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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계간지 <황해문화> 2011년 봄호에 실린 것입니다. <황해문화>를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잡지사의 양해를 얻어 여기 다시 싣게 되었습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숨건 투쟁에 마음으로나마 힘찬 응원을 보내는 뜻에서 이 소설을 올립니다. - 김하경 씀-
단편소설 Walkabout / 김 하 경
1장 은행나무 길에서
1-1 브런치 먹을래? 비누방울 같은 여자의 목소리다. 누구세요? 누구긴 저승사자다. 탁구공처럼 대답이 곧장 튀어 오른다. 조희선이다. 눈을 부비며 시계를 올려다본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원고 다 됐지? 원고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진다. 날 밤 새고 아까 새벽에 잠들었어.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이런, 한홍이씨 고생 많았네요. 제가 거하게 쏘겠습니다. 병 주고 약 주냐고 쏘아주려다 참는다. 은행나무 길로 나와. 대답은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몸보신하게 스테이크 어때? 말만 들어도 침이 고인다. 앗싸! 좋지. 휴대폰을 침대위에 내던지고 단숨에 벌떡 일어난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를 벗고 청바지로 갈아입는다. 입고 있던 후드 티 위에 패딩 점퍼를 걸친다. 거울 앞에 선다. 빗지 않은 머리는 모자로 덮어쓰고, 세수 안 한 얼굴은 머플러로 칭칭 감는다. 프린트한 원고를 봉투에 넣는다. 현관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온다. 연립주택 단지를 벗어나면 곧바로 2차선 도로다. 은행나무 길은 압구정역 현대고등학교 뒷길에서 신사역으로 올라가는 700미터 남짓 되는 길이다. 이국적인 느낌의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패션 매장들이 독특한 디자인과 새로운 감각으로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삼청동과 부암동이 새로운 트랜드로 부상하면서 요즘 이 강남 은행나무 길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성탄절이라 붐빌 줄 알았는데 뜻밖에 한산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간혹 눈에 띈다. 광란의 이브를 보낸 다음인데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거리가 한산하다. 한 아저씨가 새까만 독일개 도베르만 핀셔 두 마리를 데리고 느긋하게 어슬렁거린다. 희선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셔터를 내린 데아뜨르 문 워커 앞 벤치가 비어있다. 햇살을 등지고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지나가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패셔니스타들이다. 연예인 빰 치게 예쁘고 늘씬한 몸에 옷도 스타일리스트처럼 잘 맞춰 입었다. 전문가 수준의 코디다. 쇼 윈도우에 내 모습을 흘낏 비춰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고시생 안경, 투박한 어그 부츠까지.....하긴 할리우드 스타들도 평소엔 헐렁한 트레이닝 차림으로 페라리에서 내리지 않던가. 비교할 걸 해야지...혼자 웃는다. 등이 차츰 따스해온다. 겨울 햇살이 잎을 다 떨군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밝게 부서진다.
1-2 조희선은 여고 동창이다. 명함에는 프리랜서 작가라고 써있지만, 그건 방송국 신문사 잡지사를 기웃거릴 때 필요한 비즈니스용일 뿐, 한마디로 프리터 그 자체다. 머리 속에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가득 찬 에너자이저이자,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은행나무길’ 무가지를 발간하는 엉뚱 발랄녀다. 그 무가지가 입소문을 타는 바람에 작년엔 인터뷰 요구가 빗발쳤다. 잘 나가는 친구를 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글 기부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실용서적 출판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여고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울로 올라와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출판 일을 배운 뒤 지금까지 오직 한길만 걸어왔다. 야간 대학 다니던 4년 동안은 기획사와 학교만 오고갔고, 졸업 후엔 기획사 사장이 강남에 차린 실용서 출판사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두 동생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가장의 굴레를 벗어났다고 좋아한 순간, 나이 삼십이 훌쩍 넘어버린 걸 깨달았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귀신이 울고 갈 정도의 전문가는 되었지만, 실용서적 출판사에서는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다. 뭔가 다른 삶이 필요했다. 직장을 그만 두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뭘까를 궁리했다. 그러다가 희선이와 어울려 촛불집회에도 나가고, 제비당에도 가입했다. 제비당은 강남 역 앞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촛불집회가 한창 일 때, 알음알음 사람들이 불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강남 제비’에서 따왔지만 ‘커피당’처럼 정치색과는 무관하다. 강남에서 살거나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어쨌든 강남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동호회라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와 제비당 기사가 내가 처음 무가지에 쓴 글이다. 편집장 희선이에게 인정받으니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 가끔 취재기사나 인터뷰기사를 썼다. 그런데 1년 전 희선이의 동료가 출산휴가에 들어가면서, 본의 아니게 그 동료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신년호 특집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멘토 책 이야기가 나왔다. 내 멘토는 대학교 때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다. 그 책을 읽을 때가 가장 고달픈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가족 때문에 겪는 제제의 고통이 그대로 나의 고통으로 이입되면서 진한 공감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희선이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야! ‘어른을 위한 동화!’ 한 달 뒤 희선이가 어렵게 구했다면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나나의 고향(Nana’s Land)이었다. 첨엔 제목도 그림도 그저 그랬다. 하지만 희선이의 책 설명을 듣자 호기심이 당겼다. 호주 원주민들은 아이가 14살이 되면 조상의 땅을 순례하고 돌아오는 일종의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를 치르는데, 이런 전통을 원주민 언어로 Walkabout (숲속의 떠돌이 생활)라고 한대. 그들은 조상의 영혼은 없어지지 않고 그들이 거주하던 곳에 스며 있다가 후손에게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대나봐. 일종의 윤회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곤 갑자기 희선이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명문 SKY는 아니지만 너도 영문과 나왔잖아? 컴퓨터책도 번역하는데 동화 책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니? 한번 해봐. 모험하는 셈치고. 내가 펄쩍 뛰자 희선이가 나의 약점을 찌르며 거부할 수 없는 결정적 멘트를 날렸다. 도전하지 않는 자에겐 기회도 없는 거야. 번역 작가가 니 소원이라며?
