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丹靑)이란 본래 여러 가지 색을 써서 건조물을 장업하거나 또는 공예품 등에 채화하여 의장하는 이른바 서, 회, 화를 총칭하는 것으로 작업과정이나 채색된 상태를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에 와서는 단청이라는 개념이 건축물에 채색 하는 일 또는 그 상태를 일컬어 한정하여 쓰여지는 경향이 있으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그 개념은 넓어지며 그 명칭도 각기 다르게 불려졌다. 즉 단확, 단벽, 단록, 단주, 단칠 등으로 불리어졌다. 또한 이러한 단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컬어 화원, 화공, 도채장 등이라 하였으며 승려로서 단청 일을 하거나 단청에 능한 사람을 금어, 화사, 화승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단청이라 하면 건축물에 여러가지 색채로 그림과 무늬를 그리는 일을 말하며, 본래는 고대에 지배세력이나 나라의 길흉에 관한 의식이나 종교, 신앙적인 의례를 행하는 건물과 의기 등을 엄숙하게 꾸며서 일반 기물과 구분하기 위하여 의장하는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탑, 신상, 비석 또는 고분이나 무덤의 벽화, 출토된 부장품에 베풀어진 갖은 문양 등이 단청의 시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기록을 통해서 단청이 지니고 있는 뜻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중국 고대에는 중국에서 쓰이는 의기, 칠기 등을 관장하는 공장이 있었다. 「회남자(淮南子)」권5 '시축훈(時測訓)'보면 금철, 피혁, 근각, 전간, 지교, 단칠을 살피게 하여 불량한 것이 없게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단칠은 아마도 칠기류를 뜻하는 것이니 단청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불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인종 원년(1123)에 송나라 사람인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궁전도'에서 "단벽조식" 또는 "단칠난감"이란 용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단벽' '단칠'은 단청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점차 후대로 내려오면서 칠기 등을 다루는 일이나 건축물에 장엄하게 꾸며지는 모든 것이 단칠, 단벽 등으로 불렸던 것 같다.
이러한 장엄 행위는 건축물과 조형 활동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으며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거한 청, 적, 황, 백, 흑 오채(五彩)의 조화를 추구하며 시대와 사회의 미의식에 순응하여 오늘날의 단청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목조 건축물에 단청을 하는 이유는 우선 목재 표면이 갈라지거나 비, 바람 등 자연현상으로 인한 부식과 충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건축물의 성격을 나타내거나 건물의 특수한 성격에 맞는 장엄함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렇듯 건축물에 단청을 도채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비바람이나 기후의 변화에 대비한 부재의 풍해, 부식, 건습 등을 방지하고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절대 권력의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궁궐의 단청 장식하거나 종교적 의식을 위한
......불교 사원, 도교 사원 등의 장엄을 위하여.
......목재의 표면에 나타난 각종 옹이나 흠집 등을 감추고 외관의.미려함을 꾀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것과 구분되는 특수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전시와 기록을 위하여.
이상과 같이 열거한 몇 가지 단청의 목적들은 비단 각각의 항목이 독립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단청의 목적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은 역시 첫 번째 항목이다. 전술한 바와 동아시아 국가에서 주건축재도 사용된 소나무는 재질상 내강·내구·내곡성을 지닌다. 그러나 목질이 매우 강하므로 제재(製材)된 나무의 표면이 거칠 뿐만 아니라, 건조되면서 열상이 크다는 단점 또한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목재의 표면을 은폐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표면을 도장(塗裝)하는 방법이 강구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단청이 발달하게된 가장 원시적인 요인이다. 즉 목재와 세부 구조물 등의 표면에 칠이나 도채를 함으로써 목재의 부식을 막고 건축물의 영구성(永久性)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단청의 기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대 단청의 유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약하지만 고대의 문헌사료들과 고대 단청의 유구들을 통해 단청의 기원을 더욱 근접해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단청 유물은 중국 서한시대 묘의 부장품이었던 가옥형 토기에 채화된 고대 단청의 흔적이다. 적·백·흑색 등을 사용해 서까래부리와 주두, 벽 등에 단순한 기하학적 패턴을 장식한 것이다. 이 유물은 고대 건축에도 패턴화한 단청 문양이 장식되었다는 사실을 추정케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대 단청의 본격적인 유물은 4세기 중반부터 조영되기 시작한 중국 간쑤성 둔황현의 불교 석굴 유적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크고 작은 600여 개의 석굴 가운데 단청이나 벽화가 도채된 동굴이 무려 469개소나 확인되었다. 북위시대(386~534)에 조영된 석굴만 해도 22개소에 달하는데, 그 중 제 254굴 같은 곳에는 천장과 사방 벽, 불상, 불단 등에 화려하게 장식된 단청이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고대 단청의 유물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357년(고국원왕 27)에 조성된 황해도 안악의 안악 3호분은 조성 연대가 확실한 초기 벽화고분이다. 이 무덤의 석실 벽면과 천장에는 각종 그림이 채화되어 있으며, 목조 건물의 기둥과 주두 공포 부재는 석재로 번안되어 설치되었다. 그 가운데 주도에 도채된 귀면문과 천장의 연화문, 건물의 창방에 해당되는 부분의 당초문 등은 당시 건축물의 수준 높은 단청 양식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실례이다.
