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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총정리(1부~7부)
주기도문 (1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6:9~13
기독교의 3대 보배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입니다.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사도신경은 어떻게 신앙고백을 할 것인가?
십계명은 어떻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입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6장에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하여
주께서“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라 하여
주기도문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6:9)”
1.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삼위하나님 =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이십니다.
삼위하나님이시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되어 있으나 그 본질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려의 삼위가 한 분 하나님이심을 삼위일체라 부릅니다.
세계의 종교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유일신교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신교입니다.
유일신교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다신교는 여러 가지 신을 믿는 종교를 말합니다.
유일신교의 3대 종교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입니다.
다신교는 불교, 유교, 힌두교, 샤마니즘 등입니다.
유일신교의 3대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지만 교리가 같지 않습니다.
유대교의 한 분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을 뜻하고 삼위일체 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대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핵심인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7년 환난 중에 삼분지 일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스가랴13:9)”
이슬람교는 유일신교이지만 거짓된 종교입니다.
알라를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지만 알라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슬람교의 알라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귀신들의 우더머리인 사탄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알라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선지자 중 한명으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가 유일신교이지만 삼위일체 핵심교리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가 교리는 기본으로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졌음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오 참하나님이십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니라(요한일서5:20)”
2> 예수께서 성부하나님을 부르게 하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성부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동등하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계급이 같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는데
가장 먼저 하늘에 계신 성부하나님을 높여 부르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라 부르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7:21)”
예수님은 성부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내 아버지라 부르지만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성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성부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1:12~13)”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명령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로 구하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대표적인 이름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받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바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늘에게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가 되십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기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14:13~14)”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데 그 이름대로 구하면 예수께서 시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거룩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몇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구약에서는 성자하나님을 “여호와”라 불렀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야훼= 여호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예수스 즉 예수”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러서 시행하는 대표적인 이름은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삼마입니다.
그 외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여호와 로이, 여호와 나카, 여호와 치두케누, 여호와 메카데쉬입니다.
1)여호와 이레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여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22:14)”
2)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여호와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라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26)”
치료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부르는 자게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3)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입니다.(출애굽기17:8~16)
즉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낫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애굽기 17:16)”
4)여호와 샬롬: 여호와는 평강이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삿6:24)”
5)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에스겔48:35)”
6)여호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7)여호와 나카: 인도하시는 여호와
“(이사야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끓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8)여호와 치두케누:우리의 의 되시는 여호와
“(예레미야23:6)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예레미야23:6)”
9)여호와 메카데쉬: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레위기20:8)너희는 내 규례를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2> 시편 23편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아홉 가지의 이름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23:1~6)“
시편 23편은 다윗의 시로 유명합니다.
시편 23편은 시편 150편 중 가장 많이 암송하는 시편입니다.
시편 23편은 찬송가로 복음성가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을 적으면서 암송하고 노래할 때에
여호와의 이름들을 부름으로 그 행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을 노래하고 크게 소리 내어 암송하여 말하면
여호와의 아홉 가지 이름들을 부를 수 있습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여호와 로이입니다.
여호와 로이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2)“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여호와 이레입니다.
여호와는 부족함이 없이 예비하게 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3)“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는 여호와 나카입니다.
여호와 나카는 인도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4)“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는 여호와 라파입니다.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여호와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몸을 강건하게 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장3절)”
5)“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는
의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여호와 치두케누”입니다.
6)“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여호와 샬롬입니다.
안위하시는 여호와 즉 평강케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여호와 샬롬입니다.
평강케하시는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샬롬”을 부름으로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어 말씀하시는 것은 “평안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예수께서 붙잡으시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문을 꼭 닫고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는 첫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입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한복음20:19)”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제자들 속에 있던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이 떠나간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입니다.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샬롬”의 일상 인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로 여호와 닛시의 이름을 부르는 능력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로 원수를 이기게 하시는 여호와 닛시입니다.
8)“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이름 “여호와 메카데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의 메카데쉬의 이름을 부름으로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여호와의 집”은 여호와가 거기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는 거기 계신다입니다.
예수께서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는 집을 “내 아버지 집”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처소를 예비하면 반드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영원한 집으로 천국입니다.
천국에서 여호와와 함께 영원토록 함께 거하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14:1~3)”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대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2부)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마태복음 6장에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문이라 부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의 지난 시간에 이어
두 번째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의
첫 기도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다음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나라는 세상 나라가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은 각각 나라에 속하여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영원히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치적으로 천국과
예수께서 다르시는 천년왕국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22:15)”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성령이 임하옵시며”이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의 신앙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지상에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1:3)”
그리고 감람산에 올라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또
“성령이여 임하옵시며”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는 성령이 임하시기를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1:14)”
한 곳에 모이는 기도회로 기도에 전혀 힘쓰는 것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성령을 받을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수는 120명의 유대인들이 모였습니다.
