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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부터 히말라야 고산지대까지
탐험가이자 의사가 인체 여행을 통해 들려주는
우리 몸과 세계의 특별한 사연들!
“우리 몸과 삶은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
안으로는 뇌부터 손발가락까지 밖으로는 히말라야에서 북극까지, 인체와 자연에 매혹된 한 모험가 의사의 몸 안과 밖을 항해하는 짜릿한 모험. 눈에 보이는 피부나 손발가락, 몸속 깊이 감춰진 뇌와 심장, 일상을 유지해주는 목구멍과 솔방울샘, 우리가 흔적을 감추려 애쓰는 각종 점액과 대소변 등 별개로 보였던 몸과 삶과 세계가 퍼즐처럼 맞춰진다. 다양한 장기와 기관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살아 있는 몸이 장기들의 총합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운다. 우리 몸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몸은 삶 속에 있고, 삶은 몸 안에 있다.
목구멍은 왜 위험하고 어리석게 설계되었을까
인류를 구한 지방은 어쩌다 현대인의 적이 되었나
우리가 몰랐던 열다섯 개의 몸 이야기
우리 몸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각 장기들은 고유한 국가처럼 저마다의 질서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인다. 이 책은 눈에 보이는 피부나 손발가락, 몸속 깊이 감춰진 뇌와 심장, 일상을 유지해주는 목구멍과 솔방울샘, 우리가 흔적을 감추려 애쓰는 각종 점액과 대소변 등 열다섯 가지 고유한 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은 인체를 탐험하는 의사가 되었지만 한때 전 세계 오지를 누비던 저자가 탐험가의 관점으로 우리가 몰랐던 몸에 대해 알려준다.
예를 들어 ‘목구멍’은 그저 통로가 아니다. 이 책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위험천만한 목구멍 구조에 주목한다. 기도와 식도가 위험할 정도로 붙어 있어서 목구멍은 음식물 하나를 삼키더라도 5개의 뇌신경과 20여 개의 근육이 협력하도록 되어 있지만,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뇌 깊숙한 곳의 ‘솔방울샘’은 멜라토닌 분비를 통해 아침형 인간을 만들기도 저녁형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솔방울샘은 빛에 자극되므로 우리는 잠에서 깨려고 햇빛으로 나가지만, 빛은 피부에서 거의 차단되므로 꼭 눈을 통해서 흡수해야 한다. 그 외에도 노인이 고지대를 오르는 데 더 유리한 이유를 알려주는 ‘뇌’의 이야기, 오랫동안 인류를 보호한 동시에 귀한 식량이었던 ‘지방’이 오늘날 공공의 적이 된 배경 등도 담겨 있다.
몸은 삶 속에 있고, 삶은 몸 안에 있다!
병원 응급실부터 히말라야 고산지대까지
탐험가인 의사가 몸 안팎을 연결하다
책 속의 글들은 대부분 환자의 사연으로 시작된다. 이는 몸에 관한 정보로, 세계 각지의 여행 에피소드로 뻗어 나갔다가 다시 환자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지루할 틈 없이 편집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구성은 몸에 대한 시각을 확장한다. 환자의 심근경색을 진단하는 긴박한 장면은 캄차카반도에서 강의 지류를 조망했던 기억과 병원 배관공의 작업 노하우를 향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며 심장의 역할과 원리, 다른 기관과의 관계를 알게 해준다. 피부 이야기는 사슴가죽 무두질의 기억과, 장기로서의 간은 음식으로서의 간과 이어지며 직접 읽기 전에는 체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이외에도 각각의 장기 이야기에는 저자가 머물렀던 인도 뭄바이, 히말라야 고산지대, 세르비아의 어느 시골,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뉴저지의 도축장 등의 기억이 포개져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인체와 자연이라는 별개의 탐험을 하나로 잇는다. 저자는 원래 의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철학과 수학을 전공한 뒤 자연에 심취해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관심 닿는 대로 버섯 등을 공부하던 호기심 많은 방랑가였다. 치열한 의료 현장에 발을 들인 것은 의학 공부와 자연 공부가 다르지 않다고 깨달으면서다. 그의 눈에 장기들은 하나의 생물종처럼 고유한 생김새와 행동이 있었고, 여행지에서 봤던 생물들이 서식지에 살 듯 장기들은 몸속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 원형의 기억을 붙잡고 몸을 부분으로만 나누지 않으려 애쓰면서 몸속의 삶을 발견해나간다.