'단청'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사료는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와 유안이 저술한 「회남자」 제20권 「태족훈(泰族訓)」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다.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의 곡물은 그 종류가 다르나 모두 임무가 있고, 자와 저울과 먹줄은 그 형태가 다르나 모두 행하여지고, 단청(丹靑)과 아교와 칠이 같지 아니하나 모두 사용되는 것은 각기 적소에 제 물건이 마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기의 내용은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우선 전술한 바와 같이 '단청'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런데 『회남자』의 모든 기사 내용이 주(周)대로부터 전해지는 각종 기록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임을 전제한다면, 단청 기록 역시 그 이전의 유산임을 추정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회남자』의 기록은 단청의 역사를 전한시대 이전으로 올려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셈이다.
또 하나는 '단청교칠(丹靑膠漆)'이란 기록으로, 이는 단청과 칠이 분명히 다른 종류임을 일깨워준다. 죽, 단청과 아교와 옻칠의 합성어로 해석하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시 이 사실에 비추어 그 이전의 기록인 『여씨춘추』의 '지교단칠'이란 내용은 기름, 가요, 단청, 옻칠의 각기 다른 네 종류가 병립으로 열거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이러한 채료들은 국가적으로 꽌리되는 매우 중요한 산물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관리하는 다섯 창고 가운데 '지교단칠'의 전영 창고로 사용했으며, 장인의 우두머리인 공사(工師)가 그 제자인 백공(百工)에게 불량한 것이 없도록 소중히 살피라 명령한 것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런데 단칠이 단청과 칠의 두 종류임을 뒷받침해주는 유물이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어 크게 주목된다. 백제 25대 무령왕릉(525년)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발받침과 베개는 각기 칠과 단청으로 도채되었다. 왕의 것은 옻칠을 사용했으며, 왕비의 것은 붉은 은색으로 단청되었는데, 이는 단청보다 칠이 더 소중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이로 인해 옻칠과 단청이 분명 다란 채료임을 알 수 있으며, 당시에 단청이 일반 기물에까지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쓰임새로 발달한 옻칠은 특히 나무 표면에 칠하면 외관이 미려할 뿐만 아니라 영구성의 장정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나무를 건축이나 생활도구의 주된 재료로 사용했던 고대인들에게 옻칠은 보배로운 것이었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
이와 같이 포괄적 의미에서 칠(漆)이 단청의 일종임을 전제한다면, 단청의 기원은 상고사를 훌쩍 뚸어넘어 유구한 역사를 지니게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칠의 사용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고대인에게 옻칠은 대량생산의 어려움과 피부염 같은 부작용이 따랐기에 목조 건물 전체를 도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칠기가 소형 공예품에 한정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목조 건축의 단청은 쉽게 다룰 수 있고 대량 생산도 가능한 안료와 아교를 채취해 채색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채료가 자연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붉은색과 푸른색이었다. 특히 고대인들에게 붉은색은 주술(呪術)과 샤머니즘(Shamanism)의 상징성이 절대적으로 부여된 색채로서 기호 이상의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로 인해 단청의 기원이 칠의 폭넓은 발달 과정에서 파생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칠과 단청은 분명 성분이 다른 종류이지만, 재료의 부식을 방지하고 미려한 외관을 얻기 위한 목적에서 공통적인 쓰임대를 보인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단청의 기원인 인류가 옻칠을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던 선사시대로 비정될 수 있는 것이다.
단청과 관련된 국내의 사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으로 다양하다. 또한 중국의 사료로 『여씨춘추』, 『예기』, 『회남자』, 『문선(文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등이 있으며,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단청과 관련된 기사가 실리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문헌사료의 내용 중에 단청과 관련해 단칠(丹漆), 단벽(丹碧), 오채(五彩), 진채(眞彩), 채백(彩帛), 단확(端確), 화채(畵彩), 당채(唐彩) 등 다양한 용어가 기록되어 있다.
단청과 관련된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제 48권 「솔거조(率居條)」를 들 수 있다. 솔거는 신라 24대 진흥왕(540∼576 재위) 때의 화가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왕왕 새들의 날아와서 앉으려고 허둥대다가 떨어지곤 하였다. 후에 채석이 낡고 바래자 절의 스님이 단청(丹靑)을 부수하였는데 그만 새들이 날아들지 않았다.
