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은 맹자(孟子)의 양혜왕 편에 나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본래는 유항산(有恒産)이면 유항심(有恒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무항산 무항심은 이를 뒤집어 해석한 말이다. 맹자의 정치이념은 위민(爲民)이었다. 즉, 모든 정치는 백성을 위해서 해야 하고, 백성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 시대에는 오직 부국강병만을 추구하며 남의 나라를 칠 궁리만 할뿐 위민을 말하는 왕이나 제후는 없었다.
얼마 전 대법관을 지낸 한 인사로 인해서 무항산 무항심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대법관은 퇴임이후 전관예우가 보장되는 로펌 행을 거절하고 부인의 편의점 일을 도와주어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돌연 무항산 무항심을 들먹이며 로펌 행을 택했다고 한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누가 무슨 직업을 택하든지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차피 로펌으로 갈 바에야 웬 ‘편의점 쇼’를 부렸냐는 것이 비판적인 사람들의 시각이다. 바로가도 누가 뭐랄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대법관을 그만두면 월 500만 원 이상의 연금이 보장된다. 그런데다가 이 분이 대법관을 하는 6년 동안 억대의 연봉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축도 있을 것이고, 연금도 한 달에 500만 원 이상을 받으니 편의점 수입까지 더하면 제법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은 그것만 가지고는 모자랐던 모양이다. 집도 있고, 저축도 있을 터이고, 연금도 500만 원 이상을 타는 분이 무항산이라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무항산이 아니라고 할지 궁금하다. 더군다나 퇴임이후 부인의 편의점 일을 돕겠다고 하신 분이 뭘 그렇게 돈 쓸 일이 많았을까?
무항산 무항심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대법관을 거친 전직 고위공직자가 무항산 무항심을 예로 드는 것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다. 맹자는 선비는 무항산하여도 유항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떳떳한 생업이 없어도 떳떳한 마음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고, 백성은 떳떳한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떳떳한 마음이 없어진다. 만일 떳떳한 마음이 없어진다면 방탕하고 사악해진다. 이렇게 범죄에 빠뜨린 후에 나라가 이들을 형벌에 처한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이다.“
항심(恒心)은 떳떳하고 변치 않는 사람의 착한 마음이며 선비는 수련을 했기 때문에 생업이 없더라도 한결같이 떳떳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일반 백성들은 생업이 없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런 연후에 백성들을 선(善)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질없이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괴롭히지 말고 먼저 그들의 생계가 안정될 수 있도록 경제문제를 잘 풀어나가라. 그것이 해결되어야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그리고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