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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망상이다”
세계적 신경과학자가 뇌 실험과 서사 구조로 풀어낸
자아, 기억, 믿음, 미신의 기원
거울을 들여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평생 보아온 친숙한 얼굴이 그곳에 있다.
바로 당신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처럼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경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그레고리 번스는 하나의 ‘당신’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몸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자아는 매우 불안정하며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나라는 착각》은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오가며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이 실은 뇌가 만들어낸 허구임을 밝힌다.
자아는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붙인 기억의 집합이다. 즉, 내가 나와 세상에 들려주는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역설적으로 자아가 허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자아가 생성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알면 ‘내가 원하는 나’가 될 수 있다. 바로 그 해답이 이 책에 있다.
어느 화창한 오후, 16살의 소년이 고속도로와 평행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 경로를 이탈해 소년을 덮쳤다. 트럭의 운전사는 소년과 부딪치려는 마지막 순간 가까스로 핸들을 꺾었지만 트럭은 그대로 전복되고 만다. 충격으로 운전사는 트럭 밖으로 튕겨 나왔고 소년은 도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정말 운 좋게도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이 사고를 당한 소년의 증언이 흥미롭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나 자신의 뒤 위쪽에 떠 있었다. 운전자가 나를 치지 않으려고 마지막 순간에 방향을 틀 때, 나는 그의 눈에 드러난 공포를 볼 수 있었다. 운전석이 내 바로 앞에 있는 언덕에 세게 부딪히면서 트럭은 느리게 잭나이프처럼 접혔고,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었다. 몇 분 후에 먼지구름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언덕 위에 튕겨 나온 나와 운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둘 다 살아 있었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트럭 운전자가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라고 했기 때문에 내 물병을 준 기억은 있다. 얼마 후,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꼬마야, 내가 언덕 위에서 모든 걸 다 봤어.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잠시 후, 구급대원들이 도착해서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 6장 내 안의 다중 인격들. 124쪽
그레고리 번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은 자라서 미국 최고의 뇌 과학자가 된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뇌의 의사결정 메커니즘과 보상 반응을 연구했다. 특히 도박, 사랑, 권력과 같은 보상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fMRI로 추적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연구는 관찰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뇌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신간 《나라는 착각》에서 자동차 사고 당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자기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트럭이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자신을 덮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것처럼 느꼈다. 흔히 초자연적 현상이라 불리는 유체 이탈을 경험한 것이다.
뇌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답게 그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비인격화(depersonalizatioin)’라는 증상으로 설명한다. 비인격화는 ‘꿈같고, 안개 같고, 생기 없는, 또는 시각적으로 왜곡된’ 경험을 특징으로 하는 증상으로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고도 부른다. 희귀한 경험 같지만 199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있었던 조사에 따르면 지역 주민의 19%가 1년 동안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다고 답변할 만큼 기억의 왜곡은 흔한 현상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처럼 인간의 기억은 그리 믿을 게 못 되며, 따라서 기억의 집합체인 자아 또한 일종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도발적 주장을 한다.
뇌 속에 감춰진 자아의 기원을 찾아서
저자는 자아를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붙인 기억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즉, 내가 나와 세상에 들려주는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다. 그런데 기억은 다큐멘터리의 기록과는 사뭇 다르다.
그 누구도 기억을 있었던 그대로 재생할 수 없다. 기억의 작은 조각들을 재생할 수 있지만, 그 기억들은 단지 수많은 순간들의 파편일 뿐이다. 우리의 엉망이고 복잡하고 모순된 과거 자아들은 하이라이트 릴로 선별되어 뇌에 저장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이 조각들에 의미를 부여해, 현재의 자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서사 구조를 만든다.
- 머리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망상이다. 7쪽
이러한 기억과 압축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나라는 이야기(자아)’는 태생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단일한 존재로 인식한다. 이것 또한 망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매일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유용한 망상이라 할 수 있다. 어제의 당신은 오늘의 당신, 내일의 당신과 아주 비슷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세 자아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다. 10년 전 사진을 꺼내 보자. 10년 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10년 전과 비교해 우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됐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일어나는 변화들은 매우 심오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심지어 세포 수준에서도 과거의 당신과 현재의 당신은 꽤 다른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우리를 하나의 단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갈까? 저자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뇌가 생존을 위해 자아를 발명했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최신 계산신경과학과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우리 뇌가 자아를 만들어내게 된 이유와 그 과정, 그리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다중 인격을 살펴본다.
인간은 자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자아를 만들었다
인간에게 여러 인격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은 사실 새롭지 않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부터 배트맨까지 분열된 자아를 다룬 작품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으며 몇몇은 시대를 넘어서 사랑을 받고 있다. 프로이트도 정신을 이드, 이고, 슈퍼이고라는 세 부분으로 나눠 설명했다. 칼 융은 모든 사람이 ‘그림자’ 즉, 의식적인 면을 일시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중 인격이 특정한 사람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면이라는 것이다. 저자 또한 의식 분열이라는 의학 용어를 탄생시킨 크리스틴 비첨의 사례부터 프로이트가 악용한 안나의 치료기까지 다양한 다중 인격 사례를 통해 뇌에서 다중 인격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소개한다.(6장. 내 안의 다중 인격들).
