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제는 청년부과 연합회 첫 실행 회의 예배에서 말씀을 증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여 주시고 또 새 생명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주님을 위해 사는 자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내일 출국을 위해 오늘 하루 분주할 것 같습니다.
겉모습은 분주할지라도
저의 마음이 평안한 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파리와 뚤루즈 복음생명 캠프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는 지체와 형제들에게 사랑의 빚을 집니다.
돌아와서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증거 함으로 함께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먹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본문 주해)
1~2절 : “사제들아, 이 말을 들어라. 예언자들아, 똑똑히 들어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법을 세워야 할 너희가 미스바에 놓은 덫이요, 다볼에 친 그물이요,
시띰에 판 깊은 함정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한데 몰아 벌하리라.”(공동번역)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다.
‘미스바에 놓인 덫’과 ‘다볼 산의 그물’과 ‘싯딤의 함정’은 각기 사냥에서 나온 비유들이다.
법을 수호하고 집행해야 할 지도자들이 법을 파기하고, 법을 가지고 사냥행위처럼 백성들을 유린하였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 모두를 얽어매는 수갑으로 묘사된다.
법을 수호해야 할 자가 법을 깨뜨리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얽어매는 덫이요 그물을 만드는 꼴이다.
3~7절 : 헛된 제의(예배)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같은 의미이다.
에브라임이 몸을 팔고 있고 이스라엘이 몸을 더럽히고 있다. 그들 속에 음란한 마음(4절, 음란의 영)이 가득 차서, 그들은 여호와를 알 수 없다.
‘음란의 영’은 ‘거룩한 영’과 대립되며, 물질과 존재물을 즐거워하게 한다. 반면 거룩한 영은 계시(진리)로 이끌며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게 한다.
지금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의 치하에서 번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러나 언약 백성에게 있어 언약 안에 거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재한 축복은 도리어 교만을 낳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재앙이다.
이스라엘은 번성함의 결실로 인해 양떼와 소떼를 제의의 제물로 바친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어 많은 양떼와 소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죄를 각성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이기 때문이다.
“야훼를 배신하고 사생아를 낳은 것들, 적군이 쳐들어와, 그 있는 재산과 함께 멸망시키리라.”(7절, 공동번역)
그들이 낳은 자식은 사생아(남의 자식)일 뿐이다. 사생아는 이스라엘의 불의한 제의(예배)가 가져온 신앙의 열매이다. 그 열매는 바알 신앙의 결실인 풍요와 쾌락의 삶이다.
‘새달’의 절기는 이스라엘이 지키는 월삭의 절기이다.
제물과 절기지킴을 그들이 붙들고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은 떠나버리신 것이다.
8~10절 : “기브아에서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라! 라마에서도 비상 나팔을 불어라! 벳아웬에서도 전쟁이 터졌다고 경보를 알려라! 베냐민아, 적군이 네 뒤를 쫓는다.
에브라임이 벌을 받는 날에는, 온 나라가 황무지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이미 확정된 일을 내가 선포한다.
유다의 통치자들은 경계선을 범하는 자들이니, 내가 그들 위에 나의 분노를 물처럼 쏟아 부을 것이다.”(새번역)
기브아와 라마와 벧아웬이 남쪽 베냐민 지역으로서 유다를 가리킨다. 여기에 나팔을 불고 호각을 불며 깨우치라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세력이 베냐민 네 뒤를 좇는다고 경고의 소리를 외치라는 것이다. 남유다도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앗수르와 애굽의 사이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는 국제정세를 따라 이리저리 도움을 구한다. 그런 중에 아람과 이스라엘(에브라임)에 의한 남유다의 침공이 일어난다.
강대국의 개입은 그들이 바랐던 구원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점령당하고, 남 유다는 (나중에 바벨론에 망하지만) 역시 앗수르에 의하여 괴롭힘을 받는다.
앗수르의 개입이 있었지만, 유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동족 간의 전쟁을 벌인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형제를 희생시켜 영토를 확장하려는(경계표를 옮기려는) 유다를 형벌하신다.(10절)
11~14절 : “에브라임이 도움을 구하러 허무한 것을 뒤쫓아갔으니, 에브라임이 심판을 받아, 억압을 당하고 짓밟혔다.
그러므로 나는 에브라임에게는 좀으로 유다 가문에게는 썩이는 것으로 칠 것이다.
에브라임이 자기의 중병을 깨닫고 앗시리아로 가고, 유다는 제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그 나라의 대왕에게 특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 대왕이 너희의 중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가 너희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다.
내가 사자처럼 에브라임에게 달려들고, 젊은 사자처럼 유다 가문에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다가 갈기갈기 찢을 것이니, 아무도 내 입에서 그들을 빼내어 건져 주지 못할 것이다.”(새번역)
하나님께서 에브라임(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음란의 영으로 자기를 떠난 백성을 심판하시는데, 강대국 앗수르는 심판의 도구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는 앗수르의 위협과 공격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의 도구인 앗수르에게 굴종하였다.
그들이 좀, 썩는 병, 상처, 중병 등으로 그 왕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으나 그들은 결코 회복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마치 사자처럼 이들을 움켜쥐고 찢으시니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다.
15절 : “그리고는 내가 하늘로 돌아가 이 백성이 죄를 고백하며 나를 찾기까지 기다리리라. 이 백성은 괴로움을 참다 못해 마침내 나를 애타게 찾으리라.”(공동번역)
그런데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고통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나의 묵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좋아하던 것들을 따라갔기에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모두 망해버린다. 그들이 좋아서 따라간 것들이 도리어 덫이 되고 올무가 되고, 함정이 되었다.
그들이 음란하여 하나님께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사생자를 낳았다.
너무도 더러워진 그들과 하나님은 함께 하실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떠나시고 만다.(15절)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많았다.
돈, 가족, 건강, 성공 등....
그런데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좋아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복음을 몰랐기에 생기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 자체가 나를 위해 있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걱정과 계획 그리고 자랑이 다 사생자였음을 오늘 보게 된다.
나는 너무 음란해서 가는 곳마다 사생자를 낳은 자였고, 이것들을 잘 키워달라고 내내 하나님께 기도했던 자였다.
나 자신이 얼마나 더러워진 존재인지를 깨닫기는커녕 가장 신앙생활을 잘하는, 정상적인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했다.
복음을 알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되니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를 그제야 보게 되니 떠들썩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동시에 더러워서 같이 있지 못하고 보좌로 떠나신 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알게 해 주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열어놓으신 하나님 나라로 진입하는 것이다.
나는 자격 없지만 주님과 연합됨으로 아버지께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생자나 낳으며 정조를 지키지 못한 자를 주님의 보혈로 정결한 신부로 맞이해 주신다니....!
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지만, 그런 나를 용납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멸망당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염치불구, 낯 두껍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간다.
이 사랑을 받은 자, 이제는 정조를 지키며 살기를 기도한다.
그것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도록 계획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전5:15)
(묵상 기도)
주님,
저는 툭하면 남편을 떠나 집을 뛰쳐 나간 고멜과 같고,
흥분된 눈으로 아버지 집을 뛰쳐 나간 탕자와도 같은 자입니다.
긴 세월 돌고 돌아 돌이키는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눈으로 볼 때는 그늘 같지도 않은 십자가 그늘에 기꺼이 거합니다.
그 깊은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아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음란을 피워대지 말고,
그래서 사생자를 낳는 존재가 되지 않고,
참 남편이신 주님께 정조를 지키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성령님, 의지하오니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