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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여행자의 방
청송의 밤, 오래된 방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2018. 11 vol. 497
100년의 이야기를 품은 방을 데우기 위해 아궁이에 장작을 때면,
나무 타는 향이 그윽하다.
보드랍게 퍼지는 뿌연 연기의 고소한 내음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 여행자의 불안을,
복닥복닥한 심정을,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느라 굳은 뼈 마디마디 사이의 근육을 녹이고 달래고 보듬는다.
달과 별이 춤추는 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청송 덕천 마을의 방에 누웠다.
벅차게 포근해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edit 박은경 write • photograph 문유선(여행작가)
‘여행자의 방’에서는 한국관광 품질인증제 인증 업소 가운데 엄선한 숙소를 소개합니다.
송정 고택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온 사람은 없다. 고향집이 생긴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든다.
청원당
주인장 덕에 친정집에 온 듯한 느낌이 가득하다. 사랑 많은 집
찰방공 종택
어진 사람들이 살았고, 살아가는 정겹고 따뜻한 고택
창실 고택
예술과 정이 깃든 명품 한옥. 민화 그리기 체험은 숙박 고객에 한해서만 가능하니 놓치지 말자.
Other 주변관광지
덕천마을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다 청송 인터체인지로 나오면 채 3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덕천 마을이 있다. 큰길과 마을을 잇는 다리를 건너 경의재 옆 벚나무 터널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날랜 것들은 모두 제 속도를 잃는다.
청송이 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데 큰 몫을 한 덕천 마을은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시대 왕비 3명과 정승 13명을 배출한 가문이다. 조선 후기 만석꾼이었던 송소 심호택의 99칸 송소 고택을 중심으로 송정 고택, 찰방공 종택, 창실 고택, 청원당 등 6채의 고택이 남아 있다.
가을 벼농사가 막바지, 금빛으로 빛나는 마을이 유독 아름다운 이유는 하늘이 온전히 보여서다. 지중화 사업을 마친 덕천 마을에는 전봇대가 없다. 자연스레 하늘을 어지럽게 가르는 전선도 모두 땅 아래 있다.
바지런한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 덕에 동네 길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마을은 평온하다. 송정 고택 심증옥 여사의 말에 의하면 매일 문을 열어두고 다녀도 마을에 도둑 한 번 든 일이 없다.
송정 고택 솟을대문 앞에 마련한 무인 장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수확물과 도라지청, 생강청 등의 가공식품, 사과 등을 판매하는데 파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돈이 보이는 자리에 있는데도 나쁜 일은 한 번도 없었단다. 어느 집을 가건 후한 인심에, 살뜰한 보살핌이 가득하다. 때문에 마을 바깥에 볼거리가 많아도 마을에만 머물게 된다. 마을 어귀 사과농장에서 사과 따기 체험, 마을 공방에서 천연염색 체험, 청원당 다도 체험을 두루두루 하다 보면 하루가 빠르다. 경의재부터 덕천 2리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둑길이 이어진다.
만석 지기 산책로로 불리는 길 위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가 많아 길을 걸으며 제철 과실 하나 둘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을 중앙에 1957년 지어진 덕천 교회가 아름답다. 송소 고택으로 시집온 며느리를 위해 시아버지가 지어준 교회로 옛 정취가 가득해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최근 덕천 마을에는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가 문을 열었다. 도자기와 그림을 그리는 두 사장님이 의기투합해 ‘백일홍’이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한다. 인근(차로 5분 거리) 솔기 온천도 놓치지 말 것.
덕천 마을에서 온 여행객은 요금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물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소문대로다. 헤어 컨디셔너를 챙겨가지 않아 샴푸로만 머리를 감았는데도 손 빗질이 부드럽게 될 정도다.
고향집이 생긴 듯
송정 고택
명당터란 이런 곳을 일컫는가 싶을 만큼 잠이 잘 온다.