위에 옮긴 기사에서 사용한 '단청'이란 용어는 우리 나라의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이어서 크게 주목된다. 아울러 노송 벽화를 단청으로 보완했다는 대목에서 '단청'이란 용어가 단순한 문양 도채의 범위를 벗어나 벽화의 개념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단청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사료는 『선화봉사고려도경』,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이다. 고려 인종(仁宗) 원년(1123)에 송나라 서긍(徐兢)이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 「궁전조(宮殿條)」에는 고려 궁궐의 건축물들을 친견한 소감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에 "궁궐 건물의 난간은 붉은 옻칠을 하고 동화(銅花)를 장식하였으며 단청이 장엄하고 화려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 궁궐의 건축물들이 "웅장하고 화려하다"는 수식어를 구사한 바, 여기에서 '웅장함'이란 건축물의 크기를 묘사한 말이며, '화려함'이란 곧 단청의 아름다움에 크게 감탄한 형용어구이다.
『고려사』 제18권 제18 세가편 「의종(毅宗)」에는 병자 10년(1156)에 "왕이 대궐 동북쪽에 정각을 세우고 '충허각'이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금벽(金碧)단청이 선명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금벽단청'이란 전술한 『삼국유사』의 「황룡사9층탑」에 쓰인 '금벽'과 동일한 용어로서 금이 사용된 화려한 단청을 가리킨다.
또한 같은 책 제102권 제15 열전 「유승단(兪升旦)」에는 "몽고대군이 경기 지방 가까이 침입했을 때 수도를 강화도로 옮길 일을 의논하였는데, 그때는 무사태평한 시대가 이미 오랜 기간 지속되어 경도(서울)의 호수가 10만 호에 이르렀으며, 거리에는 단청으로 채색된 집들이 줄을 이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는 단청이 일반에까지 크게 유행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조선시대의 단청과 관련된 사료는 『조선왕조실록』과 『증보문헌비고』 등이 상당한 부중을 차지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12년(1411)부터 철종 9년(1957)까지 무려 159건에 이르는 단청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에 '단청'이란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드물긴 하지만 진채, 금벽, 단확, 채화 등의 용어도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극단적인 배불정책(拜佛政策)으로 인해 사찰의 단청의 점차 줄어들었지만, 궁궐과 왕실 차원의 불사 단청의 여전히 지속되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의 단청 기록 가운데 상당수가 사찰의 값비싼 진채 단청에 반대하는 신하들의 상소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쉽게 인지되는 사실이다. 또한 이와 관련해 궁궐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단청에 진채 사용을 금하라는 내용도 수차례 등장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사찰과 사가(私家)의 단청의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왕족이나 일부 상류층의 저택에는 사치스러운 단청 치장이 그치질 않았다.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상류 계급의 저택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찰 단청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유생들의 서원까지 단청을 화려하게 장식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궐에는 정전, 대문, 편전, 침전, 배례전, 각루 등 다양한 건물이 존재한다. 이들 건축물에는 각기 그 등급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단청이 도채된다. 국왕이 정사를 돌보는 가장 상징적이고도도 웅장한 건물은 중앙에 위치한 정전이다. 경북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경희궁 숭정전, 덕수궁 중화전이 조선시대 5대 궁궐의 정전들이다. 이러한 정전에는 국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장엄된다. 대개 정전의 단청 양식은 정적이고 웅건한 멋을 느끼게 하는 의장적 특성을 지니며, 독특하고 권위적인 상징무늬와 색채가 호화로우면서도 은근한 기품을 보여준다.
사찰의 단청은 오늘날 한국 단청의 명맥을 이어오는 중요한 보고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불교 사찰 목조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 재건된 것으로, 단청의 유구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 사찰의 건물은 대불전, 보살전, 영산전, 팔상전, 조사전, 판전, 삼성각, 종루, 요사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바로 이러한 건물들에 한국 단청의 모든 조형 양식이 장엄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 사찰의 단청 양식은 조선 초기까지 이어진 고격한 맛은 많이 감소되고 문양의 구성과 장식이 상징적으로 복잡하게 조합되기에 이르렀다. 색채 또한 안료의 발달과 더불어 다채로운 색조 대비와 극도의 화려함이 성행하고 있다. 사찰 단청의 색채사용은 매우 원색적이고 표현적이며 다채로운 특성을 띤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으로 인해 향교와 서원이 활발하게 건축되었다. 향교는 성균관의 하급 관학(官學)으로서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대성전·양무, 강학 공간인 명륜당·양재 등을 건축하였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선현(先賢)과 향현(鄕賢)에 제사하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으로서 사우(祠宇)나 강당, 서재(書齋) 듸의 건물을 갖추었다.
