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그노므 치과에 갔드마 뒈게 비싸게 받그마 이. 얼마 전에 터미널 가차이 있는 치과에 강께 2천완 받등마 오늘 간디는 잘헌다고 해서 갔는디 8천완을 받아뿌네. 원, 요래갖고 우리 어디 치과에나 댕기겄능가. 이빨이 썩으먼 썩은대로 있다가 죽어사제. 아 죽어서도 이빨은 질 나중에 썩을 것이여. 하도 풀을 씹어쌍께 닳아질 것은 다 닳아졌붓능께."
"아, 근디 우리 딸네미 어쯔고 좀 해볼 수 없으까. 병신겉이 일방적으로 당해 붓단 말시."
버스에서 만난 봉전양반에게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은 것이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째다.
"이혼 당한 딸 땜시 속이 말이 아니시"
봉전양반은 올해 75세로 다섯 살이 아래인 부인과 함께 순천시 주암면에서 주로 벼농사로 살고 있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어서 모두 밖에 나가 살고 있는데 딸에게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그 양반은 3년 전 봄 산소 사초를 하다가 술 한 잔 하자며 내 손목을 끌었다. 조용히 시간을 내달라며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느냐는 내 되물음에 그냥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아, 서울 가서 살고 있는 길애 말이여. 그것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해 붓단 말시. 긍께 그거이 어쩌고 되냐면......"
그 양반 큰 딸 길애는 서울에서 연애결혼하여 그곳에서 두 딸을 낳아 살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은 놈팽이가 되었고, 딸은 어느 운동장 옆에 작은 가게를 내어 장사를 해 집을 장만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남편은 용돈을 달라고 하여 나가 놀다 들어오곤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여자와 지내고 있었다. 딸 길애는 모질게 고소나 이혼 등을 하지 않고 지낸 것이 화근이었다. 잔소리를 해도 영 들어먹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하도 애가 탄 딸은 장사를 하다가 술을 마시게 되었고 어느 날 장사하는 곳 주변의 남자와 술을 마셨다. 이 광경은 남편에게 목격되었고 남편은 그 일을 핑계 삼아 문을 닫아걸고 열어주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했던 것이다. 혹 집에 들어갈 수 있었을 땐 폭력을 휘둘렀는데 아예 그 후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이혼신청을 했고 억울해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이혼도장을 찍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빈 몸으로 재산 하나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보호해 줄 단체를 주위에서 누가 말해주었다면, 해결방안을 주위 사람과 모색을 했다면 오히려 간통으로 고소하고 당연히 자신이 벌어서 장만한 집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그 길을 몰랐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접하고 난 부모는 하도 기가 막혀 가슴에 못이 되어버렸다. 빈손으로 빚을 내어 생활하면서 발버둥치는 딸이 눈에 밟혀 잠 못 이루는 밤도 많다. 그래서 나를 만나면 그 양반은 그 이야기부터 꺼내신다. 봉전댁도 같은 말씀을 늘어놓기는 마찬가지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 딸은 내가 군 생활을 할 때 마을 친구들과 원주까지 찾아왔던 아이였다. 공장에서 미싱을 밟다가 손톱을 누벼버린 아이였다. 아현동 자취방에 풀빵을 들고 찾아온 아이였다.
"옘병헐 것이 애기를 못 맹근단 말이요."
봉전댁 큰아들은 자식을 기르며 그런대로 평범하게 서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마흔 다섯이나 처먹은 둘째 아들이었다. 공사장에서 일도 잘하는 사람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통 그 동생 얼굴 본지 오래되었다고 했더니 봉전댁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무엇을 쫓는지 팔을 휘휘 휘두르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긍께 말이요. 썩을 놈이 힘도 좋겄다, 기술 있겄다 뭣이 모질허다고 그런 년 만나서 애기도 없이 살고 자빠졌는지 통 말이 안 나올라 그래."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애."
"아, 그러면 아들하고 같이 사는 여자가 60이 넘었단 말이요?"
"60꺼지는 안 되고 쉰 여덟인가 어찐가 그쯤 된다요. 근디 어쯔고 애기를 나겄어...... 금매 말이요. 그 여자가 어이서 식당인가 쬐깐헌 주막인가 했능갑서. 인자는 허도 않고 집에 들앉았다 글고. 긍께 그 집이 가서 밥이나 처묵다가 맘이 맞았능가, 정녕 술집을 헌디 거그서 술 묵다가 그냥 퍼질러 앉아부렀능가. 애기 한나 없이 나이 더 묵으먼 어찔라고 참말로 애까심이그마요. 워째 그런 팔자도 다 있다요? 인자 아들이 할망구 댈꼬 살겄어. 할망구 앞에 보내고 지 걸음발 못허먼 누가 챙게 주겄오. 글안해도 일허다 떨어져서 다리도 한 번 다쳤는디."
"금매. 머이 눈에 씌었으까. 그래도 즈그들끼리는 좋은 구석이 있능깨로 그렁거 아니겄다고. 그래도 얼굴 내놓기 안 좋겄든가 요참 설에는 안 내려왔당께."
애태우시는 두 분의 모습이 안타까워 건네주는 박스에 적힌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를 걸었지만 '야, 나 기홍인디. 어머니 같은 사람하고 산다면서? 어찌 재미는 좋냐? 왜 설에 안 내려왔어? 니 각시 때문이지?'라는 말을 못하고 "그래. 몸은 건강허냐? 니 안 사람도 잘 지내시고? 어, 나 느그 집에 와서 전화 헌다. 부모님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 니 걱정 많이 헝께 자주 연락 드려라. 돈 번다고 노가다판에서 넘다 힘 빼지 말고 몸 조심해라 이."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들과 딸이 다 애를 먹인다고 누가 좀 어찌해 줄 수 없느냐는 봉전댁 부부는 소막에서 내다보고 있는 소를 바라보다 "저 소 참 잘 생겼지라 이." 하며 씩 웃으신다. 봉전양반은 마을에서 연을 만들어 달란다며 산죽을 베어와 연 만들 준비를 하신다. 연을 띄우면 봉전양반 내외의 시름도 좀 날아갔으면 하는 바램일까. 두 분은 그래도 알탕갈탕 살란다며 애써 웃음을 짓는다. 돌담 밑에는 수선화가 뾰족히 얼굴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