덕천마을에는 삽살개 복돌이가 마실 다닌다. ‘오늘은 마을에 별 일이 없나’ 순찰을 마친 후 느릿하지만 활기찬 걸음으로 돌아가는 곳은 송정 고택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고택인 송소 고택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이 집은 송소 심호택의 둘째 아들인 송정 심상광이 분가하면서 1914년 지은 집이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31호로 올해 104년이 된 송정 고택은 2011년부터 한옥 스테이를 운영해 왔다. 도산서원, 병산서원, 고산서원의 원장을 두루 지낸 심상광의 손녀 심증옥 여사가 남편과 함께 집을 지킨다.
방은 총 6개지만 주로 명품 방 4개 위주로 운영한다. 객이 한옥의 매력을 오롯이 느끼고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랑 격인 작은방은 단체가 묵지 않는 한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바깥채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깊다. 송정이 공부했던 책방과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이후 초대 총리를 지낸 철기 이범석 장군이 즐겨 찾았던 사랑방(‘장군방’이라고 불린다)은 부러 찾는 이들이 많다. 책방과 사랑방이 나란한 바깥채에는 이곳을 즐겨 찾던 의친왕의 편액이 걸려 있다.
3000여 평 규모의 집은 내외가 안과 밖을 나누어 관리한다. 온기 가득한 집안 곳곳에는 부부의 정성이 깃들었다. 나무와 목단, 작약, 구절초, 백일홍, 봉선화, 국화가 계절 따라 피는 안마당과 바깥마당, 우물가, 덕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산은 바깥사장님의 몫이다.
집안은 심증옥 여사가 가꾼다. 정갈한 살림 중 가장 눈에 드는 건 이불이다. 보드라운 양단, 장인이 만든 천연염색 이불, 고슬고슬 포근한 무명 이불을 갖춰 손님의 취향에 맞게 낸다. 훈기 가득한 방에서 무명 이불을 덮고 누우면 꿈도 꾸지 않고 죽은 듯이 자다 깨어난다. 아침 새소리에 잠이 깬 이후에도 방 온기와 이불 촉감이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누워 있고 싶어진다. 이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게 만드는 것은 복돌이와 복실이가 낳은 아기 삽살개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소리다. 어찌나 매혹적인지, 몸을 일으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송정 고택에서는 철 따라, 상황 따라 다양한 체험이 무료로 가능하다. 떡메치기, 제기 만들기 외에도 여름이면 반딧불을 보고, 잘 가꾼 텃밭에서 제철 식 재료를 고르고, 가을에는 밤을 줍는다.
너른 마당에서 아기 삽살개와 뛰노는 체험은 운이 좋아야 가능한 것. 나는 참 복이 많다. 집을 나설 때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소중한 것을 두고 떠나오는 마음이 들어서다. 주인장의 푸진 인심, 정갈한 방, 따뜻한 온기, 복돌이 복실이와의 우정이 그리워 언젠가 꼭 다시 찾게 될 게다.
INFO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1/ 054-873-6695/ blog.naver.com/peacej3012
오후 3시 체크인, 오전 11시 체크아웃
사랑방·책방·안방 각각 15만원, 중간방·작은방·상방 각각 10만원
취사 불가/ 주차 가능/ 체크인 3일 전까지 취소 시 100% 환불. /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확인
차향 그윽한
청원당
마당 장독대를 찻상 삼아 마시는 차 한 잔이 더없이 좋다.
차인(茶人) 최영희 원장이 터를 잡은 청원당은 찻집과 다도 체험 공간을 겸하는 한옥 스테이다. 최 원장의 기거 공간까지 건물 3채가 아름다운 정원에 어우러져 있다. 숙박이 가능한 방이 하나라 이 집에 머물면 한옥이 온전히 내 공간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다육 식물과 키 작은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심어 아기자기하게 가꾼 마당이 아름답다. 정갈한 뒷마당의 텃밭, 발효액과 장이 숨 쉬는 수십여 개의 장독, 찻잔 가득한 차실까지 모든 공간은 집주인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아 반짝반짝 빛난다. 솜씨 좋은 주인장이 직접 수놓은 침구는 정갈하고 깨끗하다.