유교 건축으 단청 양식은 검소하고 검양하면서도 웅미, 건실한 의장적 특징을 보여준다. 주로 긋기단청으로 고상하게 장식하고, 성전(聖殿)의 기품을 나타내기 위해 부분적으로 모로단청을 첨가해 의례적인 정신을 강조한다.
단청에서의 색채(色彩)란 안료(顔料)를 말한다. 안료란 물, 기름, 알코올 등의 용매에 용해되지 않는 유색 미립자상의 무기 또는 유기 화합물 착색제로, 접착제와 혼합해 칠하면 도막(膜塗)이 형성되어 조형물에 아름다운 색채를 나타내게 된다.
백색 또는 유색(有色)인 안료는 아교, 아미인유, 니스, 합성수지액, 아라비아고무 등 전색제(展色劑)에 혼합하여 각종 도료, 인쇄 잉크, 그림물감 등을 만들어 물체 표면에 착색하거나 고무와 합성수지 등에 직접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밖에 도자기의 유약(釉藥)과 화장품 또한 최근에는 합성섬유 원료의 착색에도 이용되는 등 용도가 다양하다.
안료와 비슷한 것으로 염료(染料)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물 및 유기 용매에 녹는 유색 분말로서 주로 섬유를 착색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투명성이 있기 때문에 단청 안료로는 적합하지 않으며, 주로 혼색을 만들 때 사용된다.
안료는 염료에 비해 불투명하고 착색력과 은폐력(隱蔽力)이 강하다. 안료는 무기 안료와 유기 안료로 대별되며, 알루미나와 황산바륨처럼 무색으로 은폐력이 없고 전색제나 증량제(增量劑)로서만 사용되는 체질 안료(顔料體質)도 있다. 안료는 종류에 따라 색조, 선명도, 착색력, 견뢰도(堅牢度 : 빛, 물, 알칼리, 산, 용매, 약품, 세탁, 열, 마찰 등에 대한 강도의 정도) 등이 다르며, 각각 알맞은 용도에 사용되고 있다.
고래로 단청의 기본 5색을 '오채(五彩)'라 하며 오행설과 결부하는데, 오행이란 우주간에 운행하는 원기로서 만물을 낳게 한다는 5원소를 가리킨다. 오행은 『상서(尙書)』「홍범구주(洪範九疇)」편에 처음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일상생활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위하여 그 성질과 효용을 나타낸 것이다. 오행설을 정식으로 주창한 것은 전국시대의 추연(騶衍)이다. 그는 오행의 덕을 제왕조(帝王朝)에 배당해, 우(虞)는 토덕(土德), 하(夏)는 목덕(木德), 은(殷)은 금덕(金德), 주(周)는 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다는 설을 내세웠다. 그 후 한 대(漢代)에 이르러 음양오행설이 성행하여 오행을 우주 조화의 면에서 해석하고, 또 일상 인사(人事)에 응용하면서 일체 만물은 오행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라 하여 여러 가지 사물에 이를 배당하였다.
곧 목(木)은 육성(育成)의 덕을 맡는다 하여 방위는 동쪽이고 계절은 봄이다. 화(火)는 변화(變化)의 덕으로 방위는 남쪽이고 계절은 여름이다. 토(土)는 생출(生出)의 덕으로 방위는 중앙이고 사계절의 주가 된다. 금(金)은 형금(刑禁)의 덕으로 방위는 서쪽이고 계절은 가을이다. 수(水)는 임양(任養)의 덕으로 방위는 북쪽이고 계절은 겨울에 해당한다.
한편 오행의 관계에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있는바, 상생은 목생화(木生火)·화생토(火生土)·토생금(土生金)·금생수(金生水)·수생목(水生木)으로 그 순서는 목·화·토·금·수이다. 상극은 수극화(水剋火)·화극금(火剋金)·금극목(金剋木)·목극토(木剋土)·토극수(土剋水)를 말하며, 그 순서는 수·화·금·목·토이다. 음양가들에 의하면 남녀가 상생으로 화합하면 행복하고, 상극으로 만나면 재화를 부른다고 한다.
한편 단청의 기본 5색과 결합된 오행설은, 중국의 가장 오래 된 공예기술로서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금(金)은 백색과 상생하고 목(木)과는 상극이다. 목(木)은 챙색이며, 청과 백을 혼합하면 벽(碧)색이 된다. 목(木)은 토(土)와 상극이며, 토(土)는 황색인데. 청과 황을 혼합하면 녹색이 된다. 토(土)는 수(水)와 상극이며, 수(水)는 흑색인데, 황과 흑흘 혼합하면 갈색이 된다. 수(水)는 화(火)와 상극이며, 화(火)는 적색인데, 청과 혼합하면 자(紫)색이 된다. 화(火)는 금(金)과 상극이며, 금(金)은 백색인데 적과 백을 혼합하면 홍색이 된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 배치에서 볼 수 있듯이 오방을 수호하는 신들을 상징적으로 결부하였는데, 동청룡, 서백호, 중인황, 남주작, 북현무가 바로 그것이다.