1-3 4층 빌딩 전체를 차지한 라 피에스타는, 음식과 차와 아트를 뒤섞은 갤러리식당이다. 그런데 초현대적이고 세련된 식당에서 최고급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도 우리는 무가지에만 넋이 빠져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그 바람에 뭘 먹었는지 맛은 어떤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입가에 묻은 소스를 냅킨으로 닦으며 에스프레소 잔을 끌어당겼다. 이 책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더라. 어릴 땐 내가 투명 갑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어. 총알도 나를 뚫고 지나지 못할 거라고. 유리창에 빗물이 흘러내리듯 총알이 나를 피할 거라고. 그렇게 믿었어. 그런데 지금은 총알은커녕 빗물 한 방울도 못 막는 허약한 존재라는 걸 알아. 그런 생각하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슬퍼져. 희선이는 무가지에 꽂혀서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한 책이라고 똑같이 느끼면, 그 책이 진짜 좋은 책이래. 이번 기획, 정말 탁월한 선택 같지 않니? 나 역시 동문서답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동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조상의 땅에 갔다 오면 달라질까. 거짓말처럼 어른이 되고 마술처럼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율포에 한번 다녀올까 해. 여름에 안 쓴 휴가 몽땅 쓰려고 연가 냈거든. 나 프리야! 자유! 희선이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그 눈빛은 뭐야? 겁나게 왜 그래? 희선이는 의자를 당겨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우리가 선견지명이 있는 건지, 아님 일이 잘 될라고 그런 건지. 암튼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무슨 타이밍?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희선이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가 딱이야. 너밖에 없어. 무조건 한다고 약속하면 말할 게. 결국 반 우격다짐으로 가짜 맹세를 듣고서야 희선이는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전, 율포에서 굴뚝 농성이 시작됐대. 그리고 희선이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사진과 깨알 같은 기사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율포조선에서 일하던 하청기업이 폐업하면서 노동자 31명이 해고되었다. 대법원은 하청기업 노동자도 원청인 율포조선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원직복직 시키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때부터 해고자들의 원직복직 투쟁이 7년 동안 계속되었다. 율포조선 정규직 노동조합은 해고자들의 투쟁을 외면했다. 반면에 현장회 소속 정규직 조합원들은 해고자들의 농성에 동참했다. 그 농성장에 노동조합 간부들과 회사 경비원들이 들이닥쳐 현수막을 찢고 천막을 부수며 불태웠다. 이에 현장회 소속원이 항의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참다못한 같은 현장회 소속원이 본관 옥상에서 투신을 했다. 다행히 재빨리 응급실로 옮겨져 생명은 구했으나 중태였다. 이게 한 달 전 일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환자의 요구는 도외시한 채 사태 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병원비 몇 푼으로 합의서를 만들어 환자에게 내밀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장회 회장이 23일 새벽 6시, 100미터 높이의 소각장 굴뚝으로 올라갔다. 30대 후반의 젊은 가장을 차마 혼자 올려 보낼 수 없었던 40대 후반의 지역본부 간부가 함께 올랐다. 집행유예기간 중이라서 농성이 끝나면 오래 구속될 걸 뻔히 알면서도 올라간 것이다. 근데 워낙 급하게 결정하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 달랑 생수 두 통에 여름용 침낭만 챙겼다는 것이다. 한참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내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근데 왜 하필 크리스마스야? 산타를 기다리는 애들 생각은 안 해? 희선이가 말허리를 끊었다. 오죽하면 그랬겠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하루 이틀 기다린다고 지구가 멸망하냐? 이런 뉴스 볼 때마다 화가 나. 당사자 얼굴만 나오지 가족 얼굴은 안 나오잖아? 난 애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라. 투신한 노동자의 세살 다섯 살짜리 어린 남매랑, 아버지가 해고 되서 학교를 그만 둔 남매가 떠올라. 아버지를 도와 생계비를 벌려다가 화상 입은 딸의 아픈 얼굴은 왜 안 나오는 거야? 364일 투쟁해도 상관없어. 성탄절 하루만은 애들과 보내야지. 아님 그게 무슨 아버지야? 몸이 떨렸다. 아버지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고, 거북하고, 불편했다. 미안해. 내가 흥분했나봐. 근데 말야. 니가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 난 노동자니 노동운동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야. 너도 알잖아? 희선이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알지. 니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더 멀어졌다는 거. 원래는 멀 수도 없고, 멀어서도 안 되는 사람인데 말야. 순간 내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뭐? 그게 무슨 말야? 희선이의 목소리는 냉정할 만큼 침착했다. 서른다섯 살이나 됐으면 이젠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니?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게 불끈 치밀었다. 뭐라구?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게 느껴졌다. 희선이가 꼬리를 내렸다. 어린애를 달래듯 내 팔 위에 손을 얹고 토닥거렸다. 나도 다 알아. 아버지 때문이란 거. 근데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린애야. 맨날 가족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다른 각도에서도 좀 보란 말야. 새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듯 전체를 보라고. 나는 희선이의 손을 뿌리쳤다. 니가 알긴 뭘 알아? 나에 대해 뭘 그렇게 잘 알아? 쫒기는 짐승처럼 숨소리가 헐떡였다. 넌 몰라. 넌 내가 아니니까.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넌 아무 것도 모른다고! 나는 평상심을 잃고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의자에 걸쳐놓은 점퍼를 번쩍 들어올렸다. 순간 테이블 위의 와인 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조용한 실내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누구에랄 것도 없이 사방에 대고 돌아가면서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희선이가 내 손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희선이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리고 섰다. 투정 부리는 어린애를 감싸듯 희선이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너랑 한바탕 했더니, 배가 고프다야. 배 속이 든든해지면 세상이 좀 더 밝게 보일 거야. 그리곤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얌타이에 가서 쌀국수 하나씩 더 먹고 가자. 이번엔 니가 쏘는 거다.
2장 율포에서
2-1 율포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스쳤다. 두려웠다. 노동운동에 대해 잘 몰라서? 아니면 아버지 때문에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거부해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노동자라는 존재마저 의식속에서 다 지워진 것 같다. 그들은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나에겐 마치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 그들의 존재가 갑자기 가까이 크게 다가왔다. 겁이 났다. 희선이의 재촉이 빗발쳤다. 등 떠밀리듯 고속버스에 올랐다. 율포에 다가올수록 두려움은 커져갔다. 목적지에 첫발을 내 디뎠을 때 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잘못 내렸다고 의심할 정도로 율포는 변해있었다. 100배 이상 커져버린 율포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율포면이 아니었다. 고향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국의 신도시가 다 그렇듯 여기도 비슷했다. 사방이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도로와 건물 사이에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났다. 상가의 간판들이 건물 전면에 어지럽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머뭇머뭇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두터운 곤색 작업복 위 조끼에 ‘단결’, ‘투쟁’이란 두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형광색 두 글자가 눈에 거슬렸다. 거북했다.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얼굴은 모르지만, 누구일 거란 짐작은 갔다. 희선이가 소개해준 지원대책본부 연대사업국장일 것이다. 전화나 이메일, 혹은 메신저로 그와 여러 번 접속했다. 길승흠이란 이름이 부르기 어렵다니까 그가 닉네임으로 부르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를 발데르라고 불렀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올 줄은 몰랐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아직 기사를 쓸지 말지 확신이 없었다. 자발적 방문도 아니다. 강요에 떠밀려 내려왔기에 더욱 그랬다. 그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나는 경계하듯 주춤 멈춰섰다. 한홍이씨입니까? 노동자는 으레 우람한 체격에 얼굴은 우락부락하고 인상은 험악하고 거칠 거란 나의 선입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간 키에, 몸도 호리호리하고, 피부는 하얗고, 안경까지 써서 지적인 냄새가 풍겼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그의 첫 인상은 경직된 내 긴장감마저 풀어주었다. 농성장 먼저 가보시겠습니까? 그가 나를 승용차로 안내했다. 나는 주춤했다.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폐 끼치고 싶지 않다고 둘러댔다. 혼자 나중에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요....그가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서울에선 손님을 그렇게 대하는지 몰라도 지방에선 그러면 욕먹습니다. 역이나 정류장에서 시작해 거기서 끝나야 합니다. 그 순간 ‘문 앞에서 문 앞까지’라는 택배 광고가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웃음이 났다. 한마디 농담으로 어색함이 사라졌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가 차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차는 고물이지만 달리는 덴 이상 없을 겁니다. 안전띠를 매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어제 하루 종일 열나게 청소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차 유리창에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군인 같이 딱딱하고 어색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종 낙관과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자상하고 깊은 속내가 느껴졌다.
