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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래를 여는 나의 집 § 원문보기 글쓴이: pinetree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특공대를 편성, 전대미문의 작전을 감행한다. 카미카제(神風)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이 탄 비행기 몸체로 적함이나 적기를 들이받는, 자살공격이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허망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일본을 위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받쳤다는 카미카제에 조선의 청년들이 있었다.
조선인 박동훈(17세): (녹음육성, 카미카제 출격전 육성) 나는 조선인 카미카제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여러모로 걱정과 불효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부모님께서 용서해 주신 것으로 알고 용감하게 전장에 나가겠습니다. 야스쿠니에 부름 받은 몸, 안녕히---
최원정/KBS 아나운서: 역사저널 그날, 오늘은 조선인 카미카제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늘 먼저 함께 얘기나눌 두 분을 소개해 드리고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카미카제를 비롯한 한일과거사를 연구하고 계시는 배영미(일본 온타니대학 조교수) 박사님, 그리고 한겨레신문 前일본특파원이자 나는 조선인 카미카제다 란 책을 쓰신 길윤형 기자, 두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배영미/길윤형: 안녕하세요?
최원정: 자, 그런데 우리가 지금 방금 들으신 저 음성, 최연소(당시 만17세) 조선인 카미카제 박동훈의 실제 육성입니다. 정말 앳된 어떤 소년의 목소리, 갓 변성기가 지난 아이의 목소리 같이 느껴지는데~
류근/시인: 열여덟 살이면 아직 전쟁이나 죽음의 의미조차도 매우 정립되기 이전일텐데 전의가 불타는 목소리로 어머니, 아버지 용서하세요 야스쿠니 신사에서 만납시다. 전 이걸 어떻게 이해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윤석/방송인: 왜 저런 어린 조선 소년이 일본에서 죽어가야 되는지 언제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너무 머리 속이 복잡해요.
최원정: 카미카제란 말 많이들 들어보셨을텐데, 이게 자살특공대 이렇게 해석이 되는건가요?
길윤형/한겨레신문 前일본특파원: 그렇죠. 비행기에다가 250~500kg 되는 커다란 폭탄을 매달고 미국 군함을 향해서 몸체공격을 감행하는 걸 카미카제 특공대 라고 하는 데요. 일본에서는 그런데 카미카제 특공대를 카미카제 특공대 라는 말보다는 그냥 독고다이 란 말을 많이 씁니다. 한국말로 독고다이하면 저사람 외골수고, 독불장군이고 그런 의미인데요. 일본에서는 독고다이를 한자로 그대로 쓰면 特攻隊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죽어야만 완성되는 공격이 특별공격이고, 보세요 일본에서는 카미카제란 표현보다는 독고다이라고 하면 자살특공대를 의미합니다.
최원정: 그 의미를 알고나니까 더 더욱 쓰면 안되겠어요. (절대 독고다이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면 안되는 단어).
류근: 흔히 쓰는 말이잖아요. 독고다이라고
심용환/역사작가: 많이 쓰죠. 좋은 말이 아니예요.
이윤석/방송인: 연예계에서도 매니저 없이 혼자 활동하는 연예인이 있는데, 아 제 독고다이야 그리고 뒤에 다가 독립군이야~ 이렇게 얘기해요. 전혀 엉뚱한 의미의 단어를 쓰고 있는데 독고다이라는 말을 아예 쓰면 안되겠군요.
류근: 심지어는 우리가 뭔가 무모한 사람을 시니컬하게 말할 때 제 카미카제냐? 라고 말하잖아요.
최원정: 그러니까요.
심용환: 시작부터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게 있는데 카미카제의 어원 어디서 시작했을까요?
이윤석: 예전에 한번 본 거 같고~
최원정: 역사저널에서 한번 다뤘습니다.
이윤석: 원나라 침공때요!
심용환: 13세기 때 몽골이 원이라는 나라를 만들어서 고려까지 끌어들여서 여몽연합군을 만들어서 일본을 쳐들어갔죠.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13세기말,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정벌하고자 했던 사건, 여몽연합군의 승세였으나 두 차례 모두 갑작스러운 태풍으로 퇴각). 당시 일본은 전면적 침공을 당해 본 적도 없고 전투 자체도 완전히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두 차례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게 되면서 몽골군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물러가니까 야 이건 정말 神이 도왔다. 神風이 불었다. 카미카제에서 카미가 神, 카제가 風, 이러면서 이때부터 일본의 신국의식이 형성됐다고 말하더라구요.
류근: 일본인들의 오만방자가 그때부터 시작됐다는 거지요.
이윤석: 그 전쟁 이후에 일본은 신이 보호해 주는 나라야~ 이런 믿음이 더 강해졌고 그런데 카미카제라는 이름을 다시 쓰는 걸 보니까 이때가 원나라가 침공했을 때와 같이 절박한 상황이었는가 봐요.
최원정: 어떤 절박한 상황이었을까요?
배영미: 1941년 12월에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1941.12.7 진주만 공습)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일본이 약간 우세한듯 보였습니다마는 바로 이듬해 여름 미드웨이 해전에서 크게 패하면서 (1942.6.4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 전쟁의 주도권이 완전히 미국으로 넘어가고 그 이후로는 계속 대패 (1944.6.15 사이판 전투, 1944.7.21 괌전투, 1942.8.7 과달카날 해전)를 합니다. 그러다가 1944년에 일본군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방어선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의 레이테만 (1944.10.20 전투)까지 내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일본 본토 또한 미국의 함정에 포위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바로 그때 카미카제 작전을 구체화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겁니다.
길윤형: 카미카제 전술이란게 단순무식 무모한 작전이었습니다.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몸체공격을 해서 꽂아박는 것이거든요. 그중에서 특공을 위해서 일부러 사용된 비행기가 있습니다. 이건 쓰루기(Ki-115)라고 하는건데요. (쓰루기(Ki-115)-검(劍)이라는 뜻의 카미카제 전용기). 쓰루기는 검(劍)이라는 뜻이예요. 저 밑에 보면 바퀴가 달려 있는데요. 저게 뜨면 바로 바퀴를 떨어뜨려 버립니다.
이윤석: 바퀴가 없다는 건 활주로에 착륙할 생각을 아예 하지도 말라는 거잖아요?
길윤형: 그렇죠. 그렇죠.
이윤석: 말이 안되는 그냥 뜨면 죽어라 이 얘기예요.
