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연구원의 정기간행물 <너울>의 2003년 06월호 vol 144 기사입니다.
문화NGO 문화재 지키기 파수꾼 대구 문지모
■ 최미화(매일신문사 경제부장)
지난 5월 24일 회원 몇 명은 청송에 다녀왔다.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이 혹시나 문화재가 깔려 있는 지역은 아닌지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 “공사 전에 조치를 취하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현장에 매장된 문화재는 없는지 지표조사를 포함해서 사전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군청에 신고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흔쾌히 그 제안을 따를 정도가 됐습니다.”
훼손 멸실될 위기에 처해 있는 문화재 현장을 지키는 시민운동을 펴다가 언젠가 우리나라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시킬 대학이나 대안학교를 만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미래의 비전으로 ‘문화재학교’를 세울 꿈을 꾸는 이들, 문화재가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 불철주야 달려가서 거대한 기업과의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이들, 이해 당사자들이 보낸 갈비짝을 포함한 뇌물성 선물을 고스란히 되돌려보내는 순수성을 지금껏 잘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누굴까.
바로 우리나라 최초 문화재 NGO인 ‘대구문화재지키기시민모임’(대표 : 김계숙 석대일·이하 대구 문지모)이다.
● 문화재학교 만들지 누가 아나요
대구 문지모는 지난 1997년 세계문화유산의 해에 영남대박물관의 박물관대학 수강생들과 일반 시민 등 50여 명으로 창립, 올해로 7년째이며 회원은 350명이다. 이 가운데 맹렬 회원이 50명쯤 되고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에 사무실까지 갖추고 있다.
“개발과 도굴에 따른 문화재 훼손을 막는 방법은 시민문화운동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권단체나 행정기관, 종교단체, 보험회사, 개발업자의 지원을 거부합니다. 오로지 회원들의 자체 회비로 소박하지만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 기부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한국의 대부분 NGO들과 마찬가지로 대구 문지모도 재정적인 어려움과 현실적(혹은 금전적인)인 유혹을 받지만 오로지 우리 (매장)문화재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원칙과 결코 사적인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정도(正道) 정신으로 이어가고 있다.
토요일인 지난 5월 24일 김계숙 회장(52)을 포함한 회원 몇 명과 대구 문지모 고문 양도영 씨(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는 청송에 다녀왔다. 청송에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이 공사를 해도 지장이 없는 곳인지, 혹시나 문화재가 깔려 있는 지역은 아닌지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공사를 하기 전에 조치를 취하려는 이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현장에 매장된 문화재는 없는지 지표조사를 포함해서 사전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군청에 신고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흔쾌히 그 제안을 따를 정도가 됐습니다.” 대구 문지모 대표인 김계숙 씨는 문지모가 창립된 지 7년만에 거둔 가장 큰 성과라면 이제 문화재 보존의 주체인 관청, 기업은 물론 개인까지도 공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지표조사를 해야 하며 때로는 시굴이나 발굴을 해야 한다는 의식을 대중화시켰다는 것을 꼽는다.
‘땅을 파려면 먼저 문화재 지표조사부터 하라’.
역사 현장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면서까지 눈앞의 성과와 ‘빨리빨리’만을 고집하는 대한민국, 그것도 보수성이 강한 대구·경북지역에서 자칫 공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문화재 매장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처음부터 쉽게 형성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사업자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이해 관계자의 선물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 문지모는 문화재를 지키겠다는 초발심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구 문지모의 활동은 여러 차례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한번은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에 국내 굴지의 모 기업에서 아파트를 지으려고 할 때였다. 진천동은 이미 지석묘 분포지역으로 보고가 돼 있는데도 공사를 강행하려고 했다.
대구 문지모 회원들은 청동기 유물인 지석묘 상석과 입석을 발굴, 문화재 지표조사 없이 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준 달서구청에 항의하고, 문화재청과 언론기관에 제보를 하는 한편 문화재 파괴 현장에 대한 감시활동을 펼쳤다.
당장 아파트 분양에 차질을 빚게 된 건설회사의 강력한 항의와 위협이 잇따랐다. “(대구 문지모 회원들의) 뒷조사를 하겠다고 그러대요. 사하라 태풍 때 날아온 돌인데 고인돌이라고 그런다면서 끝까지 해보겠다”면서 겁을 주었다.
그러나 대구 문지모 회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혼 첫 날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가계부를 써오고, 공돈을 바라지 않아 그 흔한 주식투자나 공모주 청약, 부동산 투자까지 경계하며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김계숙 대표를 포함한 주력 멤버들은 겁날 게 하나도 없었다.