2-2 바람이 세차다.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살 속까지 파고든다. 옷을 두겹 세겹 껴입어도 발가벗은 것처럼 춥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손도 발도 꽁꽁 얼어붙었다. 장갑을 꼈어도 손가락 끝이 시리고, 모자와 머플러, 마스크까지 동원해도 얼굴이 따갑고 아프다. 이대로 가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춥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춥다고 말하지 않는다. 굴뚝의 높이는 자그만치 100미터다. 까마득한 높이다. 두 농성자가 작은 점이 되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마치 새 같다. 높은 하늘을 날다가 잠시 굴뚝에 앉아있는 새. 너무 아찔하게 높아 사람의 형상이라는 실감이 안 난다. 그들이 고통 받고 있는 추위와 굶주림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소름이 돋는다. 그 공포 앞에서 모든 상상이 멈출 듯하다. 위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음식도 먹으면 안 될 거 같고, 따뜻한 바닥에 누워서도 안 될 것 같다. 춥다는 말을 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온종일 벌을 서고 있는 기분이다. 이거 받으세요. 발데르가 주머니 손난로 두 개를 내밀었다. 염치 불구하고 넙죽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따뜻했다. 온기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손 하나 따뜻해졌는데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놀랍다. 덩치가 산만한 경비원들이 굴뚝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집회 참석자보다 더 많은 경비들이 잔뜩 긴장한 채 농성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이 굴뚝을 지키는 건 명목뿐이고 실제는 농성자들의 굴뚝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사고에 대비한답시고 바닥에 매트리스도 깔았지만, 굴뚝 주변이 워낙 손바닥만큼 좁고 여유 공간마저 없는데다가, 철 구조물들까지 널려있어 안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대책본부에서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물과 음식을 올려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도 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선전물도 나눠주고, 경찰서장과 직접 면담도 했다. 할 건 다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은 ‘노우’였다. 회사가 거부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경찰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허락했지만, 회사의 반대 한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율포는 그런 도시였다. 경찰도 회사 앞에선 꼼짝 못했다. 국가권력보다 자본이 더 힘이 센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어제 밤에는 회사 경비들이 농성장 천막을 부수고 바닥에 깐 스티로폼을 거둬갔다. 항의하러 구청 로비에서 농성하던 사람들까지 강제해산 당해 쫓겨나왔다. 계속 거부만 당하는 데 대한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 했는지, 두어 시간 전에 한 활동가가 자신의 몸에 신나를 부었다. 다행히 옆 사람이 눈치 채고 재빨리 만류한 덕분에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회사는 처음으로 방한복을 허락했다. 하지만 음식만은 여전히 허락할 수 없다고 버텼다. 회사 측 처사에 분노한 굴뚝 위에서는 이마저도 거부해 버렸다. 지역 단체들까지 나서서 기자회견을 열고 음식을 올려주라고 항의했다. 이번에도 경찰서장은 동의했으나 회사는 막무가내로 “굶기면 내려온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물과 옷, 무전기 이외에 어떤 물품도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물이라도 올려주기 위해 짐을 꾸렸다. 쵸코 파이 몇 개와 육포 그리고 죽염을 넣었다. 경찰과 함께 소각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경비들이 몸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먹거리를 다 뺏겼다. 소금마저 거부당했고 침낭과 돗자리도 남겨졌다. 겨우 물과 옷 두벌, 무전기만 통과되었다. 분노한 농성자들은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버텼다. 설득 끝에 간신히 밧줄에 연결해 올려 보냈다.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농성자들은 줄을 끌어올릴 힘마저 없는지, 밧줄은 몇 번이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피가 마른다. 말라. 속이 시커멓게 타서 숯검댕이 다 됐어.