길윤형: 다음 특공대기는 저런 오카라고 얘기하는 건데 저 앞에 보시면 둥그렇게 타원형으로 되어 있는 게 있는데 저건 1200kg의 폭탄이 실려있는 거구요. (오카(MXY-7)-桜花벚꽃이라는 뜻의 일본 해군이 만든 자살 공격기). 오카(벚꽃)가 곳곳에 치장되어 있습니다. 일본해군이 만든 비행기인데요. 커다란 기체에 달고 싣고 갑니다. (자살 공격기가 거대한 폭격기에 매달려 비행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우리는 안전하고 쟤를 보내서 적을 공격하게 하고 조종사는 죽게 되는거죠. (상공에서 분리되면 적에게 돌진). 미군들이 오키나와에서 저 기체를 발견합니다. 자살공격을 하기 위해서 저걸 썼구나 해서 일본어로 바보를 빠가라고 그러지요. 그래서 저 기체를 보고 바카! 바보 같은 무기다 라는 별명을 붙이게 됩니다.
최원정: 저기에 달린 벚꽃 모양의 문양이 인상적이네요. 그러니까 천황을 위해 벚꽃 처럼 져라고 항상 했는데 저게 상징적인 거네요.
류근: 전쟁을 미화하는 군국주의의 진실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 미사일을 벚꽃이라는 극치의 아름다움에 비유하고 있잖아요. 마치 뭔가 굉장한 미학이 있는 것처럼 저기에 무슨 미학이 있겠어요?
이윤석: 쉽게 얘기하면 미사일에다가 사람을 태운 거예요.
심용환: 사람은 방향만 잡아주는 거죠?
최원정: 너무 소름끼치는 일이예요.
이윤석: 옛날에 총알탄 사나이라는 패러디가 있었는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이건 정말 미사일에다 사람을 태운 거네요.
최원정: 또 있나요?
길윤형: 세번째는 육상에 있었으니까 이제 바다에도 있겠지요. 가이덴(回天) 이라는 인간어뢰 인데요. (잠수함의 갑판에 실어 발사한 유인어뢰). 저것도 똑 같습니다. 적함으로 가까이 가는데 큰 잠수함에 너무 가까이 붙으면 공격을 당할 수 있으니까 그냥 일반어뢰를 쓸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했으면 일반어뢰를 쓰고 내가 공격을 받을 것 같고 일반 어뢰를 쓸 수 없을 것 같으면 가이텐을 발사하는 겁니다. 저 안에 사람이 타있습니다. 조종사가 잠망경으로 내가 목표를 체크를 하죠. 성공하면 조종사는 죽는 거죠. 실제로 저걸로 해서 87명이 죽었다고 되어 있구요. (1944.11~1945.8-가이텐 조종사 87명 사망추정) 실제로 미군함 3척 격침-4척 파손을 줬다는 정보가 남아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저렇게 작전을 해서 거둔 성과는 글쎄요~??
최원정: 기대에 미치지 못한 거네요.
길윤형: 네, 그런 거지요.
이윤석: 이게 무서운 게 모든 무기에 하늘이건 물 속이건 사람을 장착을 시키는데 그냥 숨쉬는 리모콘 역할만 한 거예요. 수중형 카미카제인데 다른 말로 하면 수장형 카미카제~
류근: 지휘관은 부하를 전쟁에 내보내면서 가서 죽으라고 말하지 않아요. 비록 전쟁터이지만 죽을 수는 있지만 가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너희들 “죽어도 살아서 돌아와라” 그런데 이거는 죽는 것 자체가 명령이고 임무란 말예요.
최원정: 그런 허무한 죽음이 다 있어요?
류근: 뭔가 애국심과 충성심을 고취할만한 부대명을 새로 지은 다음에 서로 이렇게 껴안고 군가를 부르는데 그게 뭐냐하면 동기의 사쿠라, 동기의 벚꽃이라는 거겠지요 (同期의 사쿠라-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군가). 이게 우리나라 영화 군함도에도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지금 일본에서 동기의 사쿠라를 부르는 모임이라는 일본 극우단체가 활동하고 있을 만큼 유명한 군가예요.
최원정: 불러 주실 수 있어요?
류근: 제가 부르긴 싫고요.
영화 <군함도>中 너와 나는 동기의 벚꽃
2019.4.6 야스쿠니 신사 앞 일본 우익단체 ‘동기의 사쿠라를 부르는 모임’
피어 있는 꽃이라면 지는 것은 각오하라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류근: 가사가 좀 길긴 한데 결론은 카미카제가 되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만나자 라는 내용입니다. “꽃의 고향 야스쿠니 신사 봄의 가지에 피어 만나자”-<동기의 사쿠라>中
이윤석: 항상 최종 목적지는 야스쿠니 신사군요. (야스쿠니 신사-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 제2차 세계대전 전범자들을 합사-추도). 일종의 인간이 신이 되는 희생제의로 미화된 가미카제의 죽음.
심용환: 정작 군인들 앞에선 너희들의 천황을 위해선 이 정도로 해야 한다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라). 그것이 너희가 신이 되는 길이다. 이렇게 얘기 해놓고 실제 뒤에서 계산하는 거지요. 싸.게.먹.히.는 전술
류근: 광기의 각축 뿐이었다 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어요.
최원정: 완전히 극단적인 인명경시 아닌가요!
길윤형: 총647개의 특공대가 만들어져서 3,300대의 특공대기가 출격했다고 되어 있는데요.
류근: 최종적인 작전 성공율은 어느 정도 되나요?
길윤형: 한 6% 정도에 불과하다고
배영미: 가미카제 사망자수는 육군해군 통틀어서 약3,900명 이라고 합니다.
최원정: 아까 장면에서 특공대기가 내리 꽂혀가지고 항공모함들이 불타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어느 정도 전과를 이룬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군요.
배영미: 미군 정규 항공모함이 완전히 격침된 건 없구요. 상륙정-운송선-구축함 등의 소형 선박을 중심으로 해서 다 더해 봤자 47척입니다.
심용환: 그거 바보짓 아니예요?
최원정: 미국에서도 실제로 이 가미카제를 바보폭탄 fool bomb 이라고 얘기 했다면서요.
이윤석: 지금 저도 이렇게 놀라는데 당시 미군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 같애요. 무슨 일인가 했을 거예요.
심용환: 쉽게 말하면 미군은 이런 전략을 전혀 본적이 없잖아요.
최원정: 미국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일본인들이 절대 할 수 없는 가미카제를 만나서 취재를 했습니다. 자, 카미카제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각오로 이야기 잠깐 만나보시죠.