모여서 10일 동안 힘쓰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마가의 다락에 모인 120명은 마음을 같이하여 소리내어 기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여서 합심하여 소리내어 내어
기도하는 통성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통성기도를 10일 동안 하였더니 오순절날이 이르렀습니다.
오순절날의 성취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너희의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의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2:1~4)”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는
“성령이 임하옵시며”가 되어 성령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의 택하신 백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이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2.짐승의 나라(우상의 나라)와 성도의 나라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 중에는 불교나라, 이슬람 나라,
케톨릭 나라, 기독교 나라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끝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성도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사에서 하나의 나라로 거대한 제국주의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전체주적으로 통제하던 제국주의 나라들의 특징은 우상의 나라,
짐승의 나라였다는 역사의 반복이었습니다.
세계사는 시간이 있는 7천년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아담부터 시작하여 예수님 이전의 4000년과 예수님 이후
2000년과 성도의 나라 임하는 하나님 나라 천년동안의 천년왕국이 있어
다 합쳐진 시간은 7천년입니다.
구약시대(4000년) + 신약시대(2000년) + 천년(1000년)왕국 = 7000년
우상의 나라 즉 짐승의 나라가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있을 것을 예언한 책이 다니엘서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다니엘서가 있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입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예언서하면 “다니엘서”이고
신약의 예언서하면 “요한계시록”입니다.
다니엘서를 깨달아 알려면 요한계시록이 필요하고
요한계시록을 깨달아 알려며 다니엘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니엘서에는 두 사람의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의 꿈 이야기는 세계사의 대표적인 우상의 나라와
짐승의 나라로 일치하게 합니다.
한 사람의 꿈은 이방인 느부갓네살왕의 꿈입니다.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꿈을 꾼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꿈꾼 것은 거대한 큰 신상입니다.
다니엘이 꿈을 꾼 것은 네 짐승입니다.
1> 큰 신상에 속한 나라들과 하나님의 나라 천년왕국
큰 신상과 뜨인 돌
다니엘서에서 꿈 꾼 사람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니엘서 2장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위에 있은지 이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다니엘2:1)”
다른 한 사람은 다니엘서 7장의 다니엘 예언자입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7:1)”
왕은 꿈에서 큰 신상을 보았고 다니엘은 꿈에서 네 짐승을 봤습니다.
꿈을 다르게 꾸었는데 그 해석과 지식은 같은 것입니다.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꿈을 꾸므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고
남은 것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꿈을 꾸었으나 깨어 보니 그 꿈에 대하여
해석도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왕이 그 꿈을 해석하고 알게 할려고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불러 자기
꿈 꾼 것을 해석하고 알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오컬트 자들은 왕이 꿈 꾼 것을 알게 하면 해석하여 드리겠다고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왕은 만일 자기의 꿈 꾼 것을 알게 하고 해석하지 않으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로 삼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아무도 왕의 꿈을 알게 하고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왕은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다 멸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서 고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서 구하기를 기한하여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나이다 하니라(다니엘2:1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왕에 은밀하게 보여 주신 꿈을
어떻게 다니엘은 자신감을 가지고 왕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은 다른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것까지 알 수도 해석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지혜의 영과 지식의 영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하늘에게 계신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그 꿈을 해석하게 하시고
지식으로 그 꿈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다니엘2:21)”
다니엘은 왕의 꿈을 알게 하시고 해석하게 하시는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왕이 꿈 꾼 것을 알게 하고 해석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왕에게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신 것은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왕은 꿈에서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 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왕이 꿈에서 본 것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과 발을 쳐서 부숴뜨렸습니다.
때에 큰 신상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습니다.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그 우상의 머리가 정금인 것은 금나라 바벨론입니다.
가슴과 팔들의 은인 것은 은나라 메데와 바사입니다.
배와 넓적 다리의 놋인 것은 놋나라 헬라제국입니다.
그 종아리가 철인 것은 철나라 로마입니다.
그 발의 얼마는 철이요 진흙인 것은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뜨인 돌이 날아와 그 발을 쳐서 부숴뜨려
태산을 이루우 온 세계에 가득한 것은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금(바벨론)- 은(메데와 바사)-놋(헬라 그리스)
-철(로마)-철과 진흙(적그리스도) - 뜨인 돌(천년왕국)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니엘3:44)”
큰 신상의 발을 쳐서 무너뜨리는 뜨인 돌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재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천년왕국이 있음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짐승의 나라와 성도의 나라 “다니엘서 7장”
하늘에게 계신 하나님께서 이방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은밀한 중에 보이신 것은 큰 신상 우상의 나라입니다.
