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복생캠프 첫날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참여한 모든 영혼들이 만물 위의 하나님을 신앙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누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빡빡한 어제 일정을 견딘 지체들을 주님께서 칭찬하여 주시고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며 달려오는 걸음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늘도 의지하오니 성령님 말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본문 주해)
1~3절 : 다른 신이 주는 건포도란 바알 숭배에 근거한 가나안 땅의 포도 재배와 우상 제의에서 보여지는 감각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호세아는 쾌락을 찾아 다른 남자에게 간 고멜을 은 15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값으로 주고 사서 데려온다. 노예를 사는 데 해당하는 30세겔(출애굽기)의 값을 지불하되, 절반은 은 15세겔로, 절반은 농산물로 지불하고 데리고 온 것이다.
호세아가 부정한 아내를 사랑하여 값을 치르고 데려온 것은, 하나님이 불의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값을 주고 다시 회복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부정한 아내에 대한 선지자의 사랑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질(헤세드)에 대한 계시이다.
하나님의 본질로서 헤세드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구속의 사건으로 완전히 계시된다.
3절은 고멜이 인격적으로 변하기를 기다리는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호세아는 돌아온 아내로 하여금, 그녀에게 익숙한 간음의 길로부터 오랫동안 떠나 있도록 한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몸에 익숙한 악습을 끊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에 선지자 자신도 그녀와 완전한 부부관계를 맺지 않는다.
4~5절 : 고멜의 자숙 기간(3절)은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을 의미한다.
정치적으로는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는 시대이다.
종교적으로는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제사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하고 주상이란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것을 주로 말한다. 그리고 에봇과 드라빔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고 드라빔은 대표적인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와 우상을 동시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로써 바알 신앙으로 형성된 견고한 체제가 모두 해체되는 것이다.
그 후에야 저희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진 곳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한다는 것이다.
다윗 왕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다윗의 계보를 잇는 ‘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 왕은 다윗의 계보가 아닌, 에돔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포로기 이후 다윗의 왕으로 오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서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떨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것이다.”(5b절, 새번역)
이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오직 주의 긍휼과 은총으로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의 묵상)
공동번역으로 본문을 읽어보면 더 실감이 난다.
“야훼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 건포도 과자 따위나 좋아하는데도 이 야훼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 주어라."
나는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그 여인을 산 뒤에
이렇게 일렀다. "당신은 내 아내니,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말고 들어앉아 있으시오. 그렇게 오래 지낸 뒤에야 당신과 한 자리에 들리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처럼 오랫동안 왕도 대신도 없고 희생제물도 석상도 없으며 에봇도 수호신도 없이 지낼 것이다.
그런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저희 하느님인 야훼를 찾고, 저희 왕 다윗도 찾아오게 되리라. 먼 훗날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벅찬 마음으로 야훼께 돌아와 온갖 좋은 것을 다 받으리라.”(공동번역)
날이면 날마다 음란을 피우는 그 악행을 끊어버리도록 자숙하는 기간이 고멜에게 주어진다.
날이면 날마다 하나님을 배신하는 이스라엘에게 70년이라는 포로 기간이 주어진 것이다.
복음을 몰랐던 세월은 음란을 일상으로 행하며 살았던 세월이었다.
창세전 영생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모르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도 모르고, 그저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부지런히 싸돌아 다닌 시간들이 바로 바람피우는 세월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세상의 노예로 살면서 몸과 마음을 바치며 살았던 나를 주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당신의 보혈로 값을 치르고 구속하여 주셨다.
그런데도 자주 집을 뛰쳐나가 세상 속에 몸을 굴리며 살았던 고멜이 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고멜에게 자숙하는 기간이 주어졌다.
이 기간 동안 음란의 악행을 끊어버릴 때 나는 남편이신 주님과 연합될 수 있고, 주님을 통해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음란의 습관은 내 결심이나 결단으로는 끊을 수 없다.
마음의 음탕함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떨쳐낼 수가 없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오장육부를 몸에 담고 다녀야 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나의 의식이라는 질그릇에 항상 담겨있어야 하는 보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복음으로 충만해야 한다.
나 자신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인식하고 또 선포하게 될 때, 내 마음은 주님으로 충만케 되며, 동시에 세상에 대한 음탕함은 사라지고 노예의 사슬은 끊어지는 것이다.
결국 자숙의 시간이란 내가 이 세상을 사는 기간이요, 이 기간 동안 십자가를 붙들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한다.
십자가를 붙드는 것은 악행에 익숙한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먼 훗날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벅찬 마음으로 야훼께 돌아와 온갖 좋은 것을 다 받으리라”(5b절, 공동번역)
‘먼 훗날 그때’는 때를 알 수 없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겠다.
십자가에 연합되는 이 땅의 나날들이 끝날 그때, 나는 최고의 선물인 주님을 뵈옵고, 기뻐 춤출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이토록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까?
이토록 고멜을 아끼십니까?
툭하면 집을 뛰쳐 나가 음란을 피우는 나 같은 자를 이렇게 사랑하시다니요?
‘치아뿌라!’ 하면 끝일 것을 이토록 참아주십니까?
회개하는 마음에 다른 것이 틈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복음만이 충만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직 십자가만을 붙드는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정결한 신부로 주님 뵈올 그날을 기다리며
성령님만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