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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5일(토)
* 시작 기도
(왕상 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주님...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식을 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에 솔로몬과 그 백성들은 그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며 심히 즐거워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단순한 건물 성전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친히 당신이 성전임을 천명하셨기 때문입니다(요 2:21).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전인 우리들 역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기에 그 성전의 거룩함을 잘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여 잘 넘어집니다.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성전으로 세워 주셨사오니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호 4:1-10
제목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이 패역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까지 하신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주권을 다 잃어버리고 아무 것도 자기들의 뜻대로 할 수 없도록 하시겠다고 까지 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악행을 일삼는다.
그들에게는 진실도 인애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오직 저주 속임수 살인 도둑질 간음과 포악하여 피를 흘릴 뿐이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패역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기인하는 것을 오늘 본문은 지적하고 있다.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이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므로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갈지(之)자 행보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거나 책망하지 말 것은 그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그들이 다투거나 하나님의 징계의 원인을 제사장에게서 찾고 그 제사장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한다고 말이다.
백성들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1차적인 책임은 제사장들에게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율법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네 자녀는 곧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한다.
이는 오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는 말과 다름 아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예수를 믿는지 그 목적과 이유도 모르고 자기들의 뜻대로 믿는다면 그 예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상이다.
요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대로 행하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뜻은 오직 영생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도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좋아하면서 애송하는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3:16절 아닌가?
(요 3:13-16)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약속하신 그 영생의 말씀을 들어보라.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러하다.
(요 3: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기 원하시는 것은 이 땅 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물질 명예 건강 사업 자녀가 잘 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주기 원하시는 영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영생을 얻는데 필요하면 주실 수도 있고, 또한 필요하지 않으면 안 주실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인데 그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서 내가 현재적으로 누리는 영생이다.
이 땅에서 현재적으로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의 최대의 관심사가 바로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과연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인가 못 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있는 이 땅에서 현재적으로 영생을 누린다면 죽어서 가는 천국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나라를 더 소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비록 상황적으로는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안에서 영생을 누린다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생이야 두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를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그 영생을 우리는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래 전, 어느 성도와 대화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자신은 그동안 자기를 가르쳐준 목사들이 가장 밉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그들이 복음을 바르게 가르쳐 주었으면 이렇게 수 십 년간 엉뚱한 짓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바르게 가르쳐 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엉뚱한 것이 복음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그 말이 맞다고 하였다.
나와 같은 목사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목사들이 바르게 가르치고 목사들이 바른 복음을 전했더라면 지금 한국 교회가 요 모양 요 꼴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목사들 역시 사실은 복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르치거나 전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다수가 가는 길이 진리인 양 한국 교회가 걸어온 지난 수 십 년의 세월동안 ‘예수 믿어서 복 받자’는 식의 슬로건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교회의 명제가 되어 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 믿어서 받는 복이 돈, 명예, 사업, 자식 잘 되는 것,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 건강의 복 등 대부분이 이 세상 만물 안에 속한 존재물을 향유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보란 듯이 가지고 누리다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작금의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이었다.
거기에는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나도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주로 한 말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잘 되는 것을 원하시지, 못 되는 것을 원하시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으면 자녀들이 잘 될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가르쳤다.
이 말 안에 ‘잘 되는 것’이란 다름 아니라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런 논리는 비단 우리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다 있다.
그들 역시 그들이 믿는 신에게 물질 명예 사업 자녀 건강의 복을 위하여 얼마나 비는가?
그들의 열심과 정성이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지극 정성이다.
그리고 그들도 나름대로 사후 영생관이 있기 때문에 죽어서 좋은 곳에 가려는 마음들이 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들이나 다른 종교인들이나 도대체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말로는 그들은 종교이고, 우리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라고 하면서 전혀 생명으로 살지 않는 것이 어제 오늘의 우리 기독교인들의 실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복음을 들은 지 10년이 넘었다.
이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무엇보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요 특히 복음을 전하는 자이면서도 정작 목사인 내가 복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수박 겉핥는 식으로만 알고 있었고 그나마 그것을 통해서 얻는 복이 대부분 이 땅 만물 안에 국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일관성이 없었다.
신앙은 맨날 흔들리고 혼미하며 얼마나 엉뚱한 곳으로만 가던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성도들 중에 암이라도 걸리고, 큰 교통사고라도 나면 그들에게 하는 일이 고작 위로하는 일밖에 없었다.
거기서 주님이 주시는 뜻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고쳐 주시고 이전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위로와 격려만 할 뿐이었다.
그 좋은 것이란 다름 아니라 이 땅에서 얻는 물질과 건강을 말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런 나는 성도들에게 쓰레기로 밥을 지어먹이는 아주 나쁜 목사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런 악한 제사장이었다.
진실도 인애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어서 성도들을 망하게 하는 그런 목사이며 내 잇속만 차리는 자였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복음을 듣고 지금부터 7년 여 전에 다른 복음, 변질된 복음이 아니라 참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성도들의 반응이 나온다.
그것은 나를 대적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게 무슨 복음이냐? 그것이 무슨 예수 믿는 것이냐” 하면서 나를 대하여 얼마나 대적하고 저항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복음, 변질된 복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저항에도 나는 오직 참 복음만 전하기로 하였다.
설교 시간에 다른 세상적인 예화를 드는 것도 삼가고 오직 복음만 전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베트남 하이퐁에서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숫자가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이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하므로 성도들에게 참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그런 나를 당신의 생명으로 대속하시고 구원하셨기에 오늘도 그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듣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날마다 말씀으로 주님께 나아가 주님과 교제를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내가 머리로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갈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이스라엘이 오늘 나임을 고백하나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도 세상의 존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그것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나의 마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것은 우리가 헛된 것을 먹고 양식 아닌 것을 먹기 때문이오니 이제는 썩을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을 먹게 하소서.
주를 온전히 따르며 거기로부터 나오는 주의 살과 피가 바로 나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주의 말씀과 성령이 나의 생명의 양식이 되어 날마다 나를 죄악으로 끌고가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양식인 말씀과 성령으로 살게 하소서.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임을 다시 한 번 깨닫사오니 그저 머릿속의 지식으로 남아 머리만 커지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그것이 가슴에 담겨 날마다 주님과 영으로 교제하는 사귐이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그 영생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바라는 이 마음이 바로 천국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만나는 교제와 사귐이야말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임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