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에서 창조세계의 구속을 위한 기도로
열왕기하 20장 1-11
시 작 기 도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 삶의 방식과 다르더라도 과감히 그것에 삶을 던질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소서. 그것이 내 삶의 굴레를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밝은 들판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은 내가 압니다. 이제 실행할 구체적 방법과 때를 알게 하시고 이제 기도하며 그 길을 구하게 하소서.
본 문 요 약
그 무렵에 히스기야 왕은 병이 들어 죽게 되었고,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네가 죽을 것이고 회복하지 못할 것이나 너의 집의 일을 정리하여라.” 이 말을 듣고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을 향해 돌리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 팡에서 신실하고 온 마음을 다한 것과 주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하소서”하고 기도하며 몹시 울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이사야에게 말씀하셔서 그가 궁전에서 발 길을 돌려서 그 말씀을 전하였습니니다. “다윗을 돌본 내가 말한다. 네 기도와 눈물을 내가 보았다. 내가 너를 고쳐 주겠다. 네가 사흘 후에는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네 목숨을 15년 연장하겠다. 앗시리아왕으로부터 너와 이 성을 구할 것이다. 나는 이 도성을 내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다윗 왕을 위하여 보호하겠다” 그리고 이사야갸 무화과 반죽으로 왕의 상처 위에 붙이니 나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주님이 그를 고치셔서 삼흘 뒤에 성전에 올라가게 된다는 말씀의 징조(사인)을 구하였고, 이사야는 그 징조로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할 것인지 십도 나아가게 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우므로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주님께 기도하고 해시계의 그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났습니다.
본 문 의 뜻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은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침공하기 전(약12~15년전)의 일을 회상하는 부분입니다(6절참조). 그는 아직 다윗 왕 가문을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음을 맞이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여기서 죽으면 다윗 왕에게 ‘네 뒤를 이어 왕좌에 앉을’ 자손이 끊어지지 않을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은 다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자손을 얻을 시간을 주시어서 주님의 약속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다윗의 자손 영원한 왕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까지 이어집니다.
히스기야는 자기의 신실과 전심 그리고 선함을 올려 드리면서 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다윗에게 한 약속을 위해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신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연민의 눈물과 주님의 구속을 향한 눈물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뛰어 넘어 주님의 구속의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장된 목슴으로 성전으로 올라가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살리시고 연장하게 하시어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사는 것의 가치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 생명 연장의 목적은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구속의 역사에 한 줄기를 담당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훗날 대제국 앗시리아의 침공으로부터 다윗의 왕좌와 예루살렘을 지켜내는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 때도 성전에서 주님께 기도함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통해서 다윗 왕의 혈통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을 지키고 다윗혈통이 이어져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가 탄생하고 그의 영원한 희생제사인 십자가와 부활로 위대한 구속과 성령 강림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온 창조세계의 구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기적으로 살아나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 사는 삶을 살게 되는 사인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이사야가 보여준 것은 온 우주의 운행을 역행시키는 역사입니다. 그의 선왕 아하스에게 주어진 사인은 (사7장)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 주님을 낳는 것이라면 그에게 주어진 것은 창조세계의 통치를 역행하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삶에서 두 가지를 놓치면 안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또 하나는 구원자입니다.
그가 죽음 앞에 서서 떨고 있을 때 주님이 하락하신 생명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으로 이룬 것은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지는 전 창조세계의 구속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과 온 세계의 구속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의 두 축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 두 축으로 그 삶이 세워지는 것인데 둘 다 또는 하나만 겨우 버티고 서있어서 그 삶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그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처럼 오직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의 의를 붙잡고 울고 있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울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울기 바쁜 자였습니다.
(구원)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연민에 빠져 울고 있는 나를 살리고 생명을 주시사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사는 삶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친히 처녀 잉태와 창조세계의 운행의 섭리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기에 가능합니다. 그 분이 십자가와 부활로 새 언약을 이루시고 나를 거기에 동참시키셨습니다. 저는 다만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모든 것을 구속하는 일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버지품)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사 나를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창조세계의 구속을 위해 내 삶을 드립니다.
기 도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소서. 거기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신앙을 회복하여 주소서. 그 신앙으로 모든 민족을 향해, 창조 세계 전체를 구속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역사와 창조세계의 가장 중요한 분 그리스도 예수께 몰려오게 하소서.
마지막때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러나 전쟁과 기근과 염병과 기후변화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거두지 마시고 창조세계의 구속의 역사를 계속 진행시키소서.
생 명 일 기 (10월 7일 월)
죄악으로 넘어지고 회개가 잘 안되는 것은 죄책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안에 막히고 걸리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책감으로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주님과의 관계 외부와의 관계에서 어떤 막힘이나 걸림돌이 있는 지를 잘 살피고 고쳐 나가야 근복적으로 회개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리 죄와 죄짓는 나를 보며 거부하고 슬퍼한들 돌아서서 다시 같은 마음과 같은 환경에서 그 아래 처하며 살아나갈 때 같은 방식, 익숙하고 해 왔던 방식으로 계속 갈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고착되고 낡고 망가진 것들은 처분하고 새롭게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데 억압적인 환경에서 오래 살다보니 그 눈이 떠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열어두신 신앙의 가망성을 바라보지 않고 다 썩어가는 거적더미를 두르고 사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게 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금 나에게 아니 오래 전부터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물을 깊은 곳에 던지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의 삶의 방향을 휙 조정하여 새롭게 뛰어들 수 있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기도자리를 세워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말씀묵상과 기도 외에 따로 정한 기도자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