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계속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평화협상을 위한 외교 과정상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뮌헨안보회의(MSC)가 14일 개막했다.
16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이 회의에는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 약 60명, 장관 및 주요 국제기구 수장 약 150명 등 총 45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정은 14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의 개막 선언을 시작으로, 참가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안보 문제를 협의하고, 15일에는 '현재의 국제 질서와 대서양 파트너십의 미래'에 대한 주제로, 16일에는 '세계에서의 유럽 역할'에 대한 주제로 각종 행사가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프 호이스겐 의장이 옌스 스톨텐베르크 전 나토(NATO) 사무총장에게 뮌헨안보회의 의장직을 넘기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동안 나토 국방장관들의 비공식 회담으로 시작하는 게 관례였다.
◇삐걱댄 미-우크라 첫 공식 회의
회의 첫날의 수많은 행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역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우크라이나 간의 첫 만남이었다. 미국 측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이,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 등이 참석했다.
뮌헨안보회의에서 열린 미-우크라 회의/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러나 미-우크라 대좌는 시작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4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광물 채굴 합의 스캔들'(Скандал с договором по ископаемым) 코너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첫 공식 회의가 뮌헨에서 열렸다"면서 "그러나 그 회의는 뒤늦게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 이유를 스트라나.ua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12일 키예프에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으로부터 받은 미-우크라 광물 협정 초안을 검토한 뒤 수정안을 14일 미국에 전달했고, 미국이 이를 검토하기 위해 회의 연기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표(12일)에 따르면, 미-러 광물 협정 서명이 미-우크라 대표단 간 뮌헨 만남의 핵심이었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키예프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초안을 전달한 뒤 "광물협정이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호막'(security shield)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뮌헨안보회의에서 협정 체결을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12일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만나는 장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사이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이튿날(13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미국의 영구적인 경제적 이익(희토류 등 광물 개발/편집자)과 관련이 있다면 미국에 이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의 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획득하면, 일부는 그곳에서 쓰인 수십억 달러에 대한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반환되고, 일부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 복구에 재투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가 미국의 광물협정 초안을 퇴짜놓은 이유는
하지만 광물 협정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1차 퇴짜로 결론이 놨다. 광물 자원을 제공하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확실한 안보 보장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는 게 주요 외신들의 전언이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검토할 것도 없이 그냥 협정에 서명하도록 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 포스트(WP)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의 50%에 대한 권리를 미국에게 넘기도록 하는 문서(협정 초안)을 내밀었지만, 퇴짜를 맞았다고 전했다.
특이한 것은 미 NBC 방송의 보도다. NBC는 베센트 재무장관이 우크라이나 측에 '희토류의 50%를 보장하면 종전 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주둔시키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우크라이나 주둔을 거부해온 미국이나 러시아의 기존 방침과는 배치되는 약속이다. 발언의 사실 여부는 떠나, 미국의 광물협정 초안은 그 내용상 '식민지 협정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우크라이나의 내부 반발을 불렀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협정안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서명을 허락하지 않았으며,이 협정안은 우리와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측도 우크라이나의 부정적인 반응에 불만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뮌헨안보회의를 취재한 언론인 율리아 자벨리나는 유튜브 '라디오 NV(Радіо НВ)'를 통해 미국은 키예프(키이우) 수정안에 대해 "미국 싱크탱크의 전문가 수백 명이 초안을 준비했는데, 우크라이나에서는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 몇몇이 졸속으로 수정했다"며 "불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이날 저녁 뒤늦게 마주 앉았다. 그러나 40여분만에 끝났다. 밴스 부통령은 "우리는 전쟁을 끝내고 살상을 멈추길 원한다"면서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동유럽이 분쟁에 휘말리게 될 평화가 아닌, 견고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좋은 대화를 나눴다. 첫 만남이고 마지막이 아닐 걸로 확신한다"며 "더 대화하고 협력해 푸틴 (대통령의 야욕)을 막을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담에 앞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 유럽과 공동 계획을 세운 뒤에야 푸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며 "전쟁 종식을 위한 미국의 준비된 계획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광물협정 초안을 놓고 밀당을 했던 양측의 첫 회담 분위기는 밝을 수가 없었다. 그 분위기를 한 러시아 언론은 이렇게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실장은 협상장이 아니라, 사우나에서 나온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협상장을 떠났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언론의 취재도 거부하고, 자동차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유럽에도 제공할 수 있다"는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의 미 폴리티코 기고도 공개됐다. 기고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에 중요한 30가지 광물 중 22가지를 보유하고 있다"며 "유럽 대륙에서 최다 매장량을 지닌 우라늄을 유럽에 수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크라이나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리튬 광산이 있고, 티타늄 매장량도 세계 상위권에 속해 유럽 시장에서 러시아 티타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고민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광물 협정 수정안을 거부할 경우, 대체 카드가 없다는 현실에 있다. 미국이 대(對)우크라 군사 지원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물 카드'는 미국이 오케이(OK) 해야만 유용하다. 워싱턴이 노(NO) 하는 순간, 광물 카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크라이나의 광물 채굴 모습/사진출처:스트라나.ua
또 희토류 광물 카드는 아직 '봉이 김선달식 대동강 물'에 불과하다.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의 광물 매장량에 대해 실제 가치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각 매장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경제성도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십억 달러의 선(先)투자와 수년간의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우크라이나 전역이 러시아의 미사일및 드론 공습 사정권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민간 투자및 개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쟁이 끝나야만 가능한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이 '광물 카드'를 선뜻 붙잡은 것도 이런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화 협상 촉진을 위한 우크라이나 압박카드다.