우리 몸과 삶은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
인체의 진실과 현대의학의 경계를 보여주는
몸과 세계, 의료의 틈새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
국가들의 총합을 세계라고 부를 수 없듯, 장기들의 총합이 몸은 아니다. 전체는 부분의 총합보다 훨씬 큰 존재다. 이는 의사가 되기 전 오지를 누비는 탐험가로 살았던 저자가 인체와 의학을 대하는 관점이자,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면, 그 틈새를 채우는 건 무엇일까? 이 책은 ‘연결관계’라고 본다. 각 장기는 저마다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몸이 살아 있는 것은 이들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몸의 생태학’이라고 부른다.
책에 따르면 우리 몸속 장기들은 건강할 때도 서로에게 의존하지만 아플 때는 더 크게 의존한다. 그래서 한 기관의 상태를 알기 위한 단서도 다른 기관 속에 숨어 있다. 심장과 폐는 우리가 뛰거나 오를 때 함께 빨라지고 함께 느려진다. 신장과 간도 긴밀한 공생관계에 있다. 몸 바깥에서도 우리는 서로 의존한다. 때로는 혐오하는 존재가 우리를 구하기도 한다.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던 환자가 남의 대변이 든 알약으로 완치된다. 흡혈하는 거머리는 인류에게 항응고제 성분을 가져다주며 혈관 손상 환자의 빠른 회복을 유도한다.
저자는 인체가 부분의 총합보다 큰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늘 삶이었노라 고백한다. 의술의 본질이 우리 몸속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에 있다면, 의사는 탐험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여정이 담긴 이 책은 그 자체로 생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다.
의대가 인체를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면, 삶은 인체가 부분의 총합보다 큰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우리 몸속의 숨겨진 세계도 우리를 둘러싼 자연계만큼 주목과 경탄을 받아 마땅하다. 우리 몸과 우리 삶의 진짜 이야기는, 안과 밖 모두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으니까.
--- p.18
배관 문제를 해결하는 리처드처럼, 산을 넘나드는 바실리와 올가처럼, 의사는 지형과 지류를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카테터를 삽입하는 심장전문의도 비슷한 기술을 구사한다. 카테터를 관상동맥으로 밀어 넣어 심근경색을 일으킨 혈전을 찾아갈 때, 분기점에 이를 때마다 적절한 길을 택하면서 점점 더 작은 혈관으로 접어들다가 드디어 조영제가 멈춘 지점에 도달한다. 까다로운 배관 문제를 해결하고, 치명적인 질환을 치료하고, 오지의 험한 산을 지나다니려면 배관공, 의사, 산행자는 하나의 물길에서 한 발짝 물러나 흐름이 맞물리고 갈라지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유역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어야 한다.
--- p.55
우리는 시계처럼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존재다. 내가 의대에서 인체에 관해 배운 것은 리듬이 거의 전부였다. 어른의 심장은 1초에 한 번 정도 뛰어 시계의 초침과 박자가 비슷하고, 폐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리듬은 파도가 해안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리듬을 닮았다. 둘은 신체의 가장 근본적인 리듬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에 대해 기본적으로 검사하는 ‘활력징후(바이탈 사인)’에 포함된다. 팔뚝에 압박대를 감싸 혈압을 재고, 심장과 폐의 리드미컬한 북소리를 살펴 기초적인 건강을 확인한다.
--- p.89
나는 또 하나의 청진기일 뿐이었다. 그것도 꼭두새벽부터 질문 세례를 퍼붓는 청진기. 그럼에도 나는 오전 9시까지 할 일을 끝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테드가 눈을 뜰 때까지 그의 다리를 살살 두드렸다. 매일 아침 그를 현실로 복귀시켜 야윈 살갗에 차가운 청진기를 갖다 대고, 마른 목구멍에 불빛을 비추고, 움푹 꺼진 배를 손으로 눌러댔다. 몽롱한 잠기운이 가시고 나면, 암 환자의 가혹한 현실이 새삼 다시 실감되면서 날마다 끔찍한 재진단을 받는 기분이리라. 나는 입맛이 어떤지(언제나 전혀 없었다), 통증이 어떤지 묻고는(변함없이 지속됐다), 다른 환자를 깨우기 위해 급히 자리를 떴다.
