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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삿갓과 평양 기생 죽향(竹香)
김 삿갓이 하도 걸출한 인물이다 보니 김 삿갓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가지로 전해온다.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고, 일부는 허구로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수도 있겠다.
연광정(練光亭)은 북한 평양 성에 있는 조선 시대의 누정(樓亭)으로 덕암(德岩)이라는 수백 척 절벽 위에
날아 갈듯 솟아 있는 정자이다. 현재는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름은 산수정(山水亭)이었다가 만화정(萬花亭)으로 고쳤고, 나중에 다시 고친 이름이 연광정이다.
연광정은 성종(成宗)때 평안 감사 허굉(許宏)이 지었다는데 규모나 건축미가 크고 뛰어난 걸작품이다.
일찍이 임란(壬亂)때 명나라 장수 심유경(沈惟敬)이 왜장(倭將)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강화담판(講和談判)
한 장소가 여기며, 나라가 위급지경에 처하자 일개 기생의 몸으로 적진 속으로 숨어 들어가 왜장을 죽이고
순국절사(殉國節死) 한 평양 명기 계월향(桂月香)이 평소 즐겨 찾던 곳이 바로 여기다.
선조 때 명 나라의 사신이자 명필로 유명했던 주지번이 이곳에 들렀다가 연광정의 경치를 보고 '천하제일
강산'이라 칭찬하면서 직접 현판 글씨를 써서 붙였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의 항복을 받고 돌아가던 청 태종
이 연광정에 들렀다가 이 현판을 보고 "중국에도 명승지 많은데 왜 여기가 천하제일이라고 써 붙였냐"며
현판을 부숴버리려다 글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천하 두 글자만 톱 질 해 없애고 '제일 강산'이라고 남겨두게
했는데, 문화재청장이던 유홍준이 갔을 때는 다시 '천하제일강산'이라고 써 붙여져 있었단다
그 연광정 다락에서 굽어 보는 풍광이야 어찌 다 필설로 다하랴!
능라도와 백은탄이 한눈에 들어 오고 왼 편으론 대통루(大同樓) 요 오른편엔 읍호루(읍濠樓)가 지호지간
(指呼之間)인데 밤낮없이 용용한 대동감 위에는 사시 장철 놀잇배가 무수히 떠 있다. 그러기에 그곳 정자에는
연광정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가 걸려 있었는데, 숙종 때 시인 김창업(金昌業)의 시에 이르기를
普通門外草靑靑 (보통문외초청청) 보통 문밖 벌판엔 풀빛 푸른데
浮碧樓前春水生 (부벽루전춘수생) 부벽루 앞 강엔 봄 물결 이네.
誰道吾行歸未晩 (수도오행귀미만) 일찍 돌아오라 그 누가 말했던고
杏花如雪滿江城 (행화여설만강성) 강 마을엔 살구꽃이 눈 발처럼 날리네.
또 정조 때의 시인 조의 겸(曺義謙)의 시에는 이렇게 읊었으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했는가?
江樓四月已無花 (강루사월이무화) 사월이라 첫여름 꽃은 이미 져버리고
簾幕薰風燕子斜 (염막훈풍연자사) 주렴 바깥 훈풍에 제비가 날아드네.
一色綠波連碧草 (일색록파연벽초) 언덕 위 푸른 풀에 강물도 푸르니
不知別恨在誰家 (부지별한재수가) 이즈음 어느 누가 헤어지고 해태 울꼬
역시 대동강은 사랑의 대동강이요 이별의 대동강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지사를 외면한 채 용용히 흘러만 간다.
김 삿갓이 죽장망혜(竹杖芒鞋)에 전국 방방곡곡 명승지 유람을 할 때....
때는 마침 만화방창(萬化方暢) 봄날... 평양 대동강 변 연광정을 향하고 있었다.