오행절기방위색상신상
목(木)봄(春)동(東)청(靑)청룡(靑龍)
화(火)여름(夏)남(南)적(赤)주작(住雀)
토(土)토용(土用)중(中)황(黃)인황(人皇)
금(金)가을(秋)서(西)백(白)백호(白虎)
수(水)겨울(冬)북(北)흑(黑)현무(玄武)
색채와 오행설 메뉴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단청에서의 색채는 안료를 의미한다. 원래 조선시대의 단청 안료는 진채, 당채, 암채, 이채라 하여 광물질 무기 염류가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는 것이었다. 18세기 말 수원에 성을 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일을 정리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당시 건축 단청에 사용한 채료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색상별로 정리해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황색 계통 : 석웅황(石雄黃), 동황(銅黃), 황단(黃丹)
적색 계통 : 당주홍(唐朱紅), 연지( 脂), 번주홍(燔朱紅)
녹색 계통 : 하엽(荷葉), 석록(石綠), 삼록(三綠), 뇌록(磊綠)
청색 계통 : 청화(靑花), 청화묵(靑花墨), 이청(二靑), 삼청(三靑)
백색 계통 : 진분(眞粉), 정분(丁紛)
흑색 계통 : 송연(松煙)
기타 재료 : 아교(阿膠), 명유(明油)
그러나 이러한 안료는 값도 비싸고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대부분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체로서 공업 화학적으로 제조되어 빛깔이 다양호가 선명하며 저가(低價)인 화학 안료를 사용하고 있다.
양록 황, 주홍, 군청 등 화학 안료는 대부분 그 성분에 독소가 들어 있어서 인체에 해롭지만, 목조 부재의 방충, 방부, 방청, 방습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 자연 안료보다 색상이 선명하고 빛깔이 고운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러 색을 혼합하면 화학적 상호 작용으로 인해 색이 탁해지거나 건조 후 변색이 빠르게 진행되는 단점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단청에 사용되는 화학 안료는 크게 유기 안료와 무기 안료로 구분되는데,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실험을 거쳐 문화재청에 의해 지정된 안료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녹(綠) : 시아닌 그린(Cyanin Green), 뇌록(磊綠)에 제조에 사용됨.
장단(長丹) : 퍼머넌트 오렌지(Permanent Orange)
황(黃) : 퍼머넌트 옐로(Permanent Yellow)
주홍(朱紅) : 툴루이딘 레드(Toluidine Red)
먹(墨) : 퍼머넌트 블랙(Permanent Black)
지당(白色) : 티타늄 디옥사이드(Titaniume Dioxide R760)
황토(黃土) : 아이언 옥사이드 옐로(Iron Oxide Yellow)
호분(胡粉) : 패분(貝粉 : 조개 껍데기 가루)
양록(洋綠) :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
장단(長丹) : 리드 레드(Lead Red)
석간주(石間) : 아이언 옥사이드 레드(Iron Oxide Red)
황연(黃鉛) : 크롬 옐로(chrome Yellow)
하엽(荷葉) : 크로미움 옥사이드 그린(Chromium Oxide Green)
양청(洋靑) : 코발트 블루(Cobalt Blue 7117)
군청(群靑) : 울트라마린(Ultramarine)
단청의 색조란 각종 문양에 걸맞은 안료를 조채(調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종 벽화의 색조는 화공의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혼합 조채할 수 있지만, 단청 문양의 색조는 명도와 채도, 색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채, 배색하는 규정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성격이 다른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한 국가의 경우 모든 단청 색조에 동일한 색상 대비의 조화를 적용받게 된다. 이로 인해 특정 국가의 단청 색조가 일관된 특성을 나타내게 되는데,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타이 등지의 단청 색조가 각기 조금씩 다른 특성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청 색조에서는 특정 색의 명도를 2∼3단계로 구분하는데, 바로 이것을 '빛'이라 부른다. 이러한 빛 단계(Gradation)는 명도에 따라 백색과 흑색 사이에서 초빛, 2빛, 3빛의 순서로 나열되며, 최대 4빛까지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초빛, 2빛, 3빛은 다른 말로 초채(初彩), 이채(吏彩), 삼채(三彩)라 부르기도 한다.