2-3 퇴근시간에 맞춰 정문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나는 발데르의 안내로 정문 앞으로 향했다. 굴뚝과 정문 사이는 불과 백미터 거리밖에 안됐다. 매일 출퇴근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정문 앞 집회를 연다는 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신 소식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정문 앞에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방송차에서는 노동가요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멀리 공장의 지붕 너머로 시퍼런 바다가 날 선 파도와 성난 포말로 하얗게 부서지며 포효했다.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들이 몬스터처럼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등줄기로 서늘한 공포의 전율이 지났다. 지원대책본부 자원봉사자들이 퇴근하는 노동자를 따라다니며 신문과 선전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동참을 호소하지만, 나무에서 물고기를 얻으려는 시도만큼이나 가망이 없어 보였다.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승용차들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쏜살같이 정문을 빠져나갔다. 걸어서 퇴근하는 사람들도 전염병 환자 피하듯 멀찌감치 떨어져 종종걸음을 쳤다. 다가가면 달음박질 하듯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자원봉사자는 쫒아가서 자전거나 오토바이의 손잡이에 재빨리 종이를 걸어주기도 했고, 도망가는 사람을 끝까지 따라가 기어이 손에 종이를 쥐어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노동자가 손사래를 치기만 해도 포기하고 돌아서는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나도 거리 선전해본 경험이 있어 안다. 어디나 싫다고 안 받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처럼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갑자기 정문 앞이 소란스럽다. 현장회 소속 조합원들이 퇴근하는 동료들에게 집회 참석을 호소하고 있는 도중에, 노동조합간부와 대의원 50여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현수막과 선전지를 빼앗는 바람에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같은 노동자들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니까 선전지를 안 받으려고 도망치는 노동자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얼마나 무섭고 겁이 나면 그랬을까. 회사 눈치 보기 전에 노동조합 눈치부터 봐야하니 말이다. 노동조합에 찍히면 당장 해고고, 해고는 노동자에게 곧 죽음이었다. 노동조합에서 나온 선전물을 읽어보았다. 회사가 어려운데 무슨 생떼냐며 굴뚝 농성자들을 맹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개는 돌을 던지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돌을 따라가며 공격한다. 반면에 사자는 활이나 총을 쏘는 사람을 공격한다. 활이나 총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럼 노동조합은 개고 현장회는 사자인가? 모르겠다. 원인을 없애는 게 더 중요하단 사실만 알 뿐이다. 사회자의 선동에 맞춰 구호와 요구들이 터져 나왔다. 노동가요에 맞춰 노래도 불렀다. 몇 번 따라했더니 금방 부를 수 있었다. 말을 하면 친구가 되고, 노래를 하면 형제가 된다더니, 정말 노래 몇 곡에 형제처럼 정이 든다. 하얀 입김이 까만 머리 위로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간다. 깃발이 바람에 춤을 춘다. 마이크에서는 목 멘 호소가 절규가 되어 쩌렁쩌렁 울렸다. 제발 좀 모입시다. 모일 때 모이고 투쟁할 때 투쟁하고 분노할 때 분노합시다. 먼 하늘 끝 저 멀리서부터 검은 장막이 대지 위를 천천히 뒤덮었다. 대지는 급속하게 냉기로 얼어붙었다. 촛불이 하나 둘 켜졌다. 주위가 밝아졌다. 차디찬 겨울 하늘에 따스한 빛이 가득찼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땅에는 촛불이 반짝였다. 바람이 휙 불어온다. 촛불이 흔들렸다. 종이컵을 붙든 손이 흔들렸다. 대열은 정문을 떠나 굴뚝 앞으로 이동했다. 굴뚝 앞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 와아. 저마다 손나팔을 만들어 목청을 높인다. 땅위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자, 화답하듯 굴뚝 위에서 형광 후레쉬 불빛이 깜빡깜빡 빛난다. 불빛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살아 있음을 외치는 고마운 목소리다.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배가 고플까. 꼭대기를 올려다볼 때마다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춥고 배고픈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끝까지 함께 할 겁니다. 꼭대기에서 들을 수 있게 최대한 손나팔로 목청을 높인다. 젖 먹던 힘까지 내 안간힘을 써본다. 목에는 퍼런 힘줄이 서고 얼굴에는 핏줄이 툭툭 불거진다. 이번엔 아스팔트 바닥에 종이컵을 늘어놓는다. 굴뚝에서 잘 보이게 촛불로 큰 하트 모양을 만든다. 그 하트 안에 살아 내려오라, 사랑한다, 동지여 라는 글자를 새긴다. 마이크를 잡고 굴뚝 위를 향해 투쟁의 결의와 열정적 지지와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화답하듯 100미터 상공에서 불빛이 반짝인다. 힘껏 팔을 흔들며 후레쉬로 큰 원을 그려 보인다. 저 불빛은 우리가 갈망했던 세상을 단 한 번도 담아보지 못한 우리의 동공이다. 그리움이다. 하늘에서는 푸른 후레쉬 불빛이 별처럼 빛나고 땅 위에서는 촛불들이 그리움처럼 빛난다.
2-4 그때였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실오라기 같은 하얀 줄 하나가 하늘하늘 포물선을 그리며 점점 가까이 내려온다. 혹시 눈에 뭐가 들어갔나, 아니면 착시현상인가, 하얀 풍선 실이 끊어져 바람결에 날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찌나 가늘고 약한지 닿기도 전에 끊어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소곤거렸다. 위로 눈을 돌리지 마세요. 하늘을 올려다보지 마세요. 그냥 앞만 보세요. 제 말을 듣는 척 하세요. 고개를 떨구었지만 의문은 계속되었다. 도대체 저게 뭐지? 마침내 정체가 드러났다. 손가락 굵기 만한 흰 밧줄이었다. 워낙 높은 데서 내려 오다보니 가느다란 실처럼 보인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밧줄 끝이 화물차 위에 올라가있던 몇몇 사람 손에 잡혔다. 누군가 재빨리 헝겊가방 하나를 밧줄에 묶었다. 물병 서너 개와 죽염, 낮에 올리지 못한 먹거리와 초코릿, 소시지 몇 개를 초등생 신발주머니 크기의 주머니에 넣었다. 단단히 묶어요. 안 쏟아지게. 웅성거림에 경비원들이 눈치를 채고 소각장 담을 넘어 달려왔다. 밧줄을 끊으려고 달려오는 것이다. 순간 참석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우르르 몰려들어 화물차 주위를 빙 둘러쌌다. 천천히 천천히. 풀어...풀어...계속 풀어...조급한 마음과 달리 밧줄은 빨리 올라가지 않았다. 상황은 급박한데 손은 얼어서 빨리빨리 움직여주질 않았다. 끈조차 얼어서 빨리빨리 올라가지 못했다. 속이 바삭바삭 탔다. 경비들은 금방이라도 덮칠 듯 무서운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양쪽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부딪치는 날엔 대형사고가 날 게 틀림없었다. 그때다. 놀랍게도 경찰이 집회시위대와 경비원들의 중간을 막아서는 게 아닌가. 언제나 시위대와 마주보고 서 있던 경찰이 이날은 돌아서서 회사 경비원들과 마주선 것이다. 경찰이 시위대를 보호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마침내 줄이 풀리면서 도르래를 매단 주머니가 깜깜한 밤하늘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경찰은 주머니가 무사히 굴뚝 위로 올라갈 때까지 회사 경비원들을 막아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힘겹게 올라가는 주머니를 올려다보며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웅크리고 앉아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병과 주전부리 몇 가지를 올려 보내는 데도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주머니가 무사히 굴뚝에 도착한 순간 땅위에서는 안도의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얼마 뒤 경찰의 확성기가 따갑게 울렸다. 불법집회를 하고 있으니 자진해산하라는 독촉이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간만에 경찰 덕 좀 봤네.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농성 닷새 만에 처음 먹거리를 전달했다. 약간의 위로가 된다. 모두들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 간만에 술 한 잔 어때요?