--- p.132
의대생 시절에 나는 특정 체액에 마음이 ‘끌려서’ 전공을 선택하는 의사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체액마다 나름의 오묘한 방식으로 진단의 실마리를 제공하니 흥미가 동할 만하다. 감염내과의 고름부터 이비인후과의 콧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의 수많은 배설물, 분비물, 화농은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체액은 보통 버려지고 천대받는 존재이지만 의사가 다루는 필수 재료로, 저마다 고유한 언어로 의사에게 속삭이며 환자의 문제를 알려준다. 전문의가 된다는 것은 특정 체액의 언어에 능숙해진다는 것으로, 그 색과 질감과 굳기의 해석법을 배우고 일생 동안 그 비밀을 궁리한다는 의미다.
--- p.185
거친 털이 테두리에 살짝 붙어 있는 커다란 발자국에 나는 불안했다. 고래를 찾으러 넓은 바다를 한 번 볼 때마다 뒤도 한 번씩 돌아보았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하얀 얼음덩어리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엿보는 북극곰이 있을 것만 같았다. 허먼은 북극곰이 바다표범을 사냥 중인 것 같다면서, 북극곰은 짐승의 지방 부위를 항상 먼저 먹는다고 했다. 이뉴피아트인들과 마찬가지로 곰도 지방을 노리는 것이다. 북극지방에서 가장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다. 곰이 부근에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뱃살과 옆구리 살이 새삼 새롭게 보였다. 모두 생존에 필요한 양식이었다.
--- p.207
간호사들이 ‘거머리 모텔’이라고 부르는 그 용기에는 그날 분량인 24마리의 거머리가 들어 있었다. 한 시간마다 한 마리씩 손가락에 붙여줄 녀석들이다. 거머리는 그날 아침 병원 약제과에서 성형외과 병동으로 직접 가져온 것이다. 일반 약은 보통 공기 압력을 이용해서 수송하는 기송관 시스템을 통해 약제과에서 병동으로 전달하는데, 거머리처럼 연약한 생물은 그렇게 거칠게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전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거머리는 건강하고 배고픈 상태로 병동에 전달되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거머리의 식욕이 곧 치료제로서의 효능이기 때문이다.
--- p.304
Jonathan Reisman
내과 및 소아과 의사이자 작가, 탐험가이다. 뉴욕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2년간 러시아에 살면서 여러 오지를 여행했다. 캄차카 반도에서 원주민과 함께 지내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로버트 우드 존슨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내과와 소아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후 러시아와 북극, 남극, 히말라야 산맥, 인도 콜카타의 도시 빈민가, 사우스다코타의 원주민 보호구역 등 세계에서 가장 외진 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현재 필라델피아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인도의 의료 및 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한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야생 생존법 및 선사 시대 공예를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험가가 되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과 관점으로 우리 몸과 세계의 아름다움과 그 작동 방식을 탐험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저자는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자연, 문화가 우리의 몸속 세계와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의사의 관점에서 신체 부위와 기관에 관해 알려주는 동시에 여행자의 관점에서 낯선 광경과 독특한 문화와 관습을 겪은 경험을 함께 전해준다.
캄차카 북부의 차일리노 강변에 앉아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를 바라보며 내 미래에 대한 여러 생각이 하나로 이어지고 합쳐졌다. 언젠가 여행객이 아닌 의사로서, 그동안 후의와 환대를 베풀어준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다시 찾아오는 상상을 했다. 그 강가에서 나는 귀국하면 의대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내 인생의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다.
의대에 들어가 인체해부학을 배우면서 우리 몸 곳곳에도 유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대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이 되기 전에 해외임상 실습 선택과목을 개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내가 있던 뉴저지의 의대 부속병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결핵, 장티푸스, 류마티스성 심장병, 나병, 소아마비 등 미국에서는 의사가 평생 한번도 보기 어려운 질병을 앓는 환자들을 검진하면서 병리학 교과서 속의 내용이 현실로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느 날 아침에 회진을 마무리하는데, 어느 병실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간호사는 한 손으로 환자의 옆구리를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더러워진 침구를 닦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환자는 불편한 듯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 팀에서 담당하는 환자가 아니었지만, 의욕 넘치는 풋내기 의학도였던 나는 병실에 들어가 돕겠다고 자청했다. 간호사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사람 몸에서 아무리 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도 프로다운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톡톡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는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숙련된 의료 종사자인 그 간호사에게는 아무리 심한 악취를 풍기는 변도 일상적인 임상 현장이었을 뿐이다.
