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문을 새로 바릅니다.
우리집은 5칸 겹집이여서 방문은 모두 한지로 발라야 하고
그 앞에 마루문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었답니다.
남들이 말하는 으리으리한 집이였지요.
문을 새로 바르는 날은 볕이 좋은 날로 정해야 합니다.
방문을 모두 때어내어 마당으로 가져다 놓고
그냥 종이를 찢는것이 아니라 그 문에다 물을 뿌립니다.
지금이야 분무기가 있으니 분무기를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어머니들이 이불호청 다리면서 했듯이 입안 가득 물을 물고는
푸~~~~~하고 밷어야 했지요.
우리 아버지 주특기가 그겁니다.
제가 아무리 따라 하려고 해도 되지 않던.
암튼 물을 촉촉히 먹은 한지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살 살 때면 찢지 않고도 다 때어 낼 수 있답니다.
이렇게 때어낸 한지는 잘 말립니다 나름대로 또 쓰일곳이 있거든요.
한지를 때어낸 문을 솔로 살살 닦은 다음 마른 걸레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 다음에 흰죽처럼 맑고 깨끗한 풀을 먹은 한지를 문에다 바릅니다.
적당히 마르면 손잡이 부분에는 특별 장식이 더해지지요.
국화꽃잎이나 빨간 기지나무 잎을 때어다가 문 손잡이 부분에 바르고
다시 동그랗게 그 위에 덧바른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문을 여닫다가 실수로 한지에 구멍을 낼 수 있어서
손잡이가 있는 부분을 더 두껍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 안에 꽃잎을 넣는것은 나중에 마르고 나면 보기가 너무 좋답니다.
풀 먹은 한지가 마르고 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아세요??
탱 탱....
그 소리 정말 좋답니다.
그리고 문에서 때어내어 말린 한지는 다시 붙일곳이 있답니다.
저희집은 화장실 환기구에도 겨울이면 옷을 입히는데
이 재활용 한지로 바릅답니다.
빛이 바래서 색갈이 조금 누렇기는 하지만
바람을 막아주는 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까요.
당시는.
화장실에 화장지를 두는집은 한 집도 없었습니다.
일일이 다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화장지라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대분분이 아이들 교과서나 공책(그때는 노트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을 썼고
때로는 신문지로 쓰기도히구요.
신문지를 쓰는 집은 그나마 잘 사는 집이였지요.
저희집은 아주아주 보드라운 찰종이(습자지라고 하기도 하죠)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공직에 계셔서 지나간 서류나 문서들을 가지고 오셨는데
모두가 습자지였습니다.
그 종이에 엽전을 넣어 재기를 만들기도 했는데.
또 하나는 일력입니다.
매일 한 장씩 넘기는 달력 아시지요?
저희 아버지는 매 년 그 달력을 구해 오셨는데
그 달력의 최종 목적지가 화장실이였습니다.
우리집 화장실에 찰종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고부터
아이들은 우리집에만 오면 화장실을 갔고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들 주머니엔
그 보드라운 찰종이를 찢어 넣어 갔답니다. 재기를 만들려구요.
그 덕분에 아이들이 제 가방을 많이 들어다 주었지요.
숨바꼭질 할 때면 일부러 우리집 화장실에 숨기도 했구요.
우리 아버지는 손재주의 귀재였습니다.
아버지 손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반듯하고 매끈하고 그랬으니까요.
신학기에 새 책을 받아오면 그 표지는 달력이지요.
하얀 달력으로 표지를 싸는 아이는 드물었고
신문지나 누런 비료포대로 싸오는 아이도 많았습니다.
국어
2-1
윤강
이렇게 표지에 까만 붓으로 써주시고..
그러니 달력 한 장도 함부로 버리면 안되지요.
일년 내내 모아 두었다가 신학기에 책 표지로 써야 하니까요.
동아전과. 동아수련장도 생각이 나는군요.
표준전과도 있었지만 그래도 동아전과가 제일 좋았습니다.
동아전과 하나 있으면 작은 그룹의 대장은 할 수 있었습니다.
숙제라는 것이 전과를 보고 옮기는 것이였으니까요.
예전에는 다 그랬습니다.
국어숙제는 반댓말. 비슷한말. 문단 나누기..뭐 이런거였거든요.
종이.
아버지.
갑자기 이런 것들이 생각납니다.
종이 한 장도 귀하고 아껴썼던 시대가 있는데.
세월이 좋아져 두루마리 화장지가 나왔을 때도.
우리집에서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야 했습니다.
화장실 갈때는 "두 칸"
방바닥에 무엇을 흘렸을때는 "한 칸"
세 칸 이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 지금 이렇게 잘 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사이야 두루마리가 아니라 고급티슈도 펑 펑 쓰쟎아요.
요즘 아이들이 이 글을 읽으면 촌스럽다 할 것이고.
그래도 그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늘에서도 손재주가 여전 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연을 만들어 주시면.진짜로 잘 날았는데.
첫댓글 저희집도 옛날에 그랬던거 같아요...ㅎㅎ 어떻게 생각하면 옛것이 좋은거 같아요...운치도 있고...!!
맞습니다..아날로그가 훨씬 인간미가 나는것 같습니다.,
다 그렇게 살았지 싶으네요 그래도 다시 일깨워줘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윤강씨 나이세대때도 그러했군요. 좀더 윗쪽인 우리세대들만 그러했는줄 알았는데..지금은 너무 흔해서 귀한것이 없어진 세대가 되었지만 때론 옛것이 진실일때가 있습니다. 덕분에 그때를 회상해봤습니다.
그러시군요......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고 어릴적에 한지로 문을 바르고 했었지요,,수고 많으셨습니다,^*^
하하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