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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일요일 맑음.
영봉 결혼식 날이다.
8시 반까지 누었다. 기침 후에 방을 청소하고 어젯밤 한시가 넘어 취침했으므로 좀 오래 잔 편이다.
기성이 선례는 일어나서 오락을 한다.
배가 고프지 않을까 애들이 뻥튀기 인지를 선례가 내와서 성이랑 먹고 오늘 아침 신실이가 언제쯤 올까 기다렸다.
내가 배고픈 것을 참으면 되는 거지만 어린것들 배고플까봐 안쓰럽다.
귀여운 것들 자는 모습을 보면 평화스럽고 행복하다.
그러나 요즘은 아버지가 다쳐 병원에 계시므로 아우 내외가 고생이 너무 많으며 나 역시 애들과 오락실을 보면서 집을 보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곤한지 모른다.
다행히 신실이가 옆에 있어 밥을 지어 반찬까지 내 식성에 맞도록 해주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부처님 종질녀 앞날에 부디 행복을 주소서.
지금까지는 고생스러워 보이나 곧 행복이 찾아 올 것이다.
조반을 10시경에 한 후 낮에 김실이 전화로 서울 아줌마 주소를 문하였다.
지금은 너무 바빠 조용하면 찾아서 연락 주기로 하고 중식 2시 반경에 먹었다.
제수씨 전화가 왔는데 아직 안 왔다고 했다.
오후 5시경에 오시어 보호카드 찾아 면에 알아보시고 고추 종판하시라고 종숙 어른 드리라고 하신다.
과원도 하시리 있으면 주어도 되고 없으면 집에 관리하고 안골밭도 맏아버지 드리던지 누굴 주고 모두 주어버리란다.
그렇게 되면 신경 쓸 일 없고 편하게 잘 된 셈이지 봐가며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으며 큰집 종형수가 전화가 왔으며 해동사 교무님이 어제 절에 올라갔다가 얘기 듣고 전화를 주셨다.
저녁에는 안동 종형수한테 전화하고 이종철 동창한테 전화하니 자당께서 받으시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얘기 드리니 알았다 .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2월 12일 월요일 맑음.
인천 랑승만 시인 전화가 온 날.
금일은 7시 50분경에 기상을 한 후 제수씨 선례 기성이 데리고 병원에 간다고 8시 50분차로 나가신 후 혼자 오락실을 보며 월간 금강지에 구독신청을 전화로 권만내 하고 주소도 함께 알려주고 종형한테 전화하여 집터 수세를 얼마나 달라 하면 서로 좋을지는 고추 20근을 얘기하면 어떨지 물어보니 요즘 시세로 봐서 콩 한말 5승정도 그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종숙께도 전화 드렸더니 과수 교육 오신다며 오셔서 얘기 하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한 후 장애인 신문이 와서 읽고 중식을 하려하다니 소천 어른께서 오시어 아버지 다친 것을 염려해주고 가신 후 백부도 오셨다 함께 가셨다.
종숙 오셔서 고추 20근 정하고 온상 설치하시기로 하고 가신 후 우리가 필요하면 온상 한 후에라도 다시 돌려주신다 하고 가셨다.
저녁때 제수씨 애들 데리고 오셨다가 보호자가 있으라하여 다시 임동으로 나갔다.
열시 넘어도 연락이 없어 전화하니 여관에 자고 내일 만나자고 한다 했다.
대구 동생이 퇴원하였냐고 전화를 했다.
아직 못했다하고 저녁때 7시 반경 인천 랑승만 시인 선생님께서 편지한다더니 어찌 소식이 없는지 전화를 주셨다.
아버지 교통사고로 아직 편지를 쓸 경황이 없다하고 살아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부처님께 기도하란다.
그럼요 맑은 정신으로 생명을 구한 것 만으로도 부처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만약 더 큰 사고와 불행에 비긴다면 불행 중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동창 종철이 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 했더니 잠결인 것 같은데 내일 동창이 전화한다 하여 끊었다. 대구 이현기 회장께 성소병원에 계시고 기부술만 했다니까 오래도록 쉬고 물리치료하면 회복이 서서히 되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여 마음이 놓이며 박서종 이모가 전화로 퇴원 하셨는지 전화 주셔서 고마웠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갔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2월 13일 화요일 맑음.
