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과 솥바위
방학 끝자락 내보다 연장 지인과 산행을 나섰다. 지인은 예전 장유로 출퇴근할 때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를 태워준 고마운 분이다. 내가 사는 이웃 아파트단지에 살아 세월이 제법 흘렀음에도 가끔 교류가 있다. 지난해 가을엔 고향 선산의 알밤을 같이 주워오기도 했다. 방학이 끝나기 전 근교 산행을 약속했기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오가 이침 이른 시각 반송시장 성당 근처에서 만났다.
지인과는 밀양 재약산이나 종남산을 올랐고 고성 거류산과 문수암을 다녀온 바 있다. 이번엔 내 고향 의령 자굴산으로 오르기로 했다. 내가 근래 자굴산에 오르기는 작년 가을 구절초가 절정인 때 초등학교 동기들과 올랐더랬다. 이제는 계절이 바뀌어 겨울에 나선 걸음이다. 자굴산은 해발 천 고지가 약간 못 미치지만 의령의 진산으로 한우산과 함께 외지에서도 찾는 알려진 산행코스다.
지인이 운전하는 동반석에 앉아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군북인터체인지에서 내렸다. 남강다리를 건너 의령관문을 지났다. 구룡산 아래 의병탑과 충익사당을 지나 갑을 골짜기로 들어갔다. 쇠목재에서 한우산 전망대까지 차를 몰아 올라갔다. 한우산은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즐겨 찾고 봄 철쭉이 만개하면 절경이다. 지인과 한우산 전망대에 올라 의령과 합천 삼가 일대를 두루 굽어보았다.
한우산에서 쇠목재로 내려왔다. 쇠목재는 자굴산 등정의 최단 코스다. 자굴산 북사면 산등선을 따라 올랐다. 엊그제 내린 비가 날씨가 조금 더 추웠다면 눈이 내려 쌓였을 텐데 날씨가 포근해 빙판은 없었다. 중간의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가면서 천천히 올랐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자굴산 정상에 섰다. 저 멀리 아스라이 지리산 천왕봉은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발아래는 칠곡면 내조였다.
자굴산은 내조에서 올라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데 너무 짧은 거리였다. 우리는 절터샘으로 내려 둘레길로 쇠목재로 갔다. 되돌아 나온 길은 모의 골짜기를 지나 칠곡으로 빠져 의령 읍내로 갔다. 의령의 맛은 소바와 쇠고기국밥과 망개떡이다. 전국적 브랜드로 알려진 장터 소바집을 찾아갔다. 의령 소바는 메밀로 빚어낸 국수다. 메밀국수는 주곡인 쌀이 부족하던 시절 구황식품이었다.
시장골목 원조 소바집을 찾아가 의령 명물을 맛보았다. 오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면 식당이 몹시 혼잡한 것으로 안다. 맛깔스런 소바를 들고 나는 생선가게에서 갈치를 사고 지인은 망개떡을 샀다. 고향에 들린 김에 읍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큰형님 댁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가다오는 설날이면 찾아올 고향이지만 지나는 걸음이라 잠시 들려 형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려는 참이다.
고향마을 앞들에는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짓는다. 올 겨울은 따뜻해 양파와 마늘이 파릇했다. 형님은 집 앞 텃밭에다 고추모종을 기를 비닐하우스를 지어 놓았다. 철이 농한기라 형님은 근동 서원으로 출타하고 형수님은 무청 시래기를 삶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형님이 농사지은 쌀을 가져다 먹는다. 미리 빻아 놓은 쌀 한 포대 금을 치르고 지인 차 드렁크에 실고 고향 마을을 내려왔다.
읍내를 거쳐 남강을 건너기 전 지인에게 한 곳 안내할 데가 있었다. 강변 정암마을의 솥바위를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그곳 백사장은 내 어릴 적 소풍 장소였다. 정암은 근대에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강나루였다. 그 이전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 곽재우가 왜구를 섬멸시킨 호국 성지이기도 하다. 강심에 침식 바위가 솥 모양으로 덩그렇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 솥바위, 정암(鼎巖)이라 한다.
검푸른 강심 세 갈래 바위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전설이 전한다. 솥바위 이십 리 안에 큰 부자 셋이 나온다는 설이다. 의령 정곡의 삼성, 진주 지수의 엘지, 함안 군북의 효성 창업주가 그에 해당한다. 한갓 자연경관에 지나지 않은 솥바위에다 우리나라 굴지 재벌을 대입시켰더니 신통하게 맞아떨어졌다. 홍의장군이 임진년 왜구 격퇴를 기념한 정암루에 올라 솥바위와 철교를 굽어보았다. 15.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