프레드 미첼/USS 생존자: 보통은 비행기를 격추하면 기체가 조각 조각 부서지면서 추락합니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격추당해 부서지면서도 계속해서 돌진해 왔습니다.
유진 브릭/USS 생존자: 아주 이상했습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돌격해 온다는 것 말이죠.
에나 타케히코/1945.3 가미카제 배치: 가미카제 공격에 투입되기 전에 우리 사진을 이렇게 찍어줬습니다. 얼굴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시나요. 장례를 위한 초상 사진이었죠.
우에시마 타케오/1945.3 가미카제 배치: 우리는 동료들을 배웅하면서 매우 슬펐죠. ‘다음은 내 차례구나’라고 모두가 생각했죠. 다들 한 배를 탄 상황이었죠. 부모님에게도,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아무에게도 가미카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내가 가미카제 조종사’ 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에나 타케히코/1945.3 가미카제 배치: 일본이 수세에 몰리자 군은 특히 조종사가 부족했고 1943년 10월 학생 동원령을 내립니다. 그 말은 즉, 우리 학생들이 군에 강제로 징집된다는 것이었죠.
우에시마 타케오/1945.3 가미카제 배치: 대학을 졸업한 우리들은 미국의 생산성과 산업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는 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서 전쟁에 참여하라는 명령 말이죠.
하마조노 시게요시/1945.3 가미카제 배치: 훈련은 지옥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피를 흘렸죠. 피를 흘리지 않고 있으면 집단 가학을 당했습니다. 가학하고 기합을 주고 굶어 죽을 정도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나카지마 카즈오/1945.3 가미카제 배치: 인간의 생명을 휴지조각 취급했습니다. 그 천황이---그 천황이---그 천황 때문에 우리 조종사들이 고통받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쇼와 천황에 대한 감정이 복잡합니다. 왜 전쟁을 더 빨리 끝내라는 명령이 없었을까요. 6개월이라도 빨랐더라면---만약에 그 천황이 ‘충분했다 비난을 감수하겠다’ 라고 패전을 인정했더라면 수만의 생명이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원정: 많은 생존자들의 이야기, 자기가 카미카제 였다고 평생 얘기하지 않을 분들인데 저렇게 입을 여신 거예요.
이윤석: 마지막 인터뷰한 분의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요. 왜 인간의 목숨을 휴지조각 처럼 취급하는 것이냐, 6개월만 빨리 끝났어도 수만명이 목숨을 구했다 (나카지마 카즈오/1945.3 가미카제 배치). 왜 전쟁을 질질 끄느냐 죽기 밖에 더 하겠느냐 라는 얘기죠.
최원정: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과 스튜디오로 화상인터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시고 싶었지만 너무 먼 곳에 계셔서 화면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전화 미국 연결 중----
최원정: 리사 모리모토 감독님 나와 주세요. 안녕하세요?
리사 모리모토/영화<가미카제 이야기>감독: 안녕하세요? 저는 ‘가미카제 이야기’의 감독 리사 모리모토 입니다.
류근: 근데 미국인이 맞습니까? 분명히 동양인 같은데~
최원정: 미국에서 살고 계시는 재미 일본인 이십니다.
류근: 재미 일본인~
리사 모리모토: 25살 때 삼촌이 가미카제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다정했던 삼촌이 그런 훈련을 받았다는 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가미카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는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된 거였죠.
최원정: 가미카제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서 취재 하신건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어요?
리사 모리모토: 가미카제 생존자들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가미카제 생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미군과 일본군 생존자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팔십대가 되었는데도 아직 증언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할 정도 였습니다.
이윤석(질문): 그럼 현재 일본은 가미카제 라는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리사 모리모토: 일본은 엄청난 잘못을 했음에도 아직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은 역사를 배우고 화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배운다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역사 공부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죠.
최원정: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이 저의 입장에서는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부탁드립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심용환: 일본인 후배들이 k-pop 을 좋아해서 유학까지 온 일본인들 후배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아니 우리 일본이 미국이랑 전쟁을 했어요? 이러는 거예요~~
최원정: 아, 모르는구나
심용환: 그러니까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류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아예 몰라요?
심용환: 아예 몰라요. 태평양 전쟁도 모르고~
이윤석: 감독님도 그랬잖아요. 안가르친다고~
최원정: 이 가미카제는,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급작스럽게 시작된 작전이라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약간 급조된 느낌이 들어요. 제대로 훈련이나 받고 출격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배영미: 제대로 된 훈련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가미카제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숫자의 특공대원들을 배출했던 것은 육군 소년비행병학교입니다. 처음엔 3년의 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이게 40년이 넘어가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더 많은 전투기 조종 인력들을 계속 내보내야 했기 때문에 교육기간을 3년에서 2년, 2년에서 심지어는 16개월까지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초등교육을 막 마친 만 15세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뽑아서 16개월을 교육을 시키는데 비행기 조종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윤석: 비행기 구조 익히기에도 빠듯할 것 같은데~ (숙련된 조종사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한 훈련기간).
길윤형: 당시에 육군에 있었던 비행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은 3년에 걸쳐서 600시간 정도의 교육을 시켜야지 실제로 전투에 나가서 싸울 수 있고 최소한 400시간 정도는 훈련을 받아야 되는데 겨우 100~150 시간을 탄 젊은 10대 후반의 대원들을 태우고 보냈으니 얼마나 성공을 했겠습니까.
이윤석: 600시간을 해야 되는건데~
심용환: 정말 전쟁 막바지가 되니까 고장난 전투기와 연습기까지 다 동원합니다. 그러면 이륙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있어서 달려가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떴다가 그냥 덜덜 거리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류근: 잠깐만~ 행운이네, 오히려 그 사람은 살았네~
배영미: 아니죠, 그래서 만약 살아서 돌아오잖아요 영창행입니다. 전투에 나가서 죽지 못했다고~
최원정: 돌아와서 총살까지 당하는 사람도 있었데요.
길윤형: 기본적으로 가미카제 특공대는 죽어서 신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나가서 죽어야 되어야 합니다.
이윤석: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전술입니다.
류근: 지금 우리가 계속 말하잖아요. 이게 바보야? 미친거야?
이윤석: 방금 배 박사님 말씀은 영창에 갔어요 죄명: 안죽음, 그래서 영창에 간거예요. 이게 말이 되는 건지 안되는건지 혼란스러운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격렬한 공중전이나 해전을 뚫고 최종 목적지인 적기나 적함을 들이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이게 보통의 정신력, 극단의 정신력, 고난이도의 조종기술이 없으면 어려운 일인 거 같애요.