가친 병원에서 퇴원하여 오신 날.
7시 30분경 잠을 깨어 8시경에 동창 종철한테 종형한테 전화로 알아 본 후 오늘은 가부간 결론을 내리도록 해야한다 하고 신실이가 와서 조식을 차려주어서 먹은 후에 선례는 유치원 개학을 하는 날이므로 등교를 하고 기성이와 있다니 금강이 왔으므로 읽고 있다니까 죽전 도계어른이 아버지 퇴원하셨는지 면에 볼일이 있어 오셨다가 들려서 걱정과 염려를 하여 주시고 가신 후 선례 학교 갖다오고 오락실 돈을 바꿔주며 있다니 용계 아지매 전화가 와서 골안에 밭 얘기 경작하시고 과원에 약을 받아 쳐주시기로 했다.
제수씨 전화로 합의 봤다며 퇴원하시려 하는데 승창 아제한테 뒤뜰아제한테 전화해서 병원비 좀 어떻게 깍아서 내도록 해달라며 전화하니 대구 가시고 안 계신다 하여서 병원 총무과 신주임을 몰라 보호계 과장님을 좀 부탁했더니 2층 원무과 사회과장 강세일씨 전화를 받아서 소상히 알려주시어 신주임 이란 것을 알고 신주임 좀 대달라니까 받으셨다.
자세한 설명을 했더니 아버지 함자를 물어서 가르쳐 드리고 계산할 때 동생한테 얘기해 주신다면 신경 좀 써 주신다더니 동생이 퇴원시켜 와서 얘기하는데 나한테 전화 받았다면서 십팔만원 삭감하고 9십만 원 입금했다 하였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은혜를 광시하라 보은 그 돈 깍은거 보다 내가 부탁한 것을 신경 써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였다.
아버지께서 완치는 못시켰지만 퇴원하여 걸어 들어올 수 있어 부처님 감사합니다.
얼굴은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으셨다.
이제 안심이 되어 저녁 먹고 종형 막내삼촌께 고맙고 감사한 전화를 드리고 아우 내외 고생하고 수고하여 10만원씩 쓰라고 20십 만원 주었다.
아버지 간병 하느라 모두가 수고하시고 애쓰셔서 종형 우선 5만원 함께 일 보신분과 점심이나 잡수라고 드렸다 하고 돈 10만원 드리고 왔으면 뒤로 안 찾아봐도 되지만 형님 삼촌은 뒤로 다시 찾아보고 애들 2~3만원씩 주도록 하라하고 신실이도 수고했는데 한 2만원 주라하고 이렇게 모두 지출하고 우선 치료비 2백만원 받은 것이 60만원이 남았다.
약 다리는 것 하나사고 한약이나 몇 제 쓰고 소족이라도 사가지고 꼼을 해드리고 몸보신을 해드려 차차 회복되길 기다려야 한다.
금년 농사는 모두 남을 주고 과원만 어떻게 연구하여 경작하기로 하고 짐터는 종숙, 고란 밭은 용계 아제 과원 약만 쳐주기로 하시고 그냥 경작하시라 한 후 90년도 계획이 년초에 이렇게 되고 보니 이렇게 하여 모두 편하게 된 것 같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어서 회복되게 하여주소서.
저쪽 가해자도 곧 석방되고 하는 일이 잘되어 기한 내에 준다고 각서 쓴 돈을 지불 할 수 있도록 부처님이 도우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 관세 음 보살 관세음보살
2월 14일 수요일 맑음. 장날이다
6시 반에 기상하여 연탄을 갈아 넣고 다시 8시까지 누었다.
일어나서 방을 정돈한 후 조반을 먹었다.
아버지께서 새벽 5시경 화장실을 갔다 오신 모양이다.
요강을 갖다 쏟고 조금 있다니 삼촌이 왔다.
