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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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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환단고기 위서 관련 2
홍익인세 추천 0 조회 176 14.02.11 13:09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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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2.11 14:01

    첫댓글 [환단고기]에는 단군왕검께서 90세까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요왕시대가 맞다할 것이다. 요왕은 단군왕검을 제압하려 했으나 군사력에서 밀려서 결국 유호의 아들 유순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유호씨는 훗날 우씨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인도로 가서 불교사상을 낳았다.요왕이 단군왕검을 제압하지 못한 건 [환단고기]기록대로 단군왕검이 18대 거불단 환웅천왕의 황태자이기 때문에 황권이 단군왕검에게 갔고, 9환족이 황통을 계승한 단군왕검을 중심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 14.02.11 14:05

    사마천[사기]는 헌원이 치우천왕을 잡아 죽였다고 날조하고 있으나, [환단고기]는 치우천왕의 장수 중에 이름이 비슷한 치우비를 잡아 죽이고 착각하여 치우천왕을 잡아 죽아 죽인 것 처럼 사마천의 [사기]가 날조하였다고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확히 맞는 기록이다. 헌원이는 돌들고 싸우고 치우는 청동무기로 싸웠는데 헌원이 감히 치우의 상대가 되겠는가? 소중화사관론자들은 [사기]기록을 그대로 믿고 치우가 헌원에게 잡혀 죽여 시신이 여러개로 찢겨 묻였기 때문에 치우의 무덤이 여러개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철저히 날조다. 그 여러개의 무덤이란 치우천왕의 장수 치우비의 무덤일수 밖에 없다.

  • 14.02.11 14:08

    진시황과 유방이 전투에 나갈 때 승리의 염원을 담고 제사를 지낸 대상은 치우천왕이지 공손헌원이 아니였다. 무서운 형상을 한 가면을 쓴 치우천왕은 우리 민족에게는 도깨비와 천하대장군 장승으로 전승되었고, 중동이나 서방에서는 폭풍과 번개의 신이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샤먼)로 살아 전승되었다. 고로 강단사학이든 재야사학이든 큰 것만을 좋아하는 나머지 소중화 사관에 빠진 얼빠진 자들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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