아무 잘못 없이 간이 망가진 환자에게는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과도한 음주를 일삼는 탓에 간경화증에 걸린 환자도 많이 봤는데, 그런 이들에게도 공감은 필요하다. 내 경험으로는 소아과 환자에게 공감하기가 가장 쉽다. 무슨 질환에 걸렸든 환자 탓인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반면 성인 환자는 보통 그 반대다. 때로는 공감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살인자나 아동학대자를 돌보면서 혐오감과 동시에 공감을 느끼는 법을 배웠다. 과거에 무슨 일을 저질렀든, 의사 앞에서는 누구나 보살핌이 필요한 약자다. 공감이 항상 쉽지는 않지만, 늘 중요하다.
수면이 몸 전체의 건강에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또한 내가 소속되었던 병원 시스템이 너무 쉽게 무시해버린 환자의 필수적 신체 기능이 었다.
우리 레지던트들이 충분히 쉬지 못하면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고 의료 오류가 늘어나며, 이는 결국 환자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다들 논문을 읽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과에 적응하여 보통 잠을 충분히 잔 반면, 내 환자들은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충분히 쉴 가망이 희박했다.
담당의와 상급 레지던트들이 가끔 수면 문제를 형식적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입원환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내 업무 방식을 조정하거나 바꾸기에는 도저히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경황이 없는 내 두뇌는 병원의 시끄러운 소리를 무시하는 데 이미 익숙했고, 환자들의 수면 필요성에도 빠르게 무감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새로운 규칙을 세웠다. 정말 긴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기 환자의 잠을 결코 깨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수면을 박탈하는 거대 의료 시스템 속에서 의사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만, 정식으로 입원전담의가 된 후에는 말기 환자나 일반 환자 모두 푹 재울 수 있는 자율적 권한이 더 커졌다. 다른 의사들은 환자를 너무 일찍 깨우거나 너무 자주 깨우거나 타당한 이유 없이 깨우기도 했지만, 나는 환자들이 늦게까지 잘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비만한 환자는 진찰하기도, 진단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지방층 탓에 청진기를 통한 심장이나 폐의 소리가 더 멀게 들렸고, 복부 장기를 손으로 촉진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의대생 시절 뭄바이에 갔을 때, 비만으로 인한 걸림돌이 없는 의료 현장을 목격했다. 내가 일한 공립병원의 환자들은 하나같이 깡마른 몸이었다. 내가 배운 진찰 기술을 마른 환자들에게 써보니 미국에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게 잘 통하는 듯했다.
가난한 인도 환자들은 값비싼 영상검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의사들은 신체 진찰에 의존해 진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인도 의사들의 진찰 기술에 크게 감탄했다. 미국 의사들이 CT나 MRI같은 영상검사를 남용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지만, 몹시 과체중인 환자의 경우는 진찰이 어려워 그런 검사가 더 필요해지는 면도 있다. 그리고 직접 진찰을 하지 않을수록 진찰 요령을 잊어버려서 점점 더 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의사의 일은 언뜻 순전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를 대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행위다. 내가 의사 수련을 받으며 가장 중요하게 깨우친 교훈 중 하나는, 수업 시간이나 인체의 현미경 사진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다. 요령 없는 의사가 환자와 가족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이를테면 임종과 관련된 논의를 할 때 담당의가 틀에 박힌 태도나 의사소통 능력 부족으로 환자와 가족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모습, 급히 서두르는 담당의가 변기에 앉아 있는 여성 환자의 심장과 폐 소리를 청진기로 들으며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모습 등이었다.
유난히 불편했던 의사 한 명은 내가 환자로 만난 사람이었다. 의사가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화하는 내내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인간적인 대접은 상대를 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교훈을 깨달았다.
의사는 환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고 신뢰를 쌓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눈의 역할이다.
나는 의학의 미래를 생각해보면서, 오늘날의 의료 행위 중 야만적이라고 여겨질 부분은 어떤 것일까? 내 추측으로는, 미래의 의사들은 21세기 초의 의사들이 체액설이 폐기된 지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람 몸에서 피를 마구 뽑았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까 싶다. 불필요한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장기 입원 환자는 채혈만으로 빈혈에 걸리기도 한다. 미래에 피 한 방울로 모든 검사를 할 수 있게 되면, 현대의 의사들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야만적이고 거머리 같은 존재로 비칠 것이다.
의사들은 앞으로도 늘 자연을 지침 삼아 질병의 치유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억만년 동안 재주를 갈고닦은 거머리에게서 우리가 인간 혈액의 조작 방법을 처음 배웠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