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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역사를 읽은 분들은 대단히 혼란 스러워 하지요. 고대에는 우리가 중국이었다라는 것을 상상 조차 안하는 것이지요. 중국이라는 이름이 지금의 中華人民共和國의 약칭인 中國과 아시아 역사에서의 中國(the middle kingdom)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혼동하는 역사의 착시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中原에서 일어난 역사는 모두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였다라는 역사 錯視(착시) 말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종족으로 구분하면 南方係의 나라 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은 붉은 색을 좋아 합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색깔로서 防衛를 정했더랬지요. 북쪽은 검은색, 동쪽은 백색, 동쪽은 청색, 남쪽은 붉은 색 입니다. 즉 색깔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종족 정체성은 남방계 입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종족은 유사 이래 끊임 없이 북방 종족의 피를 수혈 받아야 했으며 그 결과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우리와의 혈연적 천연성은 73%의 일본을 제치고 78% 일치 한다고 합니다. 동아시아를 단순히 종족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 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아시아 변방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요. 우리는 有史 이래로 한반도에서 터전을 잡고 대대손손 한반도에서 살아왓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는 檀君으로 부터 시작 되었으며 단군 시대는 약 5천년이 되엇다는 역사 였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우리의 기원을 단군으로 부터 찿습니다. 그러나 단군은 우리 역사에서 시작 되는 것이 아니라 鮮卑族의 세운 北魏의 역사를 다룬 魏書에서 부터 등장 합니다. http://blog.daum.net/omye-mail/790 우리 역사속의 단군에 관한 이야기는 일연이 쓴 三國遺事에 등장 합니다. 일연은 스스로 삼국유사의 내용이 魏書를 MOTIVE로 썼다고 밝히고 있지요. 위서는 拓跋鮮卑族(탁발선비족)의 역사서 입니다. 탁발선비족 http://blog.daum.net/omye-mail/570 즉 일연은 우리 단군의 역사와 우리 역사를 위서에서 찿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단군의 기록을 남기는 선비의 역사와 우리 역사의 관련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비의 역사는 중국 塞外의 야만 오랑캐 정도로 치부하고 그 역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중국 새외의 역사를 외면하는 걸까요? 중국 새외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지만 우리 역사의 본 모습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淳維(匈奴)와 鮮卑 그리고 동호라고 불리우는 종족들입니다. 흉노 http://blog.daum.net/omye-mail/813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단석괴 선비와 고구려 그리고 말갈을 같은 나라로 보고 있지요. 실제로 唐初八史는 魏虜 胡虜 索虜는 同種同類라고 표현을 하며 중국 북방의 종족 이름을 시대별로 다르게 표현을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종동류 또는 동종이류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것을 축소 시켜서 보면 지금의 한반도에서도 지방 마다 약간씩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언어도 조금씩 다르며 생김새도 조금씩 다른데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 끝자락 까지 동일한 언어와 동일한 생김새의 종족들이 같은 나라를 이루고 살아야만이 그것이 같은 종족과 같은 나라라는 생각을 가진 우리가 역사의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적어도 春秋戰國時代의 지배자들은 흉노들 입니다. 