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이마
박용철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또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한 즐검이랴.
<시문학 창간호>(1930)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직서적, 감각적, 서정적, 고백적, 애상적
◆ 표현
* 각 연의 1행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의미를 형성함.
* 각 연의 2행은 가정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외로움의 정도를 알게 해 줌.
* 어둠과 밝음의 대립적 이미지, 시각과 촉각적 이미지의 사용
*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으로 운율감을 형성함.
* 설의적 표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 명암의 대비, 시각적 이미지
* 외로움 → 화자의 주된 정서로 직서적으로 표현됨.
* 산꽃, 귀또리, 길 잃은 별 → 화자의 소망이 투영된 대상으로, 위로와 위안의 대상임.
* 눈덮개 고이 내리면 환한 왼몸은 → 낯설게 표현함(눈을 감으면), 역설적 표현
(눈을 감으면 환한)
*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燐光)
→ 어두운 곳에서 볼 때 청백색의 약한 빛, 극한적인 외로움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시각적 이미지
* 얼마나한 기쁨이랴. → 화자의 고독의 정도를 알 수 있음.
* 파란 불 → 2연의 인광
*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 잠은 안 오고 정신이 점점 맑아져 가는
상황. 외로움으로 밤을 지새고 있는 모습
* 즐검 → 즐거움(시적 허용)
◆ 제재 : 싸늘한 이마 → 외롭고 쓸쓸한 화자의 모습
◆ 주제 : 견딜 수 없는 외로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화자가 느끼는 외로움
◆ 2연 : 화자의 외로움 극대화
◆ 3연 : 불면증의 고통과 같은 외로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적 자아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2행 1연의 전 3연의 간결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연의 첫 행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둘째 행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벗삼고 싶은 대상을 보여 주고 있다. '~라도 있으면(있다면)'이라는 표현은 화자의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는 것으로, 화자는 그 대상을 각각 '산꽃, 귀뚜리, 별이라는 평범한 사물로 제시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이라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 싼 세계를 어둠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그 속에서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2연에서는 1연과는 다른 방식인 비유적 표현으로 외로움이 나타나 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자신의 몸이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처럼 느껴진다는 진술에서 그가 겪고 있는 외로움이 가히 짐작된다. 섬뜩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한 마리 '귀뚜리'만 있으면 외로움을 이겨내는 큰 기쁨이 되리라고 한다.
3연에서 외로움은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으로 나타나 있다. '파란 불', 즉 예민한 신경으로 인해 잠을 재촉하면 할수록 머리 속이 초롱초롱해지며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같이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 이럴 때,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큰 즐거움이겠냐고 화자는 자문하고 있다.
화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왜 어둠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이 시느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지만, 그런 대로 이 시가 읽히는 것은 바로 화자의 진한 호소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저 간단히 일제 치하라는 시대 상황으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는 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의 과잉'에 박용철의 기교가 결합된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박용철[ 朴龍喆 ] : 시인.
호 : 용아(龍兒)
출생 – 사망 : 1904년 ~ 1938년
성격 : 시인
출신지 : 전라남도 광산
성별 : 남
본관 : 충주(忠州)
저서(작품) : 떠나가는 배
<정의> 1904∼1938. 시인.
<개설>
본관은 충주(忠州). 아호는 용아(龍兒). 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 아버지 박하준(朴夏駿)과 어머니 고광고씨(高光高氏, 혹은 長澤高氏)의 4남매 중 장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1920년 배재학당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 귀향하였다.
그 뒤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도쿄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몇 달 만에 자퇴하였다. 16세 때 울산(蔚山) 김씨 김회숙(金會淑)과 혼인하였다가 1929년 이혼하고, 1931년 5월 누이동생 박봉자(朴鳳子)의 이화여자전문학교 친구였던 임정희(林貞姬)와 재혼하였다.
재학 중 수리과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사귄 김영랑(金永郎)과 교우로 관계하면서 비롯되었다. 문단 활동 이외의 경력은 전혀 없다. 1930년대에는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詩文學)』 3권, 1931년에는 『문예월간(文藝月刊)』 4권, 1934년에는 『문학(文學)』 3권 등 도합 10권을 간행하였다.
또한 그가 주재하였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 같은 시문학동인이었던 정지용(鄭芝溶)의 『정지용시집』과 김영랑의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문단 활동으로는 자신이 주축이 된 시문학동인 활동과 ‘해외문학파’,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하여 입센(Ibsen,H.) 원작의 『인형의 집』 등 연극공연을 위한 몇 편의 희곡을 번역하였다. 정지용 등과 시집과 문예지를 간행하는 등 문학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집은 내지 못하고 1938년 서울에서 후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30년 3월『시문학』 창간호에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싸늘한 이마」·「비내리는 날」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뒤로 『문예월간』·『문학』 및 기타의 잡지에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발표되지 않고 유고로 전하여지다가 뒤에 전집에 수록된 작품도 상당수에 달한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어딘가 정박지를 찾아 떠나가는 ‘배’에다 인생을 비유한 작품이다. 즉, 인정과 고향을 되돌아보는 현실과 ‘삶’의 행정(行程) 속에서 아무런 마련도 없이 또 다른 정박지를 향하여 떠나가는 이상과의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1938년『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에 발표된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는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서 그의 시작이론(詩作理論)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이나 김영랑의 시를 못 따르지만, 『시문학』·『문예월간』·『문학』 등 문예지를 간행하였고, 방대한 역시편(譯詩篇) 등을 통하여 해외문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큰 공적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서구문학사조에 편향되어 혼류를 이루었던 1920년대 문단을 크게 전환시켜 ‘살’과 ‘피’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보다 높은 차원의 시창작, 즉 ‘민족언어의 완성’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유해는 고향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우산리에 안장되었고, 광주공원에 영랑의 시비와 함께 그의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시비에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의 한 절이 새겨져 있다.
유작집으로 『박용철전집』 2권이 각각 1939·1940년 동광당서점에서 간행되었고, 대표적 평론으로 「효과주의비평론강(效果主義批評論綱)」(1931)·「문예시평(文藝時評)」(1931)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 국민서관, 1973)
『한국현대시인연구』-기타(정태용, 어문각, 1976)
『한국현대시인연구』(김학동, 민음사, 1977)
『한국작가전기연구』(이어령, 동화출판공사, 1980)
「박용철의 인간성과 예술」(김광섭, 『조광』, 1940.8.)
「박용철과 나」(김영랑, 『자유문학』, 1958.6.)
「용아박용철연구」(김윤식, 『학술원논문집』 9, 1970)
[네이버 지식백과] 박용철 [朴龍喆]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첫댓글 히나만 있어도
외롭지 않으리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쉬임없이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