주인은 조식을 직접 차려낸다. 텃밭에서 수확한 제철 식 재료와 직접 담근 효소로 맛을 낸 반찬을 예쁘게 담아 올린다. “야채를 잘 안 먹는 아이들도 예쁘게 담아 내면 호기심에 입에 넣어요.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또 그렇게 기쁘고요”라고 말하는 주인장은 마치 엄마 같다.
군불 때는 한옥이지만 개조해 화장실과 샤워실을 안쪽에 마련했다. 화장실 변기 옆에는 코스모스를 꽂아 두었다. 화장실과 방에는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항상 생화를 꽂아 둔다. 방은 작은 기쁨 하나하나 살뜰하게 누리며 바르게 살려는 주인장을 고스란히 닮았다.
INFO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3/ 054-872-6119
오후 3시 체크인, 오전 11시 체크아웃
독채 20만원(4인 기준 조식 및 다도 체험 포함)/ 취사 불가 주차 가능
체크인 8일 전까지 취소 시 100% 환불./ 자세한 사항은 전화 확인
따뜻하고 아늑한
찰방공 종택
종부 김순한 여사와 두런두런 나누는 정겨운 대화는 어찌나 좋은지.
집의 이야기, 어르신들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 깨닫는 게 많다.
덕천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인 송소 고택을 종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진짜 종택은 송소 고택 옆에 자리한 찰방 공 종택이다. 청송 심씨 악은 공의 9세손인 찰방 공 심당의 고택으로 청송에서 유일하게 사당이 있는 집이다. 본래 고택은 지금 집터 뒤편에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됐고 지금 집은 1933년에 후손이 지었다. 지금은 덕천 마을 이장이자 종부인 김순한 여사가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집을 반짝반짝 유리알처럼 빛나게 돌본다.
종택이지만 아담하다. 아담한 공간은 옛 물건들로 가득하다. 툇마루 시렁 위에는 김 여사의 시어머니가 받은 함이 창연히 빛나고, 마루 한편에는 시아버지가 직접 만든 소반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닦고 또 닦아 아껴 쓴 오래된 물건은 편안하고 맑은 기운을 발산한다.
사랑방, 안방, 작은방, 상방, 별채 방까지 방 5개가 있다. 작은방이 특히 포근하다. 이 댁 며느리들이 아기 낳으면 쓰던 방이라 그런지 엄마 자궁처럼 편안하고 아늑하다. 신기하게도 방마다 기운이 다르다. 현명하고 어진 시어머니가 쓰시던 안방은 덕(德)의 기운이 충만하고, 전국에서 글을 받으러 올 정도로 소문난 문장가였던 시할아버지가 쓰던 사랑방은 지(智)의 기운이 그득하다.
예약하면 3일 전부터 군불을 땐다. 훈훈하고 뭉근하게 방을 데우기 위해서다. 종택 입구에 마련한 별채는 최근 지은 건물로 밖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식이다. 한옥 체험은 하고 싶은데 한옥 생활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 된다.
INFO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23-8/ 010-9502-7611/ chalbanggong.modoo.at
오후 3시 체크인, 오전 11시 체크아웃
사랑방·안방·별채방 각각 15만원, 상방 10만원, 작은방 7만원/ 취사 불가 주차 가능
체크인 7일 전까지 취소 시 100% 환불./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확인
예술의 향기 피어나는
창실 고택
주인장이 모은 골동품을 보는 낙이 있다.
장독대, 집안 곳곳의 물건들이 모두 귀하다.
송소 고택에서 심호택이 분가할 때 지은 27칸 집으로, 당시 며느리의 고향 지명을 따라 창실 고택이라고 불린다. 지금 집은 민화 화가인 최점순 씨가 지킨다.
방치된 고택을 임대해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아내고 야생화를 심었다. 텃밭을 살뜰히 가꿨고, 조산으로 이어지는 무더기에는 온실도 세웠다. 뒷마당에는 너른 잔디밭을 가꿔 손님이 원하면 바비큐는 물론, 떡메치기, 송편 만들기 등을 할 수 있는 야외 체험 공간이 된다.