또 조금 있다니 용계 아지매, 숙모, 용계 아제 함께 오시어 얘기하고 있다니 송창선 엄마가 닭 1마리 사다주고 가시고 삼촌이 쿨피스 2병 사가지고 대밭골 도계어른이 맥콜 큰 거 한 병을 사가지고 미나무 할 배도 오시고 광연네 엄마도 오시고 큰집 형수도 오시고 모두 오셨다.
가신 후에 백부와 무승 어른이 오셨다.
음료수 큰 거 한 병을 사들고 오셨다.
모두 염려와 걱정과 위로를 하여 주시고 가시므로 고맙고 감사하였다.
중식을 차려 와서 모두 가시고 아버지하고 먹는데 평소 먹던 반찬 그대로 여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 입맛이 당길까 밥을 반공기 정도 밖에 안 잡수신다.
어제 오셨는데 약이나 드시는 것이나 마음 같아서 한 끼라도 빨리해 드리고 싶으나 미루고 있으니 거동만 살필 뿐 내일 안동 인사 하로 간다 하였으니 갔다 와서 해줄 요량인지 하고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종숙모, 종숙도 오셨다 가시고 저녁때 피곤하여 한숨 잤다.
금강지를 읽다가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운하나 그냥 먹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인천 랑승만 시인께 답장 편지를 썼다.
자정이 되어 연탄을 갈아 넣고 취침을 하는데 저녁때 한숨 잤더니 잠이 오지 않아서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부처님 감사하옵니다. 관세음 보살님 감사합니다.
하루속히 아버지 건강이 완치되게 하소서. 관세음 보살
2월 15일 목요일 맑음.
인천 랑시인께 답장 편지를 보냄.
금일은 8시까지 누었다 기상 하였다.
9시경 조식을 한 후 10시차로 아우내외가 막내 삼촌과 종형 수고하심을 인사하로 가는데 우족과 고기를 좀 사가지고 가라고 10만원을 주었다.
아우한테 병원에 들려 인삼 드링크나 박카스 한통 사가지고 가서 인사하고 오랬다.
시간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불문을 막고 50원짜리 준비로 가지고 있다 애들이 와서 바꿔주고 있다니 경주 성우 사형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치료가 잘 되었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큰 숙모가 전화를 했다.
퇴원을 하는데도 못 와봤다면서 신경회로 모든 것이 짜증스러워진다고 했다.
잠이 안와 애를 먹는다 하여 반대로 한 3일을 잠자지 않게 다고 애쓰면서 염불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된다 생각하라하고 선자 엄마 삼촌 숙모 시목이 졸업식 때문에 학부모 모인다 한다고 왔다.
들려서 막걸리 한 병과 음료수를 먹고 간 후 반찬이 너무 작아 밥을 먹을 수 없어 대영식당 전화하여 소고기 반근 육회를 사와서 잡수시고 3인분 정도 남아서 내가 먹었다.
우유 5통을 사오시고 진작 못 드려다 봐서 미안 하시다며 인사하고 가셨다.
랑시인께 쓴 편지와 윌간 금강 구룡 권만 보내 온 것을 학생을 심부름 시켜 등기로 우송 했다.
구룡 제수씨 전화가 왔다.
영봉이 처가집에 와서 화끈하게 돈 5만원 내놔서 달아매려던 사람들이 얼떨떨하여 그만두고 사다먹고 잘 놀았다 하신다.
어제 못쓴 반야경 법성계를 오늘 것과 필기 한 후 제수씨 갖다 오시어 사온 것을 갖다 보이고 김실이도 오전에 전화를 해왔다.
동생은 내일 온다하고 저녁에 닭을 삶아 아버지 한 그릇 갖다 주신다.
11시경 불을 갈아 넣고 오늘 저녁에 경안사 아줌마 박카스 한통을 사가지고 오셔서 아버지 앞에 오시어 한참 앉아 얘기하시고 쾌차하시길 원하고 가신다.
참으로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2월 16일 금요일 맑음.
인천 할배님께 편지우송.
기침 전에 백부 버스로 일찍 왔다.
조식을 함께 먹은 후 우홍구 사형이 퇴원 소식을 듣고 오셨다.
정종 먹던 것 3잔 하시고 인계 중학교 졸업식에 유도회에서 주는 장학금 전달하러 가신다고 했다.
