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물(忘憂物)
술은 근심을 잊게 해준다
“술이란 하늘이 준 아름다운 선물이다.
제왕은 술로 천하를 양생했고, 제사를 지내 복을 빌고,
쇠약한 자를 돕고 질병을 치료했다.
예를 갖추는 모든 모임에 술이 없으면 안 된다.”
중국의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나오는 술에 대한 해설이다.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은 “소금이 음식의 장수(將)라면,
술은 백약의 으뜸(百藥之長)”이라고 치켜세운 뒤 술을 국가 전매품으로 만들었다.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시 ‘음주(飮酒)’ 제7수에서
“가을 국화는 빛깔도 아름답네(秋菊有佳色),
이슬 머금은 그 꽃을 따, 이 시름 잊게 하는 물건에 띄우니(汎此忘憂物),
속세 버린 나의 정이 더욱 깊어지네(遠我遺世情)”라고 노래했다.
이때부터 술은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망우물(忘憂物)로 불렸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 역시 ‘단가행(短歌行)’에서 술을 예찬했다.
對酒當歌 人生幾何
譬如朝露 去日苦多
慨當以慷 憂思難忘
何以解憂 唯有杜康
“술잔 들고 노래 부르자, 인생 얼마나 남았겠나
아침 이슬처럼 스러질 것이건만, 지난 세월 고생도 많았다
주먹 쥐고 울분 토해도, 지난 근심은 잊을 수 없어라
아! 무엇으로 시름을 떨치리오, 오직 술뿐인 것을.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사내가 한 번 마시면
삼 백 잔은 마셔야 한다고 ‘장진주(將進酒)’에서 노래했다.
조선(朝鮮)의 송강(松江) 정철(鄭澈)도
“곳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무진무진) 먹새근여”라며
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술을 권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한 법.
명(明)말의 학자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의 다음 구절은
연말 모임에 딱 알맞은 경구다.
花看半開 酒飮微醉, 此中大有佳趣. 若至爛漫, 便成惡境矣. 履盈滿者, 宜思之
“꽃을 감상할 때는 반쯤 피어 있는 게 좋고, 술을 마실 때는 얼큰할 정도가 좋다.
이 가운데 (꽃 감상의) 아름다움과 (음주의) 멋이 있다.
꽃이 활짝 피고 술에 흠뻑 취하면, 도리어 추악한 지경에 이르니
가득 찬 상태에 있는 이는 생각할 일이다.
술은 누가 처음으로 만들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하(夏)나라 때 의적(儀狄)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한다.
술은 왕후장상은 물론 필부필녀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시인묵객들은 술을 찬미하는 시문을 남기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술은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술은 우리 인생에서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동파 소식(蘇軾)은 「동정춘색」(洞庭春色)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應呼釣詩鉤 亦號掃愁箒
"응당 시를 낚는 갈고리라 부를 수 있고
또한 근심을 쓸어내는 빗자루라 할 수 있네 ”
술을 이렇게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술이란 시를 낚는 갈고리이자 근심을 쓸어내는 빗자루라고 했다.
예로부터 술은 근심을 잊게 하고 풀어주는 것이라 하여 망우물(忘憂物),
해우물(解憂物)라고 했다.
작게는 자신과 가정사의 근심 때문에, 크게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잔속의 물건(杯中物)을 입안에 부어넣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술은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파탄(亡國破家)시키는 것이라 했다.
차남 학유가 장남 학연보다 주량이 “배도 넘는”데 대하여 실망한 나머지
“어찌하여 글공부에는 이 애비의 성벽을 계승하지 않고
술만은 이 애비를 넘느냐. 이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고 개탄했다.
다산은 자신의 주량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중희당에서 삼중소주를 옥필통에 가득 부은
하사주를 받고 “나는 오늘 죽었구나.”라고 했지만 취하지 않았다.
과거에 합격(28세)한 후 춘당대에서 하사주를 큰 사발로 마셨으나
당시 여러 학사들은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남쪽을 향해 절을 하거나,
연석에서 엎어지고 누워 있었지만 자신은 과거 답안지 채점을 끝나고
물러날 때 약간 취했다고 했다.(寄游兒)
임금님 앞이라서 긴장이 되어 취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술에 강한 체력이었음을 수 있다.
다산은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술을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한 후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고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고 했다.
술을 좋아하는 자는 대부분 폭사(暴死)한다고 했다.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하는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고 했다.
다산은 아들에게, 폐족으로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이 더 붙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면서 술을 끊으라고 했다.
유배된 이 애처로운 애비의 말을 따르라면서
“빌고 비노니, 술을 입에서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하라.”고 애절하게 당부했다.
다산의 장남 정학연(1783∼1859)은 76세를 살았고, 주량이 형보다
배가 쎄었던 차남 정학유(1786∼1855)는 69세로 운명했다.
차남이 형보다 일찍 세상을 뜬 원인을 알 수 없으나
아마 과음이 원인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술이 아무리 망우물(忘憂物)과 해우물(解憂物)이지만, 근심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산은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고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했고,
망국패가(亡國破家)의 주범이라 했다.
술은 우리 일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그래서 백약지장(百藥之長)이란 말을 듣는다.
그런 까닭에 모임이나 잔치 연회엔 술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력(酒歷)이나 주력(酒力)에 따라 다르겠지만 얼근한 상태를 넘지 않게 마시면
그야말로 망우물(忘憂物)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망우물(亡愚物)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