류근: 심지어는 이런 카더라가 있는데~ 가미카제 대원들한테 히로뽕(마약)을 줬다는 카더라가 있어요. 천황이 출격을 앞둔 대원들한테 히로뽕을 탄 술을 내렸다 라는 설이 있어요.
최원정: 충분히 의심이 가는게 출격 전날 항상 천황이 내린 술을 마시는 사진을 제가 몇번 봤거든요. 그게 단순한 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제 정신으로는 못하는 일이니까요.
류근: 출격 전날에, 전야에 이런 풍경들을 묘사한 것들을 보면 술이든 약이든 취해서 침상을 부수고 창살을 부수고 울부짖으며 뭘 어떻게 했다라는 이런 표현들이 있다 말이죠. (일본인 가미카제 ‘구라카케’의 증언(아사히 신문 2014.2.18)-술 먹고 칼을 뽑아 들고 난리치는 사람이나 북을 두드리면서 염불을 외며 비행장을 도는 사람도 있었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져서 자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 같애요.
최원정: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미카제 중에 조선인 가미카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들었던 박동훈의 육성 바로 그 박동훈이 조선인 이잖아요. 가미카제에 조선인들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많이들 모르실거예요.
류근: 어찌 되었든 가미카제는 형식상 자원형태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식민지 조선인이 거기에 있었다는게 지금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가미카제 하면 군국주의의 광신도, 황국주의의 첨병 이런 걸로 알고 있잖아요. 전쟁의 가해자, 그런데 한국인으로서 조선인 가미카제의 존재를 지금 제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심정적으로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그래요.
이윤석: 제가 사실 3년 전쯤에 KBS 역사기행 그곳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2차 대전 때 육군 비행기지가 있었던 가고시마에 갔었어요 (치란 특공평화회관/일본 가고시마현 미나미규슈시-작전 때 투입됐던 전투기와 전사한 가미카제 1,063명의 사진 유서 유품을 전시). 거기에 특공평화회관이 들어서 있었는데 거기에 작전에 투입됐던 전투기도 전시가 되어있고 전사한 특공대원들의 사진, 유서, 머리카락도 보관이 되어 있었고 제가 그때 처음으로 조선인 가미카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혼란스러운 거예요.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류근: 어쨌던 지금 그분들은 동원된 희생자가 아니라 일본을 위해 충성을 받친 영웅이라고 추앙을 받고 있는거 아니예요?
이윤석: 진실이 뭣인지도 궁금하구~ 혼란~ 혼란~
최원정: 사실 저도 그 프로그램을 보고 조선인 가미카제를 처음 인지했거든요.
배영미: 저도 치란 평화회관 답사를 간게 계기가 되어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치란 지역 기지에서 1036명이 출격했는데 죽은 전사자들 사진 중에 군데 군데 조선인이 섞여 있었어요.
류근: 도대체 그러면 조선인 카미카제는 몇 명이나 투입이 된 겁니까?
배영미: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육군 가미카제로 죽은 조선인은 17명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심용환: 확인할 수 있는 숫자로요?
배영미: 네, 확인한 거죠. 그런데 사실 이게 정확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들릴텐데 죽지 않으면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전사자 명부 그리고 전쟁 말기에 가면은 일본군이 조선인, 일본인 할 것 없이 전사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상태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창씨개명). 그렇기 때문에 본적지가 조선이란게 명기되어있지 않으면 이름만 가지고는 판명이 불가능합니다.
최원정: 그러면 지금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볼게요. 조선인들은 왜 일본군 조종사가 되려고 했을까요?
이윤석: 그게 정말 가장 궁금합니다.
최원정: 어린 이 청년들의 선택을 친일이라고 하면서 비난만 해야될지~? 어떻게 바라봐야 될지 아직도 저는 사실 정리가 안됩니다.
심용환: 41년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잖아요. 그 과정 속에서 국가총동원법을 내리고 조선인들의 물자를 수탈하는 과정인데 흥미로운게 뭐냐면 이미 가미카제 작전 수년전부터 비행기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았나 하는 흔적들이 느낌상 나타나기 시작해요. 초등교육과정에 모의비행기제작 학습을 하게 되고요. (매일신보 1942.4.10-제2세 국민에게 항공지식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초등학교 아동들에게도 모형 비행기의 제작을 장려시켜 왔는데 중등과정에는 활공과가 있는데 거기서 글라이더 훈련을 시켰다 라는 거예요 (매일신보 1942.4.5-금년 신학기부터 각 중등학교에 활공과를 정과목으로 정하고 젊고 젊은 학도들에게 ‘글라이더’훈련을 실시하기로 되어).
류근: 당시 조선인 스타 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파일러트 안창남 이라고 있지않습니까 (안창남(1901~1930)-조선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 그래서 심지어는 노래가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길윤형: 네, 그런 노래가 있습니다.
류근: 당시 조선에서는 그 사람들한테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약, 상징이었던 비행기라는 것이 소년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우리 애들은 다 비행기 좋아하죠.
최원정: 항공 우주 이런 거 나오면 아이들 다 좋아하잖아요.
이윤석: 내 아들도 전투기 나오고 동영상 틀어주면 밤을 새우고 봅니다. 아빠가 나오는 건 일부러 틀어줘도 안봐요. 틀어놔도 안봐요.
길윤형: 제가 또 깜짝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소년 비행병학교 제도가 있었는데 여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있는데가 아니었고 공부를 엄청 잘 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소년 비행병에 합격했다고 그러면 마을 잔치를 합니다. 걔네들이 교육을 받고서 고국방문비행 을 하게 됩니다. 조선인 가미카제 [만19세로 사망] 김광영이라는 사람과 이현재 [만19세로 사망] 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쓴 수기가 있습니다. 매일신보(1943.9.22 이현재 수기)-차츰 차츰 고향 산천이 가까워 온다. 일요일 마다 놀러갔던 그 강변의 모래만이 보일까 (…) 우리 모교의 운동장은 얼마나 크게 보일까 이런 얘기를 십대 중반 소년의 감동으로 아!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은 보이겠지, 그리고 자기 모교 앞을 쭉 날거든요. 그럼 모교 후배들이 운동장에서 매스 게임 같은 걸 해서 창신이라는 학교 이름을 씁니다. 후배들이 막 박수를 쳐 주는 거죠. 그러면 얘네들이 다시 와서 후배들 모아놓고, 야, 선배처럼 공부 열심히 하면 너희들도 나처럼 될 수 있어, 그러면 또 후배들이 막 지원하게 되는 거죠.