연광정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잔디밭에 때마침 진달래는 붉게 피었는데 그곳에서 10여 명의 노기(老妓)들이
둘러앉아 화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화전이란 소금물로 반죽한 찹쌀가루로 전병을 만들어 부칠 때, 진달래
꽃을 넣어 익혀내는 매우 풍류적인 음식으로 꽃 시절이면 의례 시인 묵객들이 시회(詩會)를 이렇게 열기를
많이 했다.
김 삿갓이 그곳을 지나치려니 시장하던 차에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고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어 체면 불고
하고 머리를 숙이며 지나가던 과객에게도 전병 몇 장만 얻어먹게 해 주십시오 하니, 50 세쯤 되어 보이는
노기가 지금 시회가 막 끝나서 일어나려던 참이었는데 남은 전병이 석 장뿐이니 허물치 말고 자셔 주시요
하는데, 그 말 품이 제법 공손 하다.
전병 석 장을 게 눈 감추듯 모두 먹어 치운 김 삿갓은 고마움에 이렇게 수작을 걸었다.
즐거운 시회에 불청객이 훼방을 놓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뜻에 답례로 시 한 수 적어 놓고 가겠소
이다 하며 일필 휘지로 써 갈기니 내용인 즉 이러하다.
鼎冠撑石小溪邊 (정관탱석소계변) 솥을 돌로 괴어 놓은 개울가에서
白粉淸油煮杜鵑 (백분청유자두견) 흰 가루를 기름에 튀겨 전병을 부치네.
雙箸挾來香滿口 (쌍저협래향만구) 젓가락으로 집어넣으니 입에는 향기가 가득하고
一年春信腹中傳 (일 년 충신복중 전) 한 해의 봄소식이 뱃속에 전해 오네.
이렇게 써 놓고 일어서려는 데 기생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래 가지고 그 필적과 내용에 감탄하며 '이 시를
선생이 지으신 겁니까' 하며 난리를 친다, 이에 김 삿갓이 짐짓 손사래를 치며 '아니올시다. 이 시는 명종 때
풍류객 임백호(林白湖)가 지은 시입니다 하니, 모두들 일찍이 평양에 도사(都事)로 와 있던 백호(白湖) 임제
(林悌)에 관하여 이야기해 달라 졸라 대는 것이었다. 해서 김 삿갓은 백호 임제의 이야기를 하였다.
원체 풍류를 타고난 임제는 평안도 도사(종 5품관 : 관찰사의 부사격) 로평양에 부임했는데 색향(色鄕)
평양에는 수천 명 기생이 있건만 유독 마음속에 둔 여인은 한우(寒雨)라는 기생뿐이었다.
한우는 외모도 출중했거니와 시문과 풍류에도 능통하여 임백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지조 높은 그녀는
좀처럼 임백호에게 잠자리를 함께해 주지 않았다.
어느 초 겨울밤 단둘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임백호가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 시조 한 수 를 읊으니
<찬비>는 기생 한우(寒雨) 요 은근히 동침을 요구한 내용이다.
북창(北窓)이 맑다기에 우장(雨裝) 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판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에 기생 한우가 어찌 임백호가 부른 시조의 뜻을 모르랴!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조로 응수하고 그야말로 달콤한 밤의 역사를 열어젖히니
그 이상의 이야기를 어찌 다 하리오.
"어이 얼어 자리 무삼 일 얼어 자리.
비단 이불 원앙 베개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 비 맞으셨다니 녹여 드릴까 하노라."
김 삿갓이 능란한 입담으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기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중에 더러는 한숨을 쉬면서
어쩌면 옛날 분들은 그렇게도 멋진 사랑을 했을까? 과연 요즘 세상에도 그런 풍류남아가 있을까? 하면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내려갈 생각들은 않고 한 가지만 더 들려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하여 한 가지를 더 들려주고 일어서려는 데 여러 기생들이 이제는 김 삿갓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처다 보면서
선생도 필경 시인 아니냐고 물어 대는데, 김 삿갓은 그저 떠돌이 걸객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몇몇 기생들이 한편 쪽에서 무엇인가 쑥덕거리더니 드디어 김 삿갓에게로 몰려와 서는,
'맞다! 그분이 아니라면 이토록 옛 시와 역사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요. 아마도 선생은 김 삿갓 그분이 맞으시죠?