빛의 단계적 구성을 살펴보면, 모로단청에서는 2빛 단계를, 금단청에서는 연화, 주화, 휘 등에 3빛 단계를 적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사찰 봉정사 극락전에서는 부분적으로 최대 4빛까지 사용된 예가 보인다. 금단청 양식에만 적용되는 3빛 단계인 경우, 초빛, 2빛, 3빛의 순서로 채색하고, 2빛 앞에는 백선으로. 3빛 뒤에는 먹선으로 마감한다. 따라서 3빛으로 할 경우 실제 명도는 5단계로 구분된다.
바림채색이란 명도와 채도가 다른 색 두 가지 이상을 한 바탕에 칠할 때 특정 색에서 다른 색으로 부드럽게 변하도록 채색하는 선염법(渲染法, Gradation)을 말한다.
바림채색은 단청 문양의 도채에서는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지만, 각중 불상 도채나 벽화 등의 회화적 표현, 탱화 채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법이다. 특히 옷 주름이나 얼굴 등의 양감을 나타날 때는 반드시 바림채색을 사용해야 한다.
휘채색(輝彩色)이란 일정하게 구획된 면에 한 가지 색만 칠하는 채색법을 말한다. 이 방식은 특정 면에 단일 색을 칠하기 때문에 '면채(面彩)' 또는 '면채색(面彩色)'이라고도 한다.
단청에서는 거의 모든 색조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원래 탱화에서도 모든 면에 바탕색을 칠할 때는 이 방식으로 채색한다.
'고분(高粉)'이란 단청 문양의 일부에 아교로 갠백분을 여러 번 엇칠해 블록하게 돋움질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중요 문양을 고분채색으로 돋움질하여 금박을 붙이고 채색하면 더욱 화려한 빛을 발할 수 있다.
옻칠로 금박을 붙인 다음 그 위에 밀타유(密陀油)에 안료를 섞어 갠 물감으로 도채하는 방식을 '밀타회채색'이라 한다.
원시사회부터 인류는 이 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집단 공동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징성에 대한 집단의 공감대를 표징하기 위해 약속된 부호와도 같은 원시적 문양을 하나둘씩 형성해나갔다. 일찍이 인류 문명의 여명기에 문양의 출현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아무렇게나 찍어놓은 점 하나라도 그것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면, 그것은 문양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인류의 발달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리 하찮은 무늬라 할지라도 그만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공헌해온 것이 무릇 얼마나 될까? 문화예술사상 조형미술 전반에 걸쳐 문양이 미친 정신사적 공로는 실로 위대하다. 그런 까닭에서 문양은 문자와 더불어 인류 문화사상 가장 유구한 것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문양이 지닌 미적 가치는 무엇이며, 어디에 근원하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장식적 욕구를 지닌다고 한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생존 본능을 초월해, 인간 스스로를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세계를 창조해내려는 욕구로부터 예술이 발생되었다. 그 초보적인 형식이 바로 모든 예술의 가장 보편적인 장식예술, 즉 문양이다.
문양이란 인간 의식의 반영이자 정신 활동의 소산이며, 동시에 창조적 미화 활동의 표상이다. 따라서 문양에는 조형미술의 원리가 다소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문양은 그 주제의 성격이나 표현 내용으로 볼 때 순수 감상용 미술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즉 순수 감상용 미술이 작가 개인의 주관적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는 데 반해, 문양은 집단적 가치감정의 상징물로 일반화한 것이다. 다시 말대 전통 문양은 우리 민족의 집단적 가치 감정이 통념에 의해 고정되고 표상된 제2의 자연, 또는 상징적 시호에 의해 표현된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감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기원을 담은 주술적 대상, 또는 그런 정서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는 상징 조형이다.
문양이란 보편적 의미에서 무늬 개념에 국한되지만, 그 범위를 확대하면 광범위해진다. 즉, 공예·건축·조각·회화 등의 모든 조형예술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총체적인 요소로서 장식적 효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양은 실제 혹은 공상적 물상이 양식화한 형태로서 시대·사회적 질서 속에 전개되는 모든 조형 단위를 포괄한다.
우리 나라 단청 문양의 기본 요소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주술·종교·토속적인 각종 상서로운 문양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 종에는 건축 단청에 많이 이용되는 것들도 있지만, 지극히 제한적인 것도 적지 않다.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단청 문양으로 채택된 요소들을 종류별로 구분하여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기하문 : 원,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뇌문, 태극, 나선형, 격자, 만(卍), 아(亞), 삼원(삼보), 곱팽이, 직선 등.
· 당초문 : 구름당초, 인동당초, 포도당초, 싸리당초, 국화당초, 보상당초 등.
· 자연문 : 해, 달, 별, 구름, 화염, 파도, 기암, 산수, 십장생 등.
· 식물문 : 소나무, 대나무, 난, 석류, 감꼭지, 영지, 불로초, 각종 수목 등.
