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본당(주임 김윤중 신부) 교우 이영자(베로니카·67)씨의 새 해 소망은 남편과 손자의 건강,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성당에 나가는 것이다.
이런 이씨의 소망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에 대해 알아보고자 딸 혜간(엘리사벳·44)씨가 운영하는 황금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하느님을 모르고 지내던 1994년, 돌 지난 외손자(김정호 바오로, 17세)가 큰 열병을 앓는다. 그로인해 정호는 이후 정신박약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딸은 백방으로 병의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해 보았지만 허사일 뿐 빚만 커다랗게 남았다.
당시 닭 장사를 하던 이씨의 동네에는 무속인들이 많았는데 굿을 크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어렵게 모은 거금을 들여 큰 굿을 해 보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번엔 불교의 힘에 기대고자 수없이 절을 찾아다닌다. 그러던 중 꿈에 나타난 세 여인을 본 뒤 예전부터 성당에 나갈 것을 권유하던 동생을 통해 딸과 함께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한다.
첫 부르심이었다.
“생활비와 병원비 마련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주일 아침 교리 받으러 가려고만 하면 손님이 몰리는 거예요. 돈 욕심에 결석도 많이 했지만 안 되겠다 싶어 아예 주일 오전만큼은 장사를 포기하고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 무작정 “저, 교리 공부하러 왔습니다. 저 교리공부하고 갑니다”라는 기도와 잘 알지도 못하는 9일 기도를 외우다시피 바쳤다.
“손자의 병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성당에 가면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어요. 내 이야기를 모두 다 하느님께 말씀드릴 수 있기에 마음이 평화롭고 기뻤거든요. 이만큼의 삶도 얼마나 감사하던지, 성당에 다녀온 오후엔 손님도 훨씬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온 가족이 모두 세례를 받고 봉사하는 삶을 열심히 살았다. 부르심과 응답에 대한 변화였다.
지금 이씨와 가족들에게는 두 번째 부르심과 응답이 요구되고 있다.
손자 치료비로 빚이 자꾸 커지자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 망가지겠다 싶어 닭 집을 판 돈으로 지금 사는 작은 집과 식당을 구했다. 그러다 이번엔 남편 유태섭(베드로·71)씨가 대장암 판정을 받아 2년째 투병하고 있다. 두 번의 수술, 지속적인 항암치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간병, 손자의 특수교육을 위한 비용 등 갖은 시련을 겪고 있다.
이 시련으로 그동안 열심히 봉사하던 딸과 가족들은 주일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자신도 성당 가기가 멀고 건강도 좋지 않아 겨우 주일만 지킬 뿐 달리 봉사 활동을 하지 못한다. 여전히 성당 가는 것이 기쁘고 행복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죄송스러움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예수님과 성모님께 모두 맡기고 봉헌해야 하는데 참 마음 같지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여전히 묵주를 손에 들고 예비신자 시절 외웠던 9일 기도문을 바치는 이씨의 새 해 소망은 세 가지다.
“남편이 건강해지든가 아니면 편히 임종했으면 하는 거, 손자의 말문이라도 좀 트였으면 하는 거,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성당에 나가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가 먼저 보여야 하는데…”
두 번째 응답을 위한 마음을 다지고 있다.
김재현 수원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