중국 역사 즉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가 아닌 중원의 역사는 三帝로 부터 시작 됩니다. 삼제란 炎帝神農과 黃帝軒轅과 蚩尤天王으로 부터 시작 됩니다. 이들 삼제의 고향은 모두 감숙성 天水 부근 입니다. 인류 최초의 성씨는 太皞伏羲(태호복희)의 성씨라는 風氏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후손이 전해지지 않고 炎帝神農(염제신농)의 후손만이 天水姜氏로 전해 집니다. 그런데 감숙성 천수는 흉노의 땅이며 삼제는 흉노인들이라는 것이지요. 黃帝軒轅(황제헌원)을 자신들의 실직적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종족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그야말로 한족을 의미하는 漢이라는 글자는 중원의 한가운를 흐르는 長江의 최대 지류인 漢水를 배경으로 살아가던 종족을 말하는 것이지요. 한수 http://blog.daum.net/omye-mail/852 그러나 천수나 한수는 남방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종족을 한족이라 부르는 것이며 왜 중화인민공화국은 남방을 의미하는 붉은 색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고대 원조 한족이나 한족 이전의 하화족은 농경 민족이기는 했으나 남방 종족은 아닌 것으로 보여 집니다. 漢을 세운 유방의 종족적 정체성은 정확하게 하화족이지요. 하화족은 회수를 배경으로 하는 종족입니다. 즉 고대의 한족은 회수의 하화족인 것이며 한나라는 하화족이 지배 종족이지요. 신라의 지배 종족은 秦과 같은 묘예이지만 신라를 구성하는 종족의 면모는 하화족과 백제 고구려인이 섞여 서 형성된 나라라는 것이 <수서>의 기록 이지요. 秦韓 http://blog.daum.net/omye-mail/889 하화족이나 한족은 크게 보면 모두 東夷族 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신들의 실질적 역사는 周나라로 부터 시작된다고 주장 하지요. 주나라의 종족적 정체성 역시 흉노 입니다. 만약 하나라와 은(상)나라를 중국 역사로 인정 한다면 한 은 시대의 종족들은 東夷이며 하화족이라 할 수 있지요. 秦나라는 흉노 중에서도 苗裔 입니다. 진나라의 중심 위치는 소위 하투 지구라고 하는 오도로스 평원이며 지금의 섬서성 일대 입니다. 秦의 도읍지는 함양이며 秦을 무너 트린 나라가 漢이며 한조의 도읍지는 장안(서안)이며 漢 때 부터 중원의 중심이 동으로 하는 함양함양ㅎ 즉 진의 함양과 전한의 장안성 그리고 후한의 낙양으로 이어지는 고대 중원의 도읍지의 위치 변경은 중국이라는 위치가 서서히 동으로 이동 햇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진나라와 전한 까지는 중국의 중원은 섬서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진 까지의 중국 중심은 흉노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 까지 보면 흉노와 동이가 고대 중원의 주인이며 흉노와 동이가 번갈아 가면서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잇지요. 흉노는 수렵과 유목의 종족들이지만 동이는 농경 종족입니다. 그야말로 수렵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이 번걸아 가면서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나라가 쇠락의 길을 걷자 중국 대륙은 수 많은 나라들로 분열 되는데 그 분열의 역사가 소위 말하는 춘추전국시대라 하는 것이며 그 대표적인 나라들이 아래 지도에 나타나는 나라들이지요.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이 보다도 훨신 더 많은 나라들이 존재 햇으며 각 고을이 모두 나라라고 햇던 것입니다. 이랬던 中元이 아래 지도의 전국 칠웅이라는 나라로 재편 되는 것입니다. 칠웅은 초나라를 빼고는 모두 북방종족의 나라임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우리와 불가분의 나라라는 韓은 중원의 한복판에 있음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韓과 濊는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高句麗의 舊民이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고구리가 단순히 중원의 변방 국가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며 고구리의 역사를 단순히 高句麗라는 이름에서만 찿으려 한다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지요. 