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미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예인스
대한민국의 3대 구라 구라(口羅)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란 설도 있는데, 여하튼 한자 그대로 말을 비단같이 매끄럽게하여 상대방을 현혹 시킨다는 뜻이다. 구라 자체가 좀 허황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구라세계에서는 맛갈스럽게 "조선"의 3대 구라 라고 통용된다. 구비무학(口碑文學)파 또는 일명 <라지오파>와 <교육방송파>가 있는데 구비문학파 3대 거두는 백기완, 황석영, 방배추(본명 방동규)이고 이어령, 유홍준, 도올 김용옥이다.
우선 '라지오'(구비문학파)구라의 3대 조건을 열거하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구비문학이란 문학의 한 장르로, 말로 된 문학을 말하며 70년대 군사정권의 통제와 억압이 횡횡하던 때 피맛골 '열차집'이나 '청일집' 등 막걸리집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때의 입담들이었다. 백기완은 대륙구라, 황석영은 육담구라, 방배추는 인생파구라 라고 한마디로 특징 지었다. 특히 황석영의 육담구라는 일품이라고 정평 나있다. 재야운동가이며 현재 통일문제 연구소장이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이나 독학으로 공부하여 박학다식하다.
길 가다가 전봇대에 부딧치기 일수였고 영수학원에서 영어 강사도 하였다. 황석영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긴 설명 필요없으나 한마디 한다면 그는 몇 해 전 MB따라 중앙아시아에 가더니 이에 대해 좌파의 비난이 쏟아지자 또 좌회전하여 작년 부산 영도 희망버스에 가담한 것은 그가 날나리가 아닌가 하는 실망감을 가지게 한다. 방배추라는 별명을 얻었다. 백기완의 절친한 친구로 백이 대통령출마시 경호대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 불렸다. 백기완, 함석헌, 계훈제 등과 교유하면서 교양을 쌓았다. 파리 유랑생활, 중동 건설공사 근무, 고급 양장점 '살롱 드방'운영, 철원의 '노르메기 밭' 10만평 농장 개간 공동체 생활 등 소위 그의 말대로 '살인 빼고는 안해 본 일이 없고 남극 빼고는 않가 본 곳이 없다'라는 파란만장의 인생을 살았다. 슬그머니 '라지오'를 껐다고 한다. 이는 유홍준이 무뤂팍도사에 출연하여 한 말이다. 그리고 최근 조선일보에 그가 아직도 건재함을 알리는 기사가 난 바가 있다. 다음 교육방송 3대 구라인데 이는 방배추가 붙여준 이름이다. 어느 날 대폿집에서 한량들이 쓰잘 데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이어령, 유홍준, 도올이도 구라 대열에 끼워주어 '조선구라계'를 무협계와 마찬가지로 '6대 문파'로 해야 한다고 하자, "갸들은 교육방송이야" 라고 일축해 버렸다 한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미술사학자 유홍준,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이다. 우상화된 기성 문단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선언한 평론 <우상의 파괴>는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흙 속에서 저 바람속에>는 대학생의 필독서가 되었다. 일종의 천재로 88올림픽의 개막식 무대감독으로 그의 비범함을 확인 시켜 주기도 하였다. 유홍준은 1949년생으로 1973년 5월에 우리나라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출간으로 혜성같이 미술사학계에 나타났으며 이 책의 출간으로 전국 각지에 문화 유산 답사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이 열기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수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전국적인 답사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는데, 요즈음은 어디에서 배웠는지 다음과 같은 말에 심취되어 있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으로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말이다. 그도 이제 나이가 먹으니 철이 좀 드나 보다. 마지막으로 도올 김용옥인데, 그는 1948년생으로 본업이 동양철학자이면서 종횡무진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취하선"의 대본을 썼다. 그가 자막을 직접 영역했다. 많은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自重하고 있는지 언론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다.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을 쓴 수주 변영로 교수가 생존해 계시다면 교육방송구라 셋 중 둘은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