10년 전부터 숙박을 시작했다. 방은 총 7개. 그 중 하나는 집주인이 살고 다른 하나는 차실과 숙박 손님에 한해 민화 그리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활용한다. 초당(행랑), 안사랑, 책방, 황토방, 사랑방 등 5개 방이 제각각 매력적이다. 가장 아늑하고 멋진 공간은 안사랑이다. 작은 쪽문을 열면 마당의 흰 꽃 소담하게 핀 취나물 밭이 창을 가득 메우는데, 그림을 걸어 놓은 듯 아름답다.
뒷마당 쪽 툇마루에 핸드폰 함이 있다. 창실 고택을 즐겨 찾는 여행객 중 일부는 도착하자마자 이 함에 핸드폰을 숨겨두고 머무는 내내 꺼내지 않는다고.
뒤편 조산에서 철 따라 산나물 캐고, 민화 작가인 주인장의 가르침을 따라 부채나 손수건 위에 민화를 그리고(제대로 하려면 3시간가량 소요된다), 툇마루에 앉아 잠시 멍하게 지내다가 동네 마실 한 번 다녀오면 하루가 쉬이 간다. 바쁜 삶 오롯이 내려놓고 쉬기에 이만한 곳이 없겠다.
INFO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39/ 010-8509-2436/ changsil.modoo.at
오후 3시 체크인, 오전 11시 체크아웃
사랑방 15만원, 안사랑 10만원, 책방 5만원/ 취사 불가 주차 가능
체크인 8일 전까지 취소 시 100% 환불. /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확인
Other 주변관광지
주왕산국립공원
청송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산지를 먼저 둘러보지만 마을 어른들이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한 곳은 주왕산 국립공원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주왕산은 아침 일찍 가야 고즈넉하게 즐길 수 있다.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기암절벽의 종합 전시장’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공원 초입에는 대전사가 자리한다. 신라 말에 창건했다는 설과 고려 초에 창건했다는 의견이 팽팽한 천년 고찰이다. 대전사부터 용추폭포까지 5.8km 구간이 가뿐히 걸을 만 한다. 탐방로가 정비되어 있는 데다 주왕암, 주왕굴, 급수대, 학소대, 주상절리, 천둥알 등 지질 탐사도 가능한 구간이다.
주방천 페퍼라이트 앞 갈림길에서 주왕암과 주왕굴로 향하는 코스를 돌아 생태탐방로를 통해 용추계곡까지 가는 코스가 압권이다. 길 중간에 있는 급수대 전망대는 반드시 올라가 볼 것. 주왕산, 장군봉, 연화봉, 병풍바위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산신령이 눈앞에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영검하다.
하이라이트는 용추계곡. 거대한 기암괴석이 첩첩이 선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 주차장에서 용추계곡을 돌아 나오는 코스는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여행 Q레이터가 까다롭게 고른 여행자의 방
여행 Q레이터란 품질인증 숙소를 직접 체험하고 해석하여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전문가를 의미합니다.
스타일을 아는 이들의 선택
베스트루이스해밀턴 해운대
write 여행 Q레이터 최규호 kyuho18@naver.com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209번가길/ 8 051-741-7711 www.bestlouishamilton.com/
슈페리어 8만8000원부터, 디럭스 11만1000원부터, 스위트 17만9300원부터
아름답다는 홍콩의 야경보다 더 짙은 화장을 하는 해운대 밤거리. 그 거리 한가운데에서 부티크 호텔 베스트루이스 해밀턴을 만났다. 화려한 거리를 뒤로하고 맞닥뜨린 호텔은 ‘클럽이나 모던 바(Bar)로 잘못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캐주얼 한 외관이었다. 특히 무채색 건물을 헤집고 빛나는 검붉은 조명이 겉을 갈라야만 속이 드러나는 무화과처럼 강렬하게 느껴졌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면 셔츠 차림의 프런트 직원이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편안한 복장이지만 특급호텔 못지않은 서비스에 적잖이 놀랐다. 프런트 앞쪽에는 샴푸와 방향제가 각각 10가지씩 진열돼 있었다. 냄새에 민감한 투숙객을 위한 코너였다. 하나하나 향을 맡아본 다음 마음에 드는 제품을 덜어 방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무심한 듯 배려 넘치는 세심한
서비스에 반해버렸다.
