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39]초상화 재능기부와 암투거사癌鬪居士 문병
염천지하 삼복지절인 어제(8월 5일)는 긴 하루였다. 오전 9시 ‘손자 케어’를 안해도 되는 프리한 날이라는 말을 듣고, 오전에 생각한 것이 멀리 경상도 어느 산 속에서 투병 중인 친구 문병을 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 아내가 알아봐준 차편은 의외로 복잡하고 시간이 엄청 걸렸다. 남부터미널 오후 2시 출발(청주-보은-미원-화령-상주. 목적지인 화령 도착 5시 40분), 상경하는 막차는 밤 7시 50분. 왕복 7시간을 족히 넘는 거리. 그래도 앞으로 시간이 만만찮을 것같아 “도전!”을 외치고 11시 집을 나섰다.
# 남부터미널 1번출구 근처 한국미술재단(KAF:Korea Art Fountation)의 상설 화랑畵廊의 이사장님과 점심을 약속했다. KAF는 소속작가 30여명의 초대전을 2주씩 연중무휴 무료 개최해주는, 화가들을 후원하는 아주 유니크한, 어쩌면 거의 독보적인 비영리법인. 두어 달 전, 후배친구의 펜화전을 계기로 알게 된 황의록 이사장은 대학교수 정년퇴직이후 지인들과 힘을 합해 화가들을 돕자고 나선 ‘괴짜’ 경영학자이다. 그분의 공의公義로운 생각에 경제적으로 동참할 수는 없어도 삼복지절 냉면이라도 한 그릇 사드리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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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고 있는 전시회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이동원 화백 개인전이었다. 인물화 전문작가인 그가 KAF 후원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싶다고 해 이뤄진 것. 1년에 몇 천만원씩을 가난한 예술가(화가)들을 위해 어떤 조건없이 후원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몇 배를 후원하는 분을 포함하여 50여명에 이른다는데, 전시회 초상화로 처음 선보인 분은 모두 30명. 그중에 눈길 끄는 부자父子(황이사장과 그의 장남) 초상화와 여중생의 초상화(그의 부친이 자기 대신 딸의 초상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함).
초상화 작가가 초상 대상자 30명과 실제 인터뷰를 거치고 사진을 찍으며 대상자의 내면의 심성까지 그리려 고통스런 산고産苦의 시간을 1년여동안 가진 끝의 값진 열매라는 것. 시중가격으로만 해도 1점에 2천만-3천만원을 호가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말없이 후원해준 ‘가슴이 따뜻한’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뭔가 선물하려는 ‘보은報恩’차원의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과 맞아떨어진 것일 게다.
아무튼, KAF는 전국 초등학교 안에 <작은 미술관>들을 개설해주는 문화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경북과 강원도 내 60개교와 전북도내 15개교에 개설하는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전시작품도 KAF 소속작가들이 기증을 하고 현장 미술교육도 시켜준다는 것. 목표는 초등학교 600개교에 <작은 미술관>을 개설해주는 것. 전국 초교의 10분의 1에 해당.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는 후원자들의 지론과 신념의 소산이다. 무운장구하여 활짝 꽃이 피기를 빈다.
# 냉면 한 그릇 사드리려다 비싼 도시락을 갤러리에서 얻어먹고 나선 길. 무지막지하게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산까지 얻어나왔다. 상주행 고속버스는 1시간여를 달려 청주에 도착, 무슨 사정인지 버스를 바꿔타란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을 방문차 청주를 들른 적 있지만, 시내를 통과하는 것은 처음. 청주를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국도로 온갖 고을을 거쳐 충북 보은에 도착. 그 중간에 ‘미원’이라는 고을 근처에 단재 신채호선생 사당과 묘소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곧바로 검색. 그분의 생가에 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단재 선생이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쓴 비석도 놓여 있다한다. 시간만 있다면 반드시 들러 참배도 하고 그랬으련만. 아쉽다. 언제 시간만 되면 승용차로 들러봐야 할 곳이다.
5시 40분. ‘암투거사癌鬪居士’(친구 본인이 2019년 위암胃癌 발병으로 치료에 전념할 때 지은 자호自號) 친구 부부가 마중을 나와 있다. 귀경하는 버스 시간 때문에 그들의 거처는 들를 생각도 못하고, 인근 토종닭 백숙 맛집으로 직행했다. 본인은 닭다리 하나를 갖고 1시간여 끙끙대며 먹는데, 나는 열심히 잘 먹는 게 미안할 일이다. 두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투병의 근황과 어떻게 먹고 잘 자는지 등을 물었다. 안타깝기로야 한이 없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5년 투병 완치판정을 기다리는데, 청천벽력도 유만부동이지, 전이轉移가 웬말이던가? 하늘은 어찌하여 이리도 무심할까? 천직이었던 교단을 나서자마자 위암에 5년 후 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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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하곤 50년 지기知己인 것을. 반세기가 넘게 나눈 우정友情을 어찌 하고, 얘는 아프고, 나는 밥을 잘 먹는가? 그리고 우리의 영별永別은 실제로 어느 때나 일어날 것인가? 참으로 답답할 일이고, 뛰다죽을 일이다. 실험인간의 신약新藥 투여가 100% 효과가 있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루밤이라도 같이 자며 부어오른 장딴지라도 한두 번 만져주고 왔으면 좋으련만. 나의 사정이 여의치 못해 어쩔 수 없는 귀경. 차라리 눈을 감았다. 왕복 7시간 고속버스 승차왕래. 그런데도 정신은 은화처럼 말똥말똥, 평소 그렇게도 잘 오던 잠도 오지 않는다. 남부터미널 밤 11시 30분 도착. 부리나케 지하철로 달려가도 마을버스는 끝난 지 오래. 택시라도 잡아 다행이었던 긴 긴 하루.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는 얼마나 심신의 고통을 받으며 이 밤도 잠 못이뤄 했을 것이다. 잘 자라. 기적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