후일에 될 일 우상의 나라는 세계사에서 다 망하고
오직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 천년왕국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7장에는 다니엘이 꿈을 꾸어 본 네 짐승과 성도가 나라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꿈에서 큰 바다에서 나오는 네 짐승을 보았습니다.
차례대로 큰 바다에서 나오는 네 짐승의 그 모양은 각각 다 달랐습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았는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었습니다.
둘째 짐승은 곰과 같았는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습니다.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았는데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습니다.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아우며 극히 강하며 또 열뿔이 있었습니다.
첫째 짐승의 사자는 바벨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짐승의 곰은 메데와 바사의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셋째 짐승의 표범은 알렉산더의 헬라 그리스 나라입니다.
넷째 짐승은 열뿔 가진 짐승의 적그리스도 나라입니다.
옛적부터 계신 자 예수께서 지상재림하심으로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용 즉 사탄을 잡으시고 성도가 나라를
얻는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이 임할 것을 믿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7:22)”
3. 이방인의 꿈과 유대인의 꿈으로 보이시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서 2장에서 이방인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게도
꿈으로 보이시고 다니엘서 7장 유대인 다니엘에게도 보이시는 것은
이방인의 교회를 위한 구원과 유대인을 위한 구원을 나타내심으로
나라이 임하옵시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도 이집트 왕 바로에게 꿈을 보이시고
히브리 청년 요셉에게 꿈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나이 17세에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
고난의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11년 동안의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해도 안되니까 요셉을 강간미수범으로 몰려 옥에 갇혔습니다.
옥 생활 2년 만에 바로왕이 꿈을 꾸어
바로왕 앞에 불려가 바로왕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바로왕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바로왕에게 꿈을 해석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세기41:16)”
바로왕은 자기의 두 번 겹쳐 꾼 꿈을 히브리 청년 요셉의 해석으로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왕은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한 사람 요셉을 총리로
임명하여 전국을 치리하게 하였습니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창세기41:39)”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요셉은 은 이십개에 팔려 간 것은 예수께서 은 30냥에 넘겨진 것과 같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임명되어 애굽 전국을 치리 하듯이
예수께서 이 땅에 지상재림하심으로 온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 즉 뜨인 돌이 날아와 큰 신상이 무너지고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한 나라 즉
짐승의 나라가 아닌 성도가 나라를 얻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보는 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3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 씀: 마태복음6:9~13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의 뜻을 따라 살아야겠습니까?
저 세상에 중심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할 줄을 믿습니다.
주기도문은 주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주께서 친히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 멸하시는 것과 바라보게 하는 것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에서 뜻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임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뜻을 세우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뜻을 세우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사람의 뜻으로 세운 바벨은 망한다.
사람이 뜻을 세워 하나님과 반대되는 일을 행하는 것은
바벨이라는 성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11:4)”
사랑하는 여러분, 탑의 기원이 무엇입니까?
바로 니므롯의 바벨탑입니다.
탑을 쌓고 탑의 모양을 가지는 실상은 교만의 상징입니다.
사람의 오만함으로 사람을 높이어 신격화하는데 있습니다.
하늘에 꼭대기에 닿을려고 탑을 쌓을려는 것은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탑을 쌓게하여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입니다.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습니다.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영걸이었습니다.
영걸이란 강력한 세력을 지닌 자를 뜻합니다.
니므롯은 강력하게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짓으로 탑을 쌓게 하였습니다.
니므롯은 태양신 숭배가 되고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달신 숭배가 되고 아들 담무스를 숭배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벨론 종교라 부릅니다.
바벨론 종교와 기독교와 혼합된 것이 버가모 교회 같은 혼합주의 케톨릭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케톨릭 교회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땅에서 온 혼합종교라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벨탑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므로
강림하시어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 그들을 온지면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11:7)”
“우리가 내려가서“에서 ”우리“란 삼위하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을 구약에서는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우리”라 하여 단수동사를 받게 하심으로 삼위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1:26)”
말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져버리고
사탄이 세우고자 하는 것은 큰 성 바벨론입니다.
하나의 거대한 단일 국가 큰 성 바벨론을 세우자 하나 결국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계시록18:2)”
2>아버지의 뜻으로 세우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
사탄은 하늘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기는 루시퍼라 불렀습니다.
루시퍼란 빛을 지닌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빛의 본질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자기의 빛은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루시퍼가 그 마음이 교만하여 하늘에서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였습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이사야14:13~14)”
루시퍼는 반란을 일으켜 자기의 뜻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그 마음의 교만이 하나님께 들켜 결국 그룹에서 자격 박탈당하고 쫓겨났습니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에스겔28:16)”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예비한 성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11:10)”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바라보게 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한 성입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11:16)”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은 잠시잠깐의 시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은 영원함에 있습니다.
