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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3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https://youtu.be/vJxYGLx7NaY?si=uhOZqRj6kmV-ZDA5
주기도문(3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 씀: 마태복음6:9~13
부 르 심:에베소서5:15~21
교 독 문:71번, 이사야 55장
찬 송:
31(45),1439141),280(338),273(331)
기 도:
1)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 천국가게 하소서
3)겸손의 영과 회개의 영이 임하소서
4)예수한국 복음통일(자유통일), 주사파척결, 성령충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의 뜻을 따라 살아야겠습니까?
저 세상에 중심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할 줄을 믿습니다.
주기도문은 주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주께서 친히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 멸하시는 것과 바라보게 하는 것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에서 뜻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임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뜻을 세우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뜻을 세우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사람의 뜻으로 세운 바벨은 망한다.
사람이 뜻을 세워 하나님과 반대되는 일을 행하는 것은
바벨이라는 성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11:4)”
사랑하는 여러분, 탑의 기원이 무엇입니까?
바로 니므롯의 바벨탑입니다.
탑을 쌓고 탑의 모양을 가지는 실상은 교만의 상징입니다.
사람의 오만함으로 사람을 높이어 신격화하는데 있습니다.
하늘에 꼭대기에 닿을려고 탑을 쌓을려는 것은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탑을 쌓게하여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입니다.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습니다.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영걸이었습니다.
영걸이란 강력한 세력을 지닌 자를 뜻합니다.
니므롯은 강력하게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짓으로 탑을 쌓게 하였습니다.
니므롯은 태양신 숭배가 되고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달신 숭배가 되고 아들 담무스를 숭배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벨론 종교라 부릅니다.
바벨론 종교와 기독교와 혼합된 것이 버가모 교회 같은 혼합주의 케톨릭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케톨릭 교회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땅에서 온 혼합종교라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벨탑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므로
강림하시어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 그들을 온지면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11:7)”
“우리가 내려가서“에서 ”우리“란 삼위하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을 구약에서는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우리”라 하여 단수동사를 받게 하심으로 삼위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1:26)”
말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져버리고
사탄이 세우고자 하는 것은 큰 성 바벨론입니다.
하나의 거대한 단일 국가 큰 성 바벨론을 세우자 하나 결국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계시록18:2)”
2>아버지의 뜻으로 세우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루살렘
사탄은 하늘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기는 루시퍼라 불렀습니다.
루시퍼란 빛을 지닌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빛의 본질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자기의 빛은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루시퍼가 그 마음이 교만하여 하늘에서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였습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이사야14:13~14)”
루시퍼는 반란을 일으켜 자기의 뜻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그 마음의 교만이 하나님께 들켜 결국 그룹에서 자격 박탈당하고 쫓겨났습니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에스겔28:16)”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예비한 성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11:10)”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바라보게 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한 성입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11:16)”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은 잠시잠깐의 시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은 영원함에 있습니다.
영원함에 예비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거룩한 성 새루살렘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 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요한계시록 21:1~2)”
2. 내 아버지 집인 천국에 들어가는 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1:21)”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은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태복음7:24)”
천국을 내 아버지 집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 두루마리른 빠는 자는 복이 있어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왔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을 원망하여 말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누가복음15:2)”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1> 잃은 양 한 마리
첫 번째 비유는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다녔습니다.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매고 집에 왔습니다.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15:7)”
2> 잃은 한 드라크마
죄인하나가 회개하는 두 번째 비유는 열 드라크마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었습니다.
여자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말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15:10)”
4.회개하여 돌아온 둘째 아들과 노하는 첫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판결
1> 회개하여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세 번째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하여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습니다.
그 후 몇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즉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먼 나라에 가 거시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였습니다.
다 없이한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둘째가 비로서 궁핍하였습니다.
둘째가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들에 나가 돼지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배로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업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말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을 생각하니 돌아갈 마음을 품어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누가복음15:19)”
둘째가 일어나 아버지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아직도 상거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째 아들의 모양은 형편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더러운 옷에 몸에 더러운 냄새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누가복음15:21)”
아버지는 둘째가 말하는대로 품꾼의 하나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이는 둘째의 죄를 다 탕감해준 다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는 둘째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는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발에 신을 신기는 것은 너는 노예가 아니라 내 아들이니 자유롭게 다녀라는 뜻입니다.
노예는 맨발입니다. 신을 신게 하였다는 것은 자유로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먹고 즐기자고 말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말하였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15:24)”
2> 맏아들의 노함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밝힘(누가복음15:25~32)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아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맏아들이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었습니다.
종이 맏아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
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맏아들은 아버지처럼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노하였습니다.
맏아들이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였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을 못마땅하게 여겨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맏아들은 오르지 동생의 잘못된 점만 아버지에게 고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내가 여러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 또한 동생의 허물을 들추어내어기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누가복음15:30)”
맏아들은 왜 아버지가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먹고 즐기는지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있습니다.
오르지 둘째의 잘못하였던 것만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는지 관심은 없습니다.
오르지 그 사람의 과거만 들추어내어 정죄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뜻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한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그러므로 맏아들의 올바른 태도는 동생이 스스로 돌이켜 일어나
아버지께로 왔다는 것을 함께 환영하고 즐거워해야 맞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불만과 동생의 허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이 동생을 미워하고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으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의 잘못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맏아들에게도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누가복음 15장 24절의 말하였던 것처럼 똑같이 분명하게 밝히었습니다.
“(눅15: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뜻이 하늘에 이루어진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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