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mbc 다큐 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곰배령의 여름> <곰배령 이야기>를 6년이 지난 2015년에 시청했다. 도시를 떠나 곰배령에 정착한 이들을 담은 프로그램인데 말로만 듣던 곰배령을 딛고 싶었다. 무엇보다 곰배령 사람들의 성격을 묻는 pd 질문에 '곰배령 사람들? 지랄맞어!'라고 답한 세 쌍둥이 엄마 이하영 씨를 만나고 싶었다. 왠지 나와 간이 맞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에 만나보고 싶었다.
그해 10월 연휴 때 그곳을 찾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세 쌍둥이네 풀꽃세상> 펜션은 성수기라서 예약이 꽉 찼는데 용케 내가 가던 날 취소자가 생겨 그날 하루만 묵을 수 있다고 했다. 무작정 차를 몰고 초행길 시커먼 산길 어둠을 헤쳐 그곳에 당도했을 땐 밤 9시 반 무렵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숙박한 뒤 이튿날 아침 산나물로 도배된 아침상을 맞았다. 숙박객 모두 곰배령으로 향하고 정신없는 아침이 정리되자 본체를 둘러본 뒤 하영 씨에게 여쭸다.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은데 묵을 방이 없으니 안방에서 혼숙해도 되겠느냐고. 그녀의 웃음처럼 화사한 답이 돌아왔다. 내가 불편해 하지만 않는다면 ok라고.
낮 동안 일대에서 펼쳐지는 축제장을 들르고 이틀을 그곳에 더 머물렀다. 둘째날 저녁상을 차릴 때부터 난 하영 씨네 식구처럼 스스럼없이 일손을 거들었고 그날 밤 그녀와 술잔을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를 예전부터 알던 이처럼 주고받았다. 어느새 그녀를 칭하는 호칭은 '언니~~~'가 되었고 이튿날 상남면 산골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내 지인댁에 함께 찾아가기까지 이르렀다. 빛 고운 이랑 가진 첫만남은 곰배령=이하영 등식을 만들었다.
인연은 다음해 직장 워크숍 장소로 그곳을 이용했고 이후로 엄마 동생 친구 지인들과 함께 자주 찾곤 했다. 햇수로 5년째 열 번 넘게 그곳을 찾았지만 정작 곰배령 정상을 밟은 건 지난해 7월 동네분들과 갔을 때 처음이고 두 번째가 언제일지 모른다. 무릎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렇기도하지만 내게 곰배령은 그냥 하영 언니집이기 때문이다.
곰배령 예찬자인 나는 3월 말에 벌써 곰배령 갈 날을 점찍어 뒀다, 5월 21일로. 혹시나 예기치 않은 일로 틀어질지 몰라 하영 언니에게 미리 말해두진 않았다. 내 계획을 알기라도 한듯 5월 10일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사진까지 첨부해서.
'곰취 출하기념 택배 발송 예정
주소 보내줘 ~
자랑질하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서 ㅎㅎㅎ
곰취로 팔자 고칠 건 아님^^
드디어 해냈구나! 작년부터 가래막골 끝 언니가 이름 지은 '엄마의 정원' 척박한 곳에 곰취를 가꿨는데 올해부터 수확할 수 있게 되었구나. 농사라곤 본인 김장거리 배추밖에 못 짓더니 판매용 농삿일에 성공했구나. 누구보다 크게 박수치며 응원했다. 출하가격도 책정하지 못 하고 택배비도 얼마인지, 몇 kg까지 동일한 요금인지도 모르는 쑥맥 초보농군은 내 물음에 웃음만 까르르 실려 보냈다.
곰배령에 동행하기로 한 일행 중 2명에게 이런저런 일이 터져 곰배령행은 뒤로 미뤄지고 그 사이 주문한 곰취 12kg이 곰배령 정기와 언니 내음 담아 배달됐다. 언니랑 맺은 지난 5년은 전화 목소리에 실린 언니 흥분이 두서없이 일에 쫓긴 우왕좌왕하는 언니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걸 쉽게 알려줬다.
숙박객 맞을랴, 곰취밭 넘나들랴, 곰취 선별할랴, 택배발송할랴, 곰배령 주차장에서 곰취 판매할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언니 모습은 안 봐도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언니를 도울 길은 판매망을 열어주는 것도 요긴하지만 무엇보다 어쭙잖은 내 손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6월 5일 밤 그리스로 여행 떠나는 군산 사는 둘째 언니는 5월 21일 계획한 곰배령 일행이었다. 비록 그 계획은 미뤄졌지만 둘이서 곰배령 일손으로 먼저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5월 31일 일찌감치 짐 챙겨 상경한 언니를 아점 한 술 챙겨준 다음 곰배령으로 델고 갔다.
펜션 지붕 수리 마치고 나온 폐자재 처리 차 인제읍에 나간 하영 언니 대신 고양이 2마리가 우릴 맞았고 집안에 들어서자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게 정신없었다. 가득 쌓인 설거지부터 마치고 이른 저녁을 챙겨 먹은 뒤 정리하고서 곰취밭에 다녀왔더니 곰배령 생태탐방센터에 다니는 둘째딸이 퇴근하고 마른 빨래를 개키고 있었다. 8시쯤 되어서야 하영 언니도 귀가했고 두 사람은 내가 가져간 피자로 저녁을 때웠다. 언니는 그게 오늘 첫끼라고 하며 일에 치여 산 그간의 어려움을 예의 너른 여유 담아 말해줬다. 그 와중에 숙박객이 붐비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다 싶었다.