이윤석: 비행기 잖아요. 말 그대로 모두가 우러러 보는 거예요.
류근: 그러니까 그때 식민지 조선에서 그 소년들이 어떻겠어요. 정말 로망이죠.
이윤석: 그걸 이용한 거죠.
배영미: 특히 소년비행병 학교를 지원했던 사람들은 내 주변의 일본인 학생은 떨어지는데 내가 붙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인 친구가 떨어지고 조선인 내가 붙어요. 그러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엄청 치켜세워주고 칭찬을 해줘요. 거기서 내가 일본인을 이겼다 내가 이겨서 합격했다. 조선인의 재능이 뛰어나다. 이거는 10대 이기 때문에 소년비행병 학교에서 들어갔던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증거입니다.
류근: 부추기면 될만한 나이인데 그걸 이용해 먹은 놈들이 나쁜 놈들이예요.
심용환: 그건 그렇죠.
배영미: 또 하나 경제적인 이유도 굉장히 큽니다. 이 학교는 학비가 공짜예요. 심지어는 매달 용돈도 받아요. 당시의 식민지 조선에서는 식민지 교육정책 때문에 제대로 조선인에게 초등교육조차 의무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중-고등교육들은 훨씬 더 문이 좁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 학교는 어떻게 보면 매력적인 선택지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윤형: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된 사람들 중에 장교도 있었습니다.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육군 특별조종견습사관제도를 만듭니다. 한국에 있는 연희전문이나 보성전문 이런 전문학교나 대학교의 졸업자가 몇학년 이상의 사람들을 비행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최원정: 엘리트에 속하는 그런 청년들이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들이군요.
심용환 탁경현(만25세로 사망) 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함께 일본으로 일찍 건너와 교토 약학전문대학을 졸업했어요. 사실 지금도 약대가 쉽지 않은데 1943년 10월에 갑자기 입대를 합니다.
이윤석: 전공이 약학인데 조종사와 관련이 전혀 없잖아요?
심용환: 조종사가 필요한데 안되겠다 전력확보를 위해 대학출신 엘리트를 데려와서 속성교육을 시키면 써먹을 수 있겠지~
이윤석: 머리 좋은 조선인을 뽑아다가 빨리 가르쳐서 빨리 투입시키겠다.
류근: 앞길 창창한 조선의 엘리트 청년들을 데려다가 일본 직업군인의 소모를 막기 위한 대용품 내지 일회용 인간폭탄으로 사용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배영미: 혹시 2001년 일본에서 개봉한 일본영화 <호타루> 라고 보신 분 계십니까? 그 영화는 탁경현을 모델로 카네야마 소위라는 인물을 그 영화 속에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출격 전날 밤에 그 영화 속의 카네야마 소위가 가고시마의 특공기지 옆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특공의 어머니 라고 불리었던 토리하마 토메씨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갑니다. 다른 대원들은 가족들이 와서 면회도 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영화 속의 카네야마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고향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라고 울먹이면서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만~~영화 <호타루> 中: 아주머니 오늘이 마지막 이예요. 노래를 들어 주시겠어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배영미: 실제로 탁경현이 출격 전날 이 식당에 찾아가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는 건 실제 사례입니다.
이윤석: 저도 지금 기억이 나요. 그 사진을 본~ 아주머니 식당이 지금은 특공대원들 유품들이 전시된 자료관으로 지금 운영되고 있는데~ (호타루관/일본 가고시마현 미나미 규슈시-당시 식당이 위치했던 곳. 현재 가미카제 자료관으로 운영). 토리하마 토메 아주머니와 탁경현이 하고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지금도 눈 앞에 선한데, 탁경현 이가 굳은 표정이고 탁경현이는 어금니를 깨물고 있는 그 얼굴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나요.
류근: 그 에피소드 하나만이라도 식민지 조선의 청년 탁경현이 얼마나 깊은 고뇌를 하고 있었는지 다 느껴집니다.
최원정: 여기서 듣기에는 아리랑을 구슬프게 그렇게 부른게 아니라 옆에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불렀대요 (아카바네 레이코, 이시이 히로시<호타루 돌아오다>-잠시 명상에 잠겨 있던 미쓰야마는 순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리기 시작했다). 정말 통곡 오열 그런 마음으로 부르지 않았나 싶어요.
류근: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기의 공포를 감추기 위해서 노력에 의해서 더 그럴 수도 있죠.
길윤형: 그러니까 방송 모두가 저희가 음성을 들었잖아요. 만으로 17살이죠. 박동훈 소년이 방송으로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해 주세요. 우리 야스쿠니에서 만나요” ‘용맹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 하잖아요. 박동훈의 막내 여동생을 제가 몇 년전에 만났습니다. 박동훈이 아버지랑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엉엉 울면서 내가 죽으면 가족들이랑 동생들이랑 책임져 주겠다고 해서 내가 하는건데 동생들은 절대 군대에 보내지 말라 (박동훈 여동생 박혜옥의 증언).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왜 여기 소년 비행병학교에 지원했냐고 들으면 회고록에서 박동훈의 동기가 얘기하는데 “일본은 거짓말쟁이야. 나는 조선인의 배짱을 보여줄 거야.” 이오 겐지<가이몬 다케 中. 이런 얘기를 했다 그래요. 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내면에 여러가지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울고 막 동생들 절대로 보내지 말라는 그런 모습이 좀 더 진지한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됩니다.
류근: 그런데 전쟁의 신도, 악마도, 죽음을 앞두고 담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이게 진짜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해요.
심용환: 제가 다른 증언 하나, 가미카제 증언인데요. 부대장이 지급부터 1특공대를 편성한다. (일본인 가미카제 생존자 이케다 다츠오의 증언-“부대장이 ‘지금부터 제1특공대를 편성한다. 희망하는 자는 한발 앞으로’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한발 앞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은 매우 불명예 스럽다고 할까요. 비겁한 사람이라고 모두에게서 비난 받았습니다. 물론 위로부터 제재를 받을 것도 알고 있었죠. 그래서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이 앞으로 나왔죠. 한발 뒤에 서 있는 것 즉, 나서지 않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이윤석: 저는 정반대 사례를 하나 들은게 있는데, 여태순 <그날 오키나와 하늘에서>-“이 중에서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하고 소리쳤다. 손을 들기가 애매하잖아요. 이럴 때는 일단 가만 있는게 최고치 하고 가만 있는 거예요. 자, 가만히 있는 사람에다 지원서 배부~ 가만히 있어도 출정, 가만히 안있어도 출정,
길윤형: 심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지원 발언은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의 발언이구요. 이윤석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것은 우리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문입니다. 당시에 주문들을 보면은 선택지가 두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지원한다” 두번째는 “열렬히 지원한다” 세번째 지원 안한다가 없어요.