미-우크라 공식 회담이 미뤄지는 바람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우크라이나 특사와 안드레이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장간의 만남이 이날 먼저 이뤄졌다. 예르마크 실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켈로그 미 특사와 뮌헨에서 만났다.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 노력의 조율이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며 "미국 측의 협력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켈로그 특사와 예르마크 실장이 뮌헨안보회의에서 만나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미-러-우크라 간의 사우디아라비아 접촉설의 진실
이날 언론의 관심을 끈 또다른 사안은 미-러-우크라 간의 사우디아라비아 협상 가능성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13일)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내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회동할 것이라고 말한 게 그 시발점이다.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무부는 14일 엑스를 통해 미-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는 제안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그 직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공식 방문을 알렸다. 그는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뒤 터키로 갈 것"이라면서 "그러나 러시아와의 만남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미-러-우크라 3자 형식의 협상 준비도 부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EU와 공동 계획을 세운 후에야 러시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기존 노선을 놓치 않았다.
그러나 미국 측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평화안의 윤곽을 조금씩 공개하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는 첫 단계는 휴전"이라며 "그 다음 단계는 인도적 지원 통로의 개방과 에너지 등 인프라 공격 금지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고, 논의조차 되지 않았지만, 휴전이 평화 정착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장기적인 안보 보장을 제공해야 하고, 협상에서는 영토 문제와 군비 통제, (러-우크라 간의) 언어 및 문화 문제 등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미국은 휴전→우크라이나 선거→평화 협정 체결로 이어지는 평화 구상을 논의한 바 있다"며 "많은 정보에 따르면, 4월 20일 부활절까지 휴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나온 미국 고위 인사들의 엇갈리는 평화안 관련 발언은 의도적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밴스 부통령의 말바꾸기가 대표적이다. 밴스 부통령은 평화협상이 실패할 경우 우크라이나 미군 파견도 배제하지 않았다고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보도했다. 그는 WSJ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 수단 외에 군사적 압박 수단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온 뒤 밴스 부통령은 이를 부인하며, 월스트리트 저널이 그의 말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매체 베도모스티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나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미국 고위 관리들의 모순된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흐트러뜨리고 혼란스럽게 만든 뒤, 자신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상술(商術)과 같은 것"이라며 "이러한 방식이 기업간 거래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외교 정책에서는 어떻게 나타날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밴스 부통령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갈등이 성공적으로 해결되면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재고할 의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가 전장보다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고자 한다"며 "우리는 이 거래에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부 사항은 평화 협상에서 합의되어야 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 밴스 부통령의 안보회의 연설
밴스 부통령의 이날 안보회의 기조 연설도 참석자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유럽 내부에서의 위협이 우려된다"며 "유럽 전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러시아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어떤 외부 세력도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유럽의 주류 사회에서 인기 없는 후보가 루마니아 대선에서 1위를 차지하자, 선거 자체가 취소됐다"며 "이를 EU 집행위원회의 한 위원이 지지하는 것을 보고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앞선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마을의 새 보안관"(new sheriff in town)으로 표현하며 "미국이 위험에 처해 있는 세계 다른 지역에 집중하는 동안 유럽인들은 (자기 방어와 관련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동맹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도발적인 그의 연설에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 행정부는 우리와 매우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기존의 규칙, 파트너십, 기존에 구축된 신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으로 EU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친 사슴처럼 얼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보회의에 참석했던 곤차로프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은 "밴스 부통령이 연설에서 전쟁과 우크라이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이것은 우리에게 나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의 새 정부 등장으로) 이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며, 우리 외에는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며 "우리는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한편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중국을 억압하면 우리는 끝까지 맞설 수밖에 없다"면서도 "미국이 중국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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