· 화 문 : 연꽃, 국화, 모란 매화, 만다라(보상화) 등.
· 동물문 : 용, 봉황. 거북, 기린 주작, 사자, 코끼리, 범, 박쥐, 나비, 잉어, 곤충, 물고기, 각종 금수(禽獸) 등.
· 종교문 : 불상, 보살, 선인, 비천, 12지신상, 성상(聖像), 불패, 귀면, 가릉빈가 등.
· 길상문 : 수복(壽福), 강녕(康寧), 희(囍), 부귀(富貴), 칠보 등.
· 생활상 : 수렵, 어로, 농경, 전투, 무용, 연회, 주악, 문구, 악기, 필목 등
단청 문양은 각 부재별로 장식 구성의 위치에 따라 머리초, 계풍초, 별화, 부리초, 주두·소로초, 주의초, 반자초, 포벽초, 궁창초, 착고, 개판초, 편액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각 위치별로 구분된 단청초의 문양 종류는 다음과 같다.
· 머리초 : 꽃의 종류 구분-연화머리초, 주화머리초, 모란(목단)머리초, 녹화머리초
도안 형식 구분-관자머리초, 병머리초, 장구머리초, 겹장구머리초 등.
· 계풍초 : 십자금, 고리금, 거북금, 모닷금, 삼지창금, 솟을금, 줏대금, 결련금, 갈모금, 박쥐금, 각종 혼합 금문
· 별 화 : 불상, 비천, 가릉빈가, 용, 봉황, 기린, 거북, 주작, 신선, 산신, 사자, 학, 산수
· 부리초 : 매화, 태평화, 십자금, 고리금, 연화, 주화, 모란, 파련화, 여의두문, 귀면
· 주두·소로초 : 색긋기, 녹화, 연화, 주화, 여의두, 파련화 등.
· 주의초 : 탁의주의, 머리초주의, 드림주의 등.
· 반자초 : 연화문, 주화문, 육자진언, 용문, 봉황문, 당초문, 석류문, 운문, 쌍희자문, 학문, 각종 화문등.
· 포벽초 : 불상초, 운문, 연화당초, 보상동초, 각종 당초문 등.
· 궁창초 : 연화, 모란, 보상화, 귀면, 각종 당초문 등.
· 착 고 : 연화, 녹화, 주화, 파련화, 등으로 조합된 각종 문양.
· 개판초 : 연화, 녹화, 주화, 파련화 등으로 조합된 각종 둘레방석 문양.
· 편 액 : 칠부문, 박쥐문, 길상문, 각종 당초문 등.
이 밖에도 대공에는 각종 파련초가 도채되며, 보재 밑면 뱃바닥에는 각종 색긋기나 장흘림, 동흘림 문양이 장식된다.
가칠단청은 부재의 영구 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가장 낮은 등급의 양식이다. 선이나 각종 문양을 전혀 장식하지 않고, 몇 종류의 색으로만 2회 이상 반복 칠해 마무리한다. 가칠에 사용되는 안료(단청에서의 채색 할 때 쓰이는 일종의 물감)는 뇌록, 석간주, 육색, 백분, 미색, 삼청, 삼록, 양록 등으로 다양한데, 뇌록과 석간주가 가장 많이 쓰인다. 부재의 면닦기가 완료되면 바탕면에 교착제를 포수하고 건조 후 다시 바탕칠을 한다. 그리고 바탕칠이 완전히 마른 후 각 부재에 적용되는 색으로 다시 2회 이상 가칠한다. 창방 이상의 가로부재에는 뇌록을 가칠하며, 기둥을 포함한 그 이하 부재와 합각판 등에는 석간주를 가칠한다. 각종 벽에는 토육색, 주홍육색, 삼청, 삼록 등을 가칠하며, 연목 사이의 연골에는 분 가칠을 한다. 또한 부위에 따라 다른색도 추가될 수 있다. 가칠단청은 주로 사찰의 요사채나 궁과 능의 협문, 일반 주택 등에 적용된다.
가칠단청에서 한 단계 진보된 것으로 부재에 바탕칠을 한 후 먹·분선긋기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먼저 각 부재에 상응하는 바탕색을 칠하고 건조 후 부재의 형태에 따라 먹·분선을 틈이 벌어지지 않게 복선으로 긋는다. 창방 이상의 목부재와 각종 벽에만 선긋기를 하고, 석간주가 칠해지는 기둥 이하의 부재에는 생략한다. 긋기는 경우에 따라 색을 한두 종 더 사용하기도 하며, 화반, 익공 등의 초각에는 그 형상을 따라 먹·분선긋기로 문양을 넣기도 한다. 또한 부연, 서까래, 출목 등의 마구리에는 매화점, 연화문, 태평화 등의 간단한 문양을 넣는 경우도 있다. 주로 사찰의 요사채나 향교와 서원의 부속 건물 등에 적용된다.