객실 역시 다른 호텔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블랙과 레드로 꾸며진 내부가 격식 있는 파티에 초대된 듯 기분을 들뜨게 했다. 그러면서도 투숙객의 동선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가구를 배치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옷장이었다. 대부분의 호텔이 출입문 바로 옆에 옷장을 둔 것과 달리 세면대와 샤워부스 사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붙박이장을 만들었다. 덕분에 샤워를 끝내고 잠옷으로 갈아입기에 한결 편안했고, 옷장문과 현관문이 부딪힐 일도 없었다.
예기치 못한 전망
크라운하버 호텔
write 여행 Q레이터 오언주 ongmuseum@naver.com
부산 중구 중앙대로 114 051-678-1000 www.crownharborhotel.com/
스탠더드 9만5000원부터, 디럭스 10만5000원부터(바다 전망은 12만1500원부터)
금요일 퇴근 후 또 한 주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의 들뜬 기분을 만끽하며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쯤. 이틀 동안 제대로 즐기려면 체력부터 비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곧장 크라운하버호텔로 향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에 들어서자 숙소를 정말 잘 골랐다는 확신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환한 얼굴로 따뜻하게 반겨주는 직원들 덕분에 피곤함을 잊었다. 혹시 우리가 식사를 못 했을까 봐 늦은 시간에 열려 있는 식당도 친절히 설명해줬다.
호텔이지만 마치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대화를 하듯 편안하고 안락했다. 객실은 널찍했고, 더블침대와 테이블,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침대는 누우면 바로 잠이 들 만큼 푹신했다. 그냥 잠들기 아까운 마음에 호텔 1층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료와 먹을 거리를 사가지고 여행 첫날밤을 즐겼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밀린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해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 즈음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부산항대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를 깨워 창가 테이블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에 곁에 있어줘 고맙다며 살며시 마음을 건넸다.
호텔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꿀 잠 덕분인지 여행의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크라운하버 호텔은 우리 같은 뚜벅이 여행자, 그 중에서도 남포동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조금만 걸으면 용두산 공원, 남포동 거리,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을 놓치지 않고 만날 수 있어 알찬 여행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반딧불이 노닐던
치암고택에서의 하루
write 여행 Q레이터 장경훈 bezzera2@daum.net
경북 안동시 퇴계로 297-10 054-858-4411,/ 010-3530-4413 www.chiamgotaek.com
사랑채 호도재 10만원, 대문채 일건재 5만원, 별당채 상덕재 12만원
치암 고택은 퇴계 이황 선생의 11대손이자 조선 고종 때 언양현감, 홍문관 교리를 지낸 치암 이만현 선생의 생가다. 정식 명칭은 ‘안동 원촌동 치암고택’이다.
흔히 한옥 하면 불편한 집이라고 생각하는데 치암 고택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텔레비전, 에어컨은 말할 것도 없고 가슬가슬 깨끗한 침구와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 심지어 비데까지 설치돼 있다.
필자는 사랑채의 헌함(軒檻·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에 붙은 호도재에서 묵었다. 부스럭거리는 베개가 반가워 얼른 꺼내 누웠더니 다리가 금세 가뿐해졌다. 달빛이 새어드는 창호지 너머로 반딧불이 한 마리가 어른거렸다. 낯선 동네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난 듯 몹시 반가웠다.
새소리에 새벽 일찍 잠이 깼다. 늘 한두 번은 깨기 마련인데 어젯밤은 홀린 듯 내리 잤다. 상쾌한 기분에 남쪽으로 난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깨끗한 공기가 콧속으로 쓱 들어온다. 맘씨 좋은 안주인이 간단한 다과상을 내어 왔다. 송홧가루로 직접 만든 다식과 따끈한 녹차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른 누마루에 앉아 요기를 채우니 어제는 보이지 않던 글귀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퇴계 이황이 두향에게 보냈다는 ‘입춘’이라는 시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비어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주인은 뜻을 묻는 몽매한 여행자에게 선뜻 시간과 마음을 내어준다. 고택은 우거진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하고 아늑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끄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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