고구리는 東胡, 伯夷, 東夷등으로 불리우는 다종족 역사의 기록을 간과 하면 안되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정에 의한 역사를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中原의 역사는 唐이 百濟와 高句麗를 멸망 시키는 때까지는 모두 부풀려진 허구의 역사라고 단정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관계된 역사는 모두 거짓입니다. 일단 연나라의 위치 비정이 잘못된 역사 입니다. 동양 역사는 燕나라의 위치를 지금의 河北과 遼東半島로 비정을 하지만 연나라의 燕의 기원이 지금의 濟水이며 제수의 원래 이름이 沿 입니다. 연나라의 영토는 산서성과 하북 그리고 산동반도와 하남 일대인 것이지요. 즉 연나라의 위치는 지금의 산동반도이며 古代 遼東의 위치는 지금의 산동반도와 하남 일대이며 요동의 위치 이동에 따라서 고대 동아시아 역사는 모두 북쪽으로 3천리는 끌어 올려 져서 해석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秦과 漢의 역사 영토 역시 부풀려져 그려 지는 것입니다. 秦 漢 특히 漢의 영토는 東北으로는 山東半島 서쪽 경계와 黃河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고대 요동을 지금의 遼東半島로 비정을 하여 마치 한반도 한강 북쪽 까지 한의 영토 처럼 그려 넣고 잇는 것이지요. 漢이 솨락의 길을 걸으면서 한이라는 중원의 통일 왕조가 위촉오라는 삼국으로 분열 됩니다. 위촉오가 마치 중국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영역에서 전쟁을 하고 중국 대륙 전체가 위촉오 삼국의 무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華北과 華南을 크게 벗어 나지 않은 것이며 이들 삼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 모두 이들의 영토라는 해석을 하는 역사의 고의적이거나 착시적 오류 이지요. 중원의 바깥은 모두 변방일 뿐이며 曹魏의 실질적 영토는 중원을 벗어 나지 못했으며 蜀과 吳만이 중원에 교집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전쟁을 햇던 것이지요. 적벽대전이 長江의 전쟁 이지만 오나라의 영토는 장강의 남쪽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때의 장강 유역은 미개발 상태라는 것이며 이후 오호십육국으로 중원이 혼란 스러워 지면서 西晉의 사마씨들이 급히 남쪽으로 망명 하면서 장강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즉 산동반도와 하남의 동쪽 그리고 산서성과 하북은 曹魏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햇던 것이며 조위가 사마의를 보내 공손연을 토벙하는 이유는 공손연이 조위의 변방에서 계속 위협적이기 때문에 제거를 하는 것이며 토벌 후 16세 이상의 남자를 모두 죽이고 모두 철수를 하는 것으로도 이들 지역은 중원의 실질적 영토가 아닌 변방에 불과 햇음을 알 수 있습니다. 秦始皇과 漢武帝가 요동을 정벌하고 영토화 하려고 한사군을 설치 하는 등의 시도를 햇지만 요동은 멀고 지키기 어려워 秦과 漢의 직접적 영토화 하기 어려웠던 지역입니다. 즉 위촉오 3국 시대 까지도 중국의 모든 지역이 중국의 핵심 영토 엿다라는 것은 역사의 착각입니다. 曹魏에 의해 중원이 평정 되고 조위는 司馬懿의 손자인 司馬炎이 조위를 무너트리고 西晉을 세우고 서진이 멸망하는 원인이 八王의 亂 입니다. 위 지도는 八王들의 위치라고 동양 역사는 주장하는 것이며 정설 처럼 말하지요. 그러나 팔왕이란 서진의 도읍지는 낙양이며 팔왕이란 낙양의 서진 왕조를 방위하기 위한 사마씨 일족들의 일종의 수도 경비 사령부의 역할 을 하던 왕조들 입니다. 따라서 팔왕의 위치가 위와 같은 지도에 위치해 있다면 서진의 실질적 위협이 되엇던 선비와 고구리등의 북방 종족들을 어떻게 방비 할 수 있을까요? 이 대목은 동양 역사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영토 부풀리기의 전형적인 모습 입니다. 五胡十六國 時代는 우리 역사라는 백제와 신라의 모습이 등장 하는 시기 입니다. 