심판 앞에서 주신 무덤에 잠잠히 거할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말이다.
나는 불의하나 주님은 불의하실 수 없으시기에 이런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다시 한 번 담대하게 아들을 힘입어 일어나 아버지께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의 심판은 결코 불의하지 않나이다.
우리의 교만과 음행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나이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다시 한 번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내가 당하는 고난이라면 주님이 주셨음을 인정하오니 그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나는 연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나이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품에 품어주시고 그 안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