월곡국민학교 동문들이 서울 강민창 고종숙과 국민학교 장학금 1명씩 선발 7만원씩 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곧 가신 후 오환 오길 함께 왔다가고 오환이도 중학 졸업장을 준다하여 간다고 하였다.
오길이 강릉 대학 합격으로 강릉에서 하숙을 한다하여 명기호 일흥이용원 사장을 소개하였다.
인천 족조님께 그간에 안부를 드리려고 편지를 쓴 후 머리도 감았다.
동장댁과 권부장 댁께서 아버지 퇴원소식을 듣고 문안 오셨다.
우유와 베지밀을 각각 들고 오셨다.
중식을 한 후 오후에는 오환이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라 하여 천태 종보를 권만과 랑승만 시인님께 한부씩 우송, 족조님께 쓴 편지도 함께 넣으라고 주고나니 길수 아버지 오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한 책임을 소홀히 하였다니까 화가 나서 눈알이 빨개지면서 변명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께 원성을 듣고 있다면서 내가 먼저 이해를 하니까 그렇지 속 좁은 생각으로 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냐고 따지고 행패를 부리면 어쩔텐데 말할 줄 몰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이왕 당한일 상대방 마음 괴롭힐 일은 없지. 이해부터 하고 인욕을 하면 복이 돌아오리라.
우리 운수 재수 불길로 돌려야지 남을 탓하여야 무슨 득이 있을까?
괜찮으니 마음 풀고 얘기하다 가신 후 한잠자고 눈을 뜨니 아우 안동 어제 갔다가 풍산교도소 면회를 가서 파출소에서 차를 치워 달라하니까 우리 집에 갖다 놓으라하여 매부 형한테 좀 갖다 놓으라고 했다하고 병원 신주임께 인삼 드링크 한통을 사드렸더니 고맙다 하드란다.
정말 신주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약 다리시는 것 사와서 한약을 함께 며첩 우선 복용하시도록 하라니까 한몫에 못한다고 둘 다 반대 뒤 우로 미루어서 그냥 말하지 않았다.
선례가 오늘 유치원 졸업인줄 알았더니 내일로 미루었다 한다.
꽃다발을 하나 사주어야지 했더니 아빠 사온다더라 하며 내가 하나 사주는 것은 오늘 먼저 시켜서 사놓았다.
내일 학교 갈 때 가지고 가라고 하니 좋아하며 오락실 돈을 우선 바꿔주다가 있다 가라고 하였다.
동생이 안동서 안 사왔다.
쫓아와서 눈물이 글썽이며 아빠 꽃 안 사 왔다하며 돈 주면 사오겠다 하여 엽서 한 장 오후에 휴게실 문제 정답이 가화만사성이어서 엽서에 적어가지고 갖다 넣고 오는 길에 봉투도 사오고 꽃다발은 먼저 사와는데 1600원 인조 꽃다발 언뜻 봐서 잘 모르겠다.
심부름 값 기성이 선례 백원씩 주고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갔다.
일신우일신어서 속히 쾌차되어 아버지 건강 회복되길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반야심경과 법성계를 필기합니다.
부처님이시어 이 불상한 업보중생에 염원을 들어 주소서.
모든 중생은 몰라도 오직 부처님은 중생의 뜻을 헤아려 들어주시고 이루어주시고 해결하여 주시리라 믿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어떠한 괴로움도 인욕하면서 불력에 힘으로 모든 것을 처결하여 부처님 뜻에 맡기려 합니다.
굽어 살피소서.
나무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월광보살 일광보살 정광보살 만월보살 관세음보살
2월 17일 토요일 맑음.
인천 랑시인님 전화가 온 날
대구 최경현양 편지가 왔다.
금일도 전일과 다름없는 일과로 소일하는데 불광 2월호를 독서하다니 아우가 편지 한 통을 갖다 주어서 얼른 집어 들고 보니까 대구 경현 양으로부터 왔다. 고마웠다.
어디서 날 기억하며 생각하고 이렇게 마음을 나누고 있다.
친구처럼 날 도와주고 싶다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감사한가?
법당에 가서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니 불자가 아닌가?