● 뒷조사 위협과 갈비짝 선물 공세
서산대사가 ‘눈길 함부로 가지마라. 뒷사람의 지표가 된다’고 하셨듯이 대구 문지모 김 대표는 오늘 내가 사는 모습이 자식들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생활을 하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뒷조사론’에 위축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뒤가 깨끗하기에 대그룹 건설회사의 위협에 이렇게 대응했다. “우리나라 문화재 관련법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할 테면 해봐라”고…….
그래서 공사는 중지됐고, 결국 매장 문화재 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몇 년 전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대구시 달성군 문산리에 대규모 정수장을 건설할 때의 일이다. 상수도사업본부측은 고분 몇 기를 발굴한 뒤 1999년 6월 정수장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구 문지모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5∼6세기 이전에 지어진 토성과 수많은 유물들이 묻혀 있는 이 땅은 반드시 원형대로 보존돼야 합니다”고 대구 문지모는 주장했고, 상수도사업본부측은 “이만한 정수장 부지가 없다”면서 유물 수습이 끝나면 예정대로 정수장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대구 문지모와 상수도사업본부의 대립은 일 년 넘게 계속됐고, 대구 문지모 회원들은 거의 매일 번갈아가며 현장을 지켰다. 현장에서 대책회의도 열었다. 토성의 유구와 대규모 유물이 묻혀 있는 문산리에 대한 공사 강행을 대구 문지모가 막고 있자 공사 관계자들이 갈비짝을 들고 나타났다.
“옛날 퇴계 선생님이 집으로 온 뇌물을 미련 없이 되돌려 주셨듯이 우리도 갈비짝을 그대로 돌려보냈습니다. 명절 때 해놓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다 꺼내놓고 갈비짝을 넣어서 변하지 않도록 보관했다가 명절이 끝난 후 바로 돌려보냈지요.” 처음에는 대구 문지모 회원을 통해서 공사가 방해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압력과 좀 봐달라는 청탁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350명 회원 대부분이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며, 어떤 청탁에도 “내 손으로 우리 고장 문화재를 지켜나가겠다”는 정신을 굽힌 적은 없다. 필요하면 길거리 서명도 받고, 대전 문화재청에 현장보고서를 보내기도 하고, 대구시나 경북도를 찾아가기도 한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대구 문지모는 문화재 지키기의 파수꾼 역할을 멈추지 않는다.
그동안 대구 구암동·서변동 고분군 등 도굴현장을 신고해서 보존토록 했으며, 연암산 선사유적지 등 주요 문화재에 담당 명예관리인을 선정, 밀착 감시하고 있다. 경산 임당고분과 청도읍성에서 유적지 주변 청소와 문화재 가꾸기 운동도 펴고 있다.
한 사람 한 유물 지키기, 사라진 문화재 찾기, 유적지 정화 및 안내판 세우기, 문화재교육과 청소년 문화재답사, 자료수집과 현장견학 등 다각적인 문화재 보호활동을 펴고 있다.
● 한 사람 한 유물 지키기
김 대표는 “(영남대)박물관강좌를 듣는데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호의식은 일본에 비해 30년 이상 뒤떨어져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일본 시민들이 문화재를 지키겠다는 정신이 강한데 우리는 그런 소모임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분발했습니다.
시민문화운동이 활발한 후쿠오카도 가보고 그러면서 대구 문지모가 만들어졌습니다. 활동한 지 7년만에 법도 많이 정비되었고, 당국에서도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이 나아져서 다행입니다.” 김 대표는 언젠가 회원과 고문단들이 언젠가는 문화재학교라도 하나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이 모임 탄생과 활동에 음양으로 지원하고 있는 영남대박물관 양도영 씨(대구 문지모 고문)는 “이제는 전문가 집단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전 국립대구박물관 김권구 관장의 경우 대구 문지모의 대표적인 후원자였으나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갔다. 김 전 관장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재 지키기 운동을 이끌어주고 용기를 북돋울 전문가가 영입돼, 발바닥 노하우와 소신 하나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한다.
사회성이 높은 NGO의 성격에다가 문화자원봉사의 성격까지 지닌 대구 문지모가 반만년 역사를 지니고도 대부분 문화재가 훼손 멸실 파괴돼버린 우리의 풍토를 얼마나 바꿔나가고, 지켜나가는지는 바로 우리들 모두의 관심과 협조에 달려 있다.
내가 만든 단체를 소개드립니다.
첫댓글 좋은 일 하시는군요. 알려진 바와 달리 ‘눈길 함부로 가지마라. 뒷사람의 지표가 된다’는 서산대사 말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