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넘다
김채영
낙조가 절정일 때면 서쪽으로 창문이 난 작은방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어 온다. 서녘 하늘가에 활짝 펼쳐진 연분홍 치맛자락. 아파트 유리창들도 이 시간이면 분홍 색유리로 변해 있고, 구름마저 붉은빛으로 동쪽 하늘까지 징검징검 이어져 있다. 그 위로 저녁 새들이 한 떼 후루루 --빠르게 날아 둥지로 향한다.
차를 타고 길을 떠날 때면 산은 늘 싱그러운 초록으로 달려오곤 했다. 그리고 가까운 산 뒤에 겹쳐지는 또 다른 산의 원경들이 중첩되어 보랏빛 혹은 청회색 빛으로 꾸물거리며 따라오곤 했다. 언제나 그렇게 내 인생은 산 너머에서 실타래 풀리 듯 산 끝에 매달려 내 안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산 너머에는 내가 사랑했던 추억 속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릴 적 헤어진 소꿉친구도, 본의 아니게 오해로 멀어진 사람도, 소식이 끊겨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안타깝게 고인이 된 사람, 모두 산 너머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디로 어떻게 지나든 종내 산은 마을을 향한 쪽으로 닿아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어둠이 채 깔리기 직전, 밝혀놓은 수은등을 보면 괜스레 무언가가 목젖까지 뜨겁게 젖어온다. 완성되지 않은 어둠에 빛을 내지 못하는 묽은 수은등은 눈물이 얼비치는 듯하다. 그것들은 비눗방울처럼 너무도 투명해서 한순간 툭 터져 버릴 것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굳이 슬픔을 형상화하라면 저런 모양이 아닐까. 그 무렵이면 나는 누군가가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진다. 해가 지면 사람이 그리운 것은 따스한 부모의 체온에 안겨 자란 포유기적인 습성이 아닌가.
'산 너머'라는 의미는 내게 오래된 가슴앓이 같은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산 너머 희망을 찾아 산세가 험한 길을 오늘 때, 이미 내 작은 희망도 편승하고 있었으니까. 점심을 먹고 출발하면 산자락에서 몽환처럼 푸른 이내가 너울거렸다. 외가 마을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은 아홉 개의 절이 존재했다는 전설로 구절산이라고 했고, 구절초 꽃이 많아서 구절산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산길에는 이름처럼 하얀 구절초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우리의 발치에 어지럽게 밟혀 흩어지곤 했었다. 산곡을 넘고 넘어 구절산 봉우리의 절을 찾아가는 길이다. 불공을 드리기 위해 공양미를 무겁게이고, 한 손에는 양초 보자기를 들고 휘적휘적 앞서가는 어머니에게 나는 다리가 아프다며 업고 가자고 졸라댔다.
"조금만 더 걸으면 절이 나온단다 그곳에 가면 떡도 있고 사탕도 먹을 수 있어"
그때 그 산 너머에 있는 나의 희망은 백설기 떡과 알록달록한 사탕이었다. 어머니는 병든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 나는 떡과 제단에 올리는 사탕을 위해 그 험한 산을 힘들여 넘어야 했다. 어머니는 수없이 구절산의 절에 올라 정성을 들였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산을 넘고 싶어 하셨다. 김을 매다가도, 다듬이질을 하다가도 넋을 놓고 먼 산을 보며 행복했던 도회지 생활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결국 어린 남매들을 외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도망치듯 산 너머 도시를 향해 훌쩍 떠났다. 나는 어머니가 떠나간 산을 목을 빼고 바라다보며 그곳으로 가기를 갈망했었다. 장터가 가까운 먼 산을 보기 위해 동산에 올라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저 산만 넘으면 정류소가 있다는데, 거기에서는 도대체 몇 개의 산을 더 넘어야 어머니를 찾아갈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거리를 가늠할 때 막연히 산을 떠올리는 것이 습관처럼 돼버렸다. 따라서 굽이굽이 꼬이고 치이는 녹녹치 않은 내 생애, 누워도 잠을 자도 언제나 첩첩산중 넘는 기분으로 살았다.
신이 인간의 앞날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 어찌 대처할지, 어떤 길이 놓여있을지, 스스로 깨치고 답을 찾게 할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생의 답을 미리 알아버리면 절박하게 목을 맬 희망이 더 이상 없지 않은가. 모험의 묘미조차 없는 낮은 산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여 더 높은 산에 오르고 싶어 하는가 보다. 신은 골짜기마다 안개를 풀어서 우리에게 길을 잃게 하기도 한다.
높은 산일 수록 비옥하여 꽃과 열매가 풍성하고 고운 음계로 아름다운 새들이 온종일 유혹한다. 사람들은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이런저런 무한한 도전을 해 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장대한 예각의 산에 오르면 산 아래 도시는 성냥갑들의 모형처럼 보잘것없이 보이고 몰아를 경험한다고 들었다. 평생 역경과 고난 속에서 살아온 나 역시 찾아온 행복의 기준이 평범함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런데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내 인생의 산길 어디쯤 벼랑이 숨어 있을지, 또는 파랑새가 사는 숲이 있을지 전혀 모르는 일이다. 삶은 산처럼 신비하고 힘겹다. 희망이 있으므로 산 너머는 언제나 미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