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은 현대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책에 속하는 것들 중에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꼽는다. 이 책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함께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도 존재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를 중심으로 책이 쓰여질 당시 벌어지던 철학적 논쟁의 다양한 주제를 포함시킨 재료적인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킨 정신분석학도 사르트르의 주제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정신분석학과 실존주의의 궁극적인 믿음들이 상충하고 양립할 수 없음을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를 통해 역설하려는 의도에서 였을 것이다.
사르트르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향해 던지고자 했던 문제의식의 발단은 바로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존재하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런 개념에 익숙하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이런 믿음, 즉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다른 부분 때문이다"의 진술이 그 안에 논리적인 오류를 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유로부터 불안을 느낀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 의식의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 불안으로 인해 인간은 물건처럼 자신의 존재가 "Thing-in-itself"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인간은 책상보다 더 실재적일 수는 없다. 책상은 책상이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그 어떠한 존재로도 밝혀보일 수는 없다. 다만 자유로울 뿐. 인간의 존재는 목적,프로젝트를 가진 "Thing-for-itself"가 된다.
사르트르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말한다. 웨이터를 예로 들어 생각할 수 있다. 기계적인 움직임을 통해 웨이터는 자신의 자유로운 존재를 속이고 서빙하는 기계쯤으로 여긴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거부할 자유도 허락된 것이다. 물건처럼 될 때 자아는 자유에서 기인하는 책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실존은 본질을 추월한다"는 개념 또한 본질이라는 물질적 규정에 얽매여 있으려는 인간의 물건되기 시도가 그 자체로써 불안정하며 Thing-for-itself라는 깨달음에 언제든지 노출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책임에서 도망치려는 주체들에게 또 하나의 안식처와 책임회피의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에는 자아와 id(독일어에 "it"에 해당)의 분할된 영역이 존재하는데 자아는 '나'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나'를 움직이는 힘은 id라고 한다. '나'는 id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는데 그 둘의 경계를 유지하고 순찰하는 censor가 그렇게 만든다. '억압'의 주체도 프로이트는 censor라는 별다르게 설명되지 않은 존재에게 맡겨버린다. 즉 id의 진짜 속마음을 자아가 알 수 없도록 censor가 강한 힘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르트르는 모순을 발견한다.
만약 censor가 억압해야 할 기억과 정보를 선택할 수 있다면 프로이트의 정신구조상 censor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속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Bad faith"에 해당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