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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는 "新羅는 肅愼의 경계인 鷄林에서 建國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肅愼은 黑龍江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족이며 肅愼->夫餘->三韓->挹婁->勿吉->靺鞨->女眞-文殊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 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대사의 진실은 우리 스스로 역사를 쓰지 못한 책임을 우리 스스로가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肅愼이라는 실체는 요순 시대에 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 가야 합니다. 司馬遷의『史記』의 자료로 알려져 있는『國語』에 "공자가 晉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 싸리나무 화살이 꽂힌 매 한 마리가 떨어져 죽자, 공자가 ‘이 화살은 肅愼(숙신)의 것"이라고 했다지요.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백과 사전은 肅愼과 관련된 설명은 찿아 볼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위키백과는 肅愼을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합니다. 숙신(肅愼 영어: Sushen, 중국어: 肃慎, 병음: Sùshèn)은 주대(周代)에 중국의 동북 지방에 살던 동이인 퉁구스계 민족을 일컫던 말이다. 식신(息慎, Xīshèn), 직신(稷慎, Jìshèn), 주신(朱申, Su-shin)이라고도 불렸다. 孔子가 머물렀던 곳은 지금의 카이펑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자는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 사람입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개봉(카이펑)은 황하와 맞닫아 있으며 황하를 건너면 河北 입니다.. 공자가 화살을 맞은 매를 보고 이 화살은 肅愼의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晉을 구성하고 잇던 종족 중에 숙신이라는 종족이 있는 것인지 晉이 숙신이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숙신의 위치가 카이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잇음을 추정 할 수 있습니다. 『新唐書』<渤海傳>에 숙신은 막힐부에 있으며 막힐부는 扶餘之故地(부여의 옛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韓州…高(句).麗置 鄚頡府 都督鄚․高二州 渤海因之 : 遼史「地理志 『遼史』에 따르면 이 막힐부라는 행정구역은 고구리가 설치하였고 발해가 이를 계승한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막힐부를 두고 요녕성 근처라는 주장도 있지만 鄚(막)이라는 글자를 옥편에서 찿아 보면 "趙나라 때 설치된 고을 이름" 이라는 이외에는 쓸데가 없는 글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힐부의 위치는 趙나라 범위 안에 존재 해야 하는 것이지요. 위 지도에서 보듯이 趙나라는 山西省을 중심으로 하북성 서부와 하남과 산동반도 북쪽 일대를 영토로 존재 하던 나라 입니다. 중국의 모든 백과 사전은 막힐부의 위치가 지금의 "河北省 任丘市" 라고 합니다. 위키 백과는 임구시를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位于河北省中部,沧州市西北部,华北平原核心地带,地处京、津、保三角地带
또한 遼史에서 "막힐부라는 행정구역이 고구리에 의해 설치 되엇다" 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河北은 고구리의 핵심 영토 였다는 것과 河北은 夫餘와 肅愼과 고구리 그리고 발해의 공통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황하의 북쪽인 하북은 숙신과 부여 고구리 말갈과 발해의 오래된 고토인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며 동아시아 고대사는 또 한번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