2-5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어느 새 술자리는 삼삼오오 나뉘어 토론장으로 변했다. 옆자리에서 현장회 소속 젊은 조합원과 하청기업의 중년 해고자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형님 7년이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정년 퇴직한 두 명 빼고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버티셨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머리가 숙여집니다. 우리 해고자들에게 7년은 악몽이었습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습니다. 굴뚝 위 두 사람에게는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심정이 어떤 지 아십니까. 다들 율포조선 앞에서 신나를 붓고 싶은 심정입니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괴롭습니다. 형님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는 형님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제 누가 당할지 모를 뿐, 반드시 우리 모두에게 닥칠 문제입니다. 그 판결을 지키냐 못 지키냐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좌우할 겁니다. 그러니까 싸움도 우리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나쁜 생각일랑 하지 마세요. 형님들만의 문제라는 생각도 하지 마시구요. 두 사람은 두 손을 꼭 잡았다. 노조에 대한 실망과 원망의 목소리가 원색적 비난으로 변했다. 백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원래 아류가 더 급진적인 법이야. 루쉰이 그랬거든. 만일 공자 석가 예수가 지금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아마 자기 신도들에 의해 박해당할 거라고. 딱 맞아. 87년에 세운 민주노조가 사이비와 아류들 손에 왜곡되면서, 진짜 민주노조를 박해하고 있잖아? 회사나 경찰보다 더 심하다니까. 그게 아류야. 지역연대가 되지 않는데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졌다. 오죽하면 올라갔겠습니까? 성문은 밖에서 열리지 않습니다. 항상 안에서 열리는 법입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로 뭉치면 게임 끝입니다. 답은 다 나와 있습니다. 실천만 하면 됩니다. 지금은 실천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라는 말이 기폭제가 된 듯 불평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집회가 무성의하고 형식적이다. 굴뚝 위에다 눈도장 찍으러 오는 거냐. 고함 몇 번 지르고 가는 게 무슨 집회냐. 술자리는 어느 새 노동운동 성토장으로 변했다. 발데르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그가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언제 어떻게 술자리가 파했는지 몰랐다. 많은 명함을 주고받았지만 돌아서자마자 이름도 얼굴도 다 까먹었다. 율포에 온지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며칠은 된 것처럼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내가 먼저 긴 침묵을 깼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발데르의 뜻이 뭐예요? 당황한 듯 그가 잔기침을 했다. 제가 결례했나요? 그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발데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인데, 광명의 신, 빛의 신이라고 한답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노동운동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지 않았다. 신화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질문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고르게 박힌 이가 활짝 드러났다. 순간 그의 인상이 변했다. 변검술처럼 전혀 다른 얼굴로 변했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소년 같았다. 웃지 않을 땐 너무 진지하고 조용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둘러친 듯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활짝 웃는 순간 그 벽이 마술처럼 사라졌다. 제대하고 한때 PC방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게임 중독자가 됐거든요. 발데르는 어떤 게임의 주인공이었는데 이름이 하도 멋있어서 내가 닉네임으로 쓴 거죠. 신화의 주인공이란 건 훨씬 나중에 알았고요. 그의 말투가 자연스럽게 구어체로 바뀌었다. 게임과 신화가 그렇게 연결되는 우연도 있군요. 그 엉뚱한 만남에 그와 난 마주보며 웃었다. 그 순간 둘 사이에 뭔가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발데르는 불사신이었습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겨우살이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의 쌍둥이 동생이 나쁜 신의 꾐에 빠져 겨우살이를 던져 발데르가 죽은 겁니다. 그가 죽은 다음 세상은 어둠에 휩싸이게 되는데, 북유럽의 음산한 겨울날씨가 그래서 생겼다고도 합니다. 부끄러움도 잊고 나는 그가 말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정말 빛의 신 발데르가 환생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빛이 있었고 그의 눈에는 불이 있었다.’ 어느 덧 숙소 앞에 다다랐다. 숙소는 지역본부 3층에 있었다. 타 지역 손님을 위해 마련한 숙소였다. 여성용 방은 딱 하나였는데 화장실과 욕실까지 구비되어 편했다.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그가 차 쪽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유별났다.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건들건들 걷는 폼이 껄렁껄렁한 건달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푸하고 웃음이 터졌다. 범생이의 위선보다 문제아의 위악에 더 끌리던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다. 겉모습은 거칠고 불량스러워도 내면에는 여리고 순수한 속살이 숨겨있다고 믿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겉모습이란 내면의 진실을 담는 포장일 뿐이라고 외치는 반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돌아선 등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아무리 아파도 겉으로 절대 내보이지 않겠다는 단호함,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움, 모든 걸 혼자 감내하고 가겠다는 반항아의 외로움이 짙게 배어났다. 유유상종이라고, 어쩌면 내 외로움이 투영된 그림자를 그의 실체로 오해하는 건지도 모른다.
2-6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3일에 한 번 초콜릿 한 봉지랑 물통 3병 던져주는 게 생명 유지를 위한 최선의 인권보호조치라고 떠드는 사람들 눈에는 전날 음식을 전달한 것이 배부른 처사로 보였나보다. 회사로부터 경비들과 경찰이 호되게 당했는지, 새벽녘 농성장에 회사 경비들이 들이닥쳤다. 물을 끓이던 주전자도, 라면을 끓여먹던 냄비도, 누군가 꼭 챙겨달라던 불판도, 생수도, 생수통도, 밤새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언 몸을 녹여주던 연탄도, 불을 피우던 드럼통도, 다 싸그리 사라졌다. 얼마나 깨끗이 청소했던지 비질 한 것처럼 바닥이 깨끗했다. 인터넷으로 상황을 듣고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어제 술자리에서 내 소개를 들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며 눈인사를 보내왔다. 꼭 한 식구처럼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가슴이 징했다. 침통한 분위기를 예상했으나 의외로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였다. 하긴 부서지고 빼앗기고 불살라진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한 시간도 안되 농성장은 이전 상태로 복구되었다. 생수병이 날아오고, 주전자와 불 드럼통과 땔감나무가 꾸역꾸역 실려왔다. 조선소 사람들치고 용접 못하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이까짓 드럼통 난로야 일도 아니죠. 30분도 안 걸려요. 순식간에 일상용품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갔다. 굴뚝 위에서 ‘야~아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굴뚝 아래서도 ‘야~아아~’ 하는 메아리가 화답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출근도장 찍듯 나타나는 참석자들이라 오늘이라고 특별히 숫자가 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다. 텅 빈 것 같다. 분위기도 시들하다. 그제야 발데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걸 깨달았다.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났다. 잠깐 마음을 스쳤을 뿐 단 몇 시간 만나본 게 다다. 그런데 그가 없는 빈자리가 눈에 밟힌다. 있었으면 그러려니 덤덤했을텐데, 없기 때문에 절실해진 건지 모른다. 어제 밤부터 회사는 소각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젠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체온마저 걱정된다. 감옥에 수감된 지역본부장까지 단식에 들어갔다. 당뇨를 앓고 있는 그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 지 알 수가 없었다. 굴뚝에서 편지 한 장이 테잎으로 돌돌 말아져 아래로 전해졌다. ‘모두가 행복해지고자 하는 운동이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까지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좀 불행하게 살더라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는 농성장 전체가 통곡에 흐느꼈다. ‘굴뚝에서 느껴지던 한 점 온기도 사라졌습니다. 의지할 데라곤 우리 조합원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조합원들이 굴뚝을 향해 손을 흔들 때뿐입니다.’ 동토의 땅을 녹일 수 있는 아름다운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굴뚝 아래 사람들의 하루하루도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젊은 여성이 나직이 속삭였다. 여기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자꾸 무력해져요. 그렇다고 안 나오면 안 나오는대로 죄책감에 시달리구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예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이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성이 젊은 여성의 등을 토닥거린다. 너무 혼자 우울해하지 말아요. 따지고 보면 굴뚝에 올라간 것도 희망 때문이고, 밧줄에 행랑주머니를 매단 것도 희망 때문이잖아요? 추운 날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도 어디예요? 옆 사람에게 희망을 느끼고, 처음보다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가져 봐요. 여유도 부려가면서, 힘들 내자구요. 젊은 여성의 눈빛이 눈물 반 웃음 반 환해진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듯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점심때가 되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일어나 먹거리를 준비했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 같았다. 어떤 사람은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드럼 통 안에 넣고 불을 지폈다. 한 여성은 펄펄 끓는 물을 컵 라면에 붓고, 하나씩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굴뚝 위를 올려다보며 먹어도 괜찮은지 눈짓으로 물었다. 우리까지 굶으면 굴뚝은 누가 지켜요?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힘을 내야 싸울 수 있어요. 굴뚝 위 사람들은 안 먹으면서 싸우는 거고, 굴뚝 아래 사람들은 먹으면서 싸우는 거죠. 안 그래요? 사람들은 자신을 향하던 자책의 날과 채찍을 잠시 접고, 고구마를 나눠 먹고, 컵 라면을 먹으며, 농성장 방문객들이 선물한 캔 커피를 따뜻하게 데워 마셨다.