영원함에 예비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거룩한 성 새루살렘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 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요한계시록 21:1~2)”
2. 내 아버지 집인 천국에 들어가는 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1:21)”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은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태복음7:24)”
천국을 내 아버지 집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 두루마리른 빠는 자는 복이 있어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왔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을 원망하여 말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누가복음15:2)”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1> 잃은 양 한 마리
첫 번째 비유는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다녔습니다.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매고 집에 왔습니다.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15:7)”
2> 잃은 한 드라크마
죄인하나가 회개하는 두 번째 비유는 열 드라크마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었습니다.
여자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말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15:10)”
4.회개하여 돌아온 둘째 아들과 노하는 첫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판결
1> 회개하여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세 번째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하여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습니다.
그 후 몇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즉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먼 나라에 가 거시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였습니다.
다 없이한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둘째가 비로서 궁핍하였습니다.
둘째가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들에 나가 돼지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배로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업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말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을 생각하니 돌아갈 마음을 품어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누가복음15:19)”
둘째가 일어나 아버지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아직도 상거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째 아들의 모양은 형편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더러운 옷에 몸에 더러운 냄새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누가복음15:21)”
아버지는 둘째가 말하는대로 품꾼의 하나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이는 둘째의 죄를 다 탕감해준 다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는 둘째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는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발에 신을 신기는 것은 너는 노예가 아니라 내 아들이니 자유롭게 다녀라는 뜻입니다.
노예는 맨발입니다. 신을 신게 하였다는 것은 자유로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먹고 즐기자고 말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말하였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15:24)”
2> 맏아들의 노함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밝힘(누가복음15:25~32)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아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맏아들이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었습니다.
종이 맏아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
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맏아들은 아버지처럼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노하였습니다.
맏아들이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였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을 못마땅하게 여겨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맏아들은 오르지 동생의 잘못된 점만 아버지에게 고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내가 여러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 또한 동생의 허물을 들추어내어기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누가복음15:30)”
맏아들은 왜 아버지가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먹고 즐기는지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있습니다.
오르지 둘째의 잘못하였던 것만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는지 관심은 없습니다.
오르지 그 사람의 과거만 들추어내어 정죄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뜻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한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그러므로 맏아들의 올바른 태도는 동생이 스스로 돌이켜 일어나
아버지께로 왔다는 것을 함께 환영하고 즐거워해야 맞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불만과 동생의 허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이 동생을 미워하고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으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의 잘못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맏아들에게도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누가복음 15장 24절의 말하였던 것처럼 똑같이 분명하게 밝히었습니다.
“(눅15: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뜻이 하늘에 이루어진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4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말 씀: 마태복음 6:9~13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어 제자들이 나아올 때
입을 열어 가르치신 말씀을 산상수훈이라 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 중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기독교의 삼대 보배가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한글 성경이든지 성경말씀 들어가기 전 제일 앞에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기록되어 있고 성경의 끝에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씁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주기도문과 사도신경과
십계명은 암기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란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일용할 양식은 만나이다
주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란 말씀의 가르침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란 말씀이십니다.
이 기도의 말씀의 출처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이 기도 말씀의 출처는 바로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입니다.
만나에 관한 말씀이 출애굽기 16장입니다.
1>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기16:4)”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거두는 양식은 땅에서 심어서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만나”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갓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출애굽기16:3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구나
(출애굽기16:3)”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출애굽기5:9)”
그러므로 원망하기 전에 광야로 인도하신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온 회중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광야 교회에 내리시는 것은
일용할 양식으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자는 만나의 출처가 되는 출애굽기 16장을 읽고 깨달아
아는 믿음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주옵시고”란
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하늘에서 내리신 만나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주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날마다 아침에 나가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육일동안 아침마다 나가서 거두게 하셨습니다.
육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을 거두게 하시고 칠일에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6일에는 갑절로 거두어도 다음날 아침까지 간수하여도
냄새가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 칠일 안식일에는 거두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지만 얻지 못하였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각기 식량대로 거두게 하였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자도 부족함이 없이 거두었습니다.
아침까지 남겨 두는 자의 만나는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만나는 말 그대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만나를 항아리에 가져다 여호와 앞에 두어 대대로 간수하게 하였습니다.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출애굽기16:34)”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만나를 먹었습니다.
만나는 광야교회에서 40년 동안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날에는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여호수아5:12)”
만나가 그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40년 광야생활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먹는 것은 가나안 땅의 열매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하다가 천국에 들어가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줄을 믿습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요한계시록22:1~2)”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구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입니다.