하면서 난리 법석이 나고 말았다.
김 삿갓은 졸지에 신분이 밝혀지자 겸연쩍어 어쩔 줄 몰라하면서 그저 걸객에 불과한 소생이 김립, 김 삿갓
이올시다! 하자 좌중의 기생들 모두가 그를 향하여 손뼉을 치며 정중히 머리 숙여 예를 올리며 말하기를
존귀하신 어른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하며 정중히 술을 따라 올린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그들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은 안 하고 낮에 자기들이 지은 시를 가져와
김 삿갓에게 강평을 해 달라고 졸라 댄다.
어쩔 수 없이 시문을 적은 종이 뭉치를 받아 든 김 삿갓은 시는 짓는데 뜻이 깊은 것이지 잘 짓고 못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며 미리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설명해 놓고는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시의 수준은 보잘것없는
수준의 졸작들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만치 서 새초롬해 보이는 제법 예쁜 기생 하나가 이런 말을 해준다.
'저희들은 오늘 <門>, <村>, <昏> 세 글자를 운자(韻字)로 썼사옵니다.'
'아 ~ 그래요?... 하면서 넘겨 보니 영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 것들이 무슨 시를 쓴다고....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며 넘겨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대작(大作)의 명시(名詩)를 하나 발견 하였다. 거기에는 강촌 모경(江村暮景) 이란 제하의 시가 아름다운
글씨로 적혀 있었으니
千絲萬縷柳垂門 (천사만루유수문) 실 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綠暗如雲不見村 (록암여운불견촌) 구름인 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 수 없네
忽有牧童吹笛過 (홀유목동취적과) 목동의 피리 소리 그윽이 들리는데
一江烟雨白黃昏 (일강연우백황혼) 보슬비 내리는 강촌에 날이 저무네.
김 삿갓은 두 번 세 번 읽어 보고 나서 '이처럼 기가 막힌 시를 누가 썼습니까?' 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필경 이것은 누군가 남의 시를 베껴 쓴 것이리라 여기면서 거듭 다그쳐 물었더니, 아까부터 새초롬 하니
앉아 있던 기생이 얼굴을 반짝 들며 '선생님! 그 시는 제가 쓴 시입니다, 저는 죽향(竹香)이라 하옵니다.'
바라보니 참으로 어여쁜 32,3세의 기생이었다. 거듭 김 삿갓이 그녀의 시를 칭찬하자 다른 기생들이 기분이
언짢은지 선생이 우리들의 시를 모두 보셨으니 이번에는 선생이 우리들에게 시를 지어 달라는 주문을 한다.
김 삿갓은 좌중의 어색한 분위기를 둘러보고 나서 이를 가라앉히려면 도리 없이 시를 지어야겠다고 생각
하고 일필휘지로 종이에다 먹을 듬뿍 먹여 연광정(練光亭)이란 제하의 시 한 수를 똑같이 <門, 村, 昏> 세 글자
를 운자로 하여 써 갈기니
截然乎屹立高門 (절연호흘입고문)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碧萬頃蒼波直飜 (벽만경창파직번)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 물결 굽이치네
一斗酒三春過客 (일 두 주삼촌과객)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 술에 취했는데
千絲柳十里江村 (천사유십리강촌) 천만 가닥 수양버들 십 리 강촌에 늘어졌구나
孤舟鷺帶來霞色 (고주노대래하색) 외로운 따오기 노을빛 끼고 날아들고
雙白鷗飛去雪痕 (쌍백구비거설흔) 짝 지은 갈매기 눈 발처럼 휘나르네
波上之亭亭上我 (파상지정정상아)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
坐初更夜月黃昏 (좌초경야월황혼)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이 시는 연광정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을 굽어 보며 즉흥적으로 읊은 시로써 죽향(竹香)의 강촌모경
(江村暮景) 시에 대한 화답으로 읊었지만,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아는 이 없었다. 다만 죽향 만이 의미 심장
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날이 저물어 오므로 김 삿갓은 여러 기생들에게 그동안 잘 얻어먹고 잘 놀았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 서다가
문득 예곤옥에 대하여 알아보아 달라고 청하여 놓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리하여 임 진사 댁으로 돌아
오니 임 진사가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 어디를 다녀오셨냐며 영명사의 벽암(碧巖) 대사가 여태껏 선생을 기다
리다 조금 전에 돌아갔다 한다. 사실인 즉 벽암 대사와도 모르는 사이건만 벌써 김 삿갓의 명성을 들어 알고
시를 논하고 싶어 만나고자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아마도 내일 아침 찾아오실 거란 말을 덧붙인다.