2-7 저기 좀 보세요!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약속이나 한 듯 경비원 쪽을 향했다. 어디선가 ‘휘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뭔가 눈앞을 바람 같이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저게 뭐지?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투명한 실 한가닥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가볍게 날았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잠시 후 또다시 휘익휘익 바람 소리와 함께 실이 날았다. 계속해서 날고 또 날았다.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소리가 들렸다. 경비원 한 명이 밧줄을 향해 열심히 낚시줄을 던지고 있었다. 낚시 마니아를 자처하는 한 농성자가 손나팔로 크게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는 낚시 금지구역입니다. 한바탕 폭소가 흐드러졌다. 아침부터 밧줄을 놓고 경비들과 심하게 싱갱이를 벌였다. 밧줄은 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고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한 순간 밧줄을 잡았다고 좋아하다가도 경비들이 떼로 몰려들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개떼처럼 달려들어 날쌔게 밧줄을 채가 버리거나, 아예 밧줄이 내려올만한 지점에 미리 진을 치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낚시대까지 동원해 밧줄을 잡으려 혈안이 된 것이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선 피눈물이 난다. 슬픔보다 진한 분노가 배어나온다. 잠시 후 또 다시 밧줄이 흔들리며 떨어졌다. 경비원들은 술 냄새까지 풍기면서, 경찰까지 구타하면서, 죽기 살기로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핏발선 눈에는 살기마저 감돌았다. 기적처럼 그 난리를 뚫고 천우신조로 밧줄을 잡는데 성공했다. 떨리는 손으로 먹거리와 휴대폰 배터리가 담긴 가방을 묶어 올려 보냈다. 모두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도하듯 가슴에 두 손을 모았다. 밧줄이 지상을 떠나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굴뚝 중간에 잠복해 있던 경비 하나가 밧줄을 붙잡더니, 칼을 꺼내 댕강 잘라 버렸다. 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소리와 함께 ‘이런 개새끼!’ 하는 원색적인 욕설이 쏟아졌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와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들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말하게 되었다는 것을. 같은 마음으로, 같은 언어로 말하게 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굴뚝 위 사람들과 굴뚝 아래 사람들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가 되었다. 눈물이 흘렀다. 율포에 와서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눈물이 번지듯, 하늘 가장자리에서부터 푸르스름한 저녁 빛이 화선지에 수묵 번지듯 퍼져나갔다. 그 하늘을 배경으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웃고 있었다. 발데르였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이빨이 무섭게 아팠어요. 예전에 뺀 어금니 옆에 있는 놈이, 콕콕 쑤시다못해 머리통을 온통 헤집어 놓더니 나중엔 혼까지 파먹는 거 같더라구요, 참다못해 새벽 3시 쯤 집으로 갔어요 치통이 발데르를 구한 걸까. 농성장 침탈 때 현장에 있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몇 년 전 감방 갔을 때, 교도소 의사가 어금니 하나를 빼줬거든요. 인턴 수준에 치과 전문의도 아니었어요. 마취도 부실한 상태에서 벤치로 흔들어 빼는 데, 그것도 잘 안 빠져서 의사도 식은 땀을 뻘뻘 흘리고, 나도 입을 헤 벌린 채 천장만 바라보며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죠.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기절해서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보니까 의사가 피 묻은 어금니를 내 눈앞에 흔들고 있더라구요. 그때 제 IQ가 10점 이상은 떨어졌을 겁니다. 하하. 세상에... 지금은 어때요? 아침에 치과로 달려가 이빨을 뺏더니 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요. 의사 말이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새 이빨을 안 해 넣으면 큰일 난대요. 그런데 임플란트 이빨 두 개 값이 몇 백만원이래요. 이빨 적금이라도 하나 들어야겠어요. 하하. 발데르의 이야기를 신호로 농성장의 화제는 이빨로 모아졌다. 나치의 고문 중 가장 최악의 단계가 이빨 고문이라든 둥, 임플란트는 이게 좋은 데 저건 나쁘다는 둥, 가격 싸고 기술 좋은 치과가 어디라는 둥, 이빨 이야기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밤이 되었다. 오늘 밤, 거리 선전전에 같이 가실래요? 율포조선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갈 겁니다. 나는 두말없이 그를 따라 나섰다. 2명씩 한 조로, 한 조는 홈플러스 앞에서, 한조는 횡단보도 앞에서 선전지를 나눠주었다. 날씨는 포근했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니 손끝 발끝이 시려왔다. 발데르가 뜬금없이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살폈다. 안 되겠네요. 이거라도 두르세요. 그러면서 목에서 검정 목도리를 풀어 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비싼 명품은 아니지만 난로만큼 따뜻할 겁니다. 목에 두어 번 감아보니 감촉도 부드럽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목도리 속에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그의 냄새가 솔솔 풍겼다. 우리는 큰 도로를 벗어나 상가로 들어섰다.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발데르는 먼저 가게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선전지를 나눠주었다. 즐겁게 식사하시는데 죄송하지만, 잠깐만 이거 좀 봐주시겠어요? 혹시 이거 아세요? 이렇게 시작한 발데르의 설명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든 술을 마시든, 관심이 있든 없든, 상관 하지 않고 꿋꿋하게 계속되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고등학생에게도 선전지를 내밀었다. 니네들도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함 읽어볼래? 그리고 이거 버리지 말고 집에 가져가서 아빠한테 꼭 보여 줘.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팔에 들고 있던 선전지가 점점 가벼워졌다. 이 추운 날씨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덮을 이불도 없다니 어떡하냐고 자기 일처럼 걱정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어떤 중년 아저씨는 지들은 안 먹고 사나? 먹을 건 줘야지. 그것도 안 주면 어떡해? 하여튼 나쁜 새끼들이라니까 하며 회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 중에는 노골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노인도 있었다. 그런다고 다 해결되나? 자꾸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뭐한다면 다 싫어하는 거야. 굴뚝은 왜 올라가고 지랄이야 지랄이. 