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그만 가자, 너무 늦었다."
점례는 아들의 볼에 자신의 볼을 댔다. 딱 한 번, 마직막으로 젖을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그러나 자는 것을 깨울 수는 없었다. 볼을 떼
었다. 아들의 얼굴에 뚝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눈물이었다. 점례는
얼굴을 멀리하고 손을 뻗쳐 조심스레 그 눈물을 닦아냈다.
"점예야."
벌컥 문이 열렸다.소스라쳐 벌떡 일어난 점례는 흑 울음을 터뜨
리며 방을 뛰쳐나갔다.
한숨으로 보내는 지루한 나날이었다. 이모는 새 옷을 해준다. 곡마
단 구경을 시켜준다 이름난 절에 데러간다. 수선을 피웠지만 어느것
하나 마음에 차는 것 없이 귀찮기만 했다.
밤마다 아들이 꿈에 보였다. 마루에서 굴러떨어지는 꿈이었다.끓
는 밥솥에 곤두박이는 꿈이기도 했다. 동생이 업고 까불리다가 허리
가 벌떡 넘어가는 꿈도 있었다. 병이 들어 숨이 넘어가는가 하면 개
에게 물리거나 뱀에 친친 감겨 있기도 했다.
밥맛을 잃고 시들 거렸지만 때마다 젖은 부풀어 올랐다. 남의 눈을
피해 젖을 주무르는 점례는 또 눈물이 글썽거렸다.
달포가 넘어도 이모는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점례는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날도 점례는 술상을 차렸다. 밥이나 빨래, 설거지 등 힘들고
거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찬을 만들거나 술상을 보는 일은
점례의 차지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모는 그런 일은 꼭 점례를 시
켰다.
"술상 다 됐어요."
"그래 수고했다." 그걸 사랑에 좀 내다 드려라."
으래 그런 순서였다. 하루에 한 번쯤 차리는 술상을 사랑에 내는
데까지가 점례가 하는 일이였다.
"몇 분이나 계시던?"
"이모부하고 못 보던 젊은 사람 두분예요."
"자 내 다리 좀 주물러나."
며칠이 지났다. 저녁상을 보아가지고 사랑으로 나갔다.
방문을 들어서던 점례는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 며칠 전에 본 그
젊은 남자였다. 방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눈길이 맞부딧친 것
이다. 이모부 앞에 상을 놓을 때까지 점례는 그 남자의 눈길을 따갑
게 느꼈다. 상을 놓고 물러서는 점례는 귓볼이 화끈걸리는 것을 붉
디붉은 색으로 느껴야 했다.
"곧 숭늉 드려라."
"........"
대답은 나오지 않고 입만 시늉을 했다. 그때까지도 남자의 눈길은
줄곧 쏟아지고 있었다.
마당을 건너지르며 숨을 몰아쉰 점례는 그때서야 자신의 가슴이
심하게 뛰고 있음을 깨달았다. 점례는 흘러내리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올렸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얼굴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 아직
까지도 그 남자의 눈길이 얼굴에 묻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참 이상
한 남자도 다 있다. 싶었다.
점례는 이모에게 상을 내다 드렸다는, 으레 하게 되어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매사에 눈치 빠르고 빈틈없는
이모에게 영락없이 들킬 것만 같았던 것이다.
점례는 부지깽이로 부억 바닥을 후벼파고 있었다. 아무래도 숭늉
을 내갈 일이 걱정이었다. 또 그렇게 쳐다보면 어떻게 하나, 생각만
해도 숨이 차왔다. 무슨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게 끝
도 없이 쳐다보는 것이며, 어찌된 눈길이 그토록 따가운지 모를 일
이었다. 또 그런 눈길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자 점례는 그만 부아
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마구 부엌 바닥을 후벼팠다.
"무신 속이 고렇게 탄데유? 식기 전에 물 올려유"
"속은 무슨 속이 타? 괜히 참견 말어."
점레는 갈포댁에게 쏘아붙이고 부억을 나섰다.
방문을 열기도 전에 숨이 차올랐다. 한겄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내리깐 채 방문을 열었다.
남자는 마찬가지엿다. 두 개의 숭늉 그릇을 올린 쟁반을 조심스레
놓고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하나는 날 주고 하나는 손님 앞에 놓아드려라."
이모부가 일렀다. 전에 없었던 일이다.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남자
앞의 국그릇을 들어내고 숭늉 사발을 놓으며 점례는 자신의 손이 떨
리는 것을 의식했다.
점례는 발을 구르며 마당을 건넜다. 이모부는 또 무슨 주책이람,
세상에 그리도 상스럽고 뻔뻔스런 남자가 어디 있어, 제 계집 아
니고 술집 기생도 아닌데 어쩌자고 그따위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
볼 수가 있담.
"속이 더 타지유? 숯 되기 전에 찬물 한 사발 허시겄시유?"
부억으로 들어서는데 갈포댁이 능글맞게 웃으며 반죽을 했다.
"갈포댁은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야? 속은 무슨 속이 탄다는 거
지?"
"그래야지유, 좋고 존 일로 타는 속인디 찬물로 꺼질 리가 없지
유."
갈포댁은 헤헤거리며 웃었다.
아차, 그랬었구나, 순식간에 점례는 귓볼이, 얼굴이, 목덜미가 화
끈거리고 숨이 가빠오며 가슴에선 쿵쿵 물레방아가 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예사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갈포댁까지 알고
있는 일을 자신만 몰랐던 것이다.
저녁을 마치고 나서 이모가 불렀다.
"요즘에 얼굴이 좀 나아졌구나, 내 어깨 좀 주물러다우."
점례는 이모의 등뒤로 돌아가 무릎을 꺽어세웠다.
이모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면 딴전을 피워 뜸
을 들이는 버릇이 있었다. 이모와 말을 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도
어느 틈엔지 이쪽이 뜸을 들여버려 말려들곤 했다. 그러나 오늘만은
뜸을 들일 필요가 없는데 이모는 괜한 수고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
었다.
"점예는 요새도 혼자 살겠다는 결심인가?"
"..........?"
무척 시건방진 남자였다. 건달도 상건달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서야............
"이렇게 사는 게 이젠 답답하지?"
"........"
자신만만해서 그럴까, 그 매섭던 눈초리가 건달은 아니었는데, 무
엇이 그리도 자신만만할까.
"나이 찬 여자가 답답함을 면하려면 천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느
니라."
이모가 정한 남자, 건달이면 어쩌고 자신만만하면 뭘 할까.
"시집을 가야지, 시집을 가면 잔근심 다 가시고 깨가 열리느니, 옮
지, 그 옆에 거기 좀 꼭꼭 주물러라."
".........."
"오늘 사랑에 오신 손님은 누구였지? 아는 사람이던?"
점례는 마른침을 삼켰다, 뜸을 다 들인 것이다. 이제 답답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피할 필요도 없었다.
"며칠 전에 왔던 그 젊은 사람이었어요."
"그래? 한 번 보고 나서 얼굴을 알아보겠던? 연분은 연분이로구
나 그러기가 어려운데 천생연분이야."
이모는 이렇게 휘감아 돌았다. 점례는 그만 얼떨떨해졌다. 술상을
들여다 놓으며 아무런 관심 없이 얼핏 보았을 뿐인 남자를 다음번에
알아볼 수 잇는 것은 정말 연분 때문인가?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
가? 연분? 천생연분?
"그 남자 생김새가 어떻더냐? 내 눈엔 미남이던데 어디 당사자인
점예 애기 좀 들어보자,"
".........."
다음 15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