그 영명사 벽암 스님은 도가 매우 높은 스님으로 시문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술도 잘해서 인근에 미치광이
스님이라 정평이 나 있다. 하는데 술을 곡차(穀茶)라 부른단다.
김 삿갓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벽루 서쪽 기린굴(麒麟窟) 위에 영명사로 벽암대사를 찾아갔다.
영명사 누각에 걸린 시 한 수가 반긴다.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 절에 중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영명사 절 앞엔 강물만 흐르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입정제) 산은 비고 뜰에는 탑만 홀로 섰는데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도두) 사람 없는 나루터엔 조각배만 떠도네.
김 삿갓은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들어온 느낌을 받으며 경내로 들어가 상좌에게 벽암대사를 만나러
왔다고 전하니, 선실(禪室)로 인도하여 들어가니 80을 넘긴듯한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반기는데 첫눈에 거룩한
모습이 완연하다 하여, 김 삿갓이 어제 자리를 비워 대사께서 헛걸음하신 것을 사과하니 벽암 대사 김삿갓을
크게 칭찬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삿갓이 방안을 둘러보니 벽에 족자 하나가 걸려 있으니 내용이 이러하다.
白雲千里萬里猶是同雲(백운천리만리유시동운) 구름은 천만 리에 덮여 있어도 구름일 뿐이요
明月前溪後溪嘗無異月(명월전계후계상무이월) 달은 앞 내 뒷 내 모두 비추나 다른 달이 아니로다.
김 삿갓이 크게 감동해서 벽암 대사에게 저 글은 대사께서 지으신 글입니까 하고 물으니, 고승이 답하기를
'저 글은 신라 적 진경(眞鏡) 선사께서 읊으신 게송(偈頌)'이라 한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벽암 대사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다고 상좌가 전한다.
문을 열고 밖을 보니 80이 넘어 보이는 쪼그랑 노인인데 벽암대사는 서슴없이 그 노인을 방으로 안내하고
그 연유를 물으니 '내 나이 90 이 올 시다, 대사께서 영험하시다 하니 더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한다.
벽암 대사 서슴없이 백 살, 이백 살 살아도 결국은 언젠가 죽는 이치를 말하며 타이르니 90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불교에 귀의하고 만다.
김 삿갓은 이 광경을 보고는 역시 대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격했다.
이윽고 노인이 돌아가고 선방엔 벽암 대사와 김 삿갓만이 남았다.
방문 너머로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이 한눈에 삼삼하다.
'삿갓 어른! 저기 보이는 놀잇배들을 여기 앉아서 멈추게 하려면 어찌하면 되겠소이까?'
김 삿갓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물론 선문답(禪問答)의 정답이었다.
'하면, 삿갓 선생! 문을 닫지 않고도 배를 멈출 방법은 없겠소이까?'
김 삿갓 눈을 슬며시 감아 버리자 벽암 대사 크게 웃으며 좋아한다.