이 세상 사는 날 동안 세상은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광야교회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가 되어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양식을 얻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하늘로서 내려 오신 떡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6:1~59)
1>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구약에서 일용할 양식을 말함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하늘에서 내린 만나였습니다.
신약에서 예수께서 떡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빈 들에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땅에서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포도주가 모지란지라
예수의 모친이 예수님에게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였습니다.
포도주가 있을려면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따서
숙성하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채우니 이제는 하인더러 연회장에 갖다주라 말씀하시어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예수님 공중강림 하실 때
“이리로 올라오라”는 나팔 같은 소리에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저녁이 되어 빈들에 많은 무리에게 행하신 표적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제자들의 생각에는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라고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떡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리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통의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을 가지고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열왕기상17:14)”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고 기도하여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6:51)”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로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에서 떡과 잔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11:23~24)”
구약에서는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만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산 떡이 되셨습니다.
이 떡을 먹는 자마다 결코 주리지 않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가 되어 영원히 사자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한복음6:58)”
3>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태복음4:4)”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 가사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다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첫 번째로 시험한 것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 시험에 들지 않고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물리치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8:3)”
이스라엘 자손에게 광야 교회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하심입니다.
오직 사람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믿습니다.
사람이 매일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것은 육체를 위한 것입니다.
육체 안에 영혼이 들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될려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영적기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이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는 것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 되어 주님 오실 때까지
구하는 것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기도문(5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말 씀:마태복음6:9~13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란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뜻은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옵시고"라는 뜻입니다.
죄를 졌다는 것은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빚진 자는 빚을 갚아야 빚이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사함을 받아 예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베드로는 산상수훈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에 대한 말씀에도 자신의 맹세를 내세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헛맹세를 하였습니다.
사람에게도 헛맹세를 하여 두 번의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게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가복음14:30)”
베드로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경고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워 헛맹세를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태복음26:35)”
베드로의 감정은 예수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맹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붙잡히실 때에 예수를 버리고 다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태복음26:56)”
사랑하는 여러분, 내 말보다 우선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신 것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야겠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는
베드로는 다른 제다들과 도망갔습니다.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아보고 말하였습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여 말하였습니다.
“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베드로가 앞문까지 나아갔습니다.
다른 비자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니까
베드로는 맹세하여 또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습니다.
“너도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몰아세웠습니다.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니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는 회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태복음26:75)”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이 내게 생각이 나서 찔림이 되어
심히 통곡하는 회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통곡하는 회개를 통하여 예수님에게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심히 통고한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찾아오시어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한복음21:15)”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누가 잘 알겠습니까?
주께서 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과연 주를 세 번 부인할지 안할지 가장 잘 아시는 자는
내가 아니고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내 빚진 죄를 탕감받고 주시는 사명을
받는 사랑과 용서와 은혜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빌레몬서1:1~25)
빌레몬서는 1장으로 된 책입니다.빌레몬서는 형제 사랑입니다.
어떻게 형제를 사랑하는가입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가 붙잡혀 로마의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함께 갇혀 있었던 바울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 같이 여겼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었던 사실을 알고 빌레몬에게 편지하였습니다.
빌레몬은 어떤 사람인가 “빌레몬서”에서 바울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빌레몬이 어떤 사람인가 말하였습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서 1:4~6)”
바울은 빌레몬을 형제라 불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어떻게 거듭났는가 증거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거듭나기 전 분명 빌레몬에게 무익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거듭나기 전 빌레몬의 돈을 훔쳤으므로 범죄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데
바울의 심복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오네시모는 유익한 사람이기때문입니다.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빌레몬1:11)”
거듭나기전 무익한 사람이라도 거듭났으면 종이 아닌 형제로
둘 자임을 바울은 빌레몬에게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형제여”라고 부르듯이
이제는 오네시모가 바울의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요
바울의 심복이 되었으니 빌레몬도 오네시모를 종으로 여기지 말고
"사랑 받는 형제"라는 것입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빌레몬서1:16)“
바울이 빌레몬을 형제라 부르는 것처럼 거듭난 오네시모도
전에 돈을 훔쳐간 놈이라 여기지 말고 거듭난 자로
주 안에서 형제라 부를 수 있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빌레몬서1:20~21)”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기도가 되는 형제 사랑이 되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요셉이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 부름
1>꿈 꾸는 자 요셉과 함께 하시어 형통케 하심
요셉은 17세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란 별명을 가졌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기 전에 아버지 야곱의 사람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 특별히 사랑하는 아내였던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 요셉을 여러 아들보다 깊이 사랑하여 채색옷을 지어주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이 꿈 꾼 것을 형들에게 이야기하여 미움의 불에 기름을 붓는격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세기37:5)”
요셉의 꿈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두 번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의 뜻은 같은 꿈이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한 그 꿈 때문에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었더니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 꿈 역시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두 번겹쳐 꿈을 꾸는 것은 반드시 될 일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였습니다.