그 순간 희선이 앞에서 툴툴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발데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발데르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느긋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아버님이 어떤 이유로 욕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누가 옳다 그르다, 누가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그 전에 우선 죽어가는 사람부터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이 점 아버님도 동의하시죠? 강경한 노인도 생존권 앞에서는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뭐. 하긴 사람부터 살려야지 뭐. 감탄사가 절로 우러났다. 태연하게 웃으면서, 가랑비 속옷 젖듯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다니. 한마디로 고수다. 무서운 사람이다. 과연 겉보기처럼 그의 속내도 그럴까 궁금했다. 발데르는 멀리 시선을 던져놓고 헛헛한 웃음을 날렸다. 감탄할 것까지 없어요. 자그만치 7년이잖아요? 하루 웃고 하루 우는 식으로는 못 버텨요. 이건 마라톤이거든요. 오래 견디다보면 저절로 단련이 되요. 무슨 경지에 올라서 그런 게 아니라 하도 휘둘리다보니까 나중엔 희로애락도 종이 한 장, 간발의 차이밖에 안 느껴져서 그래요. 어쩌면 우리 싸움은 평생이 걸릴 지도 몰라요. 유전자에 남는 날까지 계속될거라고 가정해보세요. 그럼 홍이씨도 저처럼 허허실실하게 될 겁니다.
2-8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간다. 작별인사 겸 농성장을 찾았다. 연말이라 방문객과 자원봉사자 숫자도 늘긴 했지만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달랐다. 북적북적한 게 꼭 잔치집 같았다. 한쪽 구석에서는 남녀가 빙 둘러앉아 열심히 만두를 빚고 있었다. 스텐리스 다라이 안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한 만두소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그 옆에서 남자들이 밀가루를 반죽하기도하고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찍기도 하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옷에도 얼굴에도 허연 밀가루가 묻은 채, 뭐가 좋은 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아니 그게 뭐예요? 누가 이렇게 못 생긴 걸 먹어요? 싫으면 말어. 내가 다 먹을 테니까. 만두를 맛으로 먹지 생긴 걸로 먹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흐드러졌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볼까요?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듯 입담 좋은 한 사람이 감초처럼 끼어들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데, 한 노숙자가 그러더래. 나 어제 큰일 날 뻔 했어. 아는 사람한테 들켰지 뭐야. 그 사람이 건설현장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거야. 어휴 하마터면 진짜 노가다 될 뻔 했다니까.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숨이 넘어갔다. 내가 더 재미있는 얘기 해볼게요. 오륙도 알죠? 부산 앞바다에 있는 섬. 거기 가장 큰 섬에 가면 다리가 두 개 있는데, 그 다리 이름이 뭔지 알아요? 하나는 할랑교, 또 하나는 말랑교. 큰 웃음소리만큼이나 지청구가 마구 쏟아졌다. 어디서 꼭 자기 같은 얘기만 주워들어갖고는, 입만 살았다니까. 그리곤 얘기한 남자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퍽 소리나게 두들겼다. 발데르가 한 부인을 가리키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굴뚝에 올라간 지역간부의 부인이예요. 만두소 갖고 오신 분요.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중년 아주머니다. 노동운동하는 남편을 둔 아내 같지 않다. 하긴 그런 아내라고 얼굴에 써 있을리 만무다. 그런데도 나는 특별한 징표라도 찾으려는 듯 부인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거기 나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가 농성하는 현장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농성하는 동안 우리는 외가에서 살았다. 경찰과 회사가 무시로 집을 찾아와 회유하고 협박했다. 감옥에 갔다 온 뒤, 아버지는 해고자가 되었고, 매일같이 세상에 대한 울분을 술로 달래다 결국 병까지 얻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자 우리는 다시 외가로 들어갔다. 단단히 눈밖에 난 아버지는 외가로부터 빨갱이니 무책임한 가장이니 하며 욕을 먹었다. 덩달아 우리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아내 앞에서는 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고, 자식들 앞에서는 늘 미안해 쩔쩔맸다. 한 번도 당당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철저히 혼자였다. 가족에게조차 사랑은커녕, 위로나 격려는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외면당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얼마나 가족들이 보고 싶었을까. 지금 저 부부는, 비록 굴뚝 위와 아래로 나뉘어 100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한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농성장 가득 퍼진 그 사랑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한참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울긋불긋 화려한 원색의 패러글라이더 한 대가 굴뚝 위 파아란 창공에 활짝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솔개가 먹이를 사냥하기 전 주변을 탐색하듯이 굴뚝 주변을 계속 빙빙 맴돌았다. 와아. 사람들은 만두를 빚다말고 뛰어나가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팔짝팔짝 뛰면서 두 팔을 마구 흔들었다. 서로의 얼굴과 옷에 허옇게 묻은 밀가루를 털어주며 깔깔거렸다. 경비들과 경찰들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황급히 어디론가 무전을 보냈다. 어제는 하루종일 음식을 올려주지 못했다. 두 차례나 밧줄에 매달려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경비와의 충돌로 머리가 터지고 손에 금이 간 부상자까지 나왔다. 이 광경을 지켜본 굴뚝 위에서 밧줄을 던져버렸다.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경비행기까지 알아보는 등 온갖 비상작전이 동원되었다. 저 패러글라이더가 바로 그 작전 중 하나이지 싶었다.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에서 사정을 듣고 물품 전달을 자청했다는 소식에 모두가 환호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간이 오그라 붙는 것 같았다. 차마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시선을 떨구고 땅만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커졌다. 그제야 천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패러글라이더는 줄에 매단 가방을 굴뚝 옆 난간에 떨어뜨리려고 애쓰고 있고, 두 농성자는 난간을 잡고 흔들리는 가방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가방이 두 농성자의 품에 안기는 순간, 굴뚝 아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 농성자는 굴뚝 아래를 향해 가방을 높이 흔들어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부등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손을 꼭 붙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패러글라이더 배트맨 천사를 향해 휘파람을 휙휙 불었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목구멍이 터지도록 환호성을 질렀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다. 