밀린 속내 털기는 곰취 추리면서 하자는 우리 성화 아닌 독촉에 언니는 미안해서 어쩌냐며 저온 냉장고에 보관된 곰취를 거실로 실어 날랐다. 일꾼을 구할 수 없어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을 썼더니 도나개나 다 따놓는 바람에 선별할 게 많단다. 나와 둘째언니는 하영 언니가 알려준 대로 곰취를 선별하며 밀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중에 귀에 팍 박히는 게 있었다. 농민신문에서 주최하는 여성농업 경영인 상대로 수기 모집에 응모했단다. 5월 31일인 당일 자정까지 원고 마감이라서 그날 더 정신이 없었다며 제출한 원고를 인쇄해서 보여줬다. <곰취 먹고 사람되기> 제목으로 곰취와 함께한 하영의 곰취 사랑 2년을 담담하게 30매 원고지 분량에 담아냈더라. 원고 교정은 미흡했지만 곰취 재배하며 본인 스스로 곰취와 밀착, 동화되는 과정을 담담히 적어간 작품이 꼭 당선작이 되길 기원하며 작업을 이어가는데 하영이 불쑥 중간 상인 얘기를 꺼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어떤 이가 곰취 1kg당 택배비 빼고 12,000원에 파는 걸 8천원씩 쳐줄 테니 넘기랬단다. 약 한번 안 치고 사람 손으로 일일이 잡초 제거하며 청정지역 계곡물 뿌려주며 키운 하영 새끼인 곰취를 날로 먹으려는 그이 시커먼 제안에 하영은 두 손 불끈 쥐며 되뇌였단다.
'나는 곰배령 곰취 국모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 곰배령 정기 받고 자란 곰취를 널리 알리고 나부터 제대로 대우해 줄 거야!'
이 말을 들은 내가 긴급 제안했다. 자정 전까지는 수정 가능할 테니 수기 제목을 '나는 곰배령 곰취 국모다' 로 바꾸고 중간 상인 이야기를 곁들이라고. 내가 하도 제목의 임팩트 강조하며 우기자 언니는 잠깐 흔들렸지만 제목이 너무 세서 공격받을지 모른다며 건들지 않았다.
'곰배령 곰취 국모란 생각은 나 혼자로 족해~~^^'
산골 아낙의 소박한 자부심에 손을 들고 우리는 일을 더할 수 있었지만 하영언니가 조는 바람에 언니 보호 차 1시 반쯤 일을 정리했다.
이층 동향 방은 새벽 5시인데도 벌써 아침처럼 볕이 깊이 들어왔다. 잠결에 하영 목소리를 들었는데 한숨 더 자고 6시에 일어나보니 하영은 4시 반쯤 동네 아저씨랑 곰취밭으로 나갔댔다. 아참? 어젯밤 둘째딸이 그랬다. '내일이 엄마 환갑이라서 아줌마가 일부러 온 줄 알았어요' 주방으로 나가 미역국이라도 끓여 보렸지만 너른 집 여기저기 뒤져도 미역도 뭣도 딱히 국거리감을 찾지 못 하고 겨우 밥만 준비해서 일꾼 아저씨랑 넷이서 조촐한 산골 아침밥을 나눴다.
식사 마치고 하영은 아저씨와 다시 곰취밭으로 언니랑 나는 설거지와 곰취 선별 작업을 했다. 오후 1시쯤 하산할 등산객을 상대로 곰취를 팔러 여인 셋은 차 2대에 곰취와 하영이 쓴 책을 싣고 곰배령 주차장으로 갔다. 하산한 분이라면 다 들를 화장실 앞 뙤약볕에 돗자리를 펴고 포장 완료된 곰취 상자와 책, 눈요기용 즉석 포장대도 마련했다. 우르르 구경꾼은 몰려왔지만 의외로 곰취를 모르는 분이 허다했다. 짜른 혀로 설명했지만 구매손길은 상경준비 서두르는 발길에 치이고 말았다. 토요일인데도 판매량은 언니 환갑선물커녕 평일 수준, 언니 혼자 판매했을 때나 차이가 없었다. 이튿날인 일요일엔 어설픈 안내지를 들고 관광버스 안에도, 탐방센터 입구에서 호객을 벌였건만 별반 차이가 없었다.
월ㆍ화요일은 곰배령 입산이 허가되지 않는다. 그러니 집에서 곰취 선별을 도와야는데 둘째언니랑 나는 월요일 선약도 있고 여행 떠날 울언니 쉴 시간이 필요해 일에 파묻힐 하영을 뒤로 하고 상경했다. 지금쯤 곰배령 곰취 국모는 곰배령 주차장에서 소녀 같은 앳된 차림새로 수줍게 곰취잎을 떼주며 맛보라고 권하고 있겠지? 장사수완이라곤 골원한푼 없는 이가...
첫댓글 곰취먹고 사람되기
나는 곰배령 곰취 국모다
둘다 묘하게 쎄~~~~
풀꽃세상 주인
바쁜건 여전하다
일손 거들고 싶네 그려
곰취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삶은 잎에 쌈싸 먹는게 더 맛이 좋아요. 삶아서 냉동 시켜놓고 일년내내 곰취쌈 냠냠
곰취를 키워보려고 몇년 노력해보았는데 뜨거운 여름을 넘기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평지에서는 안되는 작물, 나중에 강원도나 산골벽지로 이사간다면 몰라도...
몇년 전 곰취를 구입해 쌈도 싸먹고 장아치 담아서 밑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글을 읽고 곰취 구입했네요 ㅎ
여행지 숙박지 안주인과 맺은 인연.
간이 맞는 친구하나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