이윤석: 그럼 앳된 조선인 소년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궁금해요. 그리고 추측으로 한번 해볼 수 있는 사진을 제가 한번 준비해 봤어요. 출격전에 기념사진을 찍은 건데 환하게 웃고 있는데~ 그런데 같은 인물들 다른 사진이예요. 그러나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표정을 보면 다른 사진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고 분위기도 무겁고 뭔가 침통해요. 울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이 사진을 알아보니까 가미카제들이 사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나중에 야스쿠니의 신이 되기 때문에 슬퍼도 티를 내면 안되고 무서워도 티를 내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대원들이 환하게 웃을 때까지 사진을 찍고 찍고 또 찍는 거예요. 12명 대원이 모두 웃을 때까지 계속 찍는 거예요.
일동: 아, 전원이 웃을 때까지~,
류근: 자기들이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었다는 거지요.
이윤석: 한 명이라도 안웃으면 안되니까 끝까지 웃을 때까지 찍은 거고, 그것도 힘드니까 출격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대원들을 동원해 가지고 자꾸 웃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전원 웃을 때까지 촬영을 하는 거지요.
심용환: 아주 만들어진 사진이네요.
최원정: 아니 상식적으로 죽음 직전에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가 있어요? 웃는 표정이 전부 연출이었다는 얘기잖아요.
길윤형: 지금 강릉에 살고 계시다가 돌아가신 민영락 할아버님이 계셨는데요. 1945년 3월 정도 돼서 오키나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죠. 갑자기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상관이 와서 너희들은 이제 특공대에 지원을 하게 됐다 라고 하더래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어린 마음에 이거 죽으라는 얘기구나 어떻게 해야하나 해서 화장실로 갔데요. 화장실에서 한참 생각하다가 지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왔더니 그때 일본인 또래 친구들이 면도칼로 손가락을 베어가지고 혈서를 쓰느니 뭐를 하느니 난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조선인인 민영락 소년이 선택여지가 없는 거죠. 자기도 세번째 손가락을 베서 혈서를 썼다고 합니다. 혈서 내용은 “2600만 조선인을 대표해서 지원한다” 라고 썼다고 합니다.
배영미: 당시 1945년 6월, 그러니까 패전하기 두달전에 육군의 항공본부가 가미카제 대원들의 심리상태를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그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약 3분의 1의 가미카제 대원들이 자신이 죽으러 가는 것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하였다 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본 육군항공본부가 조사한 거거든요. 완전히 속내를 드러내기가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1, 더 많은 숫자들이~
류근: 이런 거 보니까 광기잖아요, 광기, 광기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 전쟁의 폭풍우가 군국주의의 소나기에서 모두가 희생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말하면서 느끼는 게 뭐냐하면 일본이 이런 식으로 계속 몰아가지고 궁극적으로 일제가 원하는게 무엇이었을까?
최원정: 아니 어쨌든 자원이든 협박이든 가미카제가 목숨을 버렸어요 더 안타까운게 그 이후인 거 같애요. 정말 철저하게 죽음도 일본한테 이용 당하는~
길윤형: 제가 조선인 가미카제를 쓰면서 제일 충격 받았던 게 이것입니다. <매일신보> 1944.12.2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조선총독부가 기고한 매일신보 기사인데요. 인재웅의 창씨명은 마쓰이 히데오입니다. 그런데 조선인 최초로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되어서 전사한 마쓰이 히데오, 죽은 거지요.
심용환: 20살에 전사했는데 죽자마자 4계급 특진(소위), 그걸 조선총독부에서 뭐라고 했느냐 한자로 하면 神鷲, 일본어로 하면 가미 와시인데 가미와시가 신의 독수리 라는 뜻이에요. (“신취의 뒤를 따르라”)
배영미: 당시 육군 소년 비행병학교 재학하고 있는 아이들, 십대 중반의 아이들은 새끼 독수리 라고 불렀고, 이제 막 비행부대로 배속된 현역군인은 청년 독수리라고 불렀고요. 그렇게 하다가 가미카제로 죽고 나면 신의 독수리의 경지로 올려주는 거지요.
길윤형: 그렇게 처음 죽은 조선인 가미카제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듯이 사진에 이렇게 있듯이 인정과 그의 사진 옆에 가족 사진이 있죠. 이 기사가 너무 충격적인 기사인데요. 松井 少尉 遺族 蹶起 어머니는 女工으로, 누이동생은 女子挺身隊를 志願 그런 얘기입니다. 여기서 여자정신대는 위안부는 아니고요. 근로정신대라고 해서 일본 어디에 가서 일을 하는 겁니다 (조선여자근로대-일본과 국내의 군수공장 등에 강제취역). 친위대니까 그 사람은 군신이 되고 이 사람의 가족도 당연히 군신으로서 일본의 전쟁수행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이런 걸 미담의 도구로 사용하는 겁니다.
최원정: 정말 돈도 권력도 없는 가족이 철저하게 아들 죽음 이후에 이용당하고 있는 이것 자체가 큰 비극이네.
류근: 조선의 시인이 인재웅의 죽음을 다룬 詩가 실리어요. 저는 사실 이런 신문이 축소판이지만 실물을 처음 봅니다. 여기 매일신보에 나와요. 松井伍長頌歌에요. 오장은 계급입니다. 서정주 지음
<마쓰오 오장 송가>매일신보 1944.12.9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원
구국 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에게로 왔노니
(…)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조각조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바로 미당 서정주의 시입니다
최원정: (고개 숙이면서) 아, 맞다, 와~
이윤석: 아이, 참, 조선 청년들이 죽으려 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류근: 서정주 (1915~2000, 친일시인), 이런 시를 굳이 시라고 부를 가치도 없는데 과장하고 조롱하고 왜곡하고 선동하고 있는 거예요! 친일을 넘어선 반인륜의 범죄인데~ 사실은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사과도 없이 이분 그대로 지나갔어요. 이분의 이름과 영화가 ~
심용환: 나중에 해방되고 나서도 독재정권이 바뀔 때 마다 철저하게 이런 유사 글을 발표했던 분이니까~
류근: 친일문인으로서는 정리가 되었는데~ 저는 사실 그보다 더 넘어서는 반인륜 범죄자다 라고 생각하고 거에요.