'머리단청' 또는 '모로단청'이라고 하는데, 이는 목부재의 끝 부분에만 머리초 문양을 장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즉 '모로'란 '머리'의 발음이 변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휘 장식을 포함해 머리초 문양의 적용 범위는 목부재 길이의 약 1/3 ㅓ정도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부재가 대량처럼 아주 길거나 짧은 경우에는 적용 범위도 달라진다. 부연과 서까래 등에는 처마 끝 부분에만 머리초를 장식한다. 창방, 평방, 도리, 대량 등에는 양단에는 각각 머리초를 장식하며, 중간(계풍)은 뇌록 바탕에 선긋기로 마무리한다. 머리초 문양은 다소 간략하게 도안하고, 휘 장식 역시 2∼4개 정도의 간단한 늘휘나 인휘(人暉)로 구성한다. 직휘(直暉)는 복잡하지 않은 먹직휘나 색직휘 등을 사용하고, 색상은 명도 대비 2색으로 도채한다. 이 양식은 전체적으로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단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주로 사찰의 누각, 궁궐의 부속 건물, 향교, 서원, 서당, 정자 등에 적용된다.
얼금단청의 조형 양식은 최고 등급인 금단청과 모로단청의 절충형이다. 다른 말로 '금모로단청'이라고도 하는데, 세분하면 그보다 약간 상위 등급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원래 '얼금'이란 이름은 계풍에 금문이나 당초문을 얼기설기 그려 넣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따라서 계풍에 뇌록 가칠만을 하는 금모로 양식과는 약간 차별성을 보인다.
머리초는 모로단청보다 다소 복잡하게 도안해 금단청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출초(出草)한다. 휘 장식은 대개 인휘로 구성하는데, 그 수는 3∼5개가 보통이다. 중간 계풍에는 계획된 출초 없이 즉석으로 간단한 당초문을 그리거나 단색 계일 2빛을 금문을 넣기도 한다. 포벽에는 출초하지 않고 간단한 당초문을 장식한다.
이러한 단청 양식은 원래부터 확실한 조형 등급으로 분류되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양식이 출현하게 된 동기 중 하나는 값비싼 단청 시공비를 절감하려는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의 주요 불전에는 그 성격에 맞게 당연히 최고 등급인 금단청 양식이 장엄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공비가 부족해 도저히 금단청을 장엄하지 못할 경우에는 왕왕왕 이러한 절충 양식이 시행된다. 또한 모로단청이 제격이라 할 수 있는 종각, 조사전, 삼성각, 장경각 등에도 좀 더 품격 높은 장엄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 얼금 양식을 시공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 양식의 단청은 사찰 이외의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금단청은 최고 등급의 장엄 양식이다. 이 양식의 명칭에 비단 금(錦)자를 붙인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비단에 수를 놓듯이 모든 부재를 복잡한 문양과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금단청 양식에는 금문이 추가로 장식되는데, 이 때문에 '금단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금단청의 머리초에는 병머리초, 장구머리초, 겹장구머리초 등 화려한 문양을 적용하고 곱팽이에 번엽을 추가하기도 한다. 휘 역시 가장 복잡한 바자휘를 4∼6개 사용해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직휘는 장단직휘를 사용할 수 있으나 대개 금문직휘를 장식하며, 부연과 서까래의 뒤끝머리까지 머리초를 도채하는데, 이를 '뒷목체'라 부른다. 계풍에도 각종 금문을 장식하고, 중심부에 풍혈 또는 안상(眼狀)을 구획해, 그 안에 용, 봉황, 학, 신수, 화조, 산수, 사군자, 비천 인물 등의 별화(別畵)를 장식한다. 또한 문양 전체의 황색 줄을 금박으로 도금해 찬란한 광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포벽에는 각종 부처상을 묘사하는데, 이를 '불벽화'라 하며, 화려한 보상화문을 도채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엄 양식은 대웅전, 대웅보 , 극락전, 비로전 등 부처님을 모신 사찰의 중심 법당에 적용된다.
금단청보다 화려한 것으로 각종 문양을 더욱 세치(細緻)하고 화려하게 장엄하는 조형양식을 말한다. 즉 금단청보다 문양을 밀도 있게 도채하고, 각종 별화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또한 고분법이나 돋움질을 이용해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거나, 그 위에 금박을 사용해 찬란한 광채의 화엄장엄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양식은 금단청을 더욱 화려하게 장엄하려는 의도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금단청과 양식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지극히 잘된 금단청을 '갖은금단청'이라 하는 것이다. 이 양식은 많은 시간과 고가(高價)의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사찰의 대불전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