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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6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https://youtu.be/zs3ohuN3aQE?si=HxXQ7tngZElCfN6U
주기도문(6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말 씀: 마태복음6:9~13
부 르 심:베드로전서 1:3~4
교 독 문:16번, 시편 28편
기 도: 1)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2)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3)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여 응답받게 하옵소서
4)예수한국 복음통일(자유통일), 부정선거반대, 주사파척결, 성령충만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주기도문의“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제목으로 이 시간에 은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학교 다닐 때만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날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치는 데 “시험에 든다”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 갔거나
마귀에게 패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깨어 있어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고
(마가복음14:38)”
예수께서 붙잡히기 전 계셨던 곳은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 가르치시는 것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가르친 말씀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산상 설교입니다.
또 하나는 감람산에 올라가 가르치신
마태복음 24장부터 25장까지 감람산 설교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는 것은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1>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이에 말씀하시디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라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태복음26:38)”
예수께서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시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있어 기도하시는 것처럼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것은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라는 명령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 졸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부지런하게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한 신앙의 자세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 깨어 있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말세에 성도의 나라 즉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
성도의 자세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세는 교회만 출석하고 교회 안에 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말세에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성도의 자세는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24:42~4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라
(마태복음25:13)”
“깨어 있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인자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에 관한 말씀에서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재림에 관한 비유로 “데려감을 당함과 버려둠을 당함“의 말씀에서
”깨어 있으라“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재림에 대한 “열 처녀의 비유”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깨어 있어 재림을 바라보고 있는 자는 데려감을 당하는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깨어 있어 그릇에 기름을 담아 예비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태복음25:10)”
졸다가 등만 가지고 기름을 가지지 아니한 미련한 자들은
문 밖에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소리지르지만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25:12)”
2>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깨어 있기 위하여 누구의 뜻으로 기도합니까?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깨어 있어 기도할 것은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란
깨어 있어야 할 기도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26:39)”
겟세마네 동산에게 예수께서 깨어 있어 기도하는 반복은
단 한가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란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같아서는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기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고난의 쓴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것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대게 수많은 교인들은 자기의 원하는대로 기도하다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시험에 들어 원망하는 것이 되고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깨어 있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26:40~41)”
1>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으라
예수님은 그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정도로 힘들어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기도는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깨어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오니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당부하하신 것은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깨어 있지 않고
자고 있는 것을 예수께서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깨어 있는 것과 자고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어 제자들도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상태는 깨어 있는 자들과 자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어 부지런하여 기도에 힘씁니다.
그러나 자는 자들은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은 미지근함에 있습니다.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깨어 있어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게으름으로 미지근하여 시험에 들어 “나는 주를 알지 못하노라”라는
베드로의 배신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깨어 있는 자들은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지 않습니다.
나팔소리 같은 주의 음성을 들어 썩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하여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어다(살전5:4~6)”
잠자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자들은 자는 자들과 같이 자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이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요한계시록3:3)”
오늘날 잠자는 교인, 잠자는 교회가 많습니다.
자는 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장차 올
7년 환난을 피하여 들림받아 하늘에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21:36)”
예수께서 첫 번째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시니 그 자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사랑하는 여러분, 정신을 차리고 깨어 한 시간을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 한 시간이라도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을 권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태복음26:41)”
마음으로는 내가 주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배신하여 도망가고 “나는 그를 모르겠노라”고 비겁한 배신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담대하게 하여 육신의 강건함이 되어야하겠습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있지 않고 자다가
결국을 마음을 그렇지 않을려고 하는데 잠자는 육신대로 나약함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어 한 시간의 기도를 하는
거룩한 기도의 습관이 되는 골방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깨어 있어 같은 말씀으로 반복하는 기도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있어 반복하여
세 번의 기도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복하여 같은 말씀으로 깨어 기도하여
아버지의 원대로 순종할 수 있는 평안을 얻었습니다.
깨어 기도하기 전까지 예수님의 상태는 마음이 고민하여 죽을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시니 평안을 가짐으로
능히 마음에 심히 고민하는 것은 사라지고
능히 고난을 환영하여 평안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마태복음26:44~45)”
3>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한 기도를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22:44)”
예수님의 기도는 결코 가벼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해도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힘쓰고 애써 더욱 기도를 하였더니
땀이 떨어져 핏방울같이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힘쓰면 땀이 나듯이
기도가 노동이요 노동은 곧 기도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가볍게 기도하여 땀도 나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힘쓰는 기도가 되어 잠은 달아나고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7~8)”
3.뒤로 물러설 수 없는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기도문대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가 될려면
물러설 수 없는 기도가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담대한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은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기도로 응답받는 것이어야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11:38~39)”
야곱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벧엘로 올라가고자 하나 앞길에
누군가 돌진하여 달려오는 위협은 다름아닌 야곱의 형 에서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날려고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칠까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습니다.
형 에서를 안본지 20년이나 되었으나 20년 전
에서의 마음은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입니다.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는 원한이
20년이 지나도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을 때에
나홀로 강청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고”라는 기도인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날이 샐때까지 씨름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붙잡고 기도하였던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날 정도였습니다.
야곱은 날이 새려 하여도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였습니다.
결국 야곱은 시험에 들지 않은 기도의 응답을 받아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실 때에 야곱의 이름으로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축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32:29~30)”
야곱은 야곱의 이름으로 이삭에게 축복을 받는 것은 속임으로
사람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는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았으나 시험에 들어
에서가 당함으로 에서가 원통해하였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가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세기27:36)”
너희가 이렇게 기도할 것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마시옵고”입니다.
시험에 드는 속임수의 축복 결과는 원수 맺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은 골방에 들어가 강청하는 기도로 시험을 들지 않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음으로 에서의 마음에서 “내가 야곱을 죽이리라”는
의지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야곱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부둥켜 우는 용서와 사랑이었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
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세기33:4)”
에서가 야곱에게 20년 만에 원한을 풀고 화목하였습니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3)”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기도대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의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어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1:6)”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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