고구리에서 분리된 백제는 공손연이 멸망하고 난 후 등장 하며 그 위치가 공손씨의 영역과 겹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수서와 북사에 등장하는데 우리 국사학게에서는 이 기록을 수서와 북사의 오류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오류라는 것이지요. 그런식이라면 삼국사기는 구당서를 MOTIVE로 쓴 역사서인데 구당서는 어찌 믿는 것이며 삼국사기는 어찌 믿는 건가요? 백제와 신라의 건국 시기는 어느 정도 그 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존재 하지만 고구려의 역사는 건국 시기를 알 수 잇는 기록이 존재 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당서와 삼국사기 최치원전에서 고구리의 존속긴이 900년 이라는 기록이 보일 뿐이며 고구리가 멸망한 때가 668년 이기 때문에 고구리의 건국 년도는 기원전 232년으로 추정 할 수 있지요 고구리 초기의 역사는 부여와 교집합적으로 나타 납니다. 또한 고구리의 최전성기 였다는 건흥제(장수) 때의 고구리 역사는 중원에서 자주 목격 됩니다. 고구리 왕조와 동종동류라는 수조는 남북조 시대를 마감 하고 중원을 통일 합니다. 고구리와 동종동류 였다는 수조와 당조는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수조와 당조 시기에 장강의 남쪽은 본격적으로 개발 되며 중국의 역사에 포함 되는 것입니다. 당조는 남조들의 종족들을 우대했던 것으로 보여 지며 남북조를 통합하기 위해 호한융합의 정책을 추진 하지요. 훗날의 역사는 소수의 지배 계층이 당조의 지배게층인 탁발 선비가 잘못된 선택으로 탁발선비족의 소멸이라는 결과를 가져 왔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룩한 당 조정의 입장에서는 국토 통일 못지 않게 종족의 통일도 중요 햇을 것입니다. 소수의 지배자들이 다수의 남방계 종족에 완전히 흡수된 케이스 입니다. 이후의 역사는 소수의 북방계 지배자는 다수의 남방계 종족을 잠시 지배는 할 수 있지만 영원히 지배 할 수 없음 을 알고 무자비한 살육의 역사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唐朝는 오대십국 시대에 남방계 나라들에 의해 멸망 합니다. 唐朝가 멸망하면서 대륙 동부의 신라와 동북 방면의 발해 역시 唐朝와 거의 같은 시기에 멸망을 하는 것입니다. 高句麗와 同種同類인 唐의 역사를 우리 역사가 아니라면 신라는 우리 역사가 아니며 고구리나 백제는 어떻게 우리 역사 일 수 있을 까요?
왕건의 고려로 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스스로의 종족 정체성을 漢族이라 하지만 14억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루는 종족 가운데 순수한 漢族은 불과 수천만 밖에 되지 않습니다. 淸代 까지의 중원의 주인은 우리 겨레 이며 우리가 중국입니다. 이제 부터 왜 우리가 중국인지 역사를 처음 부터 다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시아 有史는 상(은)나라로 부터 시작 됩니다. 四書三經의 하나인 <孟子>를 주해한 <맹자주소(孟子注疏)>등을 보면 “하·은·주 삼대(三代)의 전성기에도 그 지경(地境)이 1,000 리를 넘지 못했으며 (夏后殷周之盛地未有過千里者也), 제(齊)나라 땅은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 사방에까지 이르렀다. (而齊有其地矣鷄鳴狗吠相聞而達乎四境)”다고 하였다. 라고 했지요. 이 기록을 따라서 지도를 그려 보면 위 지도가 거의 실제와 같은 상나라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아래와 같이 이 시기의 상나라의 영역을 그리고 있지요.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중국 역사라고 생각하는 상나라의 영역을 확대 해석하는 것일까요? 商이라는 한자의 역사를 따라가 봅시다. 亳은
그러나 상나라는 일부 유물이 발견 되기는 하지만 전설의 시대 입니다. 상나라는 주무왕에 의해 멸망하며 이때 부터 중원의 왕조들이 등장 합니다. 자, 이제 부터 중국의 실질적 역사가 시작 되는 周나라의 정체성을 살펴 보고 주나라가 우리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역사를 간직힌 나라였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ㅎ
티무르칸님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동감입니다. 우리는 우리죠.
아시아 (중앙아시아포함) 중심국가가 곧 중국아닌가요?? 고려까지는 중국이라 불리워도 모자람이 없을거라 생각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