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감사 (합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이 시간에 “절대적 감사”라는 제목입니다. 감사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물리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조건적인 감사인데 이것은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하고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일반적인 감사입니다. 좋을 때 드리는 감사입니다.
다음은 철학적 감사가 있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깨달음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깨닫고 보니까 은혜요, 복이란 말입니다. 전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제일 행복한 사람임을 깨달았다는 등의 감사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는 절대적 감사는, 진리적 감사, 신앙적 감사, 복음적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과 그 진리 앞에서 우리의 자세를 말씀한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는 속담처럼 솟아날 구멍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절대적 감사란 인간의 생각으로는 감사할 수 없지만 진리를 믿음으로 감사해야 하는 그런 감사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하고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 것임이 암시된 말씀입니다. 감사할 상황도 아닌데 감사하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러나 이 감사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고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아 누리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감사했던 것과 같은 감사입니다. 갈4:28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듯, 우리도 이삭과 같은 새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의 하박국의 감사가 그것입니다. 그에게 물리적 감사할 조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였습니다. 철학적 조건의 감사도 아니었습니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절망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뜻밖에도 합2:4에 나오듯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였습니다.
롬1:17에서 응용한 걸 참고해 보면 의롭게 되는 것도 믿음, 그렇게 의인이 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도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나에게는 희망이 없고 오직 하나님 만이 희망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16절)이라고 하면서, 17절부터는 갑자기 찬양으로 변합니다. 우리 믿음도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이 말씀은 우리 기독교 교리의 근간이요 핵심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에 의해 이신득의라는 구원의 교리적 기초가 되었고(롬1:17; 갈3:11). 루터를 통해 ‘sola fide'(오직 믿음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을 낳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적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1.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18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면 왜 즐겁습니까? 우리 아버지시고 그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이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나같은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나는 뼛속까지 죄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너무나 실망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고, 나도 감히 사랑 받는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귀가 준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사1:18-19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변론하자”는 원문의 뜻은 이성적·도덕적·법적 기준 위에서 죄의 문제를 다루고 해결해보자는 자비로운 권유입니다. 즉 '이치적으로 따져 보자. 법리적으로 따져 보자. 복음으로 따져 보자'는 뜻입니다.
즉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네가 고민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거냐? 죄 가운데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는 거냐? 알고 보면 성도가 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몰랐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5:1에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했고, 롬6:2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해가 잘 안 되는 분들은 하나님 사랑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죄 없다 용납하시는 그 사랑 = 보혈의 공로와 같습니다. 우리를 자녀로서 온전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그 사랑 =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의 공로와 같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믿을 절대적 복음이요 우리가 영원히 부를 찬송의 제목입니다. 그 다음 절대적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는?
2. 구원하시되 영광스럽게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8절에 하박국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영광스럽게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롬8:30에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딤후2:10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임 그 자체가 우리가 용서는 물론 온전히 영화롭게 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를 얼마나 믿고 순종하고 사랑함으로 모시느냐에 달렸습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믿음은 미션과 같습니다. 엔진이 좋아도 미션(변속기)이 나쁘면 힘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담 안에서 졸지에 비참하게 되었으나,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했어요. 그러므로 이처럼 우리도 알지 못하던 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성취하셔서 예수를 모셔들임으로 우리 인생을 반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롬5:15-17에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는 영원한 절망이지만 복음 안에서는 영원한 희망입니다. 현실만 보지 말고 복음을 바라보세요.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날마다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은혜가 넘쳐야 찬양하는 것 아닙니다. 좋은 일 있어야만 하는 것 아닙니다. 하박국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없고 또 없고 또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듯 하나님 생각하며 예수 복음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절대적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는?
3. 이럴 때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우리 발이 사슴처럼 가볍게 됩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야 합니다. 혹시 발이 무겁다면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는 것이 본능이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본능입니다. 강제가 아닙니다. 사랑을 생각하면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복을 받았다는 걸 알면 찬송이 나옵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찬송이 입술의 시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을 온전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은혜를 누립니다(시50:23). 스데반처럼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넘어집니다. 사슴이 높은 곳을 다니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늘에 속한 영광과 승리와 권세를 누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은혜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진리요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처럼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녹는 현실 가운데 있을지라도 나는 믿음으로 살리라 다짐한 그대로 찬송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바른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복음에 서서 절대적 감사를 영원히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은혜를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