대사와 삿갓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금의 명시와 고승 대덕들의 게송을 논하며 곡차(穀茶:술)를 내오게
하여 취하도록 마셨다. 역시 벽암 대사는 취해도 자세 하나 허트리지 않는다. 또 몇 수의 시를 짓고 게송을
암송하며 술을 서로 권하며 환담 중인데 또 밖에서 상좌가 이르기를 일영(一影)이란 보살이 김 삿갓을 찾아
왔노라고 고하자, 벽암 대사 빙그레 웃으며 '참으로 삿갓 선생은 염복도 많으시구려. 타고난 미인에다 시도
잘하는 일영 보살이 이렇게 찾을 정도면 말이외다.' 하며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합장하는 모습을 보니
아! 그녀는 다름 아닌 일전에 연광정에서 만났던 기생 죽향(竹香)이가 아닌가? 죽향이 조용히 앉아 저간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어느 평양 기생의 양녀로 끌려온 이후 예곤옥(芮崑玉)이란 이름을 버리게 하고
죽향(竹香)으로 개명하였으며 기생 교육을 강제로 시켜 거부하면 수도 없이 매 질을 당했고 오매불망 보고
싶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도 무서운 양모는 철저하게 가로막으며 오로지 기생으로 살아가기를 종용했다
한다.
하기야 어차피 양모가 기생이니 그 양녀가 제 아무리 용 빼는 재주가 있어도 장성해서는 남의 집 첩실이나
소실 밖에 더 되랴! 그럴 바엔 차라리 이름 있는 기생이 되는 게 낫겠다는 양모의 판단이 옳았던 건 사실인데..
그 어린 나이에 견뎌 내기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던 건 사실이다. 이제 그 양모도 죽고 아버지 살아생전에
만나 뵙고 싶은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이렇게 어른들께 결례를 범하고야 말았나이다 한다.
이에 김 삿갓은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예동철(芮東哲)이며 이미 나이가 80을 넘겼다는 이야기와 사시는 곳은
이곳 평양에서 50 리 떨어진 중화 고을 어느 산속의 길가에 성인 주막(聖人酒幕)에 사신다고 했다.
죽향은 아니 예곤옥은 슬프게 통곡하며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며 꼭 수고스럽지만 김 삿갓에게 그곳을 안내해
달라고 두 번 세 번 간곡하게 청하는 게 아닌가... 예곤옥은 아예 벽암 대사에게 자기가 삿갓 선생을 지금 모시고
집으로 가겠다며 청하였다. 벽암 대사는 흔쾌히 승낙하며 일영 보살(예곤옥)은 자신이 불가에 입문시킨 불제자
이니 삿갓 선생께서 잘 좀 도와주시기 바라오 하며 일영 보살에게 어서 모시고 가게 한다.
이리하여 김 삿갓은 대동문 근처에 있는 죽향의 집에 오니 집은 작으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벽에 걸린
한 폭의 족자에 눈이 멈춘다.
妾身倫落屬娼家 (첩신윤락 속창가) 이 몸이 윤락하여 기생이 됐을망정
願得賢郞送歲華 (원득현랑송세화) 어진 낭군 만나 길이 섬기고 싶었소
不識郞心磐石固 (불식낭심반석고) 임의 마음 반석처럼 굳지가 못해
暫時移向別園花 (잠시이 향별원화) 오래지 않아 딴 여자로 옮겨 갔구려.
이 시를 보노라니 과연 죽향의 성품이 어느 정도로 깔끔하고 여성다운 풍모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죽향은 김 삿갓을 모셔 오고는 정성을 다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를 최고의 수준으로 하면서 거듭 아버지
만날 일을 상의 함에 내일 당장 떠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자 죽향은 아버지께 드릴 예물을 사야 한다며
출타를 하고 김 삿갓에게 먼저 주무시라며 나가니 쓸쓸한 객고에 허전한 마음 한량없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데 마치 한 쌍의 연인이 유람을 다니는 기분이라
김 삿갓이 짐짓 죽향에게 백년가약을 맺고 신행(新行)을 가는 기분이라 하니 죽향이 눈을 곱게 흘기며
부끄러워한다.
