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의 골프 친구인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의 모스크바 방문→러시아에 수감중인 미국인 교사 마크 포겔 석방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키예프(키이우) 방문→트럼프 대통령의 푸틴, 젤렌스키 대통령 전화통화
11일, 12일(현지시간, 시차 감안)에는 워싱턴과 모스크바, 키예프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토록 뜸을 들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푸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취임후 첫 전화 통화를 매끄럽게 끝내기 위해서였다. 서로 험한(?) 말이 나오기 전에 밑판을 잘 깔아놓는 정지작업이 필요했다.
미-러 정상의 통화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개시하기 열흘 전인 2022년 2월 12일 이후 처음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퇴임한 조 바이든. 푸틴-트럼프 대통령 간의 통화는 트럼프 집권 1기의 막판인 2020년 7월 23일이 마지막이었다. 전쟁으로 끊어진 미-러 정상간의 접촉이 3년만에 가까스로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후 두어차례 푸틴 대통령과 접촉했다고 주장했지만, 크렘린과 백악관 측이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 전화통화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2일 이날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푸틴과 트럼프 통화, 평화협상이 시작됐다'(Путин и Трампа поговорили. Дан старт мирным переговорам)라는 코너에서 트럼프-푸틴-젤렌스키 세 정상의 통화가 성사되기까지 막후 인사들의 숨가쁜 순간들을 살폈다.
◇트럼프 중동 특사의 푸틴 대통령 면담?
시작은 위트코프 특사의 푸틴 대통령 만남으로 보인다. 크렘린은 11일 위트코프 특사의 모스크바 방문마저 극비에 부쳤다. 일체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폭스 뉴스는 그가 푸틴 대통령을 무려 3시간 30분 동안 면담했다고 보도했다. 당연히 모스크바와 워싱턴은 이를 공식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았고, 위트코프 특사도 푸틴 대통령 예방 여부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은 친구"라며 "두 정상간의 지속적인 우호적 접촉은 전 세계에 이로울 것"이라고 애매한 말만 남겼다. 또 "마크 포겔의 석방은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 관계의 앞날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가 인정한 것은 모스크바에서 '젠틀맨 키릴'과 협상했다는 사실이다. "키릴이 양측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고 확인했다. 여기서 키릴은 러시아직접투자기금(RDIF)의 수장인 키릴 드미트리예프다. 신종 코로나(COVID 19)의 러시아 백신인 '스푸트니크V'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와 접촉한 크렘린 측 비공식적인 대리인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파트너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연결되는 PMC(군사기업) 블랙워터의 창립자인 에릭 프린스였다고 한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RDIF 대표/사진출처:영상 캡처
그는 또 2017년 다보스 국제경제포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단을 이끌었던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공보국장)를 만났고,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친분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키릴은 키예프에서 태어났지만, 14세에 미국으로 가 스탠포드 대학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골드만삭스와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에서 일한 미국식 투자 전문가다. 2000년대에 모스크바로 돌아와 대형 투자펀드를 운영하다가 2011년 러시아 직접투자펀드 대표에 올랐다.
푸틴 대통령과는 어떻게 연결될까? 스푸트니크V 백신 개발을 보고하기 위해 수시로 크렘린에 들어갔지만, 그것은 공적인 업무였다. 그의 비선은 아내. 푸틴 대통령의 둘째딸 예카테리나 티호노바의 절친인 나탈리아 포포바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반정부 성향의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효과가 확실한 대(對)크렘린 로비스트였다.
그는 위트코프가 모스크바를 방문하기 한 달 전에 크렘린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크렘린은 두 사람은 인공지능(AI) 등 산업분야에 대한 RDIF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스트라나.ua는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 위트코프와 키릴 대표가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 초기 접촉을 주도한 게 분명하다고 짚었다.
유대인 가문 출신인 위트코프 특사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뉴욕의 주요 부동산 개발자, 억만장자, 트럼프의 절친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 그를 중동 특사로 임명했고, 팔레스타인 하마스-이스라엘 휴전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키예프를 찾은 미 재무장관
키예프에서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트럼프 2기 각료 가운데 처음으로 12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났다. 군사 지원에 대한 대가로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을 받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구체화하는 게 겉으로 드러난 목적. 하지만, 그는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우크라 광물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평화협정의 일부"라며 "내가 이 곳에 온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이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물 협상을 넘어서는 자리였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14∼16일 독일에서 열리는 뮌헨 안보회의에서 양국간 광물협정 체결을 희망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음을 시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러시아 매체 영상 캡처
이후 "휴전 후 계엄령을 해제하고 선거(총선과 대선)를 실시할 수 있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내용이 알려졌다. 그는 안보 보장 없이는 휴전에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휴전 → 대통령 선거→새 대통령에 의한 평화협정 마무리라는 미국의 단계별 평화 구상을 수락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이 구상은 원래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가 이미 지난해 5월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푸틴 대통령의 거듭된 주장을 감안한 평화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5일 계엄령과 총동원령을 14번째로 연장한 바 있다.
