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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20: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20: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20: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20: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0: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20: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0: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주해
1. 히스기야는 다윗의 길을 가며 산당들과 우상들을 다 제거하며 여호와와 연합함으로, 여호와께서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다(왕하 18:5-7).
1) 애굽을 의지했다가 앗수르의 침략으로 다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구한다.
2)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모욕한 앗수르를 물리쳐 주신다.
2. 히스기야가 병들 자 하나님은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1) 히스기야는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한 것을 기억하여 달라고 하며 통곡한다.
2)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그를 치유하시며 15년 수명을 연장시켜 주신다.
3.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의 브로닥발라단 왕이 그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낸다.
1) 죽을병으로 통곡했던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치유의 말씀과 치유의 징조를 보이신 후에,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다.
2) 히스기야 평생에 가장 기분이 좋고 신이 난 때일 것이다. 그의 평생에 이렇게 통곡한 적이 없는데, 죽을병이 낫고, 앗수르가 물러감으로 그 통곡이 기쁨으로 변했다.
3) 이 때 바벨론에서 병문안을 위하여 선물과 편지가 오자, 히스기야는 들뜬 나머지 바벨론 사신에게 자기 보물창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준다.
- 각종 보물과 칼과 방패,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었다.
4. 교만해진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러 온 이사야가 왕에게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으며,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오”라고 묻는다.
1) 아직 자신이 하나님께 심판받을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히스기야는 먼 나라 바벨론에서 왔다고 하고, 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다고 대답한다.
2)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심판의 말씀을 선포한다.
왕하 20: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왕하 20: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5. 그제서야 이사야가 전하는 심판의 말씀을 깨달은 히스기야는 심판을 받아들인다.
왕하 20: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1) 역대기에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는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심판을 받아들인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대하 32:26).
2) 히스기야가 교만을 뉘우치고 심판을 받아들이자, 하나님은 그의 생전에는 심판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자 자기 생전에는 평안하다고 하면서 이기적인 말을 한다.
6. 바벨론 사신에게 나라의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이 왜 심판받는 교만이 되는가?
1) 바벨론 왕은 앗수르에게 반역하여 바벨론을 재건코자 하였다.
2) 모든 나라들이 앗수르에게 패했는데, 유일하게 앗수르가 예루살렘에서 패배하였기에 바벨론은 남유다와 동맹하여 앗수르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3) 마침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고 하자, 바벨론은 히스기야와 동맹을 맺어 앗수르에게 맞서고자 사신을 보낸 것이다.
7. 히스기야도 바벨론 사신이 왜 왔는지 안다. 그러니 교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1) 근동지역에서 유일하게 강대국 앗수르를 물리친 왕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2) 먼 나라 바벨론에서까지 자신의 승리를 알고 동맹을 맺고자, 예물을 보내고 병문안을 왔으니 하나님 노릇하는 기분에 취한 것이다.
3) 히스기야는 “이 승리는 여호와께서 하셨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여호와만 의지하겠다”고 하지 않고,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면서, 이런 자신이기에 앗수르가 물러갔다고 은근히 자신을 높인 것이다.
8. 하나님은 해산할 힘이 없는 그를 앗수르에게서 건지셨고, 죽을병이 걸린 히스기야를 살려 주었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이 한 것처럼 하나님 노릇하며 자신을 높였다.
1) 히스기야는 이미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에 맞서려고 하지 말라고 한 말씀을 어기고 애굽을 의지한 적이 있었다.
2) 하나님은 이런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를 앗수르에게서 건져 주셨는데, 앗수르 군대가 죽고 돌아가자, 히스기야는 다시 바벨론과 동맹을 맺어 안전을 도모하는 죄를 범한다.
3) 히스기야는 하나님 노릇하는 교만과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2가지 죄를 범한 것이다.
9. 이전에 애굽과 동맹을 맺는 죄와 앗수르에게서 구원을 받은 후에 바벨론과 동맹을 맺는 죄는 죄질이 다르다.
1) 출애굽 전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출애굽 구원의 은혜를 입고도 광야에서 원망하는 것은 죄질이 다르다.
2) 이것을 알기에 히스기야는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뉘우치고 심판을 받아들인다.
10.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구원과 형통으로 인하여 교만해 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1) “하나님이 이렇게 도와주시고 하나님이 이렇게 형통하게 해 주셨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다.
2) 그 후에, 정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수는 하나님이 높여준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 노릇하고 자신을 자랑하며 교만해 진다. 즉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지 않고 육체를 신뢰하게 된다.
3) 두려운 일은, 이렇게 교만해진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선고된다는 것이다.
11. 그나마 히스기야처럼 교만을 뉘우치고 심판을 받아들이면 좋지만, 자신이 교만해져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1) 왜냐하면 교만은 자기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 그래서 CS루이스는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지 알려면 자신이 교만한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싫어하는가로 자신의 교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3) 로마서 7장도 죄의 세력의 속임 때문에 교만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다만 교만의 증상은 선한 일을 행한 후에 탐심이 생기고 자기를 주장하는 것,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12.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의 국력을 자랑한 것은 다윗이 군사숫자를 조사한 교만보다 더 교만한 죄다(삼하 24:1 이하).
1)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전에 심판이 집행되지 않은 것을 좋아했다.