친구가 기독교로 전도한다고 하였는데 흔들리지 않았으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선례가 유치원 졸업을 하는데 제수씨 갔다 왔는데 먼저 큰아버지 보이라며 보여주는데 졸업장과 만들기를 잘 하였다며 상장과 결석을 한번도 하지 않아 개근상장과 상품이 화첩과 필통이며 졸업사진을 보여주어 잘했다 하고 1년 동안 결석하지 않고 잘하였으니 국민학교 입학해서도 잘해야 한다고 하고 오늘은 돈 이백원을 주었더니 하드를 사가지고 나 한개 주고 먹는다.
기성이도 이백원 제수씨 유치원 학부모들과 윷놀이 하여 소쿠리 한 개 타왔다며 가지고 오시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저녁때 누었다.
한시간정도 잠이 든 모양이다.
라디오를 듣다가 저녁 먹을 무렵 인천에서 온 전화라고 제수씨 받으라고 하여 받으니까 랑승만시인님이셨다.
목요일날 보낸 편지를 받으시고 잘 받았다는 전화인 줄 알았더니 아직 못 받았다며 월요일쯤 도착하겠지 뭐 하시며 연락이 없어서 왜일까 하셨다.
편지 보냈으므로 아버지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하신다니 다행이구나.
염려덕택이라니까 기도 조금밖에 못해써 하셨다.
이렇게 장거리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나의 병에 대해서 약간 설명해드리고 TV보면 책보다 자정이 되어 연탄불을 갈아 넣고 오늘 불경을 쓴 후 취침을 한다.
부처님 굽어 살피소서. 관세음보살님 굽어 살피소서.
관세음보살 어서 속히 아버지 다리 무릎 다친 곳이 완치되게 해주소서.
2월 18일 일요일 우천.
어머니 인생 일대기를 추려 기억에 더듬어 적어봤다.
날이 어제 밤부터 흐리더니 새벽부터 비가 오는 소리가 났다.
내일이 우수니까 이제 해동비가 분명한 것 같다.
조반을 먹고 선례가 나와서 함께 놀아주었다.
불광을 독서하고 오후부터 어머니 생전에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준 것을 기억에 더듬어 일대기를 멋지게 수기화 해볼까 싶어서 옮겨 적어 보았다.
많은 고충과 죽음에서 두세 번 자살까지 하려던 어머니 37년 생애의 이야기를 간추려 적어보았다.
내가 글 쓰는 소질이 있다면 이만해도 한권에 소설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감이 든다.
저녁때 경주식당 아줌마 우유 5통을 사들고 아버지 문안을 오셨다 가신다.
오득 동장형님께 영세민 장기자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나온 것 있으면 한건 해주면 하고 문하였더니 그런 사실이 없다며 퇴거 이리 해가라고 한다.
영세민 한집씩 있으면 일보는데 힘이 무척 든다고 하면서 속이 틀어질 정도로 언제 동장이나 많이 본다고 그렇게도 도도하게 냉정하게 그러는지 그 좀 해준다고 뭐 그리 힘이 드는데 본래부터 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하고 언제 시간 봐가며 퇴거를 해버릴까..
저녁 TV보면서 경을 쓰고 하루를 보낸다.
아버지 이불을 작년부터 사용했는데 여름내 대구 간 후 한번 빨았는지 모르지만 오늘에야 밤에 뜯어내어 빨았다. 보기에도 더럽다 싶어는지...
우족 곰탕을 한 그릇도 갖다 주었다.
아무 군입 다실 것 없이 모두 사온 것을 안에 갖다 놓으면 덜어 잡수시게 갖다 놓아도 될 텐데 약탕기 3만원주고 사왔다고 보인다.
약을 끓여 하루라도 빨리 잡수시면 좋을 텐데... 결리는게 다 피해가면 약지어 다리려는지 우족 곰 다 잡수고 한다며 미루고 있다.
오전 설의원께 전화했더니 20일 넘어서 시간이 나는 대로 한번 왕림하시겠다 하였다.
관세음보살
2월 19일 월요일 비
장날 비가 온다.