“꿈꾸는 자” 요셉이 가까이 왔을 때 요셉을 잡아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마침 이스마엘 상인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유다가 형제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창세기37:27)”
예수님은 유다의 후손에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에 속하십니다.
야곱은 유다에게서 예수님이 나심을 예언적인 유언을 남겼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49:9)”
요셉은 채색옷을 벗고 노예의 옷을 입었습니다.
고난의 수래를 타고 애굽의 노예로 은 20냥에 팔려갔습니다.
바로의 신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팔려갔으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세기39:2)”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자 강간미수범으로 몰려
감옥생활을 2년을 보냈으나 옥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세기39:23)”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은 형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으로 형통이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요셉이 옥에 갇힌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살진 일곱 암소와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를 보았습니다.
흉악한 일곱 암소가 살진 일곱 일곱 암소를 잡아 먹는 꿈이었습니다.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들어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세약한 일곱이삭이 나왔습니다.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습니다.
바로가 꿈의 해석을 알고자 하여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꿈을 해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꿈쟁이 히브리 청년 요셉이 꿈 해석 잘함을 고하였습니다.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들어가니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창41:15)”
요셉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세기41:16)”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자리로 불려가 칭찬을 듣더라도
항상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두 번 겹쳐 꿈꾼 것을 말하자
요셉은 7년 풍년에 곡식을 저장하고 일곱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할 것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바로왕이 자기의 꿈을 해석하여 주는 요셉을 칭찬하여 말하였습니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창세기41:38)”
요셉이 바로왕에게 인정을 받아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총리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여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요셉이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부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로 불렀습니다.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불렀습니다.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세기41:51~52)”
요셉은 장자 므낫세의 이름을 부름으로 형들의 범죄를
오히려 하나님의 큰 구원으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차자 에브라임의 이름을 부름으로 애굽에서 창성할 수 있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야곱이 아들들을 애굽에 곡식을 얻으러 보냈습니다.
형들이 총리 요셉이 동생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곡식을 얻기 위하여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요셉의 꿈대로 되었습니다.
요셉은 장자 므낫세의 이름을 부른대로 형들을 원수로 갚지 아니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22년만에 알리어 증거하는 것은
겁박함과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을 전하였습니다.
“당신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세기45:8)“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라도 22년 동안의
세월 동안 형들이 자기를 팔았는데 만나면 울분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장자 므낫세의 이름으로 그 뜻을 새겼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이는 요셉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되는
성령으로 감동하는 사랑과 용서와 은혜와 큰 구원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기도문(6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말 씀: 마태복음6:9~13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주기도문의“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제목으로 이 시간에 은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학교 다닐 때만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날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치는 데 “시험에 든다”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 갔거나
마귀에게 패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깨어 있어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고
(마가복음14:38)”
예수께서 붙잡히기 전 계셨던 곳은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 가르치시는 것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가르친 말씀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산상 설교입니다.
또 하나는 감람산에 올라가 가르치신 마태복음 24장부터 25장까지 감람산 설교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는 것은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1>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이에 말씀하시디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라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태복음26:38)”
예수께서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시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있어 기도하시는 것처럼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것은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라는 명령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 졸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부지런하게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한 신앙의 자세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 깨어 있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말세에 성도의 나라 즉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
성도의 자세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세는 교회만 출석하고 교회 안에 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말세에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성도의 자세는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24:42~4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라
(마태복음25:13)”
“깨어 있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인자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에 관한 말씀에서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재림에 관한 비유로 “데려감을 당함과 버려둠을 당함“의 말씀에서
”깨어 있으라“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재림에 대한 “열 처녀의 비유”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깨어 있어 재림을 바라보고 있는 자는 데려감을 당하는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깨어 있어 그릇에 기름을 담아 예비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태복음25:10)”
졸다가 등만 가지고 기름을 가지지 아니한 미련한 자들은
문 밖에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소리지르지만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25:12)”
2>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깨어 있기 위하여 누구의 뜻으로 기도합니까?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깨어 있어 기도할 것은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란
깨어 있어야 할 기도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26:39)”
겟세마네 동산에게 예수께서 깨어 있어 기도하는 반복은
단 한가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란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같아서는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기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고난의 쓴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것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대게 수많은 교인들은 자기의 원하는대로 기도하다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시험에 들어 원망하는 것이 되고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깨어 있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26:40~41)”
1>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으라
예수님은 그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정도로 힘들어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기도는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깨어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오니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당부하하신 것은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깨어 있지 않고
자고 있는 것을 예수께서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깨어 있는 것과 자고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어 제자들도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상태는 깨어 있는 자들과 자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어 부지런하여 기도에 힘씁니다.