◇워싱턴-모스크바-키예프 통화내용 발표를 보니
모스크바와 키예프에서 거의 동시에 이뤄진 듯한 사전 정지작업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모스크바로 전화를 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종전 협상을 즉각 시작하기로 푸틴 대통령과 합의했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워싱턴-모스크바-키예프의 공식 발표를 보면 미묘한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인 '트루스소셜'에 올렸는데, 성과를 부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방금 푸틴 대통령과 길고 매우 생산적인 전화 통화를 했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중동 사태, 에너지, 인공지능, 달러의 위력, 그리고 다른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는 두 국가의 위대한 역사에서 함께 싸운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생각했다. 나아가 함께 일함으로써 얻게 될 엄청난 이익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내가 대선 캠페인에서 사용한 매우 강력한 선거 구호인 '상식'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것(상식)을 확실히 믿고 있다."
"우리는 상호 방문을 포함해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또 즉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래트클리프 CIA 국장, 마이클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에게 협상을 맡겼고, 협상은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더 이상 단 한 명의 목숨도 잃어서는 안된다."
크렘린의 언론 발표문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가능성에 더 비중을 뒀다.
"양국 정상은 우크라이나 평화 정착에 관해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대 행위의 신속한 종식과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고, 두 정상은 평화 협상을 통해 장기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스크바 방문을 초대했다. 또 우크라이나 평화 합의를 포함한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관리들을 러시아에서 만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을 포함해 개인적 접촉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 통화 내용 발표는 러시아에 비하면 짧았다.
"방금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대화가 매우 잘 됐다. 그도 푸틴 대통령처럼 평화 정착을 원한다. 우리는 밴스 부통령이 이끄는 뮌헨 안보회의를 주로 논의했다. 그 회의가 성공적이기를 바란다. 이 어리석은 전쟁을 멈출 때이다. 이 전쟁은 쓸데없이 많은 인명 살상과 파괴를 몰고 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표는 톤이 조금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길게 대화를 나눴다. 평화 정착 가능성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드론과 같은 첨단 기술의 역량에 관한 대화였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의 협상 내용과 안보 및 경제, 자원 협력에 대한 새로운 협정 문제를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알려줬다."
"우크라이나는 누구보다도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공격을 막고,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과 공동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함께 해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추가 접촉과 회의에 동의했다."
◇현지 언론이 주목한 내용들은?
스트라나.ua는 미-러 정상이 첫 공식 대화에서 몇가지 사안에 대해 합의했다며 그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먼저, 전쟁 종식을 위한 공식 협상 개시 선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비오 국무장관과 래트클리프 CIA 국장,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위트코프 특사를 협상자로 내세웠다. 푸틴 대통령도 미국 협상 대표들을 모스크바에서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화답했다.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유튜브 영상 캡처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담당하는 대통령 특사인 키스 켈로그가 협상 주축에서 빠졌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 측은 그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걸 보면, 미국이 협상 성공을 위해 켈로그를 위트코프로 교체한 게 아니냐는 게 스트라나.ua의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가능성도 부각됐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모스크바로 초대했다고 크렘린은 발표했다. 어느 정도 교감이 없었다면 이같은 발표는 불가능하다.
전쟁 종식에 대한 양측의 열망을 확인했다는 점도 성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행동을 신속하게 끝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단계별 구상(휴전→우크라 대선 실시→평화 조약 체결)이 힘을 얻을 것으로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 역사를 되짚은 것은, 전후 얄타회담에서와 같은 새로운 안보 질서 구축을 요구한 러시아측 주장(제2의 얄타회담 개최)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함께 일하면(제2의 얄타회담) 큰 이익(새로운 세계질서)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전화 통화 순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먼저 대화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과 접촉할 것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뒤집었다. 푸틴 대통령과 먼저 통화하고 그 내용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뼈아픈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다.
미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유럽을 방문 중인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12일 나토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 연락 그룹'(UDCG) 회의에서 대놓고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2014년 국경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전임 행정부와는 180도 달라진 대(對)우크라 전략이다. 한마디로 러시아 편을 든 것이다. 그리고 몇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러-우크라 정상과의 전화 통화 발표가 나왔다.
트럼프-푸틴 전화 통화 여부를 놓고 그동안 말들이 많았다. 분명한 것은 두 정상의 직접 접촉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분야 측근중의 측근인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이 9일에도 두 정상의 통화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섬세한 협상(각 분야별 협상을 뜻하는 듯/편집자)이 많이 진행 중"이라고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우크라이나 갈등 해결에 관해 논의했다"는 미 뉴욕 포스트의 8일보도에 대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의 반응도 비슷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간 통화에 대해서는 확인도 부인도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푸틴 대통령간 직접 접촉은 12일 전화통화가 처음인 게 분명하다.