안동 종형 형수 기년 함께 왔다가 큰집에 갔음.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개는 줄 알았더니 오후부터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늘 장날이라고 옥신네 엄마 큰아버지 삼촌 숙모 함께 들어와서 속청 씨 한다고 좀 달라하여 반되 좋게 드리고 물가에 논, 안골 밭을 경작 하신다고 하였다.
때기 뙈기여서 붙이라하기 미안하여 얘기 안 드렸으나 제수씨하고 동생이 옥신네 주고 싶어 하니 삼촌은 안 부친다하여 그리 주기로 했는데 숙모 나물 갈아먹게 한 뙈기 우리 주면 될텐데 하여 삼촌 부치라니 안 부친다 하던데 뭐 하였다.
앞서 큰집에 안 부치면 삼촌께 부치라고 권하려 했다는 말을 했다.
큰아버지 오해하실지 모르나 숙모는 집터를 얘기하였다.
나간 뒤 미산 아지매 미나무 할매, 문섭 아제, 길수엄마, 큰집형수, 용개 아지매 오셨다.
가신 뒤에 안동형수 형님 기년 함께 오고 큰집형님, 재종형님, 용개 아지매 오셨다.
함께 점심잡수로 나가시고 중식 후 모두 가신 후 휴식을 취하고 저녁식사가 끝나고 TV를 보면서 반야심경을 필기 하고 불광도 독서하고 어머니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 추려 적어 봤으며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가는데 모두 고마웠다.
한시쯤 되어 연탄을 갈아 넣고 옷을 갈아입었다.
설 아래 입은 내의 근 25일을 입고 있다고 오늘은 몽땅 갈아입고 취침을 하였다.
고조부 기제사를 내일 아침에 매혼한다고 동생도 오라고 했으나 못갈 것 같다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니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오산 할배 한테는 조부모 되지만 기석이 한테는 6대조가 된다.
예법대로 하면 오산 할배 돌아 가신 후에 매혼이 가능하지만 이젠 신식이 되어 6대손이 나면 매혼 한다고 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2월 20일 화요일 맑음 .
이발을 선례 기성이 도움으로 함.
오늘부터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조반이 끝나고 책이나 보고 있다가 중식을 한 후 이발을 하러 갈까하다가 시목이가 오늘 졸업이라고 벌써 졸업장을 받아가지고 나왔다.
졸업 사진도 보고 통신표도 본 후 2천원 주니까 좋아했다.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벌써 시목이가 국민 학교 졸업을 하다니 오락실에 놀다가고 종형내외 기년 오산 할배 함께 미산 아지매도 오고 가시는 길에 들려서 술 한 잔 하시고 간 후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2시반차로 가신 후 나는 선례가 밀어주는 휠체어 타고 이발하러 경안 이발소 갔다.
김재현 산업계장하고 주진 강신복 사장하고 이발하고 나오시다 문을 열어 주신다. 고마웠다.
이발을 하고 오다 연고하나 사가지고 일기 공책을 두 권 산후 오다니 인천에서 전화가 왔다하여 편지가 들어간 모양이다 하고 있다니 김실이 한테 낮에 전화하니 제사 든다하고 시누 애기 낳로 왔다하고 매부 미루나무 사가지고 판다고 나갔다더니 전화가 또 왔다.
경기도 포천 아줌마 사위하고 차를 가지러 왔다며 전화하여 아줌마하고 대화를 하였다.
쾌활하고 상냥한 마음이고 음성이며 악이 없는 사람이라 느꼈다.
아들 면회도 다녀왔는데 차를 가지고 가서 처분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아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며 한번 찾아온다고 했다.
종형한테 전화하니 집에 안계시므로 그냥 알려 준 후 석식을 하고 있다니 인천 랑시인께서 전화 해 달라 했다며 잘 받았다며 책값은 왜 보내 냐고 하여 보내 드려야지요. 하고,
염불소리 녹음테이프 독경소리도 들려왔다.
편지 읽으니 너무 처절하다며 일기 채로 그때그때 이야기를 간추려 적어놓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게다 하고 전화료 때문에 자주 전화 못 드린다니 랑선생님도 그렇다하여 편지로 가끔 연락드린다하고 오늘 일과 끝났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권덕남이 조모께서 참 두유 두통을 사가지고 오셨다가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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