최소한의 물품을 전달했다는 안도감에 농성장은 퇴근집회 겸 본격적인 송년회 분위기로 돌아섰다. 노래와 연주가 집회장 분위기를 달구었다. 춤패의 몸짓에 움츠렸던 어깨가 들썩거렸다. 박자에 맞춰 손에 든 촛불을 좌우로 혹은 원을 그리며 흔들었다.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두 여성이 만둣국이 설설 끓고 있는 큰 냄비를 하나씩 들고 경비들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또 한 여성은 일회용 국그릇, 김치통, 국자와 수저가 든 박스를 두 냄비 옆에 나란히 놓았다. 백발이 성성한 해직교사 한 분이 그 앞으로 다가갔다. 명절인데 떡국이라도 같이 나눠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음식이 무슨 죄입니까. 아무 조건 없는 음식이니 맛있게 드십시오. 경찰들에게도 똑같이 냄비 두개와 박스가 전달되었다. 경찰들은 고맙다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한동안 눈치를 보며 뜸을 들이던 경비들도 냄비와 박스를 끌어당겼다. 농성장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못 본 체 모른 체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를 마주보며 눈으로만 활짝 웃었다. 하루 종일 원수처럼 적대시하던 경찰과 경비, 그리고 농성자들 모두가 만둣국 앞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2-9 차는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채 발데르가 나를 돌아보았다. 하룻밤 사이에 경비들 얼굴이 싹 다 바뀌어 버렸어요. 새 인원으로 교체됐나봐요. 만둣국도 그렇지만 패러글라이딩 때문에 더 화가 났을 겁니다. 회사에서 화풀이 겸 본 떼를 보인 모양입니다. 경비들을 죽도록 미워했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다가왔다. 참 어제 밤 무가지가 도착했어요. 기사 보더니 다들 감동받았다며 좋아하대요. 진심인지 사심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을 뿐인 데요 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대합실에 들어섰다. 고맙다는 인사 꼭 전하랍니다. 나는 좌석표를 꺼내 확인했다. 고맙긴요, 정작 고마워 해야할 사람은 전데요. 이번에 너무나 소중한 걸 배우고 가는 걸요. 키가 한 뼘은 더 컸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이만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내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아버님 기사를 찾았습니다. 뜻밖이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요? 발데르는 소년처럼 의기양양하게 뽐냈다. 제가 누굽니까. 아버님 성함과 회사 이름, 농성시기만 알면 충분합니다. 87년부터 88년까지의 율포매일신문을 다 뒤져봤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25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굴뚝에 올라가는 상황은 여전히 똑같으니까요. 굴뚝 높이가 100미터냐 30미터냐가 다르다면 다르겠지요. 그 기사 볼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여기 복사해 왔습니다. 그가 어깨에 맨 가방을 내리고 지퍼를 열었다. 일단 짜리 기사지만, 사진이 나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25년 전 굴뚝 농성사진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가 봉투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건 정말 소중한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종이를 건네받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굴뚝 옆 난간을 붙들고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초점이 희미해서 그가 아버지인지 아닌지 확실히 분간 되지 않았다. 시야가 점점 뿌옇게 흐려졌다. 아버지는 마치 굴뚝에서 나온 산타 같았다. 나는 9살 때 산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산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그 산타는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있었고, 앞으로도 주욱 내 옆에 있을 것이다. 사진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3장 다시 은행나무 길에서
오늘도 나는 은행나무 길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 제비당 오프라인 모임 시간이 다가온다. 사람들을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앳된 얼굴의 남자가 미니 쿠페에서 내린다. 그 옆에 짧은 치마에 킬 힐을 신은 앳된 여자가 요크셔테리어를 안고 있다. 두 남녀는 서로의 허리를 껴안고 인도로 올라선다. 그들 앞을 가로질러, 어린 알바생이 검정색 긴 앞치마를 펄럭이며 분식집으로 바쁘게 뛰어 들어간다. 굴뚝 농성장의 침탈과 부상자 속출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아니 119 헬기에 실려 가는 탈진한 굴뚝 농성자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이, 사람들은 오늘도 웃고 즐기며 부지런히 일한다. 한 달 넘게 진행된 굴뚝 농성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7년 동안 싸운 해고자들은 원직복직 되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병원 안에서도 한쪽에선 생명이 태어나고, 다른 쪽에선 생명이 죽어가지 않던가. 이것이 인생이다. 서울 강남도, 율포 조선소도 일터고 삶터일 뿐이다. 저장해놓은 동영상의 엔터 키를 누른다. 수염투성이의 젊은 농성자가 병원으로 실려가며 순하게 웃는다. 기자의 마이크 앞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젖은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 저는 내 머리위에 하늘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맨날 땅 위에서만 아등바등하며 살다가 하늘 가까이 올라오니까,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도 있고 구름도 있더군요. 해가 별이 달이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지 처음 알았어요. 사람보다 하늘이 더 가깝더라구요. 거기 있는 동안 마음이 아주 넓어졌습니다. 어린 딸이 달려와 농성자의 품에 안긴다. 저 장면을 보면서 나는 몇번이고 가족을 가슴에 품는 꿈을 꾼다. 9살의 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기는 꿈이다. 어제 발데르가 서울에 올라왔다. 강남에 있는 율포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농성도 끝났는데 왜 또 하냐니까 지금 사무실에서 5자회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 해고자, 노동조합, 율포지역본부, 율포 국회의원, 이렇게 다섯이었다. 힘내라고 응원도 하고, 또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리려구요.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다 죽은 줄 알거든요. 없는 줄 안다니까요. 계속 꿈틀거려야 되요.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구요. 하하 내 눈엔 5자는 보이지 않고 추위에 떠는 그의 모습만 보였다. 나는 목에 감고 있던 그의 목도리를 풀어서 그의 목에 감아주었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홍이씨 냄새가 나네요. 정말 좋은 데요.
나나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왔고, 두 손자는 어른이 되기 위한 첫 시험을 잘 치러냈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많은 시험들 가운데 하나였다. 잘 들을 줄 아는 지를 알아보는 것이 모든 시험의 중요한 한 요소였다. 나나는 두 손자가 고향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교묘하게 정보를 감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