2) 그러기에 그는 다윗처럼 심판을 받아들이므로 도리어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을 받고,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3) 다윗이라면 자신이 사는 날에 심판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이다. 그는 가혹한 심판을 받았으나, 심판을 받아들임으로 솔로몬이라는 선물과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을 사르는 선물을 받는다. 가혹한 심판이 도리어 가장 큰 은혜와 생명이 된다.
13. 사울 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교만을 깨닫지 못하고 뉘우치지 않았다.
1)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심판을 받아들이고 교만을 뉘우쳤다는 것은 귀하다.
2) 그러나 히스기야는 다윗처럼 심판을 받아들이지는 않음으로 생명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3) 하나님의 심판이 선고될 때, 우리의 교만을 깨닫고 회개할 뿐 아니라, 다윗처럼 심판을 경배함으로 받아들임으로 그 심판이 도리어 복이 되는 은혜를 입는 자가 복되다.
◈ 나의 묵상
믿음이 없는 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옛사람이 드러나 죄들을 짓는 것이다. 믿음이 있어서 헌신하고 기도하는 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육신에 속한 자기주장의지가 드러나 교만해지는 것이다. 히스기야처럼 다윗의 길을 가고,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심을 경험하고, 앗수르가 물러가고 죽을 병에서 낫는 믿음의 길을 간 히스기야 역시 교만하여 하나님 노릇하는 길을 간다.
신앙의 초기에는 옛사람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죄들로 괴로웠다. 그러다가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심을 알며, 헌신의 길로 걸어갈수록 옛사람의 활동이 줄어들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옛사람의 활동이 줄어들고 헌신하고, 사역의 열매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칭찬이 있고,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교만이 자라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사단은 옛사람을 드러나게 하는 전략이 실패해가자, 육신에 속한 자기주장의지를 자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히스기야를 어찌 판단하겠는가? 나는 히스기야의 길을 걸어서 교만해 졌고, 나를 자랑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입술로는 주님이 하셨다고 하였으나 마음은 나를 높이고 자랑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선고되자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뉘우친 히스기야의 모습도 내가 닮았다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내가 교만해져서 나를 주장하고 있음을 알게 하셨고, 심판의 말씀도 선고하셨다. 나는 주님의 심판이 옳다고 고백하였고, 이래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윗처럼 성전을 짓는 역사, 하늘의 불이 떨어져 번제를 받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수년간 왜 그런지를 고민하고 성경을 살펴 보았다. 오늘도 내가 히스기야 같이 심판을 받아들였음을 본다. 하나님의 심판은 옳고 선하다. 그러나 나는 히스기야처럼 할 수만 있으면 내가 사는 동안 이 심판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했다. 이미 집행된 심판은 속히 끝나기만을 바랬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무덤에 머무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비록 비참하나 그 긍휼에 감사하며 생명을 얻는 것보다는 이 무덤에서 나가는데 관심이 많았다. 무덤을 벗어나기 위한 묵상을 했고, 무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교만을 뉘우치고 심판을 받아들였다.
다윗이 받아들인 심판은 그 심판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다. 아들이 죽었을 때, 경배하는 것, 심판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는 나의 교만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인정한다. 그러나 다윗과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심판을 경배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도 왜 그것이 안되는지는 모른다. 다만, 히스기야도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히스기야가 심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경배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히스기야가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지? 심판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히스기야를 긍휼히 여겨주신 하늘 아버지께 긍휼을 구한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만지사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심령이 되게 하사 다윗과 같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부드럽게 하시고, 주의 복음의 말씀이 새겨지는 마음이 되기를 원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지만 주님은 다 아신다. 다 아시고 나를 구원하셨고 부르셨다. 나는 나를 용납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나를 용납하신다. 나는 후회하나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신다. 나의 연약함과 실패를 덮으시는 그 인자와 긍휼을 찬양한다. 그리고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나의 평생에 가장 복된 일은 예수님을 만난 것이고, 나의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은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한 것이다. 자격 없는 자에게 이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전도자는 해 아래의 수고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왕들의 기록을 통하여 왕들의 삶조차 헛됨을 봅니다. 히스기야의 삶에 다윗의 길을 가고 하나님과 연합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 영원히 빛나듯이, 헛됨으로 끝나야 할 저의 삶에도 주님을 알고, 믿고, 전하고, 섬기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흙으로 돌아갈 인생에게 영원한 일에 참여하고 영원에 동참하게 하신 것이 은혜였습니다. 주님, 육신에 속한 모든 생각을 십자가로 가져가게 하시고, 주님의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내가 헛된 수고를 하는 동안 주님은 은혜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다윗처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주님이 전적으로 하셨음을 인정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마음을 낮추고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다윗처럼 주님의 심판을 경배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무덤에 거함으로 자족하며 감사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의 인자와 신실함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게 하시고, 은혜 위에 은혜로 임하시는 그 은혜에 머뭅니다. 존귀와 영광을 받으소서. 교육부와 다음세대를 축복하여 주십시오. 신정아 전도사님이 영육간에 강건하고 행복하며, 교사들이 기쁨과 감사로 섬기게 하여 주십시오. 대입의 여정을 걷는 친구들에게 평안과 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고 목자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