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 갯벌이 가을을 품는 법
바다는 늘 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바다는 물이 물러간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전남 신안 증도의 가을이 그렇다. 바닷물이 한 걸음 물러서면 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위로 붉은빛과 초록빛이 번져간다. 그 사이를 가느다란 물길이 구불구불 흐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누군가 대지 위에 긴 붓을 들어 한 획 한 획 그어놓은 그림 같다. 그러나 이 그림은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다. 밀물과 썰물, 바람과 햇빛, 염분과 식물이 오랜 시간 함께 완성해 온 생명의 풍경이다.
증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음을 붙드는 것은 색이다. 초록과 붉은빛, 자줏빛이 갯벌을 뒤덮고 있다.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하고 들판이라고 하기에는 물의 흔적이 선명하다. 그 사이를 은빛 물길이 뱀처럼 굽이쳐 흐른다. 곧게 흐르는 법이 없다. 낮은 곳을 찾아 돌아가고, 막히면 방향을 바꾸고,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은 직선보다 곡선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
갯벌은 얼핏 고요해 보인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작은 게가 구멍을 드나들고, 갯지렁이와 조개류가 펄 속에서 살아간다. 물이 차오르면 물고기가 들어오고 물이 빠지면 새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앉는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진흙밭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는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생태계의 시간이 쉼 없이 이어진다. 갯벌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가 함께 키우는 거대한 생명의 밭이다.
그 위를 붉게 물들이는 염생식물은 증도의 가을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짠물과 바닷바람을 견디며 살아가는 식물들은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도 제 몫의 계절을 피워낸다. 여름의 초록을 지나 가을이 깊어질수록 붉고 자줏빛을 띠는 군락은 갯벌을 거대한 융단처럼 바꾸어 놓는다. 화려한 꽃잎을 가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견딘 생명이 제 안의 색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 붉은 들판을 바라보며 ‘견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염분이 많은 땅,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이 들고 나는 환경에서 식물은 자신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 왔다. 자연은 불평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을 거부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낸다. 그래서 갯벌의 작은 풀 한 포기는 때로 사람보다 더 큰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척박함이 반드시 불행인 것은 아니며, 견딤이 반드시 초라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물이 빠진 갯벌에 남은 물길은 더욱 아름답다. 이리 휘고 저리 굽어 멀리 이어진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다. 그 길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삶도 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곧은길만 좋은 길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빨리 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고, 돌아가는 길을 실패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자연에는 실패한 곡선이 없다. 물길은 굽어도 결국 바다에 닿는다.
증도의 갯벌을 가로지르는 길과 작은 쉼터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 놓인 조심스러운 경계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자연을 바라본다. 발아래 펼쳐진 생명의 터전을 함부로 밟지 않고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일, 그것 역시 자연을 사랑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한다. 손으로 만지고 싶고,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자연에게 필요한 사랑은 때때로 거리를 지켜주는 일이다.
증도의 또 다른 얼굴은 염전이다. 반듯하게 나뉜 염전의 수면 위로 저녁이 내려앉으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진다. 해가 기울며 붉고 노란 빛을 풀어놓고 구름의 그림자가 물 위에 내려앉는다. 소금이 태어나는 자리에 하늘이 함께 들어와 있는 듯하다. 갯벌의 물길이 자연이 그린 곡선이라면 염전은 사람이 자연과 타협하며 만들어낸 직선이다. 하나는 굽이치고 하나는 반듯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것은 결국 같은 바닷물이다.
소금 한 알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생각해 본다. 바닷물이 들어와 햇빛과 바람을 만나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작은 결정이 남는다. 우리가 식탁에서 너무도 쉽게 집어 드는 한 줌의 소금 속에는 바다와 태양과 바람, 그리고 사람의 기다림이 들어 있다. 자연이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을 인간은 노동으로 받아낸다. 증도의 염전 앞에서는 평범했던 소금 한 알조차 새롭게 보인다.
생태계는 어느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갯벌과 바닷물, 염생식물과 작은 생물, 새와 사람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 하나가 사라지면 그 생명을 먹고 살던 다른 생명에게 변화가 생긴다. 그렇게 작은 변화는 조금씩 더 큰 생태계로 번져간다. 자연은 독립된 존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관계의 그물이다.
그래서 갯벌을 지킨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보존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수많은 생명의 시간을 지키는 일이며,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완충의 공간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것은 눈앞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자연은 먹을 것을 내어주고, 생명을 품으며, 우리의 삶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받쳐준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은 결국 인간의 삶을 보호한다는 말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가을 햇살 아래 붉어진 갯벌을 오래 바라본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작은 풀들이 몸을 흔든다. 그것들은 거대한 나무처럼 위엄을 자랑하지도 않고 화려한 꽃처럼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낮은 곳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간다. 한 포기만 놓고 보면 연약하지만 수없이 모이면 드넓은 갯벌의 계절을 바꿔놓는다. 자연은 그렇게 작은 것들이 함께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 한 번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작은 마음들이 모이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쓰레기 하나를 덜 버리고, 생명의 터전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자연에서 가져가는 것보다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마음. 그런 작은 태도가 쌓여야 이 붉은 갯벌도 오래도록 계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증도에서 나는 자연이 만든 거대한 생태수업을 만난다.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고, 식물은 짠 땅에 뿌리를 내리며, 작은 생명들은 갯벌 속에서 자신의 하루를 살아낸다. 밀물이 오면 물속에 몸을 맡기고 썰물이 오면 다시 햇빛을 맞는다. 어느 것도 계절을 재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살아내고 물러서며 또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준다.
해가 기울자 염전의 물빛이 서서히 달라진다. 낮 동안 품었던 하늘을 다시 하늘에게 돌려주는 시간이다. 갯벌의 붉은빛도 조금씩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밤이 지나면 물이 다시 들고, 다시 빠지고, 작은 생명들은 또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증도를 떠나며 뒤돌아본다. 구불구불한 물길 하나가 붉은 갯벌 사이로 오래 이어져 있다. 문득 삶도 저 물길처럼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돌아가도 좋고, 때로 낮은 곳으로 흘러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흐름을 잃지 않는 일이다.
바다가 물러난 자리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바다를 보았다. 물이 사라진 자리에 생명이 있었고, 척박한 땅에는 가장 선명한 가을이 피어 있었다. 증도의 갯벌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생명은 좋은 자리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살아낼 방법을 찾아갈 때 더욱 깊은 빛을 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증도의 붉은 갯벌을 돌아 나오며 알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은 멀리 있는 거창한 풍경이 아니었다. 작은 게 한 마리가 지나간 흔적, 짠물에 뿌리를 내린 풀 한 포기, 밀물과 썰물이 남겨놓은 가느다란 물길까지도 모두 자연의 문장이었다. 증도는 그 문장들을 한데 모아, 오늘도 바다 위에 가장 오래된 생명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