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진실을 왜곡한 것이 위서라고 봅니다. 사마천이 왜곡한 상고사를 환단고기는 재차 왜곡하여 진실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단군이란 옛날에 쓰던 용어가 아닌 역사왜곡후 나타난 용어입니다. 관련 증거는 지난 번 글에 올렸습니다.
질문 1
제 주장대로 천제인 환검(=왕검)께서 요임금보다 훨씬전에 만방의 제국을 다스리셨는데 이 역사를 왜곡하여 요임금때인 BC2333년에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고 서술했다면 그것은 위서인가요? 진서인가요? 물론 환단고기의 기록대로라면 위서가 아니겠죠. 그렇다면 환단고기 삼국유사의 주장대로 단군의 고조선은 만주에 한정됩니다.
만주의 고조선이라면 어찌하여 몽골 터키 등 만주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나라들에서 탱그리 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을까요? 그들은 왜 우리와 비슷한 하늘제사의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요? 만방의 제국이었다면 쉽게 이해되나 만주의 고조선이라면 어찌 설명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분이 주장하는 것처럼 카자흐스탄 이스타나가 아사달이라면 만주 고조선은 어찌되는 건가요? (물론 저는 아사달이 구월산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스타나까지 제국의 영향권이었다고 봅니다. )
질문 2
우임금이 하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우는 하나라를 세웠는데 요임금과 순임금의 나라 이름은 무엇인가요? 기록을 찾아봐도 나라이름을 못찾겠네요.
나라 이름이 있다면 좀더 조사를 해봐야 겠고
없다면 제국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 꼭 답변 바랍니다.
*** 전에 올린 내용 간단 정리***
여러차례 증거를 보여드렸지만 요임금은 당시에는 帝가 아닌 천군이라 불렸고 순에 의해 천왕이라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출처 증자)
그리고 천군<군장<대군장(=천왕?)<천제(天帝)의 순서이며 환검께서는 천제로서 만방을 다스렸고 요임금은 여러 천군중의 한명이었을 뿐입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왔듯, 중국 사료에 나왔듯 우리는 전통적으로 하늘을 숭상하여 천군,천자,천왕,천제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환검천제께서 단군으로 격하되고 요임금 때 즉위했다고 왜곡된 것입니다. 그런 환단고기가 위서아 아니라면 어떤 역사서가 위서란 말입니까?
첫댓글 [환단고기]에는 단군왕검께서 90세까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요왕시대가 맞다할 것이다. 요왕은 단군왕검을 제압하려 했으나 군사력에서 밀려서 결국 유호의 아들 유순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유호씨는 훗날 우씨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인도로 가서 불교사상을 낳았다.요왕이 단군왕검을 제압하지 못한 건 [환단고기]기록대로 단군왕검이 18대 거불단 환웅천왕의 황태자이기 때문에 황권이 단군왕검에게 갔고, 9환족이 황통을 계승한 단군왕검을 중심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사기]는 헌원이 치우천왕을 잡아 죽였다고 날조하고 있으나, [환단고기]는 치우천왕의 장수 중에 이름이 비슷한 치우비를 잡아 죽이고 착각하여 치우천왕을 잡아 죽아 죽인 것 처럼 사마천의 [사기]가 날조하였다고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확히 맞는 기록이다. 헌원이는 돌들고 싸우고 치우는 청동무기로 싸웠는데 헌원이 감히 치우의 상대가 되겠는가? 소중화사관론자들은 [사기]기록을 그대로 믿고 치우가 헌원에게 잡혀 죽여 시신이 여러개로 찢겨 묻였기 때문에 치우의 무덤이 여러개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철저히 날조다. 그 여러개의 무덤이란 치우천왕의 장수 치우비의 무덤일수 밖에 없다.
진시황과 유방이 전투에 나갈 때 승리의 염원을 담고 제사를 지낸 대상은 치우천왕이지 공손헌원이 아니였다. 무서운 형상을 한 가면을 쓴 치우천왕은 우리 민족에게는 도깨비와 천하대장군 장승으로 전승되었고, 중동이나 서방에서는 폭풍과 번개의 신이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샤먼)로 살아 전승되었다. 고로 강단사학이든 재야사학이든 큰 것만을 좋아하는 나머지 소중화 사관에 빠진 얼빠진 자들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