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복생캠프 마지막 날입니다.
이틀 동안 부어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성령님 의지하오니
참여한 자들의 말씀을 보는 눈과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게 하시고
말씀에 기쁨으로 반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본문 주해)
1~3절 :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상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친히 논쟁하시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가득한 것에 대한 논쟁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야 할 진실(진리), 인애(언약적 사랑, 긍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고, 없어야 할 것들만 가득했다. 그것들은 저주, 사기, 살인, 도둑질, 간음이요, 그로 인해 살육과 학살만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황무하여진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슬퍼하며 그곳에 거하는 들짐승과 공중의 나는 새뿐 아니라 바다의 고기까지도 다 쇠잔하여지는 것이다.
4~10절 : 제사장들의 죄를 드러낸다.
3절이 그 땅의 황폐함이라면 4~5절은 영적인 황폐함이다.
영적인 지도자들 즉 제사장과 선지자들이라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잊어버려서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그러하다면 백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리킨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실족함으로써 결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재하고 그로 인해 멸망한다.(4~5절)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은 제사장들의 책임이다.
하나님을 알게 하여야 하는 것이 제사장들의 일인데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법을 잊어 버렸다.
제사장의 직무는 제의를 집행하는 것뿐 아니라, 백성들을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거하도록 하는 중재하는 역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자신도 언약 관계 안에 거하지 못하고(알지 못하고), 단순히 제의 행위에 몰두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로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자녀란 단지 제사장의 자녀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6~7절)
그렇다면 제사장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는가?
백성들의 속죄제물은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양식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죄가 많아져야 자기들에게 돌아올 양식이 많아지는 것이다.
제사장들의 관심이 백성들의 속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에 마음이 빼앗긴 것이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여 자기의 배를 섬긴 것이다.(8절)
이렇게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다 꼭 같은 모습이니 이스라엘은 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구별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행을 하여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10절, 새번역)
(나의 묵상)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 책임이 제사장에게 있다고 본문은 말한다.
왜냐 하면 제사장의 직무는 제의를 집행하는 것뿐 아니라, 백성들을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거하도록 하는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욕에 빠진 제사장들은 스스로도 언약 안에 거하지 못하는 존재였으니 백성을 제대로 인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몰랐을 때, 담임 목사님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목사님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교회에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했다.
그런데 충성하면 할수록 사나워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그 많은 숙제-매주 설교 요약하기, 신앙서적 읽기, 독후감 쓰기, 큐티하기 등등-를 다 해냈건만 남는 것은 남을 판단하고 스스로는 교만한 자리에 우뚝 서는 것이었다.
목회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17:11)
목회자의 말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씀 앞으로 나아가 과연 성경대로 말씀이 선포되는가를 구분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신약시대는 성도는 각자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와 교제하는 왕적 제사장이다. 곧 특정한 지도자가 아니라, 성도 각자가 복음을 통해 생명을 알고 생명의 교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생명 캠프 3일째요, 끝나는 날이다.
이 캠프는 복음도 모르고, 기존의 기독교 전통과 교리에 얽매여, 그저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을 복음으로 깨우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옛 생명으로 사는 자들을 주님 주신 새 생명으로 살도록 - 주님과 생명의 교제를 할 수 있도록 - 인도하는 집회이다.
이 캠프를 통해 복음을 정확히 알게 되어, 이젠 각자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복음을 알기 전 나는 영생에 대해서도 오해했었다.
죽어서 천국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알지 못하고, 사람의 가르침만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주님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을 누리는 일이다.
나중에 죽어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일임을 나는 매일 경험하며 산다.
창세전 영원의 세계,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그 기쁨을 맛보는 자리로 인도되어지니, 바로 이것이 영생을 누리는 삶인 것이다.
성도로서 어떤 담임 목사님을 만나느냐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제 목회자에 좌지우지 되는 자가 아니게 되었다.
내게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게 주님과의 이 교제를 강조하고, 그들이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중매하는 신약시대 제사장이 되었다.
(묵상 기도)
주님,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주님 앞에 앉게 하오니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시고,
연약함으로 포장한 게으름과 변명을 벗겨주시옵소서.
그때 정결케 된 마음으로 진짜 연약함을 하소연하는 그들을 주님께서 토닥여 주옵소서.
각자의 영적 수준과 방법대로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캠프 사흘째,
이 기쁨을 자랑하는 그들의 고백을 주님 들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