그러나 자는 자들은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은 미지근함에 있습니다.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깨어 있어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게으름으로 미지근하여 시험에 들어 “나는 주를 알지 못하노라”라는
베드로의 배신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깨어 있는 자들은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지 않습니다.
나팔소리 같은 주의 음성을 들어 썩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하여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어다(살전5:4~6)”
잠자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자들은 자는 자들과 같이 자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이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요한계시록3:3)”
오늘날 잠자는 교인, 잠자는 교회가 많습니다.
자는 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장차 올
7년 환난을 피하여 들림받아 하늘에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21:36)”
예수께서 첫 번째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시니 그 자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사랑하는 여러분, 정신을 차리고 깨어 한 시간을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 한 시간이라도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을 권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태복음26:41)”
마음으로는 내가 주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배신하여 도망가고 “나는 그를 모르겠노라”고 비겁한 배신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담대하게 하여 육신의 강건함이 되어야하겠습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있지 않고 자다가
결국을 마음을 그렇지 않을려고 하는데 잠자는 육신대로 나약함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어 한 시간의 기도를 하는
거룩한 기도의 습관이 되는 골방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깨어 있어 같은 말씀으로 반복하는 기도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있어 반복하여
세 번의 기도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복하여 같은 말씀으로 깨어 기도하여
아버지의 원대로 순종할 수 있는 평안을 얻었습니다.
깨어 기도하기 전까지 예수님의 상태는 마음이 고민하여 죽을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시니 평안을 가짐으로
능히 마음에 심히 고민하는 것은 사라지고
능히 고난을 환영하여 평안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마태복음26:44~45)”
3>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한 기도를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22:44)”
예수님의 기도는 결코 가벼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해도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힘쓰고 애써 더욱 기도를 하였더니
땀이 떨어져 핏방울같이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힘쓰면 땀이 나듯이 기도가 노동이요 노동은 곧 기도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가볍게 기도하여 땀도 나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힘쓰는 기도가 되어 잠은 달아나고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7~8)”
3.뒤로 물러설 수 없는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기도문대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가 될려면
물러설 수 없는 기도가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담대한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은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기도로 응답받는 것이어야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11:38~39)”
야곱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벧엘로 올라가고자 하나 앞길에
누군가 돌진하여 달려오는 위협은 다름아닌 야곱의 형 에서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날려고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칠까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습니다.
형 에서를 안본지 20년이나 되었으나 20년 전
에서의 마음은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입니다.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는 원한이
20년이 지나도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을 때에
나홀로 강청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고”라는 기도인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날이 샐때까지 씨름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붙잡고 기도하였던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날 정도였습니다.
야곱은 날이 새려 하여도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였습니다.
결국 야곱은 시험에 들지 않은 기도의 응답을 받아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실 때에 야곱의 이름으로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축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32:29~30)”
야곱은 야곱의 이름으로 이삭에게 축복을 받는 것은 속임으로
사람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는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았으나 시험에 들어
에서가 당함으로 에서가 원통해하였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가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세기27:36)”
너희가 이렇게 기도할 것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마시옵고”입니다.
시험에 드는 속임수의 축복 결과는 원수 맺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은 골방에 들어가 강청하는 기도로 시험을 들지 않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음으로 에서의 마음에서 “내가 야곱을 죽이리라”는
의지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야곱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부둥켜 우는 용서와 사랑이었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
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세기33:4)”
에서가 야곱에게 20년 만에 원한을 풀고 화목하였습니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3)”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기도대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의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어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1:6)”
주기도문(7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요한계시록13:1)
말 씀:마태복음6:9~13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하여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문이라 부릅니다.
이번 시간에는 주기도문 일곱 번째 시간으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1.악의 근원은 사탄이다
1>악의 삼위일체(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태초에 삼위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삼위하나님은 성부 성부 성자 삼위가 한 분 하나니님이신데
삼위하나님이라 부릅니다.
삼위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의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악의 삼위일체의 삼위가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입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요한계시록16:13)”
용은 사탄입니다.
용은 현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가상의 동물이 아니라
영안으로 사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용입니다.
욥기에서 용을 “교만한 것의 왕”이라 하였습니다.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
(욥기41:34)”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정치적인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요한계시록13:1)”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장차 될 일을 보는데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한이 본 것처럼 구약에서는 다니엘이 열 뿔 가진 짐승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서 7장에서 다니엘이 꿈에 보니 바다에서 올라오는
넷째 짐승을 보았는데 뿔이 열이었습니다.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
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다니엘7:7)”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동물 중 열 뿔을 가진 짐승을 봤습니까?