산은 첩첩하고 물은 맑은데 어디선가 두견새 울음소리가 영절스럽게 들려옴에 김 삿갓은 즉흥 시를 한 수
읊는다.
春去無如老客何(춘거무여노객하) 봄은 갔는데 늙으신 몸 어떠하실까
出門時少閉門多(출문시소폐문다) 방에 앉아 나들이도 안 하셨다니
杜鵑空有繁華戀(두견공유번화련) 두견새야 뭐가 그리워 애타게 우느냐
啼在靑山未落花(제재청산미락화) 울음소리에 못다 핀 꽃 떨어질 세라.
김 삿갓은 이렇게 예 노인을 생각하며 읊으니 죽향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삿갓에게
어서 길을 서둘자고 간청을 했다. 죽향이 감 삿갓에게 그 성인 주막은 아직 멀었느냐고 물으며 애타게 보고 싶은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을 시로 지어 보겠노라 하므로 삿갓이 즉석에서 어서 지어보라 권한다.
相思人在山中村 (상사인재산중촌) 간절히 그리운 임은 산속에 계시건만
消息天涯久未聞 (소식천애구미문) 소식 모르는지 너무도 오래였소
今日獨涯芳草路 (금일독애방초로) 오늘은 오솔길 밟으며 찾아오건만
夕陽何處掩柴門 (석양하처암시문) 석양에 사립 문 닫힌 집은 어디에 있는고.
이렇게 두 사람은 시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예 노인의 집 성인 주막에 다다랐는데 성인 주막이라는 주기가
거꾸로 매달린 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고 집이고 근처고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죽향을 밖에
세워두고 삿갓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는데 다만 방 아래 목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지방(紙榜)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顯考學生府君 芮東哲神位 돌아가신 선비 예 동철의 신주이 지방을 보고 죽향은 엎드러져 대성통곡을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아온 온갖 서러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모두가 쏟아져 나오는 듯 그녀의 통곡 소리는 너무
나도 애달파 듣는 이도 함께 울 정도로 섧게 운다. 가까스로 죽향을 진정시킨 김 삿갓은 그녀에게 그 마을
풍헌 영감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보기로 했다.
풍헌(風憲) 영감을 찾아가자 예 노인이 운명하던 날 <곤옥 아. 너는 아비가 죽어도 찾아올 줄을 모르느냐>고
외치고는 돌아가셨다 하며 동네 사람들이 집 뒤 양지바른 곳에 묻어 묘소를 지었다는 말을 해주는데, 죽향이
울면서 거듭거듭 감사의 절을 한다. 이어 성인 주점 뒷산에 가 보니 예 노인의 묘소가 있는지라 죽향이 또다시
곡하고 예를 다 하였다.
그날 밤 삿갓과 죽향은 예 노인의 빈집에서 자게 되었다.
죽향이 삿갓에게 '아버님의 상중(喪中)이라 만부득 선생님을 잠자리로 모실 수 없사옵니다'.
어찌 김 삿갓인들 이런 마당에 그녀를 품어 그 정성을 망가트릴 생각인들 가졌겠는가?
''염려 마시게. 내 아무리 천하를 주유하는 걸객 이기로서니 자네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
그러자 죽향이 결심한 듯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내일 중으로 평양으로 올라가 모든 걸 청산하고 이곳에 와서 3년 간을 시묘 살이를 할 것입니다."
그녀의 다짐은 철석 같이 굳어 보였고 때마침 두견새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다음날 죽향이 평양으로 가는 길에 김 삿갓도 함께 동행했다. 이제 대동강의 아름다운 모습도 엊그제 바라
보던 풍류의 강으로 보이질 않았다.
"삿갓 선생님!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어허 그렇군. 평양에 자네가 없는데 내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더 있겠는가. 이제 자네가 떠나는 걸 보고 나면
나도 이곳을 떠나 관서 지방으로 갈 것이네."