최원정: 지금 그런 말씀하시는 류근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게 느껴져요. 지금 어려운 마음 속에 응어리 같은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예요.
배영미: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서정주 시인뿐만 아니라 노천명, 이광수 라는 문인들 조차 앞다투어 매일신보나 이런 신문잡지상에 인재웅(창씨개명: 마쓰이 히데오)을 군신으로 칭송하고 조선인 소년 청년들에게 그를 따르라는 것을 부추기는 글을 앞 다투어 게재를 했습니다.
신익 神翼
마쓰이 오장 영전에
일찍이 어느나라 민족이
죽음을 이처럼 용감하게
태연하게 받은 일이 있었더냐---------노천명, <매일신보> 1944.12.6.
신병 神兵
내 찾는 적의 배-아메리카의 배
(…)
부모님 모양, 고국의 산천
번개 지나듯 눈에
오직 겨누는 검은 점 하나--------------이광수, <매일신보> 1944.12.13.
윤치호, 형상윤 이분들도 당대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인 지식인 이었을 텐데 이분들도 조선인 가미카제 정신을 이어받아 더 많은 조선인들이 전선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레이테 결전장에도
반도 출신의 청년 용사들이
(…) 마쓰이 오장과 같은
그러한 기백을 가지고
(…) 이것이 황국신민 된 도리이며----------윤치호, <매일신보> 1944.12.8.
승리는 정신력
신취(신의 독수리)를 따르자 반도 청년
마쓰이 오장과 가네하라 군도는
전선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총후의 공장에서도 필요하고-----------------현상윤, <매일신보> 1944.12.12.
류근: 부끄러운 일이네요. 먹물들이 한게 있어요. 비겁한 먹물들! 우리 시대가 깊이 깊이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예요.
이윤석: 제가 가미카제 관련해서 가장 이상적으로 본 자료 중의 하나가 길윤형 기자님이 말씀하신 민영락이라는 조선인 대원의 자료인데, 그 민영락이라는 조선인 대원의 출격 전날에 사진이예요. 날짜가 여기 써있죠. 1945년 8월 14일, 그런데 이 사진 속의 주인공 민영락 대원의 출격일이 1945.8.15이었어요.
심용환: 해방되는 날이었어요?
이윤석: 그렇습니다. 항복을 선언한 시간은 오후 12시인데, 출격시간은 오후 2시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단 몇 시간 차이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겁니다. 그리고 원래 출격시간은 오전 11시였데요. 그런데 복통에 시달려 가지고 아파서 2시로 연기를 하자, 이런 사연이 있어 가지고, 이게 운명이다 그래야 되는지, 허무하다고 그래야 되는지~.
최원정: 아니 그러면 몇시간 차이, 며칠 차이로 목숨을 잃은 다른 청년들이 있었다는 얘기잖아요.
류근: 그럴테죠.
배영미: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 목숨을 잃은 가미카제 대원들, 본인 또는 가족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본인-가족의 의사와 무관), 야스쿠니에 합사가 되어 있구요. 야스쿠니 신사도 그때 죽은 사람들이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일본의 군국주의의 상징으로서 일부 정치가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그날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구나 라는 것을 가끔 느끼곤 합니다.
류근: 아베 총리도 여길 참배하고 있죠.
길윤형: 총리로서는 2013.12.26에 딱 한번 참배를 했구요. 매년 8.15 이나 봄이나 가을 제사 때에 아베 총리의 이름으로 공물을 보냅니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아베 신타로)가 일본 도쿄 제대법학부를 다니다가 갑자기 전쟁 말기에 군대에 끌려갔거든요. 해군의 가미카제 특공대에 선발이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참여는 안하고 출격명령 전에 전쟁이 끝난 거지요. 그래서 아베 총리는 지금 일본 헌법을 개정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베 총리의 아버지는 전쟁을 겼었던 세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가미카제 라는 참혹한 경험을 봤던 세대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선 미안해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을 하면 안된다는 평화주의적인 노선을 쭉 걸어오셨거든요. 아베 총리도 그런 쓰라린 전쟁의 경험을 가졌던 아버지의 교훈을 받아서 좀 더 평화로운 동아시아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드립니다.
이윤석: 아버지 말 들어야죠!
심용환: 이런 불효자를 봤나.
최원정: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제발---잘 해 주셨으면~ 오늘 조선인 가미카제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 많고 사실 이들을 아직 불편하게 여기는 우리의 정서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시작부터 흉물스럽다고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지금은 어떤 느낌이신지~?
류근: 녹화 내내 불나방이 떠올랐어요. 정말 불을 향해서 뛰어드는 불나방의 무모함 때문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했지만 불나방은 사실 살기 위한 본능 때문에 불을 향해 뛰어드는 거거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쟁은 미친 짓이다. 꼭 하고 싶어요. 전쟁은 미친 짓이다.
최원정: 네, 진짜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 말로 다 끝나는 거 같애요.
이윤석: 전쟁은 없어야 되는 거죠. 조선인 자살 특공대는 전쟁이라는 광기 그리고 군국주의 라는 광기에 희생양 이었기 때문에 타살특공대였다. 전쟁이 죽인 거예요.
길윤형: 그렇죠. 네, 자살이 아니다.
이윤석: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 드리면 가미카제는 군사적인 전과戰果는 없었고 범죄의 전과前科만 남겼다.
배영미: 맞습니다.
류근: 오늘 완전히 명언제조를~
이윤석: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정말 힘들더라구요.
배영미: 정말 지금 고민의 흔적이 오로지 느껴집니다. 저도 역사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다루고 글을 쓸 때 마다 굉장히 힘들고 사실 괴롭거든요. 사실 죽음을 절대 명제로 한 군국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전쟁이 만든 인간존엄 파괴의 극치이예요. 이거 이상의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여기에 조선인입니다. 그러니까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라는 이중의 억압, 그리고 이 중에 국가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떠한 논리와 어떠한 말로도 정당화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그런 걸 잘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최원정: 일본에서 한일 과거사를 연구하고 계시는 분이시잖아요. 앞으로 더 많은 역할 기대하겠습니다. 조선인 가미카제 이야기 여기서 마무리 하구요. 다음부터는 이 시대의 비극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45화에서 정리).
