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7일 묵상 본문 : 호세아 5장 1절 - 15절 - 복음에 연합되어 무지와 교만으로 인한 심판에서 벗어나 지혜와 회복의 구원을 경험케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게 하시고 주께로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도 주의 은혜를 얻어야 믿음으로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의 계획과 능력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주와 연합되기를 힘쓰며 살게 하옵소서.
온전한 연합은 복음을 통해 가능하기에 오늘도 주 앞에 새 영과 마음을 간구합니다.
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으시고 새롭게 해 주옵소서.
주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지혜를 주시고 순종으로 반응하는 힘을 얻게 하옵소서.
주 안에 거하면 늘 평안과 소망으로 사는 자가 됩니다.
그 평안과 소망을 누리고 전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는 모두 들으라는 의미로 종교, 정치, 상류층의 사람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면서 심판이 주어질 것을 선포하신다. 또 미스바는 사무엘이 종교 개혁을 일으킨 곳이며 다볼은 사사 바락이 야빈의 군대장과 시스라에 승리한 장소였지만 이곳도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기에 심판 당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패역자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1절에서 제시하는 지도자로도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살육하는 죄악에 깊이 빠져서 하나님이 심판하시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로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을 선포하시면서 그들의 음행과 더러워진 모습을 드러내신다.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돌아갈 마음과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신다. 음란함과 죄악된 행실을 중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릴 줄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교만이 얼굴에 드러났다는 것은 교만함이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음을 의미하며 그 영향력이 북이스라엘을 넘어 남유다에게 까지 확대되어 멸망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의 치세 속에서 경제적으로 풍요함을 누리며 정치적으로는 안정과 국력의 신장이 이루어졌지만 교만으로 인해 영적으로는 더욱 타락했었던 시기였다.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당시 백성들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지만 그 제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음을 드러내시는데 이는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제사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영적인 간음으로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사생아 즉, 타락한 문화를 만들었으며 새 달(가장 가느다란 초생달로 가장 어두운 밤하늘과 같은 흑암의 시대를 상징)에 심판당할 것을 선포하신다.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뿔나팔과 나팔은 전쟁을 위한 군대 모집이나 적군 침입에 대비, 절기와 제사를 위한 성회를 소집할 때 사용했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알리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기브아와 라마와 벧아웬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으로 북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최남단까지 완전하게 임하게 될 것을 경고하셨던 것이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심판의 날에는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황폐하게 되고 심판이 온전하게 성취될 것을 보여준다.
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경계표는 토지를 구분하는 표식으로 하나님은 이것을 옮기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신19:14) 그런데 유다 지도자들이 이것을 옮기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선악을 규정함으로써 백성들이 죄악에 빠지게 했음을 의미했고 이에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사람의 명령은 여로보암1세가 벧엘과 단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섬기라고 했던 명령으로 추측한다.(왕상12:27~30) 그래서 당시 백성들도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학대와 압제를 당하는 심판에 이르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좀과 썩이는 것은 벌레나 미생물에 의해 조금씩 썩어가는 모습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점차 국력이 쇠퇴하면서 비참하고 처참한 종말을 맞게 될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국력이 쇠퇴해가고 있음을 알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야렙 왕(전쟁의 왕을 지칭하는 표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왕하 15:17~20에서 므나헴 왕이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뇌물을 주고 도움을 청한 사건을 상징하고 있다.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사자가 움킨 것을 놓지 않는 모습을 통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 이후에 백성들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실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리시는 특별한 사랑과 인내의 모습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시면서 그들이 지은 죄악의 내용을 상세하게 지적하시고 그로 인해 심판이 주어졌음을 선언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은 숨길 수 없는 것이며 그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까지는 결코 심판이 사라지거나 무효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증거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으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 당하기 전까지 하나님께 제사하며 양과 소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임을 밝히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거하지 않고 드리는 모든 제사와 예배는 형식에 불과하며 아무런 소득이 없는 행위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제사에 대한 개념과 바른 이해가 없이는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많은 종교적 행위가 의미 없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지 않은 자의 특징으로 마음의 교만함을 말씀하신다.(5절)
교만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경계표를 옮기는 자가 되는 것처럼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고 자기가 세운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은 사람이 세운 기준을 따라 순종하며 사람들에 의해 학대를 받고 압제를 받는 환경으로 나아가게 됨을 보여주고 계신다.
과거나 현재나, 그리고 미래에도 교만한 자와 어리석은 자가 하나가 되어 학대와 압제와 고통과 아픔이 반복됨으로써 나타나는 비참한 상황과 다툼은 끊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진리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들의 결과가 분열과 다툼임을 제시한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
결국 분열과 다툼과 고통과 아픔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림으로 나타난 열매이며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교만히 행한 자들을 심판하시지만 심판에 머물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회개할 때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래서 다시 돌이켜 돌아오게 만드시고 회복을 경험하기까지 기다려 주실 것을 선언하신다.
이것은 다름 아닌 복음을 드러내는 메시지로써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나타나게 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게 하신다.
복음을 통해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온전케 하시며 심판과 구원을 이루시는 손길을 드러내실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성도는 복음을 통해 회복과 능력과 만족과 소망, 그리고 온전함에 이르는 자가 된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어리석음과 무지, 그리고 교만의 열매를 보게 하시지만 동시에 복음을 통해 지혜와 능력과 겸손과 소망을 얻게 하심을 가르쳐 주신다.
여전히 부족함에 머물러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 앞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의 기준을 마음에 담고 살도록 이끄시는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주의 긍휼과 자비의 은혜를 고백하며 오늘 하루도 주 안에서 회복과 은혜를 누리고 그 은혜를 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인생의 연약함과 무지함, 그리고 교만함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주의 심판과 회개와 회복의 메시지를 통해 복음을 발견하고 그 복음에 연합된 삶을 사는 자가 될 때 생명과 능력과 온전함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 회복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는 자 되게 하시고 더욱 주를 가까이 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사람의 계명을 따라 살지 않고 주의 언약을 따라 살아가며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고 인내하며 더욱 견고한 믿음을 세우는 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주 앞에 서는 것이 기쁨이여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통로가 됨을 고백합니다.
주를 더욱 사랑하고 주의 사랑을 힘입어 이웃을 복음으로 섬기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