드디어 대동강 가에 이르러 눈물을 펑펑 쏟는 죽향이 차마 배에 오르지 못하고 삿갓을 바라보며 울먹인다.
"선생님, 언제 또 뵈오려는지요. 소녀 꼭 다시 뵈옵고 모시기를 원하옵니다!"! 하며 시 한 수를 읊는다.
大同江上別情人 (대동강상별정인)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楊柳千絲未繫人 (양류천사미개인) 천만 가닥 실 버들도 잡아 매지 못하오
含淚眼看含淚眼 (함루 안 간 함루 안) 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斷腸人對斷腸人 (단장인데 단장인) 님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그야말로 간장이 녹아내리는 듯 한 죽향의 시를 들으니 어찌 김 삿갓이 화답을 않겠는가.
도도히 넘실 대는 대동강을 바라보고 한수 읊기를
翠禽暖戱對沈浮 (취금난희대심부) 푸른 새는 강물에 정답게 노닐어
晴景欄珊也未收 (청경난산야미수)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 만
人遠曼愁山北立 (인원만수산북립) 임 보내는 시름 북쪽 산에 어리고
路長惟見水東流 (로장유견수동류) 멀리 떠나는 길에 강물은 동으로 흐르네.
垂楊多在鶯啼驛 (수양다재앵제역) 꾀꼴 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고
芳草無邊客倚樓 (방초무변객의 루) 나는 다락에 기대어 풀밭만 바라보노라
召長送君自崖返 (초장송 군 자애반) 그대 보내고 나 홀로 언덕에 남으면
那堪落月下汀州 (나감 낙월하정주) 달이 질 때 설움을 어이 달래리.
이렇듯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읊으니 죽향은 소매로 얼굴을 감싸고 울면서 마치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오다 헤어지는 연인들처럼 차마 떨어지질 못한다.
"선생님. 이제 어디로 가시옵니까?"
"내야 정처 없이 떠도는 몸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걸세...
어서 배에 오르게나....
죽향은 설움이 북받쳐 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이별의 시를 읊조리는데 그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고혹적이다.
去去平安去 (거거평안거)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長長萬里多 (장장 만 리다)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
江天無月夜 (강천무월야) 하늘에 달 없는 밤이면
孤叫雁聲何 (고규안성하) 외기러기 슬피 울으오리다!
이 시 속의 외로운 기러기는 물론 죽향 자신을 말함이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 단 한 번도 잠자리를 한 적도 없건 만 이미 그녀의 마음에 김 삿갓은 남이 아니었다.
언제고 다시 만나면 평생을 모시며 섬길 어른이라 여기며 가슴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사랑하는 눈빛
으로 바라보며 삿갓에게 건넨다. 노자 돈이었다.
"아니 되네. 자네가 더 어렵지 아니한 가? 이 험한 세상을 여인 네가 홀로 살자면..."
"아니옵니다 선생님. 당장 오늘 밤은 어느 집에 무슨 끼니로 "
목이 메인 어조로 애원하는 죽향의 어여쁜 마음을 더 이상 뿌리치지 못하고 허리춤에 받아 넣는 김 삿갓
더 이상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어 울면서 돌아 서야만 했다.
죽향 아! 부디 잘 가거라! 오늘의 우리들 이별은 처음이요 마지막 이니라!
죽향이 오른 나룻배도 떠나가고 정처 없는 나그네 김 삿갓은 소리 없는 눈물을 훔치며
관서 지방을 향하여 떠나가고 있었다.
(퍼온 글)
출처 : 詩마당 by 살 메기
첫댓글 감명깊게 몇번 거퍼 읽었네요
山愛家 님! 반갑습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했지만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산을 너무 좋아해 필명이 '사니조아' 였습니다.
김 삿갓을 제가 너무 좋아해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120회로 나누어 쓴 글도 제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계시다면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풍자하시고 나무라실지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