열 뿔 가진 짐승이란 상징이며 세계를 열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할 적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닌데도 그리스도인척 한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반대합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로 위장합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항합니다.
거짓선지자는 악의 적그리스도를 종교적으로 돕는 악령에
사로잡혀 거짓을 좋아하고 지어냅니다.
악한 적그리스도에게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의 종교통합으로
정치적인 적그리스도를 돕게 하는 것이 큰 성 바벨론입니다.
오늘날 종교통합의 세력이 바로 WCC(세계교회협의회)입니다.
말이 종교통합이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지만 결국 무너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이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요한계시록18:2)”
세 더러운 영이 있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는
거짓말과 속임수와 위장으로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혹케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의
악의 삼위일체를 물리치기를 위하여
삼위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란
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루시퍼가 타락하여 악한 존재로 쫓겨남
하나님의 산에서 쫓어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에스겔28:17)
사탄은 타락하기 전 그룹에 속한 천사장이었습니다.
사탄을 타락하기 루시엘 또는 루시퍼라 불렀습니다.
루시펴의 뜻은 빛을 지닌 자란 뜻입니다.
루시퍼가 타락하니까 위장된 빛을 발하여 광명의 천사라 부릅니다.
광명의 천사는 위장된 악한 사탄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후서11:14~15)”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그 속이 깨끗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하여도 그 속은 가증하고
더럽고 불의 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 정체가 다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룹에 속한 천사장 루시퍼가 속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어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에스겔28:17)”
사단은 하늘에서 그 마음에 교만으로 좇겨나 있게 되는 영역이 공중과 세상입니다.
공중은 첫째 하늘입니다.새가 날아다니는 하늘입니다.
사단이 공중에 영역을 둠으로 그 이름을 공중권세 잡은 자라 부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2:2)”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인 공중권세 잡은 자가
예수님의 재림을 막아 공중 권세를 잡아도 막을 수 없는 예수님의 공중재림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공중재림 하심으로 사탄의 공중권세를 물리치시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이 일어날 것임을 믿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4:16~18)”
세상으로 번개같이 떨어짐으로 세상임금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영적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7년 환난 중 후3년 반이 될 때에 하늘에서 군대천사장과 하늘군대에게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이 쫓겨날 것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게 내어 쫓기니라(요한계시록12:7~9)”
지상으로 쫓겨난 사단의 최후는 결국 불과 유황 못의 지옥으로
던져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입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요한계시록20:10)”
결국 악의 삼위일체인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최종적으로
있어야 할 곳은 불과 유황 못의 지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되어 쫓겨나는 것입니다.
악에서 쫓아나는 것은 거룩하지 못함으로 좇겨나 어두움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어둠에 있지 말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하는 기도로 빛을 발하는
빛의 자녀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8~9)”
2.교회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합심하여 기도하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
라(사도행전12:5)"
헤롯왕이 기독교를 없앨려고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였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니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주기도문대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교회가 베드로를 위하여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베드로에게 보내셨습니다.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쇠사슬에 매여 자는 베드로를 깨웠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사도행전12:7)”
베드로가 천사를 따라가니 문이 절로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옥에서 벗어나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갔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 매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믿습니다.
교회에서 모여 합심하여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기도하였더니
드로는 옥에서 나오게 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지 않은 헤롯을 쳐서 죽게 하셨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사도행전13:23)”
사랑하는 여러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공중권세와 세상 임금 노릇을 하는
마귀를 물리치기 위하여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되어
예수 한국 복음 통일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3.자유통일을 통한 북한 지상의 무너진 교회를 회복하자
사랑하는 여러분, 공중권세 잡은 자, 세상 임금 마귀가 북한에 김일성 우상숭배로
지상의 교회를 다 없애버렸습니다.
교회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세상 임금 노릇으로 김일성 동상을 세웠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성령의 강림으로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에 2860개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하나님이 되어 지금은 북한 지상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앞장서는 자유통일을 이루어
북한 지상의 수많은 교회가 다시 세워질 것을 소원합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의 자리에 김일성 동상이 있습니다.
머지 않아 김일성 동상을 밧줄을 매어 끌어내어 무너지게 할 날이 가까웠음을 믿습니다.
다시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워지기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의
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잠시 잠깐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영광이
아버지 집에 영원히 있기를 마무리하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나라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있다가
하늘이 불이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약속하신 것은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한 것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세상의 권세가 좋다하여 누리고자 하지만 잠시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권세로 지상에서 세상끝까지 전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빛이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이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란 기도가 되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십니다.
악한 일에서 건져주심으로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딤후4:18)”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이 있사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개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28:18~20)”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https://blog.naver.com/sano153/223510432331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