① 13세기 때 몽골(원)이 여몽연합군을 구성, 일본을 공격, 그런데, 당시 두 차례 엄청난 폭풍우로 몽골군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니까 일본은 이건 정말 神이 도왔다. 神風이 불었다. 카미카제에서 카미가 神, 카제가 風, 이때부터 일본의 신국의식이 형성됐고, 이때부터 일본인들의 오만방자가 시작되었다. 고로,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대패 이후 미군이 태평양을 탈환하고 일본 본토를 포위 침략해 오자, 일본은 다급하니까 신이 보호해 주는 나라야~ 몽골침입 때 신풍을 이번에는 젊은 소년 청년들을 적기, 적함을 들이박고 죽으면 신이 된다고 속이고 잔인하게 전장으로 내보냈다.
② 1941.12.7에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초기에는 일본이 약간 우세한 듯 했으나,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여, 바로 이듬해 여름 1942.6.4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대패하자, 전쟁의 주도권이 완전히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1944.6.15 사이판 전투, 1944.7.21 괌전투, 1942.8.7 과달카날 해전에서 연속대패, 그러다가 1944.10.20 마지막 방어선 격인 필리핀 레이테만 전투 패배 이후 일본 본토가 포위되자 바로 단순 무지하고 무모한 카미카제 작전을 구체화 하고 실행,
③ 총647개의 특공대가 만들어져서 3,300대의 특공대기가 출격했다고, 최종적인 작전 성공율은 한 6% 정도라고 가미카제 사망자수는 육군해군 통틀어서 약3,900명 이라고 한다. 미군 정규 항공모함이 완전히 격침된 건 없고, 상륙정-운송선-구축함 등의 소형 선박을 중심으로 47척이 피해를 봤다고, 미국은 가미카제를 바보폭탄 fool bomb 이라고 얘기 했다고,
④ 일본은 엄청난 잘못을 했음에도 아직 사과하지 않았고,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일본은 학교에서 일제 식민지와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 이야기를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이 참 안타깝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죽어서 신이 되다는데~상식이 통하지 않는 전술이다.
⑤ 카미카제 대원들은 출격 전날에, 전야에 술이든 약이든 취해서 침상을 부수고 창살을 부수고 울부짖었다. 칼을 뽑아 들고 난리치는 사람이나 북을 두드리면서 염불을 외며 비행장을 도는 사람도 있었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져서 자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본 가고시마현 미나미규슈시에 치란 특공평화회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작전 때 투입됐던 전투기와 전사한 가미카제 1,063명의 사진 유서 유품을 전시했는데, 거기에 조선인 가미카제도 있다고, 혼란, 혼란, 그들이 일본을 위해 충성을 받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⑥ 치란 기지에서 1036명이 출격했는데 죽은 전사자들 사진 중에 육군 가미카제로 죽은 조선인은 17명이 있다. 이게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죽지 않으면 기록이 남지 않는다. 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조선인, 일본인 할 것 없이 전사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상태에 빠졌고 그리고 창씨개명 때문에 본적지가 조선이 아니면 이름만 가지고는 판명이 불가능하였다. 10대 조선인 학생을 선생님이 치켜세우고 칭찬해서 카미카제에 참여하게 만들어서 이용해 먹은 나쁜 놈들,
⑦ <매일신보> 1944.12.2 기사에 조선총독부가 기고한 기사에 인재웅(창씨명 마쓰이 히데오)이 조선인 최초로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되어서 전사하다. 20살에 전사했는데 죽자마자 4계급 특진(소위), 그걸 조선총독부에서 神鷲, 일본어로 가미 와시 신의 독수리 라는 뜻, 신취의 뒤를 따르라, 이 기사가 너무 충격적인 기사인데, 인재웅의 어머니는 女工으로, 누이동생은 女子挺身隊를 志願 했다는 얘기, 이런 걸 미담의 도구로 사용하고, 돈도 권력도 없는 가족이 아들의 죽음 이후에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는 자체가 큰 비극.
⑧ 인재웅의 죽음이, 1944.12.9 매일신보에 松井伍長頌歌란 詩로 실렸다. 오장은 계급입니다. 지은이는 서정주, 서정주는 친일문인으로서는 정리가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서정주 시인뿐만 아니라 노천명, 이광수 라는 문인들 조차 앞다투어 매일신보나 신문잡지에 인재웅(창씨개명: 마쓰이 히데오)을 군신으로 칭송하고 조선인 소년 청년들에게 그를 따르라는 것을 부추기는 글을 앞 다투어 게재를 했다. 윤치호, 현상윤도 당대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인 지식인 이었을 텐데 이분들도 조선인 가미카제 정신을 이어받아 더 많은 조선인들이 전선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들을 발표했다.
⑨ 그렇게 해서 목숨을 잃은 가미카제 대원들, 본인 또는 가족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본인과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야스쿠니에 합사가 되어 있다. 야스쿠니 신사도 그때 죽은 사람들이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일본의 군국주의의 상징으로서 일부 정치가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그날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⑩ 아베는 총리로서 2013.12.26에 딱 한번 참배를 했다. 매년 8.15 이나 봄이나 가을 제사 때에 아베 총리의 이름으로 공물을 보낸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아베 신타로)가 일본 도쿄 제대법학부를 다니다가 갑자기 전쟁 말기에 군대에 끌려갔다. 해군의 가미카제 특공대에 선발이 된다. 그런데 아베 신타로가 출격 전에 전쟁이 끝난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지금 일본 헌법을 개정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는 전쟁을 겼었던 세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가미카제 라는 참혹한 경험을 봤던 세대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선 미안해 했고 그리고 일본은 전쟁을 하면 안된다는 평화주의적인 노선을 쭉 걸어왔다. 아베 총리도 그런 쓰라린 전쟁의 경험을 가졌던 아버지의 교훈을 받아서 좀 더 평화로운 동아시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⑪ 일본 특공대 가미카제는 군국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전쟁이 만든 인간존엄 파괴의 극치이다. 이것 이상의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에 조선인이 있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라는 이중의 억압, 여기에 일본 국가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존재다. 어떠한 논리와 어떠한 말로도 정당화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걸 잘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다. 결론적으로 전쟁은 미친 짓이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전쟁은 없어야 된다. 조선인 자살 특공대는 전쟁이라는 광기, 군국주의라는 광기에 희생양이었고 타살특공대였다. 자살이 아니다. 가미카제는 군사적인 전과戰果는 없었고 범죄의 전과前科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