기억은 디지털 음원처럼 ‘손실이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디지털 음악은 나름의 근사치를 활용해 데이터를 압축하고 같은 방식으로 재생한다. 필연적으로 원래 음악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기억 또한 디지털 음원처럼 기억 과정에서 저장되지 않은 빈 구멍은 최선의 근사치로 메꾸게 된다. 이를 작화증(confabulation)이라고 한다. 올리버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주인공은 심각한 기억 장애를 가진 환자여서 자신의 혼란을 끝없는 작화증으로 덮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기억의 거대한 간극을 민첩하게 이어간다.
저자는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작화증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 가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서울 정도로 무작위적인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부여할 수 없다. 따라서 뇌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의미 없는 기억의 파편을 연결해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살아가야 하는 목적을 가진 자아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자아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종교, 도덕률은 물론이며 미신 등 믿음의 영역에 있는 모든 것들 또한 일종의 ‘합의된 망상’이라고 말한다(11장 믿음, 신앙, 신성한 가치들).
나는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자아를 비롯한 모든 믿음들이 뇌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자아가 생성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알면 ‘내가 원하는 나’가 될 수 있다. 우리 뇌가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발명했다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 저자는 뇌가 세상을 설명하는 서사 구조와 그 작동 방식을 역이용한다면 원하는 나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연속적이고 일관된 존재로서의 자아는 허구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아는 망상이다.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자아의 모형은 대체로 비슷하며 외부에서 우리의 뇌에 들어온 이야기로 채워진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맞다. 우리의 개인적인 서사가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개인적인 서사가 실제 세계의 사건들에 연결된 ‘역사 소설’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역사 소설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운명을 결정할 선택의 순간을 서사 속에서 계속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우리의 머릿속에 스며드는지에 대해 다소 수동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미디어를 보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
- 14장 나는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262쪽
16살 때 자동차 사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저자는 그날의 기억을 지금도 제 3자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덕분에 자동차 사고에 대한 강력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발 더나아가 평소에 읽고, 보고, 듣는 이야기를 활용해 뇌를 변화시키고(14장 나는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후회 기법을 통해 미래를 재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16장. 변화의 동력, 후회, 17장 진짜 원하는 나를 찾아서).
‘당신은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나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란 질문에 답을 찾고 있다면 최신 뇌과학 이론과 다양한 심리사고 실험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이 책 《나라는 착각》이 해답이 될 것이다.
자아는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붙인 기억의 집합이다. 즉, 내가 나와 세상에 들려주는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이며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자아를 가진 채 살아간다. - 8쪽
인간은 누구나 기억 속에 빈 곳이 있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내부적, 외부적 근원을 사용하여 이를 메우려 한다. 이는 본능이다. 신경학자들을 이런 기억 메꾸기를 작화증(허구로 우리 기억의 빈틈을 채우는 행동)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이 명확해졌다. 우리의 정신 구조로 인해 우리는 과거 자아의 기억이 현재 자아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누구의 기억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신체의 나머지 부위처럼 뇌는 적어도 20대 중반까지 계속 발달한다. 그래서 유년기의 기억을 포함한 과거의 기억은 그 신빙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 36쪽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우리의 개인적인 서사들은 사실 이러한 환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자아 정체성의 구성이 우리 머릿속에 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저해상도 표현과 다를 게 없다고 믿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이를 재귀 문제라고 부른다. 뇌가 그 모든 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계산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의 뇌가 ‘당신’을 포함하고 있다면, 뇌는 ‘당신의 뇌가 당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 63쪽
스키마의 장점은 효율성에 있다. 스키마가 한 번 만들어지면, 새로운 사건은 그 스키마의 편차에 따라 처리되고 저장된다. 첫키스를 예로 들어 보자. 누구나 자신의 첫 키스를 기억할 것이다. 이 경험은 다른 모든 키스를 참조하는 스키마가 된다. 당신은 두 번째 키스를 기억할 수 있는가? 아마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은 첫 번째 키스의 편차로 인코딩되기 때문이다. - 72쪽
9/11이나 그와 비슷한 중대한 사건들을 역순으로 회상해 보라. 어렵지 않은가? 우리의 기억이 디지털 기록과 같이 명확한 사건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면, 역순으로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뇌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기억에 ‘구조적인 형태’가 부과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구성은 대부분 이야기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야기하기는 인간 뇌의 생물학적 구조와 깊이 얽혀 있다. 단순히 우리가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시간적 순서를 부과하여 현실 인식을 지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 147쪽
그룹이 개인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의 길을 가기보다는 군중을 따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뇌에는 무리를 추종하는 습성이 생존 전략의 하나로 녹아들었다. - 168쪽
조현병 환자들은 어찌 보면 타인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다수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면, 위험하다는 딱지를 받게 된다. 따라서 혼자서 독자적인 길을 가는 사람은 때로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위험에는 큰 보상이 뒤따르기도 한다. 비록 당신의 생각(비전)을 인정하라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창업가에게는 재정적 성공을 보장하는 길일 수 있다. 이런 비전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 생각의 획일화는 혁신의 가능성이 없는 막다른 길이다. - 258쪽
미래의 당신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래의 당신은 가능성의 집합이자 여러 궤적을 가진 가능성의 존재다. 우리는 압축, 예측, 해리라는 과정을 통해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머릿속에 인생의 가치에 상응하는 서사의 기본 함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사의 교체